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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스크랩] 이인식(69) `과학 칼럼니스트, 지식융합연구소장` - 2014.2.10.조선

작성자하늘나라(홍순창20)|작성시간14.02.10|조회수103 목록 댓글 0

 

 

[대중과학서 45권째 출간… '과학 칼럼니스트' 이인식씨]

 

휴대폰·카드·운전면허 없고… 아직

원고지 쓰는 내가 '과학'으로 먹고살아

 


"피땀 흘려 원고를 써 번 돈이 아들 휴대폰 통신비로 나가
처음에는 미치겠더라고요… 나라도 휴대폰 없이 살자고"


"내가 쫄딱 망하고 났을 때 '남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아내가 말해줘… 이 정도까지 된 것은 아내 덕분"

집필 중인 이인식씨의 사진
이인식(69)씨의 대외 직명은 몇년 전까지 '과학문화연구소장'이었고 현재는 '지식융합연구소장'이다. 간판 없는 연구소는 그가 사는 집이고, 연구원들 없이 나 홀로 소장일 뿐이다.

"이 코너에 나오려면 정부 자리를 맡거나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저는 이벤트를 할 능력도 없지, 단념하고 있었는데 어쩐 일로…."

그는 최근 '융합하면 미래가 보인다'를 펴냈다. 이로써 45권째 대중 과학서를 썼으니 계기가 충분하다.

"대기업을 나와 명함도 봉급도 사무실도 없는 이 생활을 한 지 20년이 넘었어요. 국내에서 전문적으로 과학 칼럼을 쓴 것은 제가 처음이었지요. 한때는 제 독무대였어요. 그러나 1997년 IMF 이후 일이 끊겼을 때는 눈물겨웠어요. 친구들은 대기업에서 1억원을 받는데, 제 수입은 일 년에 6백만원이었어요. 스스로를 '6백만원'이라고 불렀어요."

그는 매년 두세 권의 저술을 꼭 출간해왔고 신문과 잡지에 쉬지 않고 연재하고 있다. 우리 나이로 일흔에 육박해도 생산력은 변함없다.

"신문에 어떤 인물이 소개되면 나이부터 봐요. 나와 비교하려고. 동갑이거나 나이가 많은 인물이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면 제 기분까지 좋아져요."

―프리랜서 생활은 절제와 자기 관리가 쉽지 않죠?

"몽유병 환자처럼 새벽 3시 반에 깨요. 과학 관련 해외 사이트를 보다가 배달되는 조간신문을 다 읽고서 다시 잠들어 8시쯤 깨요. 오전에는 미친놈같이 공부합니다. '점심 같이하자'며 찾아오는 출판사 손님이나 후배 교수들이 가장 반가워요. 집 근방에서 만나죠. 그런 뒤 저녁 8시까지 또 책 읽고, 원고를 써요."

―직장 근무 시간처럼 일하는군요.

"옷을 안 갖춰 입을 뿐이지, 그보다 더 일해야죠. 저는 지난 20여년간 해외여행을 해본 적이 없어요. 아내는 자기 친구들끼리 가요. 뭐, 나야 집 안에 앉아서도 바깥세상의 가장 앞선 정보를 누구보다 더 많이 아니까."

 

이인식씨는 “요즘 ‘통섭(統攝)’이 사회현상처럼 됐는데 이는 엉터리고 잘못된 용어”라고 말했다
이인식씨는 “요즘 ‘통섭(統攝)’이 사회현상처럼 됐는데 이는 엉터리고 잘못된 용어”라고 말했다. /허영한 기자
그는 '과학' '미래'를 주제로 글을 써왔지만, 그의 실생활은 과학기술을 전혀 따라가지 않고 있다. 휴대폰조차 없다. 연락 수단은 집 전화나 이메일이다.

"제가 피땀 흘려 원고 써서 번 돈이 다달이 대학생인 두 아들의 휴대폰 통신비로 나가니 처음에는 미치겠더라고요. 자식 놈한테 어떻게 할 수는 없고, 나라도 안 쓰겠다고 한 거죠. 이런 사정도 모르고 '과학 칼럼니스트가 휴대폰을 안 쓰니 반(反)문명적이고 멋있는 사람'으로 소개됐어요. 휴대폰을 안 쓰는 게 '브랜드'가 돼서 이제는 쓰고 싶어도 못 써요."

―요즘 같은 세상에 휴대폰이 없으면 본인도 그렇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칠 텐데요.

"약속을 정하면 저는 20분쯤 꼭 먼저 나가서 기다려요. 혹시 지각해 남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 싫거든요. 약속 시간 지나 15분까지 상대가 안 나타나면 저는 그냥 와버립니다."

그는 글도 2백자 원고지에 볼펜으로 쓴다.

"종이에 볼펜이 접촉하는 소리가 좋아서요. 원고를 다 써놓으면 아내가 컴퓨터에 입력해줘요. 아내가 장당 입력료 3천원씩 떼가죠."

그의 서재에는 오래된 나무 책걸상이 있었다. 그는 "총각 때 쓰던 것인데 40년 넘게 됐나…. 제 수입은 인세·원고료·강연료·출판기획료가 있지요. 여기 앉아 글 쓰는 일이 가장 힘든데 그 대가인 원고료와 인세는 정말 보잘것없죠"라고 말했다. 책장 아래에 '마인드' '나노기술' '섹스' '미래 컴퓨터' 등 표지를 붙인 파일 철만이 그의 밥벌이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과학기술로 바뀔 미래에 관해 수도 없이 써왔는데, 그런 예측이 얼마나 맞았습니까?

"거의 다 맞았지요. 1999년 '나노기술'에 관해 썼을 때 주위에서 '미친놈'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이제는 다 나노기술을 떠들잖아요. 컴퓨터가 안 보이지만 네트워크에 접속되는 '유비쿼터컴퓨팅'에 대해서도 처음 소개했지요."

―휴대폰이 없고 원고지로 글을 쓰고…. 운전면허증과 신용카드도 없다고 들었는데, 이런 분이 '과학기술'을 언급하니 좀 그렇군요.

"제가 대기업에서 잘나갈 때 운전기사가 쭉 있어서 면허증을 딸 시기를 놓쳤고…. 신용카드는 받는 입장에서는 현찰을 더 좋아하잖아요(웃음). 제 몸은 '기계치(痴)'이나 정신적인 역마살이 있어요. 권태를 쉽게 느끼고 새로운 것을 계속 추구하죠. 아무튼 과학은 우리가 갖춰야 할 교양이 됐는데, '통섭'이니 '집단 지성'처럼 잘못된 용어가 유행되고 있어요."

―그게 무엇이 틀렸나요?

"흰개미·꿀벌 같은 곤충이 집단행동할 때 나타나는 게 '집단 지능'이죠. 이를 '집단 지성'이라고 하면 안 맞죠. 개미에게 무슨 지성(知性)이 있나요? 이런 개념을 모르고 지식인들조차 '촛불 집회'에 대해서도 '집단 지성' 운운했어요. 또 '통섭(統攝)'이 사회현상처럼 됐는데 그게 엉터리라는 거죠."

―'통섭'이 잘못됐다는 건가요?

"이는 미국의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책 '컨실리언스(Consilience·부합)'를 번역한 거예요. 생물학을 중심으로 모든 학문을 통합하자는 '윌슨식 고유이론'이지요. 되지도 않을 소리죠. 그런데 이 '통섭'이 지식이나 기술 융합의 보통명사처럼 쓰이고 있어요. 작년에 박근혜 대통령도 창조경제와 관련해 '통섭이 어떻고'라고 했어요."

―지식 융합이라는 보편적 개념으로 '통섭'을 쓴 것이겠지요.

"학계에서도 논란이 많은 미국학자의 이론을 써서 왜 오해를 받나요. 윌슨 교수의 제자이고 번역자인 최재천 교수는 '통섭에는 원효(元曉) 사상이 담겨 있다'고 했는데, 불교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생물학이 인간과 사회문제를 푸는 데 많은 공헌을 했지만 어떻게 그걸로 학문이 통합됩니까. 이런 잘못된 용어를 국가 정책에도 쓴 셈이 됐지요. 차라리 '융합(convergence)'이라면 몰라도."

이인식씨와 최보식 기자 사진
―어떻게 '융합'하는 겁니까?

"융합을 막 섞는 '비빔밥'으로 알아요. 대학에서는 전공을 합치는 것처럼 받아들이기도 하고. 그러니 창조경제의 핵심 전략에 혼란이 생겨요. 전공은 갈수록 더 세분되고 깊어지는 겁니다. 자신의 전공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다른 분야의 지식을 받아들이는 게 융합이죠."

그는 박사 학위도 없고 교수 출신도 아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럭키금성(현 LG)에 취직했다. 벤처 붐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컴퓨터 분야의 최고 전문가였다.

"제가 처음으로 '병원관리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으니까요. 삼십대에 기획부장과 컴퓨터 개발부장을 했으니 잘나갔지요.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당시 옆자리의 업무부장이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다른 기업에 이사로 스카우트돼 서른 후반부터 운전기사가 딸린 맵시나 승용차를 타고 다녔어요."

1991년 그는 마흔여섯 살에 직장에서 사표를 냈다. 이유는 '괴델, 에셔, 바흐'라는 한 권의 책 때문이라고 했다.

"논리학자 괴델, 미술가 에셔, 작곡가 바흐 등이 어떻게 지성적으로 연관돼 있는지, 요즘으로 치면 '융합'에 관한 책이었어요. 내용도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이 책을 쓴 저자가 나와 동갑이었어요. 1979년 출간됐으니 서른넷에 이 대작을 썼던 거죠. 제 자신이 서글펐어요. '지금껏 인생을 헛살았다' 싶어서 그만둔 거죠."

―왜 과학 칼럼니스트로 방향을 정했나요?

"제가 직장을 다닐 때 '컴퓨터 월드'라는 전문 잡지의 기획을 해줬어요. 영어도 잘했고 컴퓨터에 밝았으니. 컴퓨터 관련 외국 잡지 30여권을 제가 다 읽고는 그중에서 표시해준 기사로 잡지를 만들었어요. 그런 경험으로 회사를 나온 이듬해 월간지 '정보기술'을 창간했죠. 외국의 새로운 동향이 리얼 타임으로 소개됐지요. 대단한 잡지였어요. 그러면서 저는 과학 칼럼을 썼고요."

―잡지는 성공했나요?

"기자들에게 월급도 제때 주지 못했고 저는 퇴직금을 모두 날렸어요. 2년도 못 가 문 닫았어요."

그가 "그 얘기를 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쫄딱 망하고 나니 직장을 구해 되돌아가야 하나 마음이 흔들렸어요"라고 말했을 때, 약간 목소리가 떨렸다.

"아내가 '남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했어요. 제가 이 정도까지 된 것은 아내 덕분이죠. 저는 이렇게 집을 지키고, 아내는 날마다 성당에 나가 봉사를 해요."

―어떻게 자리를 잡게 됐지요?

"직장에 나와 처음 낸 책이 '사람과 컴퓨터'였어요. 그때는 이런 분야의 책이 없었으니 호평을 받았어요. 그 뒤 월간조선의 청탁을 받아 연재했고 이를 모아 '미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냈어요. 이걸로 내 존재가 드러난 거죠. 그 뒤로 출판사에서 과학 서적을 내기 전에 리뷰를 부탁해오거나 기획 일을 맡겼어요."

―박사 학위도 없이 과학 칼럼니스트로 나섰을 때 과학계나 전공 교수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제가 '사람과 컴퓨터'를 썼을 때 교수들이 '이걸 어디서 베꼈지' 하면서 샅샅이 뒤졌다고 해요. 얼마나 혼났는데, 지금도 '안티 세력'이 많아요."

―왜 그럴까요?

"저는 교수가 아니니 학회에 가입도 안 돼요. 그런 제가 교수들보다 먼저 새로운 과학 흐름에 대해 쓰고 잘난 척한다는 거죠. 또 비타협적으로 살았으니까요. 과학계 내부 문제나 정치적인 과학 교수들의 행태에 대해 비판적이거든요. 제가 얼마나 밉보였으면, 지금껏 정부가 주는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을 100여명이나 받았는데 제 이름은 없어요. 심사위원들이 대부분 교수이니."

―평소에 인간관계를 좀 잘하시지.

"제가 강연할 때 '사람을 잘 알아두면 일이 오고 일이 오면 돈이 따라온다. 혼자서 이렇게 살아가는 노하우는 사람 관계'라고 말합니다. 사람에 대해 정성을 들이죠. 하지만 제가 아무리 좋은 짓을 해도 싫어하고 적대적인 사람들이 있어요. 이들은 아예 피합니다. 살날도 많지 않은데 그런 시간 낭비를 해서는 안 되죠."

곰탕집에서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슬쩍 물었다.

―글 쓰는 일이 재미있는 모양이군요. 원래 소망대로 된 겁니까?

"잘 아시잖아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멈추면 쓰러져요. 이제 어쩔 수 없어요. 싫으나 좋으나 해야죠. 팔자가 그렇게 됐죠. 저를 ''라고는 쓰지 마세요. 노동하고 대가를 받으니 아주 정상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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