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인 앎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추측이 개입된 것이지만 내적인 앎은 절대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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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을 가져오는 것은 오로지 아는 것에 의한다.
무엇인가를 믿는 다면,
당신의 영혼은 누군가가,
아니면 당신 자신이,
당신에게 억지로
어떤 진실을 확신시키려 하고 있다는 의미로
그 “믿는다”라는 말을 이해한다.
믿는 것의 그 진실은 당신이 현실로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당신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확신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이 어떤 것을 믿기를 바라지 않는다.
당신이 알기를 바란다.
깨치는 것이 아는 것이다.
의심이나 믿음,
신념 혹은 기대 따위,
이런 것들은 모두 추측이 개입된 것이다.
당신이 무엇인가를 믿거나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 존재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는 것은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고,
또 알게 된 것을 발현시킨다.
생각을 발현시켜 경험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해를 얻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당신 존재의 일부분이지,
당신 자신에게 확신시켜야만 되는 그 어떤 것이 아닐 것이다.
절대적인 앎은 당신 왕국 전체의 창조자이다.
모든 것을 알고자 한다면,
그저 “나는 알고 있다”라고 말하라.
의심하지도 말고 망설이지도 말라.
알라.
절대적으로 “나는 안다”라고 말하는 순간마다,
확고한 생각이 당신 존재 안에서 느껴지고
이것이 앎이 일어나기 위한 여백을 만들어 주게 된다.
당신이 앎의 문을 열어서 더 위대한 생각이
창조적인 형태로 드러날 수 있을 때,
천재성이 발휘된다.
당신이 ‘안다고’ 할 때
당신 존재는 지금 당신의 앎의 상태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빠르게 조정할 것이다.
성취하기 위해서 수고할 필요가 없다.
애쓰고, 탐구하고, 투쟁할 필요가 없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의식을 행하고
찬송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알라!
앎으로, 당신은 그것을 알기 위한 수용자의 입장에 있게 된다.
어떻게 당신의 욕구를 빨리 발현시킬 수 있는가?
앎으로 된다.
앎은 진실이다.
그것은 주는 자이고
당신의 미래이다.
당신이 말로 표현할 때,
그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알라.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다.
당신이 입법자이며,
당신이 알고 말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그렇게 실재하게 된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유일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가정하거나 믿는 것보다
아는 것이 얼마나 더 위대한가?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것보다
아는 것이 얼마나 더 위대한가?
알지 못하는 것보다 아는 것이
얼마나 더 위대한가?
알라
그저 알라
“나는 이것이 일어날 것을 안다”
“나는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나인 것을 안다”
이렇게 알고 또 알라!
그것이 전부이다.
만약에 당신은 그렇지 않다거나
그럴 수 없다고 한다면,
당신은 결코 모를 것이다.
지금 안다고 말하라
그러면 당신은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은 아직도 당신이 무한한 신임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의 사회는 당신이 무한한 신이 아니라고 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이 무엇을 아는가?
그들은 날마다 스스로를 잊어버린다.
<람타 열린마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