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범씨[淑儀 范氏]
본관은 나주.
철종조에 승은을 입어 옹주를 낳았으나 첩지는 받지 못하였다가 고종대에 이르러 숙의의 첩지를 받았다.
소생으로는 철종의 자식들 중 유일하게 성장하여 혼례까지 치른 딸 영혜옹주가 있다.
묘는 서삼릉 경내 조선 왕들의 후궁묘. 에 위치하였다.
원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은동에 있었으나, 1969년 9월 26일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또 「숙의나주범씨지묘(淑 儀羅州范氏之墓)」라 새긴 갓형의 묘표는 크기가 폭 2 척(尺), 높이 20cm, 두께 5 척 이다.
▲ 폐비 윤씨 회묘에서 내려다 본 후궁들의 공동묘지.
폐비 윤씨의 묘에서 나무들 사이로 후궁들의 묘가 내려다보인다.
이곳은 일제가 모아들인 후궁묘와 해방 이후 묘의 주변개발 때문에 옮겨온 명종 후궁 경빈 이씨 묘 외 6기를 천묘해 모두 16기의 후궁묘가 있다.
광복 후에 천묘한 묘들도 왜 일제가 만든 묘의 형식을 그대로 따랐는지 알 수 없다.
고종 3년 1866년 2월 15일(을사)
철종조 궁인 범씨에게 공상하는 등을 별단에 써서 들인다는 호조의 계
○ 이재면이 호조의 말로 아뢰기를,
“대왕대비전께서 전교하기를 ‘철종조 궁인 범씨가 낳은 딸이 올해 아홉 살이니 영혜옹주(永惠翁主)로 작위를 봉하고, 범씨는 숙의(淑儀)로 작위를 봉하여 오늘 정사에서 하비하고, 집과 물품을 주는 일을 해조로 하여금 전례에 따라 거행하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공상하는 각종의 물품 및 유모(乳母)ㆍ보모(保母) 이하의 선반(宣飯)과 의전(衣纏)을 규정된 전례대로 별단으로 써서 들입니다. 이대로 진배할 것을 각사에 분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마땅히 처분이 있을 것이라고 전교하였다.
<승정원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