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독서발췌

[[독서발췌]]말씀 따라 한 걸음씩_성경적 교회론의 신학과 실천, 안진섭, 샘솟는기쁨

작성자booknbook|작성시간26.06.23|조회수19 목록 댓글 0

11 목자의 심장을 가진 사람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무리의 본이 되라 4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5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벧전5:1~5)

 

목자는 양을 돌보는 자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양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경은 우리도 주님을 닮은 선한 목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목사만 목자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주님께서 맡기신 양을 돌보는 착한 목자가 되어야 한다. 이 장에서는 성경이 말하는 목자의 삶에 대해 살펴본다.

 

목자는 양을 돌본다

 

본문은 베드로가 장로들에게 권면하는 내용이다. 여기에서말하는 장로는 지역 교회의 영적 지도자를 가리킨다. 장로라는 직분은 원래 유대교에 배경을 두고 있다. 나이가 많고 지혜로운 사람을 장로로 세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 지도자로 삼은 것이다. 예루살렘에 있는 산헤드린에도 장로가 있었고 지역에 있는 회당에도 장로가 있었다.

 

이런 장로 제도는 예루살렘교회에 의해 채택되었다(행 11:30, 21:18).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이 세운 지역 교회에 이 제도를 적용했다(행 14:23, 딛 1:5). 베드로는 지금 지역 교회의 영적 지도자인 장로들에게 이 말씀으로 권고한다. 본문의 문맥을 살펴보면 이 권면의 바로 앞뒤에는 일반 회중에게 권고하는 말씀이 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장로들을 향한 권면은 일반 회중들과의 관계에서 권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헬라어 성경의 1절 서두에는 '그러므로'라는 말이 있다. 이럴 때는 앞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베드로전서 4장의 끝부분에는 시련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내용이 나온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성도들에게 권면한 후 지도자들에게 권면한다는 것은 교회에서 지도자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성도들이 어려울 때일수록 목회적인 지도력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 권면은 엄밀히 말하면 성도들을 위해서 지도자들에게 권면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장로라는 이름과 그 역할에 대해 성경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있는 직분 제도 때문에 장로의 의미나 역할을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먼저 결론부터 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나 감독이나 목사는 모두 같은 직분을 가리키는 다른 말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조금씩 다른 강조점이 있어도 본질은 같다는 말이다. 신약성경에서는 이 세 직분을 서로 혼용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목양을 담당하는 목회자를 이런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교회의 직책을 계급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때는 감독이 제일 높고, 목사는 그다음이며, 장로를 그다음으로 여겼던 때가 있었다. 이런 식으로 계급적인 직책으

로 이해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견해이다. 감독이라는 말은 교회와 양 무리를 감독하는 자라는 뜻이고, 장로라는 말은 인생과 신앙에 연조가 있는 자라는 뜻이며, 목사라는 말은 원래 목

자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 같은 사도가 자신들을 지칭할 때 장로라고 부른 것만 봐도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자신을 장로라고 부른다. 또 요한이서, 삼서에서 사도 요한도 자신을 장로라고 부른다. 그들은 분명 목회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장로라고 불렀다. 디도서 또한 1장 5, 7절에서 감독의 자격을 언급하면서 장로라는 말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본문에서 베드로가 장로들에게 권면한 것은 오늘날 목회자들에게 주는 권고로 적용할 수 있다.

 

목사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에 단 한 번 나온다(엡 4:11). ‘목사’로 번역된 헬라어 '포이맨'의 본래 뜻은 목자이다. 따라서 목사는 목자이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는 '목사와 교사'라는 표현이 나온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표현은 두 개의 별도 직분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목사가 곧 교사라는 말이다. 헬라어 성경에서 정관사를 한 번만 사용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목사가 본래 목자라는 말이니 이 표현은 결국 목회자는 목자이자 교사라는 뜻이다.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목자의 참된 자세에 대해 권면한다. 그 권면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두 가지를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먼저 확인할 것은 목자는 과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이다. 목자는 양을 치는 자이다. 목자가 되려면 먼저 양이 있어야 한다. 양이 없는 자는 목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목자는 그 양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2절에서는 양 무리를 치라고 했다. 양을 친다는 것은 양을 돌보고 먹이고 지키는 모든 활동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목자는 양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양이 음식을 잘 먹는지, 적절한 보호를 받고 있는지 늘 살펴야 한다. 그리고 양들을 위해 좋은 초장을 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양을 치는 것이다.

 

그다음 확인해야 할 것은 양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2절에 보면 '하나님의 양무리'라고 했다. 그 말에 주목해야 한다. 목자들이 맡고 있는 양은 자기 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이다. 요한복음 21장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 양’이 아니라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맡고 있는 양은 우리의 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이다. 따라서 우리는 양들을 소유한 자처럼 행세하지 말고 양들을 맡은 자로서 열심히 돌보고 먹이는 일에만 힘써야 한다.

 

억지로 말고 자원함으로

 

이제 본문이 가르치는 목자의 참된 사역 자세에 대해 살펴보자. 하나님의 양을 위탁받아 돌보는 목자는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사역을 해야 하는가? 본문은 'Not A But B'의 구조를 갖고 있다.

목자의 사역 자세를 설명하면서 세 차례에 걸쳐 'A가 아니라 B'라는 구조로 반복해서 설명한다.

첫째, 목자는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사도 베드로는 2절에서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라고 말했다. 목자가 양을 칠 때는 억지로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목자와 양의 상징은 베드로전서 2장 25절에도 나타난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이 말씀에서 목자와 양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관계로 나타난다. 구약성경에서는 여러 차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목자와 양으로 상징하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편 23편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고백만 보아도 하나님과 우리를 목자와 양으로 표현하고 있다. 구약에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상징하던 목자와 양의 관계는 베드로전서에서 보는 것처럼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관계로 나타난다.

 

더 나아가서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인을 목자라고 부름으로써 그리스도인과 다른 그리스도인의 관계로까지 확대한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

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엡 4:11)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말씀에 나오는 목사라는 말은 본래 목자라는 말이다. 정리해 보면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을 목자와 양으로 상징한 것이 신약에 와서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관계로,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도인과 다른 그리스도인의 관계로까지 발전된 것이다.

 

베드로는 목자들에게 억지로 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이 말은 외부 세력이나 환경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렇게 억지로 하는 것의 반대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과 자원하는 것은 충돌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늘 우리의 자원하는 마음과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을까? 베드로는 이 일의 좋은 본을 보여 주고 있다. 본문 1절에 보면 그는 자신도 같은 장로임을 주장하면서 이

렇게 고백한다.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중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5:1)

 

이 말씀은 베드로 자신의 목자로서의 정체성을 잘 보여 준다. 베드로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고난의 중인이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자라고 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과 충돌하지 않는 사역을 하기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은 깊은 영적 체험이다. 베드로의 인생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베드로는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에 그는 상당히 불안정한 사람이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늘 딴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분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도망간 것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을 결정적으로 돌이키게 된 깊은 체험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여 승천하는 그 모든 과정을 직접 지켜보았다. 자신이 그 일의 증인이 되기 위해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간절히 기도하다가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경험했다. 그 경험을 통해서 그는 더욱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는 예수님의 중인이 되었다. 예수님이 고난당하시고 영광 가운데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았기 때문에 그는 이 일의 증인이 된 것이다.

 

고난의 십자가를 진 사람이 부활의 영광에 참여한다는 이 원리를 깊이 체험했기에 이제 그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확신 있게 사역하게 되었다. 목회자의 삶에는 분명하고 확실한 영적 체험이 필요하다. 그런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는 자원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된 것이다.

 

목자로 사역하는 사람은 자원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억지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가 되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사는 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확신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해야 한다. 만유의 하나님이 어떻게 한 사람을 사랑하시는지 그 은혜에 깊이 젖어야 한다.

 

그런 깊은 영적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게 될 때, 우리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따르게 될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사역할 때, 우리의 목양이 더욱 풍성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목장에서 뛰어노는 양들이 더욱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처럼 힘든 일이 없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목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하 생략]

 

<출처> 말씀 따라 한 걸음씩_성경적 교회론의 신학과 실천, 안진섭, 샘솟는기쁨, 2026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