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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상기행] 1. 군산의 동국사와 동아시아의 평화_기타지마 기신

작성자혼돈나라|작성시간17.10.06|조회수250 목록 댓글 0

한국사상기행(1) 개벽신문67(20179월호)

 

군산의 동국사와 동아시아의 평화

 

욧카이치대학(四日市大学) 명예교수 기타지마 기신(北島義信)

 

시작하며

 

나는 올 봄에 평소에 학문적으로 교류하고 있는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박광수 소장과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이찬수 교수의 초대로, 서울에 있는 성공회대학교(511)와 전북 익산의 원광대학교(512)에서 아시아의 평화공동체를 주제로 각각 강연과 토론을 하였다.

 

강연에서는 18세기 중엽의 일본사상가 안도 쇼에키(安藤昌益)대동사상’(大同思想)과 그것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야스쿠니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구축 방안을 얘기하였다. 이어지는 토론에서는 학생들이 모두 열정적이고 질문 내용도 지금의 문제와 부합되는 것들이어서 순식간에 토론시간이 지나갔다. 토론을 통해서 가장 감격스러웠던 점은 우경화를 강화하고 있는 일본의 사회정치적 현실을 한국의 대학생들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고, 한일시민이 평화실현을 위해서 서로를 살리는 상생의 시점이 명확하게 위치지워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한국에 도착한 것은 대통령선거 전날이었다. 비폭력에 의한 평화와 상생을 축으로 하는 동학사상이 3·1 독립운동,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 그리고 100만명이 운집한 촛불집회와 문재인 대통령의 탄생으로 확실하게 이어지고 있고, 젊은이들은 그것을 체현하고 있으며, 한국사회에는 근대시민이 흔들림 없이 착실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전후(戰後) 일본의 민주화운동이 절정이었던 때는 1960년대의 안보투쟁이었다. 그러나 1960619일에도 국회를 에워싼 데모참가자는 33만명이었다. 100만과 33, 이 숫자의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한국에서는 동학운동에서 시작된 토착적 근대사상의 혈육화가 계승되고 있는 데 반해서, 일본에서는 오키나와(沖縄)와 같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그런 토착사상의 혈육화가 부재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원광대학교 강연이 끝나고 나는 박광수 소장에게 일본의 식민지지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에 가보고 싶다는 부탁을 드렸다. 그러자 박교수는 군산의 동국사를 추천해 주었다. 군산은 익산의 근처에 있는 인구 30만의 항구도시로, 식민지시대에 일본으로 운반하기 위해서 군산항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쌀가마의 사진을 통해서 본 기억이 있다.

 

강의가 끝난 다음날 513, 원광대학교 요가학연구소의 김태희 연구원과 원불교교무님의 도움을 받아 군산으로 향했다. 군산에는 식민지시대의 일본가옥 170호가 남아 있었는데, 특히 군산시가 관리하고 있는광진저택은 상당히 훌륭한 가옥이었다. 그리고 항구 근처에 있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는 식민지시대의 군산을 재현하고 있었다. 항구 근처에는 철도 선로의 흔적도 보였다. 아마도 수탈한 대량의 쌀을 운반하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의 전시사진과 설명을 보고서 식민지지배 하에서 치열한 농민투쟁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1. 동국사와 아시아의 평화

 

쇼와(昭和) 초기의 군산지도를 보면 도심을 벗어난 교외에 조동종(曹洞宗) 계열의 사찰인 금강사(錦江寺)가 있다. 이것이 지금의 동국사(東國寺)이다. 정면을 향해 우측에 있는 기둥에는 錦江寺라는 옛 사찰명이 새겨 있고, 위에 있는 曹洞宗이라는 글자는 지워져 있다. 본당에 참배하러 들어가 보았더니,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조동종의 사원과 구조가 유사하다. 본당의 좌측에 종루(鐘楼)가 있고, 그 옆에 기념비 두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참사문(懺謝文)이다. 참사문은 일본 조동종이 전쟁책임을 참회·고백한 참회문과 사죄문으로, 19921120일에 조동종 종무총장 오오타케 묘겐(大竹明彦) 스님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참사문의 맨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다.

 

동국사의 개산(開山) 기념일에 일본 조동종에서 발표된 참사문(발췌)을 새긴 비석을 동국사 앞마당에 세우고 제막식을 거행한다.

불기 2556(서력 2012) 928

일본의 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건립. 제작 익산시 연화석재

 

참사문은 조동종이 메이지시기 이후부터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정치권력의 아시아지배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아시아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를 멸시하고, 일본의 국체(國體)와 불교에 대한 우월감에서 일본 문화를 강요하여 아시아인들의 민족의 자부심과 존엄성을 손상시키는 행위를 해온, 그리고 그런 행위를 석가모니 부처님과 삼국전등(三國傳燈)의 역대 조사(祖師)의 이름하에 행해 온것의 중대한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고, 아시아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참회하고 있었다. 아울러 1945년 패전 직후에 마땅히 했어야 할 전쟁 책임에 대한 자기비판을 게을리 한” “태만을 사죄하고, 전쟁협력 사실을 인정하면서 사죄하고 있었다.

 

나아가서 참사문에는 한국에 대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왕비암살이라는 폭거를 저지르고 조선을 속국화하여, 마침내 한일병합에 의해 하나의 국가와 민족을 말살하기에 이르렀는데, 우리 종파는 그 첨병이 되어 조선민족의 동화를 꾀하고 황민화 정책추진의 담당자가 되었다.” 이것은 조동종이 불법(佛法)을 국책이라는 세법(世法)에 종속시키고, 나아가서 다른 민족의 존엄성과 정체성을 빼앗는 이중의 잘못을 저질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동국사의 비문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참사문은 일본이 저지른 식민지지배와 전쟁에 가담한 조동종 교단의 참회와 고백에 기초하여, 평화실현의 방향을 불교의 공()연기(縁起) 사상, 공생(共生)상생(相生)의 실천에서 찾고 있다.

 

사람도 국가도 민족도 그 자체로 독립된 존재로 다른 이의 침범을 거부하는 것이지만, 그 자체로 개체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도 국가도 상호의존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타자와의 공생은 필연이다. 타자와의 공존이야말로 자신이 사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규율하며 타자와 함께 살면서 타자와 함께 배우는 삶의 방식이야말로 불교의 평화사상이다. 우리는 과거에 이런 시점을 상실하고 불교와 멀리 동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우리는 거듭 맹세한다. 두 번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노라고 -. 그리고 과거의 일본의 압정에 고통 받은 아시아인들에게 깊이 사죄하고, 권력에 가담하여 가해자 측에 서서 개교(開敎)에 임한 조동종의 해외전도의 잘못을 깊게 사죄하는 바이다.”

(일본종교인평화협의회편(日本宗教者平和協議会編), 종교인의 전쟁책임 참회고백 자료집(宗教者戦争責任懺悔告白資料集), 白石書店, 1994, 52-53)

   

2. 참사문기념비 건립과 한일시민연대

 

동국사의 경내에 세워진 일본어와 한국어 참사문기념비 건립은 구체적인 평화실현에 대한 맹세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한일 종교인과 시민의 협력에 의한 것이었다.

 

참사문을 새긴 석비의 건립자가 일본의 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으로 되어 있는 것이 나로서는 대단히 흥미로웠다. 지원하는 모임과 동국사에 대해 상세하게 알고 싶어하는 나에게 절친[親友]인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의 조성환 박사는 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의 대표인 이치노헤 쇼코(一戸彰晃) 스님의 조동종은 조선에서 무엇을 했는가?(曹洞宗朝鮮をしたのか)(皓星社, 2012)를 소개해 주었다(우리말 번역서 제목은 조선 침략 참회기: 일본 조동종은 조선에서 무엇을 했나이다). 귀국 후에 곧바로 이 책을 구입하여 단숨에 독파하자 몇 가지 불분명했던 점이 분명해졌다.

 

이 책에 의하면 동국사는 “1947년에 한국의 승려 석문(石門) 남곡(南谷. 1913-1983) 스님이 매입하여 한국의 별칭인 동국을 따서 동국사라고 명명했다. 남곡스님은 역사의 증언자로서 이 절을 보존하기로 결심했다.”(322). 동국사는 1945년까지는 금강사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조동종 사찰이었는데, 남곡 스님은 이 절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름을 동국사로 바꾸어 한국 사찰임을 표명하고, 후원자를 얻기 위해 한국 최대의 불교단체인 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에 기증했다. 동국사(금강사)는 몇 차례나 파괴의 위기에 직면했었는데, 그것을 잘 넘기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한국전쟁의 이전과 이후 그리고 전쟁 현장을 지켜본 증인이다.”(323)

 

1990년대에는 일제 강점기의 유물을 파괴하는 분위기 속에서 동국사도 해체의 대상이 되었다. 이에 반대한 것이 시민단체와 동국사의 승려 및 신자들이었다. 그들은 철거반대운동을 끈질기게 전개하여 해체의 위기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다.”(323)

두 명의 주지를 거쳐 2005년에 동국사의 총무(주지)에 취임한 분이 종걸(宗杰) 스님이다. 종걸스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절은 모두 부처님의 집이다.” “나에게는 부처님이 계신다. 두려울 것은 아무 것도 없다.”(324)면서, 간 이식을 원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간을 기증하는 등, “불교의 기본인 자비희사慈悲喜捨’(사무량심四無量心)을 그대로 실천하였다.”(325) 뿐만 아니라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지원을 계속하고계신 분이다. 종걸스님은 동국사의 창립기념일을 매입한 날이 아닌, 조선총독부가 금강사라는 사명(寺名)을 인가한 ‘928로 삼고, 금강사의 네 명의 주지와 동국사의 두 2명의 주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공양하고 있다.

 

일본에서 종교단체가 전쟁협력에 대한 자기비판책임고백을 한 것은 그리스도교가 가장 빨랐고(1967), 진종(眞宗) 대곡파(大谷派)1990, 정토진종(浄土眞宗) 본원사파(本願寺派)1991, 조동종(曹洞宗)1992년이었다. 불교에서 회심참회란 자기가 저지른 죄의 용서를 구하고, 악심(悪心)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인간이 되어 타자구제에 매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침략전쟁협력에 대한 자기비판책임고백은 평화실현을 위해 일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런 입장에 서서 평화실현행동에 나선 정토진종 승려의 예는 코이즈미수상 야스쿠니참배 유족소송에서 볼 수 있다. 2001년에 있었던 코이즈미수상의 야스쿠니참배에 대해서 “20029월까지 재일외국인과 재한(在韓)재미(在米) 전몰자 유가족을 포함한 약 2천명이 국가코이즈미수상야스쿠니신사를 피고로 전국 6개 재판소에소송을 낸 것이다(다나카 노부마사(田中伸尚), 󰡔야스쿠니의 전쟁사(靖国戦後史)󰡕, 岩波書店, 2007, 199). 이 공동원고(共同原告) 중에는 정토진종의 승려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들은 정토진종 교단이 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것에 대한 회심과 참회의 행위로서, 신앙에 기초하여 다른 종교인비종교인재일한국인 등을 포함한 타자들과의 연대에 나선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대표자 이치노헤 쇼코 스님)참사문비석 건립도 전쟁책임회심참회에 기초한, 동아시아평화공동체를 지향하는 한일시민연대 활동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3. 군산 평화의 소녀상과 아프리카의 우분투 사상

 

한편 이 비문 앞에는 위안부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세워져 있는데, 참사문비석과 군산 평화의 소녀상은 한 몸이 되어 보는 이에게 다가온다. 설명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일본은 점령기에 종군위안부로 만들기 위해 죄 없는 불쌍한 소녀들을 채갔다. 그녀들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뇌의 나날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소녀상은 부끄럽고 뼈아픈 역사적 사실을 자손에게 기억시키고 환기시켜 그들이 이어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소녀상은 바닷가에 서서 부모와 형제자매가 살고 있는 조국을 바라보는 소녀이다. 소녀는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20158월 조각 고광국.”

 

돌아갈 수 없는 조국을 바라보는 소녀의 슬픔과 고뇌와 참사문에 나타난 가해자 일본인의 깊은 회심과 참회가 겹쳐진다. 나는 전 인종의 평등과 비폭력­비복종 운동에 의한 인종차별체제 철폐(1994) 후에, 남아프리카에서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투투 대주교의 제안에 의해 설치된 진실화해위원회’(1996-8)의 공청회에서 있었던 몇 가지 사례를 떠올렸다.

 

이 공청회에서는 무려 22,000명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거기에는 죄 없는 흑인을 학살한 백인경관의 고백, 쇼핑센터 폭파로 무고한 백인소년을 죽게 한 아프리카민족회의의 흑인지지자에 의한 죄의 고백에 의해 가해자와 희생자 가족 간에 화해가 이루어진 사례도 소개되고 있다. 백인경관에 의해 자식을 잃은 흑인 엄마는 공청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화해라는 말을 떠올릴 때 우리가 바라는 것은 가해자가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복과 악의의 연쇄를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가해자가 인간성을 회복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Alex Boraine 시모무라 노리오(下村紀夫) , 국가의 가면이 벗겨질 때(国家仮面がされるとき) : 남아프리카 진실화해위원회의 기록(アフリカ真実和解委員会記録), 第三書館, 2008, 215).

 

아프리카 민족회의의 지지자가 설치한 폭탄으로 쇼핑센터에서 아들을 잃은 한 백인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들(=자기 아들을 죽인 자와 그의 부모)을 만나 내 심정을 전달할 수 있어 대단히 위안이 되었다. 그들에게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 매우 기뻤다. 이제 그들에게 원한은 없다.만약에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었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선거권도 없이 매일 같이 탄압받았다고 한다면.” (위의 책, 215)

 

여기에는 승자로서의 흑인백인을 재판한다는 구조는 없다. 그 기저에는 과거의 잘못을 인식한 상태에서 남아프리카를 하나의 복합적 통일체로 파악하여, 모든 것을 상호관계성으로 이해하는 우분투’(Ubuntu) 사상이 있을 뿐이다.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사람이 된다(A person is a person through other persons). 우리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 하나 완전한 형태로 이 세계에 오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고독한 인간이란 말 자체가 모순이다. 우분투란 인간의 본질을 나타내는 말이다. 우분투는 나는 관계성을 갖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필요성을 알기 위해서 각각 다르다. 인간이라는 것은 곧 의존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우분투는 관대함, 포용, 자비, 공유와 같은 정신적 속성을 말하고 있다. 인간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우분투가 없는 경우도 있다.”(Desmond Tutu, God Is Not A Christian, Rider, 2011, pp.21-22)

 

아프리카의 우분투는 한국의 동학사상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동학연구의 제1인자인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박맹수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동학은 이른바 투쟁사상이 아니라 온갖 모순에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사상이었다. 동학은 또 대립과 분열을 강조하고 타자를 배제하는 배척사상이 아니라 타자와의 공생과 공존을 중시하는 공존사상이었다. 동학은 처음부터 아래로부터의 사상을 지향하였다. 그리고 신분제를 부정하고 만민평등을 주장하였으며, 일하는 백성을 하늘님으로 섬기는 실천을 일상생활에서 거듭해 나갈 것을 강조하였다.”

(교토포럼 발행,공공적 양식인(公共的良識人), 201271, )

 

 

맺으며

 

내가 동국사 경내에 건립된 참사문비석과 군산 평화의 소녀상의 일체성을 강하게 느꼈던 것은 아마도 거기에서 동학과 우분투 그리고 불교의 공(연기(縁起)의 작용과의 공통점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영성의 작용은 한일시민에 의한 아래로부터의동아시아 평화공동체건설을 추진해나가는 용기를 주는 것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소녀상은 영화 귀향(鬼鄕)’으로 안내해 준다(‘귀향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상세히 논하기로 한다)

 

현재 일본의 한반도의 이해는 군사정치적 사건의 단편적 소개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역사문화사상에 대한 이론적체계적인 논의는 전무하고,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침략을 그린 영화 명량은 일반 영화관에서는 상영되지 않고, 종군위안부를 그린 영화 귀향의 존재도 거의 모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이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구축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타파하는 한일시민의 학술교육문화교류도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한일 초중고 교사들의 교류 성과로 출판된 마주보는 일본과 한국조선의 역사 : 근현대사편(かい日本韓国朝鮮歴史 近現代編)(大月書店, 2015)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공통과제를 한일 양국의 학생이 찾아내고, 글로벌사회에서 활약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익히는것을 목적으로 설치된 한일해협권칼리지’(日韓海峡圏カレッジ)의 성과는한일이 공유하는 가까운 미래로(日韓共有する近未来)(泉社, 2015)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또한 최근에 나온 한일학술교류의 성과로는 박광수 편,근대 한국과 일본의 공공성 구상(2)(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5)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착실한 한일교류의 지속은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구축을 향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러한 확신을 가져다 준 것이 이번 한국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에 도움을 주신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번역 : 조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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