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영혼일 때 떠나라》노동효 인터뷰★
멋진 소설을 쓰는 것보다 멋진 인생을 살고 싶다
과거의 농경사회가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사회였다면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이동이 자유로운 농경사회, 즉 들뢰즈와 가타리 식으로 말하면 유목 사회다.
자크 아탈리는 우리 시대 도시 유목민을 도시를 부유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바꾸어 가는 새로운 인류로 보았는데, 그는 마음껏 삶의 자유를 누리는 부유한 유목민, 외국인 근로자나 자신의 땅에서 쫓겨난 농민과 같이 어쩔 수 없이 떠돌아다니는 가난한 유목민, 부유한 유목민을 꿈꾸는 정착자들인 가상 유목민으로 나누었다. 당신은 어떤 유목민인가?
진정한 보헤미안 집시 여행자 노동효가 늘 먼 곳으로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하는 청춘들을 위해 쓴《푸른 영혼일 때 떠나라》들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21세기 새로운 농경사회에서 어떤 유목민으로 살아갈지 선택의 기로에 선 청춘들에게 작가는 말한다. 내일은 계획하되, 걱정은 하지 말라고. 길을 나서면 어느 덧 여행의 신이 네 어깨 위에 내려 앉을 테니, 떠나라!라고 청춘의 등을 떠민다.
나무발전소: 4번째 책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노동효: 2000년초부터 국내의 샛길들을 떠돌면서 유명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숨어있는 절경들이 이 땅에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한때 내가 떠돌던 이국 역시 여행가이드북이 알려주지 않는 절경들이 곳곳에 있으리란 생각에 닿았고, 그래서 한 나라, 한 도시에 잠시 잠깐 구경하면서 옮겨다니는 단기체류형 여행이 아니라 한 나라 혹은 한 대륙에서 장기체류하면서 꼼꼼히 둘러보는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2010년 그 꿈을 실행하기 위해 첫번째 지역으로 인도차이나를 선택했다. 현재 인도차이나의 내륙국인 라오스를 아지트 삼아 라오스와 주변 인접국들을 떠돌아다니는 중이다. 라오스에서도 비엔티안, 방비엥, 루앙 프라방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코스를 벗어나 비엥싸이 같은 안 알려진 곳을 찾았고, 그곳에서도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일천미터급 산들이 쓰나미처럼 몰아치는 산 중으로 들어가 현대기술과학문명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지내다 돌아오곤 했다. 길이 있으면 그 길 위에 사람이 산다. 동남아시아는 21세기에도 모험이 가능한 땅이다.
나: 푸른 스물에 세계지도 달랑 한 장만 들고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이야기다. 여행기를 보니 위험한 현장을 둘러가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관통하더라.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이 사기꾼이라는 걸 알면서도 동행을 자처하고, 백인들에 대한 테러가 종종 일어난다는 걸 알면서도 백인 친구와 이슬람 오지 마을에서 일박을 한다. 낙석 사고 세계 1위 히말라야 카람코람 하이웨이 길을 트럭 뒷좌석에 앉아 통과하거나, 사재 총알이 날아다니는 무법천지를 홀홀단신으로 뛰어드는 이야기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세상물정 모르는 새파란 청춘이라도 그러기 쉽지 않다. 원래 용감한 사람인가?
노: 실은 낯도 많이 가리고 그다지 용감한 사람이 아니다. 정말 평범하다. 그러나, 내 속에는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그 상황을 벗어나려기 보다는 즐기는 무엇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삶은 태어난 그 자체로 손해볼 게 전혀 없다는 생각을 한 이후가 아닌가 싶다. 사실 어떤 행운, 고난, 고통, 아픔, 슬픔, 기쁨…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모든 상황과 감정은 우리가 살아있기에 체험할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이유로 나는 삶 그 자체를 찬양한다. 무엇보다 유년시절부터 합리론자보다는 경험론자에 가까웠다.
모험소설이나 길 위의 이야기들을 읽을 때마다 상상했다. 내가 그 이야기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 《푸른 영혼일 때 떠나라》에 펼쳐놓은 여행에서 내가 읽은 문학, 신화, 영화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면 마치 내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더구나 청춘이란,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으로 여겨지는 시절 아닌가? 소설, 영화 혹은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지금은 그런 시기가 지났지만 언젠가 소설가인 선배가 재능을 탕진하지 말고 소설을 써보라는 권유를 한 적이 있다. 나는 대답했다. 멋진 소설을 쓰는 것보다 멋진 인생을 살고 싶다고.
유라시아 대륙횡단여행은 멋진 인생의 첫 걸음이었고, 무엇보다 지금 나는 살아 있다.
나: 10년 전 대륙을 횡단한 여행 이야기인데 이제야 펴내는 이유는?
노: 세상은 변했다. 스마트폰으로 위치를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주변 레스토랑과 숙박업소를 찾아내고, 저녁에 타고 갈 기차표를 예약하고…, 그러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여행의 본질 말이다. 샛길로 잠시 들어서자면, 장자가 살던 무렵을 우리는 춘추전국시대라 일컫는다. 전쟁준비로 천문학, 무기술, 과학기술 등등 요즘으로 치자면 첨단을 달리던 시절이었다.
말하자면 나날이 새로운 스마트폰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 장자는 그런 시대에 <장자>를 썼고, 2천년이 지나 우리들이 여전히 그의 책을 읽는다. 삶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여행의 본질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무의식 속에 원형적 상징으로 들어있는 것들 중 하나가 ‘여행’이다. 왜 어린아이는 기차가 사라지는 저편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유년시절 나는 기찻길 가까이에서 자랐다) 왜 인류의 대부분은 세계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죽기 전엔 이 행성을 둘러보고 싶다는 욕망을 갖는 것일까? 나는 신화 속의 수많은 인물들처럼 자신의 터전(집이나 국가)을 떠나고, 고행하고, 귀환하는 과정 속에 여행의 본질이 들어있다고 여겼다.
모든 여행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지만 그 시절 내가 영국에서 한국까지 오던 길과 내가 겪었던 경험들이 여행의 본질과 일면 닿아 있었다. 우리 인생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신화를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많은 것들이 발목을 잡는다. 발목을 잡히기 전의 시기, 청춘들이 자신의 신화를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을 뗄 수 있도록 북돋워주고 싶었다. 가난해도 오직 청춘이란 이름으로 길 떠날 수 있는 그들에게.
나: 여정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로마에서 여행경비 200만원 중 100만원을 소매치기 당하고서도 여행을 포기 하지 않고 동쪽으로 동쪽으로 나아간다. 작가는 ‘여행의 신’의 도움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여행의 신이란 있는가?
노: 무신론적 유물론자는 나의 앞길을 안내하고 도와주던 손길을 길 위의 여행자에게 사랑과 호의를 베풀던 ‘사람들’이라 여길 테고, 유신론적 관념론자는 여행의 ‘신’이라고 부를 것이다.
나는 유신론적 유물론자다. 나를 도와준 이들은 길 위의 사람들이었고, 죽음의 순간들을 넘길 수 있었던 건 그저 그때의 상황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어깨 위에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있었다고 느낀다. 느끼는 것이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귀국 후 몇 년이 지나 어느날 잠을 자다가 꿈을 꿨다. 이미 오래전의 일인데 그 여행길에서 만났던 이들이 마치 슬라이드 화면처럼 찰칵, 찰칵, 찰칵 지나갔다. 잠이 깨면서 화들짝 놀랐다. 그들은 이목구비나 피부색만 다를 뿐 모두 똑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단 하나의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을 ‘여행의 신’이라 부르기로 했다. 고난의 여행길에 오른 이들은 반드시 이 여행의 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나: 인천항이 보이는 산둥반도에 도착하였을 때 주머니 속 남은 돈 1달러, 하루 앞으로 다가온 여동생의 결혼식… 에피소드들이 다큐멘터리 소설처럼 극적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한 사람의 여정에서 연속해서 일어날 수 있지 하는 생각도 들 것 같다.
노: 내가 경험했지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소설이라면 “너무 우연의 일치가 많잖아?” 라고 핀잔을 받을 정도로 이가 딱딱 들어맞는 사건들이 연속으로 일어났으니까. 주머니 속에 1달러 밖에 없는 내게 그런 일들이 일어날 지 어떻게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런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때론 현실이 소설보다 더 극적이니까. 우연의 일치가 소설보다 더 빈번하게 벌어질 수 있는 게 현실이고, 그런 현실이 더 빈번하게 벌어지는 곳이 길이다. 그래서 나는 문학보다 길을 더 사랑한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내가 만약 풍족하고 교통편, 잘 곳, 먹을 곳 등등 미리 짜둔 일정대로 움직이는 여행을 했다면 그런 극적인 사건과 느닷없는 행운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본문 중에 “나는 ‘작가’라고 불리는 음울한 거미들이 꽁무니로 뽑아 놓은 거미줄에 두 팔 벌리고 매달린 ‘문청’이었다. 뉴크로스에서 나는 십자가를 내려놓고, 새로운 교차로에 섰다. 사방으로 길은 열려 있었다.” 라는 대목에서 보듯 문체가 경쾌하고 깔끔하다. 이런 자기만의 스타일을 갖는데 영향을 준 것이 있을 것 같다.
노: 런던에서 나는 문학이란 거미줄에서 빠져나와 나의 십자가를 내려놓은 후, 오랫동안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이언스》와 같은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한 텍스트 외 문학작품을 거의 읽지 않았고, 글도 전혀 쓰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다시 들게 된 책이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다. 매료되었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책을 읽고 다시 글을, 산문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산문들이 모여 <길 위의 칸타빌레>가 되고, 《로드 페로몬에 홀리다》가 되었다. 한때 히피들이 성경처럼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던 《미국에서의 송어낚시》에 빚을 진 셈이다. 갚고 싶다, 비트세대와 그들을 아버지로 삼은 히피들의 르네상스를 물밑작업하며. 나의 책들은 그런 작업의 일환이다.
나: 책에서 보니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다고 했다. 가장 여러 번 읽은 책과 그 이유는?
노: 무라카미 류의《69》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세파에 시달려 의기소침해진 친구들에게 즐거움과 에너지를 안겨주기 위해 무라카미 류의 《69》를 선물하기 시작한지 꽤 오래 되었다. 서점에서 책을 사면 늘 내가 먼저, 다시, 읽게 된다. 그래서 읽고 선물하고, 읽고 선물하기를 거듭하다 보니 가장 여러 번 읽은 책이 되어 버렸다. 이 책 속에는 청춘이든 청춘이 아니든 에너지를 북돋워 주는 문장으로 가득하다. 가령, 프랑스 68세대의 구호였다는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는 문장을 비롯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이다.....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싸움이다. 나는 그 싸움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지겨운 사람들에게 나의 웃음소리를 들려주기 위한 그 싸움을 나는 결코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는 문장을 읽을 때마다 어깨동무를 하게 된다. 그래, 끝까지 이 싸움을 멈추지 말자.
밀란 쿤데라의《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내가 늘 화장실에 두고 읽는 책이다. 어느 페이지부터 읽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좋은 문장들로 가득하니까. 그러나 습관처럼 첫 페이지를 펼칠 때가 더 많다. 영원회귀에 대한 니체의 이야기. 우리의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우리의 삶은 영원에 목 박힌 꼴이라는. “내가 쓰게 될 문장도 영원히 반복된다면 나는 한 문장, 한 문장 좀 더 신중해져야겠지. 영원히 반복해서 쓰게 될는지 모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호밀밭의 파수꾼》은 원서를 비롯해 새로운 번역본이 나올 때마다 읽었다. 청춘이 주인공인 책은 마침표가 있어도, 끝이 없는 이야기다. 그리고 좋은 책들이 다 그렇지만 이 책은 10대, 20대, 30대 연배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40대에는 또 어떻게 읽힐는지 자못 궁금하다.
나: 노작가의 글을 읽으면 사건과 연상되는 영화의 한 장면, 관련 도서의 한 단락, 연상되는 노래 등이 항상 짝을 이루어 등장한다. 예를 들어 112일간의 고생 끝에 인천항에 도착해서는 마치 누군가 플레이 버튼을 누른 것처럼 앤디 윌리엄스의 ‘해피 하트’가 귓전에서 흘러나왔다는 식이다. 노작가의 글은 문화적 감성이 충만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풍부한 감성을 끌어올리는 것 같다. 한 책을 여러번 읽는 것처럼 상황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법을 어려서부터 익힌 것 같은데 맞나?
노: 요즘은 덜하지만 푸른 스물 내내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길을 오갈 때면 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지금은 극장에서 상영종료 직후 관객을 다 내보내지만 그 무렵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면 늘상 복도에서 다음 회를 기다린 뒤 빈자리를 찾아 같은 영화를 두번 이상 보곤 했다. 그리고 군대 가기 전까지는 책을 읽을 때면 처음부터 끝까지 팔만대장경을 새기듯 조각칼로 뇌표면에 문장을 새기듯 읽는 느낌이었다. (제대 후 그런 현상이 사라졌는데, A/S를 받을 길이 없다.) 그런 음악과 영상과 문장들은 길을 가고 풍경을 바라볼 때도 늘 따라왔다. 돌이켜보면 모든 게 풍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음악을 듣고 또 듣고,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보고, 같은 책을 읽고 또 읽고. 모든 걸 다 살 수 있는 돈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 시절의 결핍이 지금 나의 힘이다.
나: 2년째 동남아시아를 오토바이로 여행하며, 삶이라는 큐빅 퍼즐을 갖고 노는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자신의 삶을 걸고 어떤 실험을 하겠다는 도전 정신이 느껴지는 말이다. 남다른 삶을 살다보면 불안감 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
노: 간디의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실험을 했다. 삶을 실험하는 가장 좋은 도구는 자기 자신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이슬람 철학 교사 무하마드가 들려준 이야기,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겪은 희노애락의 총합이 제로(0)가 되는 지점에서 삶이 끝난다는 것을 5년 후 나는 길 위에서 깨달았다. 무하마드의 말은 마치 한낮의 태양과 같았다. 그 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마치 햇살 아래 녹는 얼음처럼 사라졌다. 불안감은 햇볕 아래 놓으면 사라져버리는 얼음이며, 한낮이 되면 사라져 버리는 안개와 같은 것이었다.
나: 체코에서 만난 택시운전수 N, 헝가리 벌라톤 호수에서 만나 걸인, 자그레브에서 만난 국제 부랑자 막스, 지중해를 건너는 유람선에서 만나 반야, 이란에서 만나 동행했던 폴, 낯선 이방인을 초대했던 제3의 사나이 무샤프, 파키스탄 판타스틱 캠프에서 만나 히피 할아버지 토마스, 중국 국경에서 만나 산둥반도까지 배웅해 준 무하마드가 여행의 신이 보낸 전령이라고 여기는 것도 재밌지만 현실 공간에서 만나는 상상도 재미있을 것 같다. 누굴 제일 만나고 싶은가?
노: 나비효과처럼, 만약 그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못 만났더라면 내 여정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는지 모른다. 그래서 톱니바퀴처럼 얽혀 있는 길동무들 중 한사람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굳이 고르라면 처음과 끝에서 만난, 마이클과 무하마드다. 현실 저편에 무언가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일깨워준 마이클 그리고 아무 것도 부러워 하지 않고 아무 것도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일깨워준 무하마드. 이 둘은 정말 쌍둥이처럼 닮았다.
문득 마이클과 나누던 대화가 떠오른다. “R, 너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 “음… 여행작가가 되고 싶어.” 그때 나의 대답이 지금 나의 현실이 되었다. 잃어버린 다이어리 속에 들어있었던 마이클의 연락처. 인터넷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했지만 아직 마이클을 찾지 못했다. 10년이 지나도록 나는 마이클과 무하마드를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 그들은 내 안에서 함께 숨 쉰다.
나: 먼 곳으로 떠나고 싶지만 떠남에 서툰 청춘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노: DO!
이메일 인터뷰 진행: 나무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