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들을 너희 마음에 간직하고 영원한 엄숙함이 너희 생각에 머물러 있게 하라.”

작성자Taewan Geum|작성시간26.06.23|조회수14 목록 댓글 0

시편의 저자는 자신의 찬송을 시로 읊으며 이같이 선언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1

이 시에 나타난 대구법을 통해, 시편의 저자는 주님께서 지니신, 모든 지식을 아시는 신성한 속성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분께서 진실로 우리 영혼의 모든 면면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2 이생에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두 알고 계시는 구주께서는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그분을 찾고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해 그분을 따르라고 권유하십니다.3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그분의 빛 가운데 걸어갈 수 있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통해 우리 삶에서 어둠의 영향력을 막을 수 있다는 약속을 얻습니다.4

무슨 생각을 하든지 그리스도를 찾고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해 그분을 따르려면 우리의 생각과 소망을 그분의 것에 일치시켜야 합니다. 경전에서는 이 개념을 “주 안에 서[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우리가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복음과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매일 선한 모든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만 우리는 “모든 지각에 뛰어[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하나님의 평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구주께서는 1831년 2월에 친히 교회의 장로들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 일들을 너희 마음에 간직하고 영원한 엄숙함이 너희 생각에 머물러 있게 하라.”


우리가 아무리 주님을 찾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더라도 부적절한 생각이 우리 마음에 비집고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품고 마음에 계속 담아 둔다면, 그것이 우리 마음속 소망에 영향을 주어 이생에서 훗날의 우리의 모습을 빚어 내고, 결국 우리가 영원히 상속받게 될 것도 그로 인해 결정될 것입니다.
닐 에이 맥스웰 장로님은 이 원리를 다음과 같이 강조하셨습니다.
“욕망이 결과의 등급을 결정짓[기도 합]니다. ‘부름을 받는 자는 많으나 택함을 받는 자는 적도다’라는 성구가 그것을 말해 줍니다.”


고대 및 현대의 선지자들은 우리가 영적 견인력을 잃고 혼란 속에 방황하며 삶에 환멸을 느끼지 않도록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해 왔습니다.

비유로 말씀드리자면, 유혹에 굴복하는 것은 마치 금속 물체를 들고 자석에 다가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 힘이 눈에 보이진 않지만, 자석은 금속 물체를 끌어당겨 단단히 붙잡습니다.
자석은 오직 금속 물체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만 그 힘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치 자석이 멀리 있는 금속 물체에 힘을 행사할 수 없듯이, 우리가 유혹에 저항할 때 유혹은 점차 약해지고 우리 생각과 마음, 결과적으로 우리 행동을 지배하는 힘을 잃게 됩니다

무슨 생각을 하든지 그리스도를 찾으라

https://www.churchofjesuschrist.org/study/general-conference/2020/10/43soares?lang=kor&id=p1-p26#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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