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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작가 소개

[소설가]공선옥(孔善玉.1964.12.28∼ )

작성자booknbook|작성시간13.04.07|조회수64 목록 댓글 0

공선옥(孔善玉.1964.12.28∼ )

 

여류소설가. 전라남도 곡성 출생. 전남대 국문과 중퇴. 1991년 계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단편 <씨앗불>을 발표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근대에 태어났지만 전근대적인 삶을 살았다"고 전하는 작가의 음성은 유년시절 아버지는 밖으로 나돌고, 세 자매가 생존을 위해 뛰어야 했던 상황에서 둘째 딸의 책무를 지닌 채 "같은 연배 또래들이라고 해서 같은 시대를 사는 것은 아님"을 깨닫는다. 참외 파는 소녀이기도 했으며, 입학만 한 상태에서 무학점 학생으로 남아야 했고, 빚에 쫓겨 다니는 아버지, 몸이 불편한 어머니의 병간호가 작가 공선옥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었다.

공장을 떠돌며 위장 취업자가 아닌, 대학생 출신 생계 취업자였으며, 나중에는 고속버스, 관광버스, 직행버스를 전전하며 안내양을 하던 어느 날 “나의 궁핍한 시절이 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작가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여성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모성을 생동감 넘치는 언어로 표현해 내는 소설가 공선옥은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목마른 계절> <우리 생애의 꽃> 등 개성 있는 작품을 잇따라 발표하며 가진 자에게는 눈물의 슬픔을, 없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의 기쁨을 안겨 주는 작가이다.

다양한 여성성의 굴절을 섬세하면서도 여린 문체로 다뤄온 작가는 어둡고 거친 삶의 한가운데서 용솟음치는 삶의 기운을 생동하는 문체로 묘사하는 의미 있는 작품 세계를 펼치고 있다. 2002년 <멋진 한세상>이후 5년만에 내놓은 소설집 <명랑한 밤길> 역시 그녀의 작품 경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생애】

▶70년대 화전민 촌에서의 삶

공선옥 씨는 60년대 전남 곡성 화전민 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아버지와 삼촌은 청개천 복개사업에 나가고 어머니는 새마을 운동에 나가서 언니, 동생과 함께 셋이서만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당시 그 곳에서는 남녀차별이 특히 심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웠울 뿐만 아니라 딸이 셋인 집이었기 때문에 많은 설움을 받으며 자랐다. 일손이 부족해서 어린 나이부터 논이나 밭에서 일해야 했고 상급 학교 진학도 매우 어려웠다. 상급학교로의 진학은 투쟁과 눈물의 연속이었다. 공선옥 씨는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신이 일찍부터 성격이 삐뚤어지게 되었고 모든 것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새마을 운동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새마을 운동이 시작된 후 공선옥 씨가 살아오던 환경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마을 인심이 점점 흉흉해졌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강제로 진행한 사업이라 본의 아니게 빚을 지게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고 이것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은 도주를 하기도 했다. 도시화가 됨에 따라 시골마을이 점점 사라졌다. 공선옥 씨는 이 때 고향이 사라져간다는 것을 눈으로 체험했다고 한다. 이 당시의 경험은 우리 사회가 오늘날 왜 이렇게 삭막해졌는지 몸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주었다.

공선옥 씨의 고등학교 시절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자취를 하고 있었던 공선옥 씨는 포위를 당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다 배고픔을 잊기 위해 시민군 진영에 들어가게 되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공선옥 씨에게 있어서는 민주화 운동의 순간이 아니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같은 사건을 겪었지만 공선옥 씨는 우리가 흔히 역사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민주화 운동을 겪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선옥 씨에게도 민주화 운동의 후유증은 있었다. 이 때의 경험 때문에 대학시절 많은 방황을 했다고 한다.

▶우리의 삶이 곧 소설

공선옥 씨의 일생은 투쟁과도 같았다. 어릴 때부터 가난과 투쟁하며 어렵게 살아왔으며 고향의 상실과 5ㆍ18 민주화 운동의 경험은 인생에서 치명적 상처가 되었다. 대학을 중퇴하고 나서는 공장에서 일했다. 이처럼 공선옥 씨는 어려운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가 우연히 살아온 이야기들을 글로 적게 되었는데 이것이 소설가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지금까지 나온 공선옥 씨의 소설들은 공선옥 씨에게는 소설이 아니라 단지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글이었다. 그래서 공선옥 씨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곧 소설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해 전과 다른 프로의식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생계에 떠밀린 작품 활동을 했고 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적었지만 앞으로는 이 시대의 삶에 대해서 적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작품세계】

대중적 평가보다는 문학적 평가가 더 높은 여성 작가. 세련된 여자보다는 촌스런 여자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래도록 우리 곁에 살아 남을 작품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우리 시대 가난한 여성들의 굴절된 삶과 그 속에서 용솟음 치는 생명력을 생동하는 문체로 묘파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시골의 폐교된 분교에서 산다. 교실 두 칸을 거실과 집필실로, 교무실을 부부와 딸들의 방으로 고치고, 마당에는 닭도 치고 채소밭도 일궈가며 산다. 어설픈 농구대와 이순신 장군 동상이 한켠에 세워져 있는 자그마한 운동장이 그의 집 뜰이다. 방 한 구석에는 아직도 칠판이 남아 있어, 아이들의 글쓰기 연습장이 되고 있다. 화장실은 산골 초등학교 아이들이 쓰던 곳을 그대로 쓰고 있다. 엉덩이 까고 주저앉으면 바로 곁에서 도랑물 흐르는 소리가 졸졸졸 들리는 그런 재래식 화장실이라고 한다.

이 목가적 풍경 속으로 찾아 들어오기까지, 공선옥은 그가 쓴 소설의 주인공들만큼이나 팍팍한 삶을 살아 왔다. 그 팍팍한 삶은 우리 현대사에 큰 상처자국으로 남아 있는 5․18과 깊은 연관이 있다. 5ㆍ18 당시 공선옥은 전남대 구내에 있던 사대부고 1학년생이었다. 5․18의 생생한 현장을 목도한 그는 대학 진학 후 2년만에 학교를 그만 두고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다.

이때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사업도 무너지면서 채권자들이 모든 것을 가져갔다. 밥 한 끼를 걱정해야 하는 삶이 1년쯤 지속된 뒤, 전부터 그냥 알고 지내던 광주 시민군 출신의 한 '아저씨'와 덜컥 결혼해 버린다. 그러나 너무 어린 나이에 너무 쉽게 한 결혼은 오래 가지 못했고, 둘째를 임신한 채 3년만에 이혼으로 끝났다.

이혼 후, 생계에 대한 살인적 공포 속에 아이들을 광주시립임시아동보호소라는 곳에 맡기고, 자신은 고향 근처 태인사의 공양주로, 즉 절의 식모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두 아이의 목숨을 떠맡은 데서 해방되어 한시름 놓았으나, 허전함을 견딜 수 없어 3개월만에 큰딸을 데리고 상경했다. 달동네를 전전하며 재봉일로 두 입에 풀칠을 하다가, 1년만에 둘째를 데려왔다. 이 시절 그는 '내가 내 힘으로 아이들 먹여 살린다'는 기분 하나로 버텼다고 한다. 결핵에 걸려 몸무게가 38kg까지 축나기도 했다.

2년 동안 서울생활을 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먹고 사느라 바빠 따로 글 쓸 시간을 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재봉틀 위에 원고지를 올려놓고 재봉질 틈틈이 소설을 썼다. 그렇게 쓴 글이 「창작과비평」에 발표된 등단작 <씨앗불> 이다. 결혼도 다시 했다. 이번에도 남편은 광주 시민군 출신. 도청에서 끝까지 싸우다 살아남은 전력까지 똑같다.

차 한 대 간신히 지나다닐 만한 길로 하루에 버스가 4번밖에 안 들어오는 가난한 산골에서 살지만, 공선옥은 이제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병도 나았고 생계의 공포로부터도 벗어났다. 부잣집 아이도 가난한 집 아이도 똑 같이 흙발로 뛰어다니는 농촌 풍경만큼 공선옥의 마음가짐은 여유롭다.

여성신문학상(1992), 신동엽창작기금(1995),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04), 올해의 예술상(2005), 백신애문학상(2008), 한국가톨릭문학상(2009), 제17회 오영수문학상(2009) 등 수상.

【소설】<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삼신각.1993) <피어라 수선화>(창작과비평.1994) <꽃잎처럼>(1996) <시절들>(1996) <내 생의 알리바이>(창작과비평사.1998) <밤꽃>(2000)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창작과비평사.2000) <수수밭으로 오세요>(여성신문사.2001) <멋진 한세상>(창작과비평사.2002) <붉은 포대기>(삼신각.2003)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월간 말.2003) <유랑가족>(실천문학.2005) <명랑한 밤길>(창비.2007) <내가 가장 예뻤을 때>(문학동네.2009)

【소설집】<나는 죽지 않겠다>(창비.2009)

【에세이집】<행복한 만찬>(달.2008) <마흔살 고백>(생활성서사.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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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상처와 기억에 감금되지 않는 당당한 여성의 삶>

 

공선옥의 소설은 두 개의 중심을 지닌 타원에 비유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공선옥은 두 개의 화두를 중심으로 소설을 조형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축이자 화두가 되는 것이, '여성'과 '광주'이다. 여성은 남편이 부재하는 가정을 이끌어가는 가장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녀들은 대부분 애 딸린 이혼녀이거나 과부이거나 남편과 별거 중인 상태에 있는 여자들이다. 종종 창녀나 그에 준하는 밑바닥 인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다른 하나의 서사적 축인 '광주'는 잘못된 역사의 제유에 해당한다.

그녀의 소설에는 5월이면 발작을 일으키거나 정신적인 분열증에 사로잡혀 있거나 혼자만 살아남은 것에 대한 자책감에 시달리는 '남자'들이, 그만큼의 여자들과 함께 출연한다. 이들은 대부분 부부 관계이거나 연인 사이로 설정된다. 이러한 설정을 통해 역사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한 남성과 이러한 남성에게 버림받는 여성이라는, 두 가지 틀이 결합하게 된다. 공선옥의 소설은 이러한 두 개의 틀을, 서사의 축으로 혹은 문학적 화두로 삼아 전개시키는 일종의 수난기인 셈이다.

수난기라는 말에서 암시되듯이, 초점화자로 설정되는 여자들은 남자와 역사로부터 가해지는 고통과 번민을 감지하는 존재이다. 가령 '씨앗불'의 아내는 5 ․18 시민군 출신의 남성들이 겪는 고통을 통해, 무언지 모를 안타까움에 휩싸인다. '목숨'의 '혜자' 역시, 동지들의 죽음을 뒤로 하고 살아온 남편 '재호'의 삶을 추적하다가 '빨치산'이었던 재호의 아버지의 삶과 만나게 된다. '목마른 계절'에는 무식하지만 통렬한 목소리로 근현대사의 역사적 쟁점들을 서로 연관시키는 여자가 등장하며,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에는 봄이 되면 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남편을 지켜보는 여성이 나타난다.

공선옥의 소설적 특징은, 이러한 여성들을 삶의 한 측면에서 당당하게 일으켜 세운다는 점이다. 역사적 상처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 대책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고 여성성의 작위적인 강조로 인해 어긋난 페미니즘의 잔해를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다고 할지라도, 공선옥의 여인들은, 남자에 의존하지 않고 역사의 기억에 감금되지 않으며 현실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가열참과 당당함을 보여준다. 이는 공선옥 소설이 보여주는 가장 커다란 힘일 것이다. (김남석/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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