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정치에서 공존의 정치로 범공천(칼럼니스트) 6·3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지역 일꾼을 뽑는 축제의 장이어야 할 선거였지만, 남겨진 성적표는 우리 사회의 깊어진 '심리적 내전' 상태를 다시금 확인시켰을 뿐이다. 지방 행정의 비전과 주민 삶의 질을 논하는 정책 경쟁은 실종됐고, 그 자리는 견고한 진영 논리와 상대를 향한 적대감으로 채웠다. 이번 선거 결과에서도 가장 뼈아픈 대목은 선명하게 갈린 '동서(東西)의 장벽'이다. 개표 결과, 영남과 호남에서 특정 정당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여야가 지역별 승리를 양분하는 구도가 재현됐다. 이는 단순한 지지 정당의 차이를 넘어, 대한민국이 여전히 지역과 이념이라는 거대한 단절의 골짜기에 갇혀 있음을 보여주었다. 합리적 토론을 통한 중도층의 확산보다는, '내 편'을 결집하고 '네 편'을 심판하려는 증오의 정치가 투표 결과에 고스란히 투영된 셈이다. 민주주의에서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갈등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다루는 방식이다. 본래 정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타협을 통해 공동의 해답을 찾는 '공존의 기술'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정치는 상대를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반드시 궤멸시켜야 할 적으로 바라본다. 정치권은 상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지지자들은 확증편향의 늪에 빠져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끼리만 소통하며 편견의 성벽을 높이 쌓고 있다. 이러한 승자독식의 정치 문화는 산업화과정에서 형성된 권위주의적 잔재이기도 하다. 과거의 일사불란한 추진력은 경제 발전에 기여했지만, 그 과정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타협의 문화는 충분히 뿌리내리지 못했다. 결국 '이기면 전부를 갖고 지면 전부를 잃는다'는 인식이 정치를 전쟁터로 변질시켰다. 갈등이 초래하는 사회적 손실, 즉 '갈등 비용'은 이제 국민 모두가 감내해야 할 보이지 않는 세금이 되었다. 정권과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정책의 연속성은 무시되고 국론은 분열된다. 미래를 준비해야 할 나라의 힘을 집안싸움에 다 써버리니, 서로를 믿는 마음마저 메말라가고 있다. 경제 규모가 아무리 커진들 갈등을 증오와 적대로 키우는 사회를 성숙한 선진 공동체라 부를 수는 없다. 이제 선거 이후의 과제는 분명하다. 승자는 패자를 포용하고, 패자는 결과에 승복하는 성숙한 민주주의의 확립이 급선무다. 정치권은 상대를 악마화하는 언어를 지양하고, 영호남으로 갈린 지역주의의 골을 메울 제도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언론은 갈등을 부추겨 조회 수나 시청률을 올리는 버릇을 버려야 하며 시민들 역시 나의 생각과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관용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 강국이다. 그러나 진정한 선진국으로의 도약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갈등을 민주적으로 관리하고 조정하는 역량에 달려 있다. 경제 발전이 우리의 어제를 만들었다면, 사회 통합은 우리의 내일을 결정할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누군가를 굴복시키는 ‘승리의 정치’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정치’다. 이 당연한 상식이 이제는 우리 사회의 흔들리지 않는 중심축으로 자리 잡아야 할 때다. 2026.6.7 |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