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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회> 토론 후기 《죽음의 수용소에서》 [26.6.10.수.]

작성자박연|작성시간26.06.12|조회수63 목록 댓글 0

<271회> 토론 후기 

 
1. 날짜 : 2026년 6월 10일(수)  20시 ~ 22시 
 

2. 장소 : 비대면 Zoom 모임
 

3. 토론서
-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 발제자 :
김 민 자

4. 참석 인원
- 김민자, 김정자, 신동희,  박수현, 성진희, 진재희, 박연 (7명)
 

5. 공지사항
-정독도서관 책 선물을 인문사회자연실에서 수령해가시기 바랍니다.

 

-발제 순서가 조정되었습니다. 하단을 참고하세요.

 

-2026년 제3분기 토론서 목록은 8월 중순 이후 함께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6. 토론 내용
 

1. 소감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체험적 수기에 더해 정신과 상담서 같은, 삶의 극한 상황 속에 놓인 사람들에게 고통의 강을 걷너는 방법과 위로를 주는 치유의 책으로 다가왔다. 누구나 한 번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일 것 같다.  ♣청년시절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크리스마스 때까지 버티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무너진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내 몸은 항상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인간 삶의 목적이란 DNA를 퍼뜨리는 것일 뿐이라는 과학적 견해 ('이기적 유전자') 도 있으나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존재가 인간이기도 하기에 그것이 인간답게 사는 삶이다. ♣10년 전에 읽었고 후에도 여러 번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전율, 생동감이 느껴진다. 극한 상황에서도 저자가 감정을 섞지 않고 냉정하게 기술하는 모습이 더욱 충격적이고 감동적이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아우슈비츠에서 장교의 손짓 하나로 수많은 목숨들의 생사가 결정되는 부분과, 수용소에서 풀러난 후 고향을 방문했을 때 겪은 지인들의 썰렁하고 무심한 반응이었다. 인간의 삶이란 본래 이런 것일까.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보고서(아우슈비츠)와 연구서(로고테라비)가 결합된 책. 저자는 정말 대단한 인간이라는 생각. (노년에조차 암벽등반, 비행).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주어진 생존의 기회를 버리기로 '선택'하는 대목들이다. 개인의 생존보다 함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자유의지적 선택이 그지없이 존경스럽다. ♣의식적으로 운명을 결정하기보다 미지의 운명의 손길을 수용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11년 전 읽었을 때 너무 고통스러웠기에 다시 읽기가 두려웠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읽혔다. 예전에는 고통과 생존이라는 코드였다면, 이번에는 '의미'라는 코드로. 저자의 체험과 학문적 이론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성공이나 행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그것은 어떤 행동의 결과로 찾아오는 것" [10]은 요즘 내게 꼭 필요한 조언이다. 200쪽 정도의 얇은 책인데 지극히 두꺼운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래서 초대형· 초장기 베스트셀러가 된 것 같다. ♣전쟁을 겪은 사람이라면 더욱 절절히 느꼈을 것이다. 단어 하나하나가 납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2부인 로고테라피 이론 부분은 미국 출판사의 제안으로 첨부되었다고 한다. 수용소의 실상을 담은 끔찍한 책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으나 읽어보니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고, 전체적으로 참 좋았다. 영역본에는 소제목(서브타이틀)들이 없는데 이시형이 번역한 국역본에는 있어서 좋았다. 인상적인 에피소드: '원숭이 이야기'. 실험용 원숭이들이 고통의 의미를 알 리가 없듯, 인간의 고통도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초 의미(super-meaning)'인가. 프로이트나 아들러는 인간 정신의 밑바닥(무의식)을 파고 드는 반면, 프랭클은 위쪽을 탐색하는 것 같다. 특히 다가온 구절: “현재의 삶을 두 번째 삶을 사는 것처럼 살라. 지금의 순간의 선택이 첫 번째 인생에서 내린 그릇된 결정일 수 있다고 생각하라.” 내 삶에 적용해보려고 한다. ♣그간 수용소 관련 책은 공감하기가 너무 괴로울 것 같아 일부러 회피해왔는데, 다행히 그런 장면들은 없었다. 좋은 구절들이 너무 많아 밑줄을 가득 쳤다.

 

 

2. 죽음의 수용소 안에서 기도와 예배: 낙관주의인가, 현실인식 부재인가

♣나는 기질적으로 낙관주의자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자신을 의도적으로 다독인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생각하고, 이 상황의 긍정적 측면에 시선을 맞춘다. 그래야만 살아낼 수 있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게 큰 유익을 준다. 낙관적/비관적 기질은 유아기 때 형성되는 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낙관주의는 무조건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확신이 아니라 결과가 어떻게 되든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읽힌다. ♣저자의 신앙적 포용성이 눈에 띈다. 유대인인데 기독교적 메시지(‘자기 십자가를 진다’)도 담아내며 프로이트, 니체, 쇼펜하우어도 인용한다. 저자는 본바탕이 포용적이고 수용적인 성향의 사람이었던 것 같고, 당연히 낙관적인 성향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유태인이었지만 두 번째 부인은 가톨릭 신자였으며, 하이데거, 야스퍼스같은 친 나치 성향의 철학자들과도 친했다고 한다. ♣저자가 역설하는 로고테라피에도 바운더리(경계)가 없다. 무엇이든 수용할 수 있다. ♣중국 작가 위화의 에세이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중 "사람은 30%의 현실과 70%의 상상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나도 동의한다. 이 책에서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일이 끝나고 막사로 돌아오면서 행하는 간단한 기도와 예배, 그 가치와 힘을 전적으로 이해한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현실들을 견디는 힘이다. 이런 것이 없다면 인간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살아갈 것 같다. ♣나는 종교인이 아니지만 만일 내가 이 상황에 던져졌다면, 나라도 이런 식으로 희망을 찾으려 하지 않았을까. 미래가 있어야 현재를 살아낼 수 있기에. 말릴 수 없는 낙관주의는 절체절명의 현실에서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이런 신앙이 현실인식을 왜곡하는 위험한 태도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야말로 종교가 가장 리얼하게 나타나는 때일 것이다. 궁핍하고 힘들었던 시대의 종교와 부유하고 편안한 시절의 종교는 같은 말을 해도 그 의미의 강도와 진실성의 두께가 아주 다른 것을 경험했다. ♣개인적 체험으로 보아도 종교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절실하게 필요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상황이 호전되었을 때)는그렇게 의지하지 않는 것 같다.

 

 

 3. 시련과 삶의 의미

♣심리학 책에 따르면 인간에게 슬픔을 억압하면 행복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시련도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감을 얻는다.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시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버틸 수 있는 시련이어야 하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이라면 보통 사람은 버티지 못할 것이다 ♣하루를 맹숭맹숭하게 보내면 잠도 잘 오지 않는다. 바쁘게 부대끼면 하루가 뿌듯하게 지나간다. ♣정년 퇴직 후 얼마간은 자유와 즐거움을 만끽했지만 이후 허무함과 공허감이 밀려왔고, 나태해져서 삶의 의욕도 감퇴되었다. 일이 없기 때문이라는 판단에 따라 일자리를 갖게 되었다.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도 힘들지만 그런 긴장을 통해 성숙하게 된다. 세상은 시련이나 갈등이 없이 행복하기만 할 수 없다. 유명한 청어와 바다메기의 사례처럼 인간에게도 시련이 필요하다. ♣어릴 적 오빠 방에서 푸쉬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접하고 깊이 매료되어 암기하기까지 했다. 어린 시절 별다른 시련의 경험이 없더라도 정서적 발달기에 책을 읽음으로서 간접경험을 통해 시련의 가치를 알게 되기도 한다. 

 

 

4. 실존적 공허를 극복하는 법

♣토인비의 명저 <역사의 연구>의 핵심 개념은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이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악마의 대사 중 “안일함은 생명체의 가장 큰 적(Security is mortal’s chiefest enemy).”이라는 말이 있다. 소식과 단식은 건강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명을 연장하고 면역력을 강화해준다고 한다. ♣<명상록>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속한 스토어 학파도 시련과 고통을 권고한다. 인류사의 성인들도 여러 형태의 고행을 통해 경지에 이르렀다. 훈련은 필요하다. 훈련 속에서 자유로워지면 가장 좋은 형태의 자기 것이 된다. ♣프랭클은 말한다. “의미를 발견하는데 시련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불필요하게 고통을 감수하는 것은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기 학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87]  하지만 시련은 의지의 진성성을 판별하는 좋은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에 대한 봉사는 자기 자신의 가치와 연결되어야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 ♣18, 19세기 서구의 귀족들에게 의례화된 봉사는 관습적이어서 실존적 공허를 극복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어떤 일과 그에 대한 나의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는데 그 공간에서 나는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하면서 어떻게 될까 멈춰서 생각해본다. 그 선택에서 나의 가치나 인격이 드러나는 것 같다. ♣50년가까이 해왔던 교회 성가대 봉사를 내년부터는 못하게 되었다. 노령 때문이라는데, '나'라는 존재가 거부당하는 것 같아 상당한 실존적 공허감마져 느낀다. 성대가는 봉사와 헌신의 의미가 큰데, 이것을 못하게 되면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이다. 봉사가 거절되는 희한한 경우다. ♣반대로 젊은이들이 노령층 중심의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옮겨간 경우도 있다. 부유하고 부족함 없는 삶에도 '실존적 공허'는 있을 수 있다. 의미를 찾지 못하면 젊은 층은 쾌락이나 마약에 탐닉하거나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떻게 내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인가. 타인을 위한 봉사와 헌신도 하나의 해결책일 수 있는데, 이것이 자기 자신을 향하면 안 되고 타인으로 향해야 실존적 공허가 메워질 것이다. ♣걱정이나 긴장 없이 사는 것이 삶의 의미를 잃게 만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19세기 물질적으로 유복했던 지식인들이 다른 걱정 없이 자기가 하고자 하는 목표에만 집중할 수 있었기에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타인을 위한 봉사와 헌신’이라도 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테레사 수녀의 고백). 실존적 공허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찾음으로서 해소되는 것이다. ♣경제적·사회적 안정이 확보되어 있더라도 어떤 사명감, 호기심, 도전 의식이 있다면 삶의 무의미를 겪지는 않을 것이다. 

 

 

5.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

♣쓰라린 역사를 겪어도 3세대 정도 지나면 잊혀지는 것 같다. 6.25사례 등. 지금의 세계도 20세기 세계대전의 쓰라린 교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약간의 변주가 있을뿐 역사는 반복되는데, 인간은 역사에서 배우는 게 없는 것 같다. ♣히로시마(원자탄)의 경우는 끝까지 저항했던 일제 군국주의 세력으로 인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원폭 개발 책임자 오펜하이머도 평생 죄책감으로 괴로워했다고 한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 같다. 니체는 ‘영혼 회귀’ 를 말하는데, 똑같은 일이 무수히 반복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전쟁과 전염병을 극복했다고 하지만 오늘날에도 전쟁과 전염병은 계속된다. 인간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다. ♣출구가 없다(No Wayout).

 

 

6. 의미의 발견과 창조

♣개인적으로 나는 ‘의미’를 ‘정체성’ 문제로 치환한다. 오래 고민해도 답이 없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도 잘 모르겠다. ♣구약성경 <전도서>에는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씀이 있다. 젊은 학생 때뿐 아니라 70세가 넘어도 삶의 의미(=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지금 내게 삶의 의미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 가족·지인들과 잘 지내고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이라고 소박하게 믿는다. ♣작은 것이라도 의미를 부여하면 족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정체성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제일 부럽다. (운동선수, 예술가 등).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의 한 구절처럼 인생을 그냥 "소풍처럼" 즐겁게 살다가 가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의도적으로 어떤 정체성을 추구하기보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좋다. 살아내는 것이 의미다. 남들은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일도 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면 기쁨이 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나름대로 최선은 다 하지만 기대한만큼 성과가 안 나온다고 해서 삶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자체로 훌륭하다.

 

 

7. 죽음을 극복하는 '사랑', 예술, 유머

♣유머는 초월이라고생각한다. 현실에서 한 걸음 벗어나게 그 너머를 볼 수 있 해주는 수단이다. 수용소에서의 꿈 이야기도 나오는데, 예술이란 꿈꾸는 것과 비교될 수 있다. 예술은 꿈인데, 이 꿈은 현실을 초월하고, 극복하고, 이겨내고 변화를 가져온다. 극한의 수용소에서도 예술과 유머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상하고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상 당연한 것이다.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스피노자) [133]. 극한의 굶주림을 진수성찬의 상상으로 견디는 사례들이 인상적이다. ‘깊게 퍼 주세요.’처럼 죽음 앞에서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놀랍고 숭고하다. ♣아내를 떠올리면서 극한의 고통을 견디는 장면이 특히 감동적이었다. 프랑클 박사의 첫 번째 부인의 사진을 찾아냈지만 공유하지 않았다. 왠지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 같아. (당시 프랑클은 30대 초반, 아내는 24세). ♣사랑과 죽음(에로스와 타나토스)은 거의 모든 문학과 예술의 대주제이다. 보통 서로 반대되는 실체로 인식되지만, 실은 다르면서도 같을 수 있는 힘이다. 사랑은 인간이 살아가는 의미이며 힘이다(이 책의 주제!).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서, 사랑의 대상(인간이 아니면 강아지라도)을 가짐으로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8. 삶의 의미가 상실된 징후

♣시간도 많고 돈도 많은데 뭘 하는지 모르는 경우. 또는 항상 똑같이 반복되는 삶에서 느끼는 공허감. ♣너무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것도 문제가 아닐까. 조금 가볍게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나친 자존감이나 정체성에 대한 집착에서 탈피해보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 이윤형이 20대에 자살했다. 그녀에게는 돈이나 명성, 지식이 아니라 사랑이 삶의 모든 의미였던 같다. ♣자살 기도까지 하면서 원하던 결혼을 했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았던 지인의 사례도 있다. 가진 게 없어서 허무하다고는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한 개인뿐 아니라 한 사회나 문화도 의미 상실을 겪는다. 오랜 세월 믿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세계관이나 종교가 흔들릴 때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관이 정착할 때까지 거대한 혼란과 무의미에 직면한다. 이럴 때 흔히 신흥종교가 발흥한다고 한다. (문화인류학에서 말하는 'mazeway reformulation'  개념). ♣친구나 연인과 오랜 사귐 후 배신당하면 공허함과 상실감이 크다. 이 책에서 기억할만한 문장 하나: “중요한 것은 행복이냐 불행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의미의 상실'인 것을 다른 의미로 치환할 수 있다는 말이다. 태도가 바뀌면 생각이 깨이고, 무의미해보이는 삶 속에서 한 줄기 의미를 건저낼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을 많이 학습하고 깨우치면 좋겠다.

 

 

 7. 여유 한 잔

 

 

https://youtu.be/lPArqF7Pqow?list=RDlPArqF7Pqow

흑인영가(Negro Spiritual) 곡 중 하나

 

 

 

8. 다음 모임 (272회)
일자 : 2026년 6월 24일(수)
- 장소 : 비대면 ZOOM 모임
- 토론서 :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발제자 : 김 정 자

9. 발제 순서

2692026-05-13파우스트 (1부) 312 괴테 박   연 
2702026-05-27내 이름은 빨강 (1) 612오르한 파묵신동희
2712026-06-10죽음의 수용소에서264빅터 프랭클김민자
2722026-06-24명상록300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김정자
2732026-07-08오레스테이아 3부작 272 아이스퀼로스 박수현
2742026-07-22 슬픈 짐승 212 모니카 마론  진재희 
2752026-09-09 그녀를 지키다   632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성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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