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⓺ 《개벽신문》 65호 (2017년 7월)
동아시아의 수양학 전통에서 본 한국인의 영성
- 퇴계의 ‘상제’ 개념을 중심으로 -
조성환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철학을 산 퇴계
일본의 퇴계학 연구의 권위자였던 아베 요시오(阿部吉雄. 1905-1978) 선생이 말년에 한국의 국제학술대회에 초청되어 행한 기조강연의 제목은 ‘퇴계의 철학적 수양학과 일본유학’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철학적 수양학’이라는 말처럼 퇴계학의 특징을 요령있게 표현한 말도 없을 것이다. 아베 요시오에 의하면 퇴계학이 후지와라 세이카나 야마자키 안사이와 같은 당시 일본의 지식인들을 사로잡았던 이유는 바로 퇴계의 ‘수양학’에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퇴계의 수양학이 대체 어떠했길래 바다 건너 일본 학자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실마리를 우리는 퇴계의 언행을 기록한《자성록》이나《언행록》에서 찾을 수 있다. 거기에 나타난 퇴계라는 인물은 단순한 학자라기보다는 성직자에 가까운 삶을 살다간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임종 장면은 두고두고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정도이다. “임종 직전에 일어나서 기대앉아 자리를 정돈하게 하고 ‘매화에 물을 주라’는 말을 하고 앉은 채로 숨을 거두었다.” 이것은 마치 속세에 살다간 고승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가 어떤 자세로 일생을 살았는지가 이 한 장면에 모두 녹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나는 오늘날 한국에서 직접 체험한 적이 있다. 언젠가 공공철학 일로 안동에 있는 퇴계 종손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목격한 종손의 하루 일과는 붓글씨를 수백 장씩 써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었다. 1년 내내 오로지 이 일만 하는 것이다. 어찌나 많이 썼는지 먹물에 중독이 되고 손가락이 마비될 정도라고 한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저는 단지 퇴계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살고 있을 뿐입니다”라는 것이다. 500년 전의 퇴계의 수양적 삶이 500년 뒤의 한국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글씨를 하나씩 나누어 주셨는데, 그 내용은 “남을 칭찬하면 복이 생긴다”는 뜻의 “譽人造福”(예인조복)이었다. 이 글씨는 지금도 우리 집 거실에 당당하게 걸려 있지만, 과연 내가 이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는 대단히 의심스럽다. 다만 이 글씨를 볼 때마다 퇴계 선생의 수양적 삶을 본받으려고 하는 퇴계 종손의 모습이 떠오를 뿐이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그 중에서도 특히 서구주의와 중화주의에 물든 사람들은, 퇴계는 중국의 주자학을 추종만 했지 독창적인 이론은 없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런 논리로 조선유학, 더 나아가서는 한국철학을 중국철학의 아류라고 폄하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퇴계는 철학을 머리로 한 사람이 아니라 몸으로 한 사람이다. 그는 새로운 철학을 만들기보다는 선인들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데 모든 정열을 쏟았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의미에서 아베 요시오는 퇴계에게 ‘철학적 수양학’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준 것이리라. 이것을 칸트식으로 말하면, 퇴계는 “철학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퇴계의 철학함은 그가 남긴 다른 일화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자신의 증손자가 위독한 상황에서도 노비의 자식을 살리는 길을 택한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안도에게 보낸다》). 이때의 퇴계의 논리는 “자기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남의 자식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하는 유교경전(《근사록》)의 말씀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전의 말을 삶에 그대로 옮긴다는 것은 상당한 정신적 수양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도 상대가 양반이 아닌 노비였다고 한다면 더더욱 그러했으리라. 당시의 노비는 지금으로 말하면 흙수저 중에서도 가장 최하층에 속하는 흙수저였기 때문이다. 그런 존재에게 인간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시킨다는 것 자체가 평소에 생명에 대한 존중과 자기에 대한 부정이 축적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수양학으로서의 학문
이와 같은 퇴계의 ‘수양적 삶’과 그것을 표현한 아베 요시오의 ‘철학적 수양학’이라는 말은 전통시대 동아시아사상사에서 ‘학(學)’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것은 이론적 엄밀성을 추구하는 ‘과학’이라기보다는 실천이 요구되는 ‘실천학’의 다른 말이었다. 그리고 이때의 ‘실천’이란 ‘자기 수양’과 그것에 바탕을 둔 ‘타자 구제’를 의미한다. 퇴계의 마지막 장면은 자기 수양의 극치를 보여주고, 그가 노비의 자식을 살린 예는 그러한 자기 수양에 바탕을 둔 타자 구제의 전형이다.
유학에서 말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은 이러한 수양과 구제의 대표적인 표현이다. 자기를 닦는 ‘수기’가 남을 구제하는 ‘치인’의 전제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유학은 기본적으로 수양학을 표방한다. 그리고 이때의 수양은 크게 나누어 이기적 욕망을 절제하는 ‘극기’와 도덕적 욕망을 기르는 ‘확충’으로 나눌 수 있다. 공자가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할 때의 ‘극기’는 자기 절제를 말하고, 맹자가 사단(四端)의 확충(擴充)을 논할 때의 ‘확충’은 도덕심의 배양을 가리킨다. 또한《논어》의 첫머리에 나오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는 말은 마음 다스림을 의미하며, 맹자가 말하는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정의감을 기르라는 메시지이다. 유학은 이러한 절제와 확충을 정치가와 관료의 기본 요건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서구적 정치철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런데 이러한 유학조차도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했다. 인도의 사상전통은 이 세상의 그 어떤 문화권보다도 수양을 강조한다는 면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불교에서 말하는 좌선이나 명상, 호흡법, 공(空)의 인식론 등은 하나같이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음공부, 즉 ‘심학(心學)’의 일환이다. 그래서 중국의 지식인들이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를 대했을 때 가장 충격과 자극을 받은 부분은 아마도 이러한 수양론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불교에 대항하기 위해서 새로운 유학을 만들었다고 하는 주자학의 내용을 보아도 추측할 수 있다. 주자가 유학사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맹자》를 사서(四書)의 하나로 편입시켰던 이유는 그나마《맹자》에 ‘마음공부’에 관한 언설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었으리라.《중용》에 주목한 이유 역시 희노애락의 감정의 ‘조화(和)’와 같은 마음공부에 관한 논의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자학에서 늘상 논의되는 거경(居敬), 함양(涵養), 찰식(察識), 미발(未發)-이발(已發), 중(中)-화(和) 같은 개념들은 모두 마음공부(心學)와 관련된 것들로, 이 개념들은 주자의 신유학이 실은 ‘수양론을 보완한 유학’임을 시사한다. 주자학에 대한 양명학의 반발 역시 리기론과 같은 우주론이나 존재론보다는 수양론의 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성(性)’을 중심으로 수양을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심(心)’을 중심으로 수양을 생각할 것인가의 차이인 것이다. 주자는 어떤 것이 도덕적인 것인지를 먼저 알아야 도덕적 실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수양의 중심을 도리를 아는 도덕적 이성능력(性)의 회복(復性)에 두었다. 반면에 양명은 타고난 마음(心) 그대로 행할 수 있다면 매사에 도리에 맞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마음을 바로잡는 ‘정심’(正心)을 수양의 핵심으로 생각하였다.
이렇게 보면 동아시아사상사의 전개에서 ‘수양’을 둘러싼 논의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그동안 서구적 학문관에 가려서 담론의 영역에서 소외되어 왔던 ‘수양’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동아시아사상을 재구축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서는 그렇게 구축된 수양학이라는 틀로 서구적 학문관을 상대화하고 객관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신독(愼獨)의 수양론
그런데 수양이란 학파에 따라,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이기 마련이다. 가령 앞에서 말한 신유학은 불교나 도교의 영향으로 고대 유학과는 달리 마음공부가 강조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 또한 유교나 불교에 비해 도교는 도인술이나 기공과 같이 신체공부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편 같은 유학이라고 해도 중국의 유학과 한국의 유학은 지역적 차이가 반영되어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수양학의 모습도 다소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수양학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그 단서를 다시 퇴계에게서 찾아보자. 어느 날 퇴계는 제자와 다음과 같은 문답을 주고 받았다.
[제자] “컴컴한 방구석에 있으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푸른 하늘을 대할 수 있는지요?”(人在屋漏, 如何對蒼蒼之天)
[퇴계] “땅 위가 모두 하늘이다(地上皆天).… 어디 간들 하늘이 아니겠는가!(安往而非天乎) 대저 (주자학에서 말하듯이) 하늘이란 이치를 말한다(蓋天卽理也). 진실로 이치가 모든 사물에 들어 있고 항상 그러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하느님(上帝)이 잠시도 떠날 수 없음을 알 것이다(苟知理之無物不有, 無時不然, 則知上帝之不可須臾離也).”(《이자수어》「궁격」)
이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대목이다. 무엇보다도 주자와 제자의 문답을 수록한《주자어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생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제자가 말하는 ‘컴컴한 방구석’(屋漏)이라는 표현은《시경》에 나오는 말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중용> 1장에 나오는 신독(愼獨) 사상이다.《중용》1장에는 “혼자 있을 때에도 몸가짐을 삼간다”(愼其獨)고 하는 유명한 ‘신독’을 논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혼자 있을 때”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바로 ‘컴컴한 방구석’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중용》1장의 ‘신독’은, 그 앞에 나오는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다”(道也者不可須臾離也)는 표현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그 준거가 어디까지나 ‘도’이다. 즉 ‘도’는 언제 어디서나 지켜야 하는 보편적인 규범이기 때문에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몸가짐을 삼가라는 것이다. 반면에 이곳에서 제자는 ‘신독’의 준거를 ‘하늘’로 보고 있다. 그래서 “하늘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방구석에서는 어떻게 하늘을 대합니까(對天)?”라는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하늘이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신독을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데, 하늘이 보이지 않으면 신독의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은 사상사적으로 보면 고대 유학적이라기보다는 신유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즉《중용》의 사상을 성리학적으로 이해할 때에 나올법한 질문인 것이다. 가령 주자의 선배학자인 정자(程子)는 “경건하지 않는 때가 없으면 상제를 대할 수 있다”(毋不敬, 可以對越上帝)고 했고, 이에 대해 그의 제자인 양시(楊時)는 “신독해야 하늘에 계신 (상제를) 대할 수 있다”(愼其獨, 所以對越在天也)고 주석을 달고 있는데(《심경부주》「상제임녀」), 이러한 말들은 모두《중용》의 신독사상을《시경》에 나오는 ‘상제(上帝)’나 ‘대월(對越)’ 개념과 연결시켜서, 성리학적인 ‘경(敬)’의 수양론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上帝’는 우리말로 하면 인격적인 ‘신’을 의미하는 ‘하느님’에 가깝고, ‘越’은 ‘장소’를 나타내는 전치사로 ‘於’와 같다). 따라서 퇴계의 제자가 ‘신독’을 ‘하늘’과 연결시켜서 생각하는 발상은 이미 주자학의 선구자들에게서 나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수양의 준거로서의 하늘
그런데 문제는 이 ‘하늘’과 ‘상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이다. 퇴계의 제자는 ‘天’을 말 그대로 물리적인 하늘로 이해해서 하늘이 보이지 않는 때의 수양을 걱정하였다. 반면에 주자학자들은 “天卽理也”(하늘은 이치이다)라는 주자의 말로부터 알 수 있듯이(《논어집주》「팔일」), 하늘(天)이나 상제(上帝)를 ‘이치’(理)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리학적(理學的) 관점에서 유교경전을 일관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가령 주자는 <중용》1장의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 없다”는 문장에 대해 “(이치는) 모든 사물에 들어 있고 항상 그러하기 때문에 잠시도 떠날 수 없다”(無物不有, 無時不然. 所以不可須臾離也), “그래서 군자의 마음은 항상 (이치에 대한) 경외심을 간직한다”(是以君子之心, 常存敬畏之心)고 주석을 달고 있는데, 이것은 ‘도’를 ‘리’로 해석하여 신독 또는 경(敬) 공부의 준거를 ‘리’로 보는 입장이다. 이렇게 보면 앞에서 살펴본《시경》에 연원하는 “대월상제”(對越上帝)나 “대월재천”(對越在天)의 ‘상제’나 ‘천’도, 주자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성리학적인 ‘리’로 이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퇴계 역시 제자와의 문답에서 주자의 “하늘은 이치이다”(天卽理也)라는 말과 “(이치는) 모든 사물에 들어 있고 항상 그러하다”(無物不有, 無時不然)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는 퇴계 역시 철저하게 주자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의 전개이다. 주자학에서라면 그 다음에는 “그래서 리는 잠시도 떠날 수 없다”는 말이 와야 할 것이다. 그런데 퇴계는 “상제는 잠시도 떠날 수 없다”는 말로 끝맺고 있다(더 정확하게는 “진실로 이치가 모든 사물에 들어 있고 항상 그러하다는 사실을 안다면(知) 하느님(上帝)이 잠시도 떠날 수 없음을 알 것이다(知)”). 즉 주자학과는 반대로 ‘리’를 다시 ‘상제’로 환원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먼저 ‘안다’(知)는 말에 주목한다면, 퇴계는 리의 존재를 통해서 상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즉 “이치가 온 우주에 편재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상제(=하느님)로부터 잠시도 떠날 수 없음을 알 것이다”는 말은 이치의 편재성(遍在性)으로부터 하느님의 편재성을 도출해냄과 동시에, 그 하느님의 편재성으로 인해 하느님으로부터 잠시도 벗어날 수 없다는 당위성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주자학에서와 같이 ‘리’가 ‘상제’의 위에 있거나 ‘상제’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통해서 상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어떤 의미에서는 부차적인 존재로 자리매김 되고 있는 느낌을 준다.
다시 말하면 주자가《시경》의 ‘상제’나 고대 유학의 ‘천’에서 ‘리’를 보고 있다면, 퇴계는 오히려 그 ‘리’에서 다시 ‘천’이나 ‘상제’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퇴계가 주자학에서와 같이 ‘천’이 ‘리’로 완전히 흡수되거나 동일시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천’의 독자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수양에 있어서도 ‘리’보다는 ‘천’이나 ‘상제’가 궁극적인 준거가 되고 있다.
한국인의 영성
이와 같이 ‘리’로 완전히 회수되지 않고 오히려 ‘리’의 위에 위치하고 있는 듯한 ‘천’ 개념은 일찍이 여말선초의 유학자 권근의《입학도설》(入學圖說)에서부터 보이고 있다. 이른바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는 말의 어원에 해당하는 권근의 「천인심성합일지도」(天人心性合一之圖)를 보면, 맨 위에 ‘天’이 등장하고 그 밑에 ‘理’가 나오고 있다(“理之源性”=리의 근원인 성).
더 나아가서 「천인심성분석지도」(天人心性分釋之圖)에서는 아예 ‘리’라는 말 자체가 나오지 않고, 맨 위에 “天爲一大”(하늘은 하나이고 크다)라는 말로 시작해서, 그 밑에서 ‘一’과 ‘大’의 의미를 좌우로 풀이한 뒤에, 다시 그 밑에서 “모든 변화와 차이의 근원”이라는 설명을 추가하고서, 맨 마지막에는 ‘誠’(성)과 ‘敬’(경)이라는 수양 개념을 제시하면서 “合天人而一之”(하늘과 사람을 합해서 하나되게 한다)라는 말로 끝맺고 있다.
이 그림을 보면 권근에서도 ‘天’이 만물의 근원이자 수양(誠敬)의 준거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퇴계에서의 ‘리’와 ‘천’의 관계, 또는 ‘천’의 위치는 이미 권근에서부터 그 단초가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천’의 위상은 퇴계 이후에도 천주교의 ‘신’을 받아들인 다산 정약용, 그리고 ‘시천주’를 핵심으로 하는 동학사상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요소는, 주자학적인 추상적 ‘리’, 또는 ‘무위(無爲)’의 ‘리’에 만족하지 않고, 인격적이고 감응적인 ‘하늘’을 요청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하늘’을 수양의 궁극적 준거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바로 여기에 한국적 영성의 특징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적 영성은 중국의 ‘도’나 ‘리’ 또는 ‘천’을 ‘인격화’시키고 있다. 즉 그것들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국적으로 변용해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권근이 성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천’을 최고 범주에 둔다거나, 퇴계가 주자의 ‘리’를 ‘상제’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리’에 활동성을 부여하여 죽은 것이(死物) 아니라고 천명한다거나, 다산이 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천주교의 ‘신’을 받아들인다거나, 동학에서 ‘하늘’의 인격체인 ‘하늘님’을 모시는 것 등등은 모두 중국적인 우주적 원리(天, 道, 理)를 인격화시키려는 경향에서 기인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중국인들이 추구한 영성이 우주적 원리와의 합일이라고 한다면(合理), 한국인들이 추구한 영성은 인격적 초월자와의 교감이기 때문이다(感天). 즉 ‘영성’이 모종의 궁극적 존재에 다가가고자 하는 성향을 가리키고, ‘수양’이 이러한 영성을 기르는 훈련이라고 한다면, 한국인들은 대체로 ‘도’와 같은 보편적 규범이나 ‘리’와 같은 추상적 원리보다는, 자신과 ‘직접’ 교감할 수 있는 초월적 존재를 영성과 수양의 대상으로 삼고자 했다.
그리고 그렇게 인격성을 띤 ‘하늘’을 때로는 ‘백성’과 일치시키거나, 때로는 ‘민족’과 동일시하거나, 때로는 ‘민족의 조상’(단군)으로 상징화하거나, 때로는 자기 안에 작동하는 ‘우주적 생명력’으로 이해하거나, 때로는 ‘우주의 창조신’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 바탕에는 하나같이 자신들(한국 또는 한민족)과 하늘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깔려 있고, 그래서 나라가 위급할 때에는 언제나 예외 없이 ‘하늘’이라는 영성을 잃지 않으려고 저항하였다. 즉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애국가의 가사처럼, 스스로 하늘을 보호하고 다시 그 하늘의 보호를 받는, 최시형의 표현을 빌리면 하늘과 사람이 상호의존적인 “天人相依”(《해월신사법설》)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해 왔던 것이다.
[참고문헌]
조성환, 「바깥에서 보는 퇴계의 하늘섬김사상」, 《퇴계학논집》10, 2012.
_____, 「하늘과 땅의 살림영성-안도 쇼에키와 동학을 중심으로」, 《개벽신문》50호, 2016.01.
_____, 「수양으로서의 학문」, 《월간 공공정책》2016.06, 「여는 글」
_____, 「살림과 주체로서의 하늘」, 《개벽신문》58호, 201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