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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에서 공공철학하기] 5. 철학과 공공성

작성자혼돈나라|작성시간17.03.16|조회수247 목록 댓글 0

《개벽신문》제62호 (2017년 3월)
 
                              철학과 공공성
                - 우리의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 -

                                     

                                     조성환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우리는 우리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남의 것만 쓸데없이 
            흉내내지 말 것이다.
          - 포석 조명희 시집봄 잔디밭 위에(1924) 저자 <머리말> -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에 일본의 교토에서 시작된 ‘公共哲學’ 운동은, 서양의 ‘Public Philosophy’와는 다른 동아시아의 현실에 맞는 동아시아적 공공철학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새로운 철학의 시도이자 모색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지적인 도전은 ‘교토포럼’이라는 근거지를 중심으로 장기간에 걸쳐 하나의 학파를 형성하면서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가히 ‘운동’이라고 부를만하다(이 운동의 과정과 내용, 그리고 한국에서의 전개 상황에 대해서는 박맹수의《생명의 눈으로 보는 동학》에 수록된 「공공(公共)하는 철학에서 본 동학의 공공성」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 운동의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흔히 철학을 연구한다는 학자들은 그 이론이 지닌 체계적 완전성이나 형이상학적 추상성을 기준으로 평가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운동이 추구했던 ‘의미’에 주목하고자 한다. 즉 교토포럼이라는 운동 자체가 하나의 ‘공공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역으로 제 아무리 이론적 완성도가 높고 형이상학적 성격이 뛰어난 철학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또는 지금의 동아시아 삼국에서 공공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에 그것이 우리의 현실과 풍토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면 -.  


   나는 여기에 철학의 공공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철학이 공공성을 띠려면 무엇보다도 그것이 현실과 어우러져야(coherent) 한다. Public Philosophy가 서양의 풍토와 현실에서 나온 철학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서양에서’ 공공성을 띨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그것이 동아시아의 현실과 어긋나는 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동아시아에서의 공공철학이 되기에는 부족할 것이다. 이것은 마치 퇴계나 율곡의 철학이 오늘날의 현실에 꼭 들어맞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그런 점에서 ‘교토포럼 공공철학’ 운동은 무엇보다도 ‘자기’의 철학을 갖고자 하는 노력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즉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동아시아라는 ‘자기’에 맞는 철학을 모색하고자 한 운동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자체가 하나의 공공철학이었고 지금을 살고 있는 ‘실학’이었다.


                  철학은 자기를 찾는 활동   
  
흥미롭게도 교토포럼의 철학운동이 일어나기 약 20여년 전에 한국의 소장학자 김형효는 철학의 과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과연 광복 30년이 경과하는 동안에 우리의 철학은 이 시대를, 이 시대의 문제를 어떤 점으로 안아왔는가? 우리의 철학이 서양철학의 해설에 그쳤던 것은 아닌가? 우리의 철학이 동양사상의 훈고적 풀이에만 그쳤던 것은 아닌가? 또는 우리의 철학적 논문이 자료적 각주의 다과에 의하여 평가되었던 것은 아닌가?
   만약에 서양철학의 기초적 해설만을 능사로 우리의 철학이 여겨왔다면, 그것은 서양철학의 아류 신세를 면하지 못하리라. 서양철학이 변하면 나의 생각도 따라서 변하여 자기 신원의 확보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또 동양 전통사상의 개념적 뜻풀이가 우리의 철학이었다면, 그런 철학은 이 시대의 자연·사회·인간의 문제의식에 대응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철학논문이 각주의 양을 자랑삼아 내보이는 정도에 머문다면, 그것은 공부하는 과정의 습작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없게 되리라. 더구나 그런 발상이 더 위험하게 여겨짐은 논문이 각주 붙이기로 평가됨으로써 한 편의 논문이 지녀야 할 창조적 상상력이 시들어버리고 만다는 데 있다. (중략)
   철학인이 자기의 인식지평을 넓히고 사유의 가능성을 더 풍부히 갖는 것보다 더 필요하고 긴요한 일이 또 어디 있는가? 무릇 철학하는 이에게 자기의 사상적·이론적 신원을 찾고 확보하려는 노동보다 더 긴급한 과제는 없으리라. 바로 이런 과제의 추구야말로 앞에서 제기된 질문들에서 벗어나는 첩경이 아닌가 여겨진다.
   - 1976년 4월 서강대학교 연구실에서 저자 씀 - 
   (김형효,《한국철학산고》<머리말>에서. 강조는 인용자의 것) 


   37세의 패기 넘치는 젊은 철학인 김형효는 당시 한국철학계의 현실을 ‘해설’과 ‘훈고’ 그리고 ‘각주’라는 세 단어로 과감하게 요약하고 있다. 그리고 철학의 본질을 ‘자기 찾기’라고 새롭게 규정하고 있다(“자기의 신원을 확보하려는 노동”). 뒤집어 말하면 한국철학은 해설과 훈고와 각주의 홍수 속에서 자기를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대학의 철학개론 시간이나 서점의《철학입문》책에 나와 있는 철학의 정의는 ‘Philos(愛)+Sophia(智),’ 즉 ‘지혜에 대한 사랑’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암기’하지 않으면 철학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고 취급당한다. 그러나 김형효는 철학의 정의에서조차 이런 훈고나 해설을 거부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철학이란 무엇보다도 자기를 찾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즉 그는 철학의 정의에서조차 자기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설령 철학이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지라도, 그 지혜는 ‘자기’를 찾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형효의 철학에 대한 규정은 ‘지혜에 대한 사랑’을 상대화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지혜에 대한 사랑’은 그리스인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혜(=앎)’에서 찾았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철학자들에게는 앎을 추구하는 활동 자체가 자기다움인 것이다. 반면에 중국의 철학자들에게는 대중을 ‘교화’[敎]하는 활동이야말로 자기다움이었을 것이다. 즉 자기 수양을 통한 타자 구제에서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찾은 것이다(가령 유교(儒敎)가 지향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과 같이).


  그렇다면 한국의 철학자들의 자기다움은 어디에 있었을까? 또는 어디에 있는가? 지혜인가? 교화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그것도 아니면 제삼의 어떤 것인가? 아니 과연 자기를 찾고나 하고 있는 것인가? 37세의 ‘철학인’ 김형효는 이에 대한 답이 아직 우리에게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국철학의 자기다움은 역설적으로 ‘자기 찾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왜냐하면 한국철학에는 ‘자기’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빠진 ‘주의’


한국철학에 자기가 빠져 있는 이유는, 김형효의 진단을 참고하면, ‘철학’을 해설이나 훈고 또는 주석하는 태도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남의 철학을 학습하고 이해하고 공부하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철학학습의 태도는 전적으로 남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남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시선에 매몰되는 것이다. 즉 남의 관점[道]이 자기의 ‘주의’[敎]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세계관에 갇혀서[束於敎] 거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 ‘주의’가 되는 폐단을 일찍이 단재 신채호(1880~1936)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인류는 이해(利害) 문제뿐이다. 이해 문제를 위하여 석가도 나고, 공자도 나고, 예수도 나고, 마르크스도 나고, 크로포트킨도 났다. 시대와 경우가 같지 않으므로 그들의 감정의 충동도 같지 않아 그 이해 표준의 대소 광협은 있을망정 이해는 이해이다. 그의 제자들도 본사(本師)의 정의(精義)를 잘 이해하여 자가의 리(利)를 구하므로 중국의 석가가 인도와 다르며 일본의 공자가 중국과 다르며, 마르크스도 카우츠키의 마르크스와 레닌의 마르크스와 중국이나 일본의 마르크스가 다 다름이다.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 이외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들어오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주의와 도덕은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哭)하려 한다.
 - 신채호, 「낭객(浪客)의 신년만필(新年漫筆)」,《동아일보》1925년 1월 2일 -
  (최진석,《탁월한 사유의 시선》(2017), 161쪽에서 재인용. 강조는 인용자의 것)


   이에 의하면 신채호에게 있어 철학이란 “자가의 리”를 추구하는 데에 있다. 즉 자기를 이롭게 하는 데에 철학의 일차적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자기를 이롭게 한다는 것은 자기가 몸담고 있는 현실에 도움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진정한 철학이란 시대와 함께 ‘공공(公共)’해야 하고, 이것이 바로 인도의 석가와 중국의 석가가 달라진 이유이다. 인도와 중국이라는 시공이 변했기 때문에 그 내용도 따라 변한 것이고, 그것이 그 나라에 이로움을 준 것이다.


   그런데 어떤 철학이 시대와 함께하는 철학이 되려면 그것이 ‘주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주의란 시공의 변화를 무시한 채 불변의 진리로 맹신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의’가 되지 않으려면 ‘자기’가 동반되어야 한다. 자기가 몸담고 있는 현실이 거기에 반영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신채호가 말하는 “조선의 주의”의 의미이다. 


   “조선의 주의”는 조선이라는 시각에서, 즉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계관을 말한다. 반면에 “주의의 조선”은 자기는 빠지고 남의 눈으로만 바라보는 태도를 말한다. 그래서 거기에는 “창조적 상상력”은 부재하고 이론에 대한 주석과 해설과 각주만이 남게 된다. “조선의 주의”는, 그것이 공자든 붓다든 플라톤이든 원효이든, 조선의 철학이 될 수 있지만, “주의의 조선”은 결코 철학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기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자기를 찾으려는 노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집 없는 나그네


신채호에 1년 앞서,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포석 조명희(1894~1938)는 자기만의 철학이 없는 한국인들을 “집 없는 나그네의 무리”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면 자연의 홈[home]을 이룬 이 무리는 영혼의 홈만 가졌던들, 비록 사막을 좇고 바다를 건너 정처 없는 세계를 보금자리칠 양으로 걸어 나갈지라.
   그러나 보라! 우리에게 이것이 있나? 우리에게는 철학도 종교도 예술도 아무 것도 없다. 울어야 눈물 담을 항아리가 없고 눈물 뿌릴 제단(祭壇)이 없다. 우리에게는 남에게 빌려온 철학도 있었고 종교도 있었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영혼의 한때 기숙사는 되었더라도 우리 집은 아닐 것이다. 남의 것이라도 자기의 물건을 만든 것이면 자기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도 또한 하지 못하였다. 헤브라이인의 사막에 세운 집과 인도인의 삼림 속에 세운 집을 우리 땅에 (그대로만 옮겨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땅에) 자연을 맞추어 우리의 몸과 영혼에 꼭 맞는 집을 지어갖든지 옮겨 고쳐 짓든지 하여야 할 것이다. 소수를 말하지 말고 전체의 우리를 놓고 보라. 남의 집을 그대로만 가지고 살지 못하게 됨은 우리 과거생활의 실패를 보며 현재생활을 놓고 보아도 알 것이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살 집을 장만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우리가 집을 세울 만한 힘이 없어서 그러한지, 있고도 경우가 허락지 않아 그리하였든지 여기에는 얼른 말하기 어렵다.
   그러고 보니 이 털도 나래도 돋지 않은 어린 새의 무리가 어미의 보금자리로부터 휘어나가게 되었으니 살길이 어디이뇨?
   집 없는 나그네의 무리가 장차 어디로 향할고?
      - 「집 없는 나그네의 무리」, 1924.02.20. -
     (《포석 조명희 전집》, 동양일보사, 1995, 311~2쪽. 강조는 인용자의 것)


   여기에서 조명희는 한국인은 아직 자신의 영혼에 맞는 ‘생각의 집’을 짓지 못한 채 영혼의 기숙사에서 살고 있는 나그네일 뿐이라고 진단한다. 이것은 신채호가 “조선의 주의”가 없다고 탄식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당시가 영토라는 자기 집을 잃어버린 식민지 상태여서 이러한 자기비판 의식이 증폭되었을지 모르지만, 두 사람은 영토의 집을 상실하게 된 이유를, 단순히 물리적인 위력이나 경제적인 힘이 아니라, ‘영혼의 집’의 부재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이러한 진단은 반세기 이후의 김형효에게서 반복되고 있고, 그로부터 다시 40년이 지나 “독립적 사유”를 주창하고 있는 최진석에게서 되풀이되고 있다. 즉 식민지시대나 근대화 시기나 현대 한국이나, 지난 100년 동안 “자기 철학의 부재”라는 문제 상황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아니 어쩌면 더 심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 이런 현상이 지속되는 것일까? 그것은 혹시 우리 역사 속에서 축적된 “철학적 자존감”의 부재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즉 우리는 자기 철학에 대해서 항상 자신이 없는 것이다. 늘 빌려온 사유체계로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 새인가 스스로 새로운 사유체계를 만들어낼 능력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그러다보니 또 새로운 철학을 빌려 오게 되고, 그것이 다시 철학적 자존감의 부재를 강화시키고…. 이러한 패턴의 악순환인 것이다.  
   
                     훈고적 사고에서 창조적 사고로


남의 생각을 빌려서 생각하는 사고를 ‘훈고적 사고’(explanatory thinking) 또는 ‘모방적 사고’(imitative thinking)라고 한다면, 자기 생각의 틀을 만들어서 생각하는 사고를 ‘창조적 사고’(creative thinking) 또는 ‘디자인 사고’(design thinking)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 사고’란 ‘디자이너와 같은 사고’라는 뜻으로, 디자이너는 곧 김형효가 말한 “창조적 상상력”의 소유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런 디자인 사고를 중심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것을 ‘디자인경영(Design Management)’이라고 한다. 그래서 디자인경영은 다른 말로 하면 ‘창조경영’이나 ‘창조경제’에 다름 아니다.


   한국에서 디자인경영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은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었다. 그는 1996년 신년사에서 이른바 ‘디자인혁명의 해’를 선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21세기의 경영을 진단하였다.


다가올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자 지적자산이 기업의 가치를 결정짓는 시대다. 기업도 단순히 제품을 파는 시대를 지나 기업의 철학과 문화를 팔아야만 하는 시대라는 뜻이다.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한 창의력이 기업의 소중한 자산이자 21세기 기업 경영의 최후의 승부처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한 창의력”이란, 공자의 “술이부작(述而不作)”으로 말하면, ‘술(述)’보다는 ‘작(作)’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술(述)’이 기존의 것의 해설이나 해석에 가깝다면, ‘작(作)’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의 창조를 말한다(물론 공자의 ‘술’은 그 자체로 창조적인 해석을 동반하고 있지만-). 그래서 정인지는 세종의 한글 창제를 두고 “正音之作”[훈민정음의 창조]이라고 표현한 것이다(《훈민정음》「해례본」)


   이건희 회장이 “디자인과 같은 창의력”을 강조한 것은 이제 더 이상 한국도 선진국을 훈고하고 모방하는 자세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팔로워(follower)’에서 ‘무버(mover)’로 독립하기 위한 일종의 ‘개벽’을 선언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선언은 한국 기업이 최초로 시도한 ‘술’에서 ‘작’으로의 전환이자 ‘훈고’에서 ‘창조’로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선언이 있은 지 10여년 만에 삼성은 세계 산업디자인 분야의 모든 상을 휩쓸다시피 하였고, 그에 힘입어 TV와 스마트폰 시장의 ‘선도자’로 올라서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런 삼성조차도 여전히 “창조적 상상력”의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즉 ‘제품의 집’[物家]은 지었을지언정 ‘생각의 집’[道家]은 아직 못 짓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디자인이 아직도 외형적인 아름다움이나 기능적인 편리함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부터 알 수 있다. 그래서 ‘가치’나 ‘경험’을 창조하는 차원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디자인을 ‘창의’나 ‘구상’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이나 ‘물건’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 결과 디자인이 기술[技]의 차원에 머물러 있고, 철학[道]의 차원으로까지는 승화되지 못하고 있다.   


   삼성의 성공과 한계는 ‘훈고’에서 ‘창조’로의 비약이 얼마나 중요하면서도 어려운지를 동시에 말해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남의 생각에 기대지 않고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훈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삼성이나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김형효의 지적대로, 우리의 철학 논문이 아직도 “창조적 상상력”이 부재한 훈고나 해설의 차원에만 머물러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철학이 여전히 기술이나 제품 디자인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 아닐까? 철학 그 자체에 ‘철학적 상상력’이 부재하다는 말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 철학계야말로 디자인 사고와 디자인혁명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는 셈이다.
  

                             【참고문헌】


김형효, 《(김형효 철학전작 3) 한국사상산고》(소나무, 2015. 초판은 1976년, 일지사)
《포석 조명희 전집》(동양일보출판국, 1995)

박맹수, 《생명의 눈으로 보는 동학》(모시는사람들, 2014)
조맹기, <(조명희 평전) 불꽃으로 타오른 민족혼(16) - 한국문학 최초 창작시집《봄 잔디밭 위에》발간>, 《동양일보》, 2015.09.20.
유영진‧김경묵, <삼성은 어떻게 디자인 강자가 됐을까>, 《하버드 비즈니스리뷰 코리아》, 2015.09.

류정환, <프로문학의 선구, 고향에 돌아온 그의 안부를 묻다>,《충북인뉴스》, 2016.07.13.
최진석, 《탁월한 사유의 시선》(21세기북스, 2017)
김태창 구술·이케모토 케이코 기록·조성환 옮김, 《(일본에서 일본인들과 나눈) 공공철학대화》(모시는사람들, 2017)
中村裕・高橋友佳理, <デザイン思考が変える>, 《The Asahi Simbun GLOBE》, No.190, 2017.02. 1-7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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