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都이야기-서울에서」 『未來共創新聞』 32호 2017년 2월 10일
‘보국안민’의 함성
조성환 (서강대학교 철학과 강사)
서울에서는 작년 말부터 매주 토요일에 광화문 광장에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전국에서 모인 수십만의 시민들이 나라의 현실을 묻는 플랜카드를 손에 든 채 한겨울에도 불구하고 장시간에 걸쳐 도로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목격한 나는 복잡한 감정이 엇갈렸다.
무수한 시민이 희생이 되어 마침내 이룩한 민주주의가, 마치 세월호가 침몰하듯이, 한숨에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뉴스에서 보면서 느낀 절망과, 그것을 원래대로 회복시키려고 모여든 수많은 시민연대가 주는 희망을 동시에 느꼈기 때문이다. 무너진 국가의 공공성과 자존심을 되돌리려고 시민들이 일어선 것이다.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현장의 분위기가 데모라기보다는 오히려 즐거운 축제에 가깝다는 점이다. 분노나 원한을 농담이나 연극으로 전환시키는 한국인 특유의 해학이 사람들의 슬로건이나 퍼포먼스로 드러났다. 같이 간 5살짜리 딸아이는 그 모습이 즐겁다는 듯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하기에 바빴다. 그러자 어떤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평화와 안전을 상징하는 풍선을 딸아이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노란 풍선이야. 네가 이 나라의 주인이란다.”
문득 “보국안민”(輔國安民=나라를 도와서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 대규모의 동학농민군들이 관료의 부패와 외국의 침입에 대해서 “침몰하는 나라를 구하자!”는 절실한 마음으로 들고 일어났을 때 내건 슬로건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오늘의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다만 그 당시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전환기에 해당했는데, 그것을 그들은 ‘개벽’이라고 불렀고, 그 중심에는 ‘인간개벽’이 있었다. 즉 인간관이 변한 것이다.
"사람이 하늘이다”는 동학의 새로운 인간관은 그때까지 통치의 객체에 지나지 않았던 농민들에게 새로운 주체의식을 불어넣었음에 틀림없다. 하늘과 같이 존엄한 존재가 된 농민들이“백성이야말로 나라의 주인이다”는 자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마침내 “공공하는 주체”가 되어, 관료나 학자들에게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그리는“공공세계[天國]"를 건설하기 위해서 들고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설령 그 주체나 세계를 표현하는 말은 바뀌었다고 해도 - 천민(天民)에서 시민(市民)으로, 천국(天國)에서 민국(民國)으로 - 그 사상은 동일함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딸아이와 같이 비록 연약한 존재라고 알지라도, 하늘과 같이 존엄한‘타자’이자 나라의 운명을 방향지우는‘주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