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나는 재미있게 살기로 했다, 이서원, 나무사이, 2024
부부 사이에 절대 하면 안되는 말
먼저 세상을 떠나는 남편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프로그램을 아내와 함께 보는 중이었다. 다큐 속 남편이 아내에게 '미안하다', '고마웠다'는 말을 남기는 장면을 보면서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당신에게 무슨 말을 남기고 떠날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요. 지금까지 들을 말 다 들었으니 애쓰지 말고 그냥 말없이 떠나요."
나는 아내 말에 큰 소리로 웃었다.
20년 가까이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내가 아내에게 가장 마음을 많이 쓴 것도, 가장 점수를 많이 받은 것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말이었다. 배우자에게 말을 예쁘게 하면 사랑받는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변함 없는 진리라고 믿기에 아내에게 예쁘게 말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써왔다.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문제가 있듯이 내가 아내에게 자주하는 문장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당신이니까 이 정도 하지.'라는 말이다. 아내는 이 말을 아무리 많이 들어도 질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이 신과 다른 점은 완전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늘 가지고 있다. 그것은 '혹시 내가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으로 자리 잡는다. 계란 후라이 하나를 만들어도 이게 맛있게 잘되었나 염려되는 게 사람 마음이기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은 "겨우 이것밖에 못했어?"라는 말이다. 그러지 않아도 걱정하는 사람에게 이 말을 하면 폭탄을 퍼붓는 격이다. 설령 제대로 못해서 이 말을 했다 하더라도 이 말은 듣는 사람을 발끈하게 만든다. '그럼 네가 해보든가.'하는 반발심마저 든다. 요리든, 일이든 아내가 한 것에 대해서는 '당신이니까 이 정도 하지.'라고 말한다. 이 말에 아내는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고 안정감과 자신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가지게 해준 남편을 고마워하고 좋아한다. 말 한마디로 아내의 사랑을 받는데 하지 않을 남편이 어디 있을까.
두 번째는 '당신이 제일 예쁘다.'라는 말이다. 이 말도 아내는 지겨워하지 않는다. 제주도에 출장을 가서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 이상한데?"
"왜?"
"왜 제주도에 당신보다 예쁜 여자가 없지?"
아내는 한술 더 떠서 말했다.
"거기만 없어?"
"아, 맞다. 서울에도 없지."
예쁘다는 말은 상대적인 미의 기준이다. 실제 예쁜가 예쁘지 않은가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남편이 아내를 예쁘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도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됐다.
같이 사는 남편이 '예쁘다, 예쁘다' 하면 아내는 '진짜 내가 예쁜가' 하다 어느 순간 예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반대로 남편이라고 다르지 않다.
세 번째는 “내가 복이 많아서 당신 같은 여자를 만났지”라는 말이다. 돌아가신 장모님이 나에게 몇 번이고 하셨던 이야기는 "이 서방이 착하게 살았으니까 우리 딸을 만난 거야"라는 말씀이었다. 이제 유언이 된 장모님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정말 내가 악하게 살았으면 이렇게 좋은 사람을 아내로 만났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결혼하기 전부터 복덩이를 줄인말 '복디'라고 아내를 부른 나는 결혼 후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내가 조금이라도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때마다 내 복이 많아서 당신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잊지 않고 했다.
이 세 문장을 아내에게 자주 하니 어지간한 갈등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평소 열심히 좋은 말로 나를 기분 좋게 해줬으니 네 허물을 용서하노라.' 하는 아내의 말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한번은 친척 누나로부터 연락이 왔다. 남편이 다 잘하는 데 가끔 말을 가슴 아프게 할 때가 있다며 네가 아내에게 말을 잘하니 우리 남편도 너처럼 말 예쁘게 하라고 상담해 줄 수 없겠냐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아내에게 자랑했다.
"여보, 다 잘하는데 말을 못되게 하는 남편을 상담해 달라고 하시네. 내가 말을 예쁘게 잘하긴 하지?
"내가 친척 누님께 먼저 전화할까?"
"왜?"
"'다 잘하는데 말만 못하는 남편과 다 못하는데 말만 잘하는 남편을 바꾸실래요?"라고 물어보려고."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물었다.
"바꿀거야?"
아내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아니, 난 그래도 말 잘하는 당신이 더 좋아."
휴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졌다. 아내의 말이 5월의 라일락 향처럼 향기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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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이서원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고려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는 서강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매주 수요일마다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프로그램 「행복을 여는 아침」 '감정식당' 코너에 감정쉐프로 출연해 감정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즉석에서 감정을 요리해 위로하고 회복시키고 있다.
30년 넘게 교수로, 상담전문가로 활동하며 모든 상처의 대물림은 가정에서 시작되고, 한국의 부부와 부모 자녀가 겪는 고통의 뿌리에 해소되지 못한 분노가 있음을 발견하고 한국분노관리연구소를 설립했으며 공공기관과 휴먼서비스기관에서 가족관계 향상 및 분노 조절을 주제로 집단상담과 강의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말과 마음 사이』, 『나를 살리는 말들』,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라면』 등 7권의 책이 있다.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아 궁금한 일과 사람을 보면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아쉽지만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왜 배워야 해요. 왜 대학을 가야 하나요. 왜 결혼해요. 좋아서 결혼했는데 왜 싸우나요'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그런 질문은 내가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그 후로 지금까지 질문 인생이 이어지고 있다.
호기심은 새로운 것이었지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많았다. 점점 새롭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호기심이 모아졌다. 새롭고 도움이 되는 것을 상상하면 뚝딱 만들었다. 지나고 보니 새로운 것은 모두 나다운 것이었다.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기에 내가 나로서 만드는 것이 가장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나다운 것이었다. 배울 때도 외우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노트 정리를 하고, 가르칠 때도 나만의 교재로 나만의 방식으로 가르쳤다.
몸의 상처를 붕대로 감듯이 마음의 상처를 눈에 보이지 않는 붕대로 감아주는 모임 ‘붕대클럽’, 모두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자기만의 인생 공식을 발견하는 모임 '인생포럼', 질문과 답변만으로 이루어진 모임 '물어봐U'를 만들 때도 나만의 생각과 방식으로 뚝딱뚝딱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뜻을 모아 지금까지도 계속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오십이 넘어 가장 재미난 삶을 살고 있다. 이 생을 다할 때까지 남이 쓴 인생 공식을 따라가지 않고, 서툴지만 내가 쓰는 나만의 인생 공식을 만들어 가는 뚝딱이 인생을 사는 게 유일한 버킷 리스트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사는 게 재미있다.
남은 인생은 지금처럼 상담하고, 상담하며 깨달은 인생 원리를 강의로 사람들과 나누며 살고 싶다. 이를 위해 날마다 책을 읽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만의 스토리로 만들어 가는 뿌리를 평생 만들고 싶다. 사람은 배울 때도 즐겁지만 배운 것을 소화하여 내 것으로 창조할 때 더없이 즐거운 것을 지금까지 살면서 알게 되었으니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것이 내 삶에서 느끼는 재미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