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빨간 색 만큼 시선을 잡아 끄는 색은 없다. 아기만큼 순식간에 타인의 시선을 따뜻하게 끌어내는 이는 없다. 2003년 11월 22일. 낯가림이 심한 스사노를 소망나무로 인도한 아기. 우리가 소망나무를 키우는 이유. 가장 큰 이유.
2. 고사리같은 손, 그 손에 손을 잡고 찾아온 소망나무의 반가운 친구, 기찻길 옆 아이들. 추운 겨울 분주한 대학로 거리에 핀 봄꽃. 개나리,진달래,벚꽃... 아이들 살냄새, 달디 달다.
3. 봄꽃 사이로 고개를 비쭉 내밀고 웃고있는 친구,보기만해도 눈물이 날 것 같은...아니, 보기 만 해도 웃음이 비어져 나오게 하는 저 친구. 박기범.
4.나는 한 끼만 굶어도 머리가 핑 돌고, 짜증이 나서 누가 옆에 있던 말든 툴툴거린다. 그런데 이제 만인의 말리고 걱정하는 '단식'이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을 시작하며 웃고있었다. 그는. 속으로 울면서 겉으로 웃는 그런 웃음이 아니라 정말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는. 그래서, 순간 나도 걱정없이 웃었다. 그는 아이처럼 스사노를 반가워했다. 난 그런 그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그래,그랬다.
5.우린 정말 신이 났다. 단식을 시작하는 날인데, 작은 생명 구하기 위해 이렇게라도 해야하는,어찌보면 너무나 슬프고 가슴픈 이 날이 이리 신나고 재미날 줄 우리도 몰랐다.
6. 날이 흐렸다. 대학로는 낯선 사람들과 차가운 빛을 띤 차들로 삭막한 도시의 풍경을 그렸다. 소망나무의 나무지기인 사람들은 그 쌀쌀한 그림에 색을 입히고 온기를 불어 넣었다. 노래지기는 두 손을 꼭 쥐고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불렀고, 또 다른 노래지기는 언 손을 호호 불어 녹여가며 기타를 쳤다. 소리가 없는 그 거리에 그렇게 소리가 생겼다. 바쁜 도시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그 소리를 따라 소망나무에 닿았다.
7. 기찻길 옆에서 온 어린, 소망나무 친구들은 그 도시를 메우고있던 도시 사람들의 마른 가슴을 두드렸다. 징으로,북으로,장구로...그렇게 사람들의 가슴을 두드렸고,다른 나무지기들의 가슴에도 큰 울림이 되어 하나되게 했다.
8. 옹기종기 모여 서로의 기운을 나누고, 서로의 온기를 나눈다. 소망나무는 그 기운으로 자라고, 또 자랄 것이다.
9. 대학로 거리에 어느덧 어둠이 찾아들고... 우리는 가슴을 불을 밝히듯 작은 초에 불을 밝혔다.
0. 한 개의 초가 둘이 되고, 그 둘이 또 셋이 되고......
어두운 거리를 그렇게 모인 작은 불빛들이 밝혔다.
기범 오빠가 하려는 것, 나무지기들이 하려는 것, 그리고 우리가 하려는 것. 우리의 온기를 먼 곳의 힘든 친구에게 전하려는 간절한 마음.
11. 나는, 또 우리는 이 밤 또 초의 불을 밝힙니다. 비록 크고 환히 빛나는 빛은 아니지만 언 두 손을 녹일 수 만 있어도 족할, 그 작은 불을 밝힙니다. 그리고 우리는 해낼 것입니다. 지켜낼 것입니다. -2003년 11월 22일 파병을 반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