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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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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호호|작성시간22.05.22|조회수98 목록 댓글 1

<< 사기열전 상. 하>>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을유문화사.

 

/한국인에게 책의 길은 부국강병의 길과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의 위협과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책의 힘을 선택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은 그들을 가난하게 만들었고, 책은 兵戈앞에 그들을 떨게 했지만 동시에 그들은 책의 힘을 믿었습니다.------흉맹한 야만족은 그리스의 도시를 침공하여 많은 문명의 산물들을 약탈했지만, 유독 책만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고 갔다는 것이지요.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리스인을 겁쟁이 약골로 만든 것이 다름 아닌 그 책들이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판단은 옳았던 것 같습니다/ 제28차 국제출판협회 서울총회 개막식에서 이어령의 기조강연 중.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책을 읽고, 술을 약간 마신 날은 약간 책을 읽고, 과음을 한 날은 우선 잠을 자고 혹시나 깨어나면 책을 읽는다. 인생에서 세 가지 임무를 나에게 주기로 하였다. 우선 생활비를 벌고, 잠을 충분히 자고, 그런 연후에 틈틈이 책을 읽어 볼 생각이다. 여건이 되면 이 중 가장 먼저 그만두고 싶은 임무는 생활비를 버는 일이다. 요즘은 홍상수 영화를 매일 보다시피 한다. 영화를 모르지만, 홍상수 감독 영화는 의미를 찾으려고 하거나, 기존의 문법으로 보려고 하면 정말 지루한 영화다. 하지만 무의미를 받아들이고 힘을 빼고 우연을 따라가다 보면 꽤나 볼만한 영화다. 자꾸 보다 보면 홍상수식 안목을 갖게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다. 인생에 의미가 없듯이, 책을 읽는 것도 사실 특별한 뜻이 없지 싶다. 괜히 읽는 행위에 특별한 역할을 주지 말자. 책은 권력과 부가 아니기에 힘이 없다. 나약한 이에게 총과 칼을 쥐어주어서야 되겠는가. 돈을 벌고 잠을 잔 후에 그런 연후에 책과 밀회를 즐기자. 자신의 남편과 부인은 세상에 내어놓지만 정부와의 밀회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책은 작고 초라하고 빈곤한 물건이다. 그 책을 좋아하는 나는 작고 초라하고 가난하다. “운명이다”

 

사기는 130편의 방대한 책이다. 한무제 때 사마천의 저술이니 대략 2,200년 정도 전의 책이다. 지금처럼 종이에 쓴 글자 묶음이 아니라 죽간이나 목간에 52만 6500자로 쓰여졌다고 한다. 이 책 /사기열전/만 해도 빽빽하게 1,200페이지인데, 죽간이나 목간으로는 그 양만해도 어마어마하지 않았을까? 보관하는데도 엄청난 정성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사기는 12본기. 10표, 8서, 30세가. 70열전 으로 구성되었다. 이 책은 70열전만 따로 떼어서 사기 열전 상,하로 출판되었다. 일반 독자들에게 굳이 열전 외 본기, 표, 서, 세가는 멀고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서 고생할 이유가 없기에 그랬을까. 열전은 인물전이다 사마천은 한무제 때 사람이며, 그가 다루는 인물들은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한나라의 인물들이다.

 

나는 ‘운명’을 믿는다. 개인에게는 운명이고 사회나 국가에는 역사라고 하고 싶다. 나는 내 나름대로 ‘운명’을 개인과 세계가 맺는 관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역사란 사회와 국가라는 공동체가 세계와 맺는 관계라고 정의하고 싶다. 물론 이건 자의적인 해석이다. 이 자의적인 정의를 바탕으로 나는 운명을 믿는다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운명은 있다’를 좀 더 강렬하게 과장하기 위해 ‘믿다’라고 썼다. 을유문화사의 사기열전은 아주 오래 전에 구입한 책이다. 그동안 한 번 정도 읽고 군데군데 여러 번 읽어보려고 시도하였지 싶다. 한지만 단 한 번도 만족할 만한 읽기를 하지 못했다. 그저 사람들이 대단한 책이라고 하니 읽어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만족할 만한 독서를 하였다. 그동안의 축적의 시간과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싶다. 그동안은 /사기열전/을 읽을 실력과 능력이 못되었는데 허세나 허풍을 부린 꼴이다. 문자만 안다고 하여 모든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자 오만이다. 동네에서 주먹질 좀 하였다고 우리는 격투기 대회에 출전하려고 하지 않는데, 유독 책이라는 아니 문자 영역에서는 그렇지 않는 것 같다. 글자만 깨우치면 그 글자라는 무기를 가지고 온갖 성을 공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동안의 사기열전에 대한 나의 독서란 막대기를 가지고 만리장성을 공략하겠다는 무모하고 무지한 객기였다. 어느 영화 대사를 인용해 보면 이렇다. /무식한거야/

 

내가 왜 갑자기 책꽂이에서 사기열전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어찌 나의 선택과 결정을 모두 해석하고 설명 할 수 있겠는가. 술을 먹고 갑자기 예뻐 보여서? 7이라는 숫자가 길하다고 하여 왼족에서 일곱 번째를? 고양이가 이 책에 눈독을 들여서, 단지 책이 두꺼워서? 알 수 없는 일이고 알고 싶지도 않다. 이 중에서 책이 두껍다는 이유는 약간 수긍할 수 있다.

또 다른 작은 이유 중의 하나는 내 운명을 받아들이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다. 다른 이들은 벌써 제 운명을 받아들여 안락한데 나는 이제야 운명을 받아들이는가 싶기도 하다. 마치 유행이 다 지난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자일지 모른다. 개인과 세계가 맺는 관계를 이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 꼭 그렇지만도 않아 보이기도 한다. 모두들 운명을 거부하고 즉 세계와 내가 맺는 관계를 거부하고 개인만 존재한 양 생각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나는 개인과 세계를 우선 전혀 다른 항으로 설정하고자 한다. 각 항은 다른 항에 전혀 영향을 끼칠 수 없다. 개인은 세계를 어찌 할 수 없고, 세계 또한 개인을 어찌 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은 세계에서 살아야 하기에 이 세계와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런 이차방정식을 ‘운명’이라 하고 싶다. 그러나 늘 개인은 세계에 대해 종속변수 일 수밖에 없다. 개인은 죽지만 세계는 영속하고, 개인은 개별이고 세계는 전체이기 때문이다. 내가 우주의 운행을 바꿀 수는 없다. 나는 이런 전제를 받아들이기 위해 /사기열전/이 필요했을 수도 았다.

 

나는 어쩌면 세상에 분노하거나 슬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계가 내 맘대로 운영되지 않아서 일게다. 나는 이 오래된 고질병을 고치고 싶다. 이 병의 심각성을 알고는 있었지만, 나의 생활 습관이나 규칙으로 내재화 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격언에 질려버렸다. 이 격언은 사실 정복자의 표어다. 나의 운명은 순전히 개인의 ‘노력’에 달렸다는 말도, 개인만 있고 사회는 없다라는 언설도 역겹다. 이 격언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그 극소수도 죽음을 앞두고는 그 넓은 세계도 자신의 육체로 극한 수축되고, 많은 일을 한 듯 하지만 사실은 그가 평생 한 일은 개체의 생명의 유지하며 보존하는 일이었을 뿐이다. 책임은 내 자신에게 또는 셰계에 일방적으로 있지 않고 그 언저리 혹은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닐까. 맨 처음 글자를 배우는 어린애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난다. 맨 처음 글자를 배우는 학생처럼 개인과 세계에 대한 방정식을 배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와의 약속 장소를 바로 앞에 두고 간판을 읽지 못하여 안절부절 하다가 급기야 화를 내고 분노하는 일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괜히 간판에 발길질을 하거나, 애먼 문자에 화풀이하지는 말자고 다짐해 본다. 세계는 나를 위해서 준비된 만찬이 아니다.

 

홍상수 영화에서처럼 내가 왜 이렇게 횡설수설 하고 있는걸까? 홍상수처럼 그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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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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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으샤 | 작성시간 22.05.23 책읽기를 삶처럼 받아들이며 읽는 책이 [사기열전] 인가봐요. 그냥 일상처럼 읽고 쓰는 듯 보입니다.

    부럽습니다. 잘 읽고 잘 쓰기!

    열전의 바다에 뛰어들어갔다 왔으니 세계가 또 다르게 보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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