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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꼬부랑길과 터널

작성자황병일|작성시간26.06.12|조회수38 목록 댓글 0


우리나라에는 우리 민족의 감성을 잘 표현한 동요가 있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넘어가고 있네
   꼬부랑 꼬부랑~ 꼬부랑 꼬부랑~
   고개는 열두고개 고개를 넘어간다

이 곡은 60,70년 시대 전국 건전가요 부르기 운동(전석환) 시절에 통기타에 맞춰 많이 불려 진 노래로 한태근 작사, 작곡의「꼬부랑 할머니」이다.

이 노랫말에서 말하는 꼬부랑길은
갓 쓰고 도포 자락 휘날리며 먼 길을 떠나는 괴나리봇짐 나그네가 걷던 옛 길을 말한다. 속리산의 말티재처럼 자동차를 위해 수려한 산허리를 깎아 만든 넓은 꼬부랑길이 아니다.

이 길은 그 옛날에 누군가가 처음으로 터놓은 발자국 따라 사람들이 하나, 둘 왕래하다 생겨난 길이다.

바위가 가는 길을 막으면 돌아서 갔고, 산세가 험하고 가파르면 좀 멀더라도 완만한 지형 따라 돌아서 갔다. 개울이 나타나면 물살 센 여울목을 피해 물 얕은 곳을 찾아 건넜다. 그러다 보니 자연 길이 꼬불꼬불하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네의 꼬부랑길이다.

우리 조상들은 결코 자연을 훼손하며 길을 내지 않았다. 자연을 그대로 둔 채 나를 자연에 맞추어 이리저리 돌고 돌아 다녔다.

산은 본래부터 거기에 있었고, 바위도, 시내도 모두 태곳적부터 그 자리에 있어 왔기에 우리네는 자연의 자리를 넘보지 않았다.
그래서 이 불편한 꼬부랑길을 힘들게 다니면서도 누구 하나 탓하는 이 없이 살아왔다.

재 너머 딸네 집으로 가는 할머니는 재를 넘으려 가파른 길을 오르다 힘들면 풀 섶에 주저앉아 “휴~” 하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혔다. 불어오는 솔바람이 시원하다.

비록 힘들게 오르는 산길도 할머니는 솔가지에 이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자연과 더불어 걸었다.

봄이면 진달래가 온 산에 흐드러지게 만발했고, 풀 섶에 잠자던 토끼가 놀라 내다르기도 한다. 바위틈에 핀 도라지꽃은 그 청초하기가 이를 데 없다.
가을이면 붉게 물든 단풍이 온 산을 뒤덮는다. 떡갈나무에 영글어 달린 도토리 사이로 얼굴을 내민 다람쥐가 정겹다.
비록 산길이 가팔라 숨차고 힘들어도 우리네는 이러한 자연과 함께 이 길을 오직 한길로만 알고 넘나들었다.

그러나 서양인의 의식은 다르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오르내리며 힘들게 다니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꼬불꼬불하니 길도 배나 멀다. 어떻게 하면 재 너머 마을까지 편하게 또 빠르고 쉽게 갈 수는 없을까.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터널이다.

이 터널에는 솔바람도, 개울물도, 산새 우짖는 소리도 없다. 거기에는 낮인데도 햇빛이 들지 않아 깜깜하다. 통풍도 안 된다. 어쩌면 습기가 차 퀴퀴한 냄새까지 나는 칙칙한 길이다.
그래도 그들은 이 길을 가깝고도 편한 길이라 했다. 재 너머 딸네 집까지 쉽게 가는 길이라며 좋아라고 한다.

동양인은 주변의 모든 사물을 자연의 순리로 보며 살아왔기에 결코 개별적 본질을 파괴하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살아왔다.

산을 넘는 할머니처럼 우리네는 주변의 사물을 나와 더불어 사는 유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꼬부랑길을 천년을 두고 걸어 왔어도 결코 불합리한 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에 반해 서양인은 주변의 사물 하나하나를 인간 중심의 개별적 관계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그 개체를 인간에게 종속시켜 그 본질을 파괴하더라도 내가 편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산이 앞을 가로막으면 산을 뚫었고, 바다가 앞을 막으면 바다 위로 길을 냈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보고 우리는 날 수 없을까. 하며 낭떠러지에 올라 겨드랑이에 인공 날개를 붙여 날다 떨어져 다치기도 했다.
결국은 라이트 형제가 바람을 이용한 동력비행 개발에 성공했다.

이제는 우주여행 시대까지 열어 놓았다. 동양인의 정서적 두뇌로는 결코 생각하지 못하는 발상이다. 자연을 순리로 보는 동양인과는 달리 자연을 역리로 다스린 결과다.

우리나라에 발전기가 처음 들어오는 날(1887년 3월 6일) 고종과 명성황후와 대신들이 모여 발전기(Generator)의 시운전 행사를 가졌다.
발전기의 스위치를 올리자 천지가 진동하는 굉음과 함께 깜깜한 건청궁 앞뜰이 대낮같이 환해졌다. 촛불과 횟불 세상에서만 살아 온 대신들이 그만 그 놀라운 광경에 놀라 엉덩방아를 찍었다.라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조선의 마지막 황후 민비는 향기로운 세수 비누를 선물 받고 매끄럽게 세안 되는 것에 놀라 신기한 물건이라며 감탄했다.

어쩌다 장영실과 같은 위대한 과학자가 나타났지만 농·공·상을 천시하는 풍토에서 과학은 기를 펴지 못했다.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도 합리주의적 과학 정신을 가졌었지만 그 많은 저서와 제작물이 그리 활용되지 못했다.

급기야 나라에는 외세가 득세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우리 민족은 나라를 잃는 수모까지 겪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의 우수한 두뇌와 서양의 기술 문명이 접합함으로써 세계가 주목하는 민족으로 우뚝 서고 있다. 심지어 AI의 인공지능 세대까지 우리네가 첨단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그와 함께 우리네의 감성 문화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한국 영화가 그러하고, 한국 드라마, K-Pop이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음식 문화도 세계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또한 우리 민족의 한과 흥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한을 품은 판소리는 세계 어느 민족도 흉내 낼 수없는 음악이다.
세기의 음악가 윤이상은 민족의 혼이 담긴 이 한의 소리로 새로운 음악의 장을 열었다.

빠르고 또 쉽게 다니는 터널로 우리는 세상 편리를 모두 누리며 살고는 있지만 재 너머 딸네 집으로 힘들게 다니던 우리의 옛 꼬부랑길에서도 행복은 있었다.

갑돌이와 갑순이의 사랑은 비록 뒷동산 언덕배기의 남몰래 사랑이었지만 어쩌면 현대인의 카페에서 나누는 커피 한 잔의 사랑보다 더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서양인의 지적 이성보다 동양인의 정서적 감성을 더 좋아한다.

                      2022.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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