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무언극 예천 청단놀음

작성자신재인9725|작성시간21.05.18|조회수273 목록 댓글 1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에서 행해진 민속극이며 2017년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 42호로 지정 되었다 대사나 사설이 없는 가면묵극(假面默劇) 형태의 민속놀이며 주로 설날과 정월 대보름 3월 삼짇날 5월 단오날 8월 추석과 섣달 그믐날과 같은 세시풍속에도 놀았으며 고을 사또나 수령이 새로 부임 했을 때도 놀았다고 한다 ‘청단’이라는 명칭의 어원은 가면의 색상에서 왔을 듯하나 분명하지는 않으며, 『동국세시기』의 12월조에 보이는 나희(儺戱)의 청단(靑壇)과 어음상(語音上)의 연관도 연상된다. 나희는 세모의 세시풍속으로 가면극을 수반하는 굿판이고, 또 청단은 ‘靑丹’·‘靑壇’ 어느 쪽으로도 한자화 할 수 있으니, 양자의 연관을 연상할 수 있으나 고증하기는 어렵다. 청단놀음의 놀이마당은 한천(漢川) 백사장에서 장막을 둘러치고 노는데, 대사(臺詞)나 사설이 전혀 없는 가면묵극(假面默劇)으로 모든 내용이 춤으로써 표현된다. 이 극은 언제부터 놀아왔는지 알 수가 없으나 기원 설화에 따르면, 예천 청단놀음은 전라도에 살았던 한 늙은이의 젊은 아내가 가출한 데서 비롯하였다. 아내가 가출하자 노인은 몸져누웠다. 이를 보다 못한 아들이 놀이패를 꾸려 각처를 떠돌면서 서모庶母를 찾았다. 마침내 예천에서 여인을 찾았지만 귀가를 거부하자, 아들 일행은 여인을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고 떠나 버렸다. 그 뒤 여인의 원한 때문에 재앙이 발생하자, 사정을 알게 된 고을 수령이 여인에 대한 제사를 설행하고 아들이 놀던 탈놀이를 재현하게 했더니 재앙이 사라졌다. 이때부터 예천에서는 고을의 안녕을 위해 해마다 여인에 대한 제사와 청단놀음을 벌여 왔다고 한다. 예천읍은 예로부터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각종 산물이 집산하던 상업의 중심지로 장날마다 상인과 한량들이 흥청거리던 고을이다. 청단놀음에 사용되는 탈이나 의상은 모두 한량들에 의하여 만들어졌고, 농악도 그들이 직접 치며, 광대도 역시 그들이 담당 하였다. 농악은 외마치 장단·세마치 장단 및 살풀이 장단 뿐이고, 춤은 덧뵈기가 중심이다. 바가지로 만든 탈이 19개, 키(箕)로 만든 탈이 4개이며, 무동(舞童)역을 하는 어린이 외에 광대의 총수가 25명, 농악 악기는 꽹과리·장구·징·북·호적·소고 등이다. 전체 여덟 마당으로 짜여져 있는데, 과거에는 갹출되는 경비에 따라 한두 마당의 가감이 있었다. 첫째마당은 광대놀음으로, 광대 2명이 북을 치며 춤을 춘다. 때때로 서로 자리를 바꾸어가며 농악 가락에 맞추어 흥겹게 논다. 둘째 마당은 주지놀음으로, 2명의 주지광대가 저마다 주지판을 들고 서로 부채질을 하고 또 관중 앞으로 다가가서 부채질을 하면서 춤을 춘다. 셋째 마당은 양반 사대부 놀음으로, 양반과 사대부가 즐겁게 춤을 추며 노는데 기생인 쪽박광대가 나타나서 양반과 사대부를 번갈아 가며 유혹한다. 넷째 마당은 학춤(鶴舞)으로, 학이 나와 춤을 추면 박쥐와 제비가 차례로 나와서 함께 어울려 춤을 춘다. 다섯째 마당은 자연광대 놀음으로, 키로 만든 커다란 탈을 쓴 4명의 자연광대가 긴 수염을 휘날리며 춤을 춘다. 여섯째 마당은 파계승 놀음으로, 쪽박광대가 마당을 쓸고 있을 때 탁발승이 지나다가 이를 목격하고 쪽박광대의 유혹에 빠져 놀아나는데 얼레방아가 나와 호통을 친다. 일곱째 마당은 바라춤으로, 여승 2명이 고깔을 쓰고 바라를 들고 춤을 춘다. 여덟째 마당은 무동으로, 이동무 4조와 삼동무 2조가 농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이 민속극은 그 전설로 보아 시장에서 벌이는 놀이마당인 듯하나, 우리 나라 전래의 도시 가면극과 농촌 가면극 중 어느 계통인지 분명하지 않은 특징을 가진, 주로 탈춤으로 표현되는 묵극(默劇)이다.사대부나 파계승에 대한 풍자내용 등은 다른 지방의 영향을 입은 듯하다. 담당자가 지방의 한량들이며 노는 시기가 세시풍속과도 별로 관계가 없고 장소도 냇가라는 점 등은 지금까지의 민속극 연구에 또다른 과제가 될 수 있는 요소이다. 본디 예천 청단놀음은 예천 읍치의 새해맞이 축제를 구성하는 연행으로 전승되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 이후 축제 전통이 쇠락하면서 청단놀음도 함께 전승력을 잃게 되었으며 1930년대의 예천 경찰서 낙성식 기념 공연을 마지막으로 전승이 중단되었다. 그 뒤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지역의 전통문화유산, 특히 무형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강원희를 비롯한 지역 내외의 관계자들이 예천 청단놀음에 관심을 기울이고 조사를 하였다. 이 과정에서 황병현, 장재영, 장정섭 등 1930년대의 공연에 직ㆍ간접적으로 관여한 이들로부터 청단놀음의 형식과 내용, 탈과 복식 등에 관해 제보를 받고 놀이를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전승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런 작업을 바탕으로 재현된 예천 청단놀음은 1981년과 1987년, 그리고 2002년에 열린 한국민속예술축제에 경상북도 대표로 참가하였으며, 현재 예천 청단놀음 보존회를 중심으로 전승 활동을 벌이고 있다.

 

 

 

출처: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 (청단놀음(靑丹─))

 

 

 

 

 

예천 청단놀음의 탈들 (자연광대 탈들은 키로 만들고 나머지 배역 탈들은 바가지와 한지로 만든다)

 

북광대 (북광대들은 흰 민복에 청색 홍색 쾌자를 입고 짚신을 신고 북채 2개를 들고 꿩 깃과 갓끈이 달린 죽립을 썼다)

사대부 (사대부는 흰 바지 저고리에 옥색 도포를 입고 정자관을 썼으며 갖신을 신고 장죽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문화재로 지정 된 이후로는 탈을 쓰지 않고 얼굴에 분장을 하면서 연희를 한다)

양반 (양반은 흰 바지 저고리에 흰 도포를 입고 갓을 썼으며 갖신을 신고 부채를 들었다고 한다 양반 또한 역시 문화재로 지정 된 이후로는 탈을 쓰지 않으며 얼굴에 분장을 하면서 연희를 한다)

주지광대 (흰 민복에 검은색 쾌자를 입고 볏짚으로 만든 고깔을 썼으며 짚신을 신고 커다란 부채 주지판을 들고 춤을 춘다)

얼레방아 (흰 민복에 짚신을 신고 더거리 또는 조끼를 입고 머리에 벙거지 또는 패랭이를 쓰고 다니며 방정맞게 춤을 추고 파계한 중을 혼내 주는 역할을 한다)

중 ( 승복을 입고 장삼을 입고 붉은 가사를 두르고 염주를 목에 걸고 목탁을 들고 짚신을 신고 커다란 삿갓을 쓰고 나온다 쪽박광대와 눈이 맞아 장삼춤을 추다가 얼레방아에게 들켜 놀이판에서 쫓겨난다)

쪽박광대 (양반 사대부 놀이에서 나오며 파계승 놀이에서 나온다 한 쪽박 광대는 치마 저고리를 입고 꽃신 또는 비단신을 신고 표주박과 주걱 또는 작은 빗자루를 들고 나와서 춤을 춘다)

여름

가을

겨울

 

자연광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대나무 키로 만든 탈이며 수염은 실로 만들었다 흰 민복에 짚신을 신고 사계절을 의미하는 색깔의 더거리를 입고 춤을 춘다)

무동광대 (무동(춤추는 아이들)들을 어깨 위에 태워서 노는 광대들이며 흰 민복에 조끼를 입고 짚신을 신었다 하지만 무형문화재 지정 이후 지금은 탈을 쓰지 않고 무동을 태우면서 연희를 한다)

 

 

 

사진 출처 : Google & Naver & 경북 북부권 문화 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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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계란꽃 | 작성시간 21.05.20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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