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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 '다시 개벽'을 찾아나선 열흘간의 공공여행(한중일 국제학술회의 참가 후기)

작성자혼돈나라|작성시간17.11.18|조회수305 목록 댓글 0

 

동양포럼(53) / 한·중·일이 미래를 함께 여는 ‘국제학술회의’ 참가 후기

 

‘다시 개벽’을 찾아 나선 열흘간의 ‘공공여행’

- 공공영성·외천활리·탈식민지 포럼에 다녀와서 -

 

조성환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지난 8월 3일부터 15일까지 약 열흘 동안, 동양포럼과 꽃동네 영성원 그리고 영남퇴계학연구원의 공동 주최와 후원으로 ‘한·중·일이 미래를 함께 여는’ 동아시아포럼이 잇달아 열렸다. 주제는 △‘공공하는 영성을 새밝힘한다 - 꽃동네 영성을 배운다’(8월 4일~6일, 음성 꽃동네 영성원) △‘외천활리(畏天活理)의 인문학’(8월 10일~12일, 안동 도산선비문화수련원)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와 미래공창-조명희·나쓰메 소세키·루쉰의 비교 조명’(8월 13일~15일, 청주대학교)이었다.

 

음성과 안동 그리고 청주의 세 지방을 오가며, ‘공공영성’과 ‘외천활리’ 그리고 ‘탈식민지’라는 상관 연동되는 주제로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학자 및 학생들이 국경과 세대를 넘어 진지하게 대화하고 토론한 열흘이었다. 특히 마지막에 열린 ‘영혼의 탈식민지화’ 포럼은 광복절에 맞춰 개최돼 우리에게 있어 진정한 ‘독립’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이하에서는 세 포럼에 참가하면서 느낀 소감을 간단히 피력하는 것으로서 이번 포럼의 의의와 향후 과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 ‘영성’으로 다시 본 동아시아사상

 

먼저 첫 번째로 열린 ‘공공하는 영성’ 포럼은 ‘꽃동네 견학(첫날)-영성론 발표(둘째날)-세대간 대화(셋째날)’로 구성된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으로, 그동안 ‘이성’과 ‘개인’을 중심으로 인간과 사회와 학문을 이해해 온 서구 근대적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며, 인간과 우주의 근원적 작용으로서의 영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첫날에 있었던 꽃동네 영성 체험 시간에는 사회적 약자들을 한 가족처럼 돌보고 있는 꽃동네 사람들의 봉사와 헌신의 자세와, 신체적 장애와 가정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요양원 환자들의 모습이 모두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특히 동학을 연구하는 나로서는 요양원 앞에 쓰여 있는 ‘모든 이들이 하느님처럼 우러름을 받는 세상’이라는 말이 동학의 ‘사인여천’(事人如天)의 가르침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그리스도교적인 창조주(神)를 믿지 않는 ‘타자’와도 영성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타자배려적인 영성론과 소통법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둘째날부터 시작된 학술 대화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마련된 것이리라.

 

테레사 수녀(미야모토 히사오), 스즈키 다이세츠(기타지마 기신), 요코이 쇼난(아베 나카마로), 안도 쇼에키(오오하시 켄지), 최한기

(야규 마코토), 퇴계(황상희)와 같은 개별 사상가들의 영성론을 비롯해 유교(카타오카 류), 한국(김용환), 러시아(텐 벤야민)와 같은 사상별·지역별 영성론, 그리고 정지용(김영미)과 제3의 생명론(오구라 키조)과 같은 생명론 등 특정 종교에 제한되지 않고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영성론이 소개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모든 이의 주목을 끌었던 것은 사회복지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오오사와 시노부 교수의 그리스도교의 영성론과, 동일본대지진 발생 지역에서 있었던 생자(生者)와 사자(死者)의 소통이야기였다(카네비시 키요시). 오오사와 교수가 소개한 초월적인 ‘신’과 특별한 방식으로 접촉하는 신체장애자의 이야기가 서양적 영성론을 대변한다면, 카네비시 교수가 들려준 지진으로 사망한 가족들과 편지나 대화로 소통하는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는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다르게 보지 않는 동양적 영성론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었다.

 

첫 포럼을 마치고서 든 생각은 ‘이제서야 동아시아사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개념적 틀을 갖게 되었구나’라는 것이었다. 주지하다시피 동아시아사상에서는 우주의 작용이나 자연의 존재방식과의 합일을 인간의 궁극적 경지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런 ‘천인합일’의 경지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인간의 이기심이 극복되고 보다 공공적인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세계를 (신)유학에서는 인(仁)으로, 도교에서는 기(氣)로, 불교에서는 공(空)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나 이 세계는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도달하기 어렵고, 그것을 넘어서는 자연적/우주적 차원의 ‘영성’의 작용이 요구되는 경지이다. 모종삼이 서양철학에 대한 중국철학의 우위를 말하면서 내세웠던 ‘지적 직각(智的直覺)’도 결국 스즈키 다이세츠식으로 말하면 ‘물아(物我)가 구분이 안 되는 영성’의 차원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성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그동안 이성 중심의 근대적 세계관에 가려져 신비화되고 폄하되어 왔던 동아시아의 철학을 재해석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이번 영성포럼은 지난 150여년 동안 ‘근대’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자기를 버리고 비하해 왔던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탈식민지화’ 포럼과 상통하고 있다.

 

● 비움과 자유의 퇴계인문학

 

두 번째 포럼인 ‘외천활리의 인문학’은 퇴계학을 ‘외천(畏天)’과 ‘활리(活理)’라는 두 축으로 조망하고자 하는 시도로, 종래에 ‘심학’이나 ‘유학’이라는 틀에서만 주로 논의되어 왔던 퇴계학을 ‘영성학’이나 ‘한국학’과 같은 보다 넓은 지평 위에서 새롭게 이해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마련된 학술대회였다. 그런 의미에서 2015년에 열린 ‘생명과 평화, 치유와 영성의 측면에서 본 퇴계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번 포럼에서의 한국 측 발표자들은 대부분 박사학위를 막 취득한 소장학자들로 구성되어,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하기 위한 주취 측의 배려를 엿볼 수 있었다.

 

이틀간 소개된 발표들은 하나같이 수많은 논의와 기나긴 토론을 요하는 무거우면서도 깊은 주제들로, 발표자들이 이번 학술대회를 앞두고 상당한 준비를 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가령 교토대학의 오구라 키조 교수의 ‘리란 무엇인가?’는 1930년대부터 교토대학에서 시작된 ‘리’의 철학적 의미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리’를 삼중구조(一理-萬里-메타理)로 분석함으로써 퇴계의 리발(理發)과 리동(理動)의 의미를 해석하였다. 여기에서 ‘메타리’란 ‘일리’와 ‘만리’를 ‘리’이게 하는 근원적인 차원의 ‘리’로, 말하자면 ‘리’의 ‘리’라고도 할 수 있다.

 

오구라 교수의 분석은 신유학에서의 ‘리’의 의미를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논의를 시작하는 중국학계나 한국학계와는 방법론상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시카고대학의 브룩 지포린 교수가 내놓은 ‘리’에 대한 두 권짜리 연구서와도 문제의식 상에서 상통하고 있었다. 지포린 교수는 중국철학에서의 ‘리’를 ‘coherence’(어우러짐)라고 해석하였는데, 오구라 교수식으로 말하면 이것이 ‘메타리’의 차원에 해당할 것이다.

 

한편 토호쿠대학의 카타오카 류 교수는 퇴계에서의 ‘리발(理發)-리동(理動)-리도(理到)’의 의미를 ‘내적 자발(마음)-외적 기원(하늘)-자기변혁(수양)’으로 각각 해석하였다. 특히 ‘리도’를 “리가 단순히 마음에 이른다”는 사실을 말하기보다는 그 결과 ‘자신이 변한다’고 하는 ‘자기 변혁을 위한 수양의 일환’으로 해석하면서, 제자 이덕홍이 퇴계를 ‘허기수인(虛己受人)’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러한 예라고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영성포럼에서 아베 나카마로 교수가 소개한 요코이 쇼난의 ‘원립’(遠立=멀리서 지켜보기)의 삶의 자세가 연상되었는데, 둘 다 자기를 비운 상태에서 하늘과 타자를 받아들이는 ‘영성적 지식인’의 전형적인 인물로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소장학자를 대표하여 모두 5명이 발표를 하였는데, 대표적으로 김성실 박사는 퇴계의 리발설과 인성 교육의 방향에 대하여, 이원진 박사는 퇴계의 ‘리’와 스피노자의 ‘신’의 유사점에 대하여 발표하였다. 먼저 김성실 박사는 퇴계 스스로는 ‘호발(互發)’이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없고 오로지 ‘리발(理發)’만을 인정했기 때문에 ‘리발기수(理發氣隨)’의 일원론으로 보아야 하고, 리발은 인간 본성의 완전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인성 교육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행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어서 이원진 박사는 퇴계의 ‘리동’은 스피노자의 ‘자기 원인’에 해당하는데, 스피노자의 ‘자기 원인’이 신과 같이 주체적이고 자유롭게 사는 상태를 말하는 반면에, 유학에서의 ‘자기 원인’은 자기에게서 구하는 ‘반구저기(反求諸己)’라고 하였다.

 

젊은 학자들의 발표를 듣고 토론자로 참석한 세종대 이은선 교수는 ‘젊은이들에게는 지금의 한국사회가 비관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절대적인 선(善)을 지향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코멘트와 더불어, 유학적 영성의 특징은 ‘믿음’(신앙)을 강조하는 그리스도교와는 달리 ‘배움’(수양)을 통해서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본 데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적인 ‘종교성’보다는 오히려 동아시아적인 ‘학(學)’의 전통을 강조해야 한다는 귀중한 조언을 해주었다.

 

개인적으로는 젊은 학자들의 강한 문제의식과 자기만의 관점, 그리고 순수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퇴계학을 유학이나 퇴계학파라는 좁은 테두리에 가둬놓는 기성세대들의 전철을 밟지 말고 한국사상사 더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사상사라는 보다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특히 퇴계학을 한국학이라는 지평 위에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주자학과의 비교는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자칫 잘못하면 어디까지나 주자의 이야기이고 어디서부터가 퇴계의 이야기인지 불분명해져서 ‘주어가 없는 한국학’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이 기조강연과 종합토론 시간에 강조하였던, 한국철학 또는 조선유학을 해석하는 중심축을 종래의 ‘심학’이나 ‘철학’에서 ‘영성학’이나 ‘생명학’으로 전환하는 작업이 퇴계학 분야에서도 필요하다는 지적은, 세대를 불문하고 모든 한국학 연구자들에게 해당되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패러다임 전환이나 인식틀의 개벽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영혼이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번 학술대회를 ‘외천활리의 인문학’이라고 한 의도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문학의 본래 취지는, 서양의 ‘liberal arts’나 장자의 ‘소요유’ 또는 공자의 ‘무상사(無常師=일정한 스승이 없다)’라는 말로부터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이원진 박사가 소개한 스피노자의 ‘자기 원인’(주체적이고 자유롭게 사는 상태)이나 황상희 박사가 해석한 퇴계의 ‘리도(理到)’(틀을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해방적 형식)는 바로 이런 영혼의 자유로운 상태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런 자유로운 영혼에 도달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영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퇴계의 ‘외천’은 하늘(우주)을 두려워하며 자기를 비우는(自虛) 영성 수양으로 ‘활리’는 그러한 자기 비움의 영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리(活理)와 교감하는 영혼의 자유로 각각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외천활리의 인문학은 앞선 ‘공공하는 영성’과 뒤이은 ‘영혼의 탈식민지화’와 상관연동하고 있다.

 

● 우리의 영혼을 구속하는 것들

 

마지막 포럼의 주제는 ‘조명희와 나쓰메 소세키 그리고 루쉰을 통해본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와 미래공창’으로 여기에서 ‘영혼의 식민지화’란 ‘영혼이 외적인 권위에 지배되어 자유롭지 못한 상태’를, ‘영혼의 영토화’는 그것이 장시간 고착된 상태를 말한다.

‘영혼의 탈식민지화’라는 말 자체는 이번 포럼에 참가한 오사카대학의 후카오 요코 교수의 ‘혼의 탈식민지화란 무엇인가(魂の脫植民地化とは何か)’(2012)라는 책 제목에서 유래하고 있는데, 다만 이 책에서는 탈식민지화의 대상을 ‘혼’, 즉 ‘개인의 영혼’에 한정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서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은 ‘영(靈)’과 ‘혼’(魂)을 구분하여 ‘혼’을 개인적인 영혼 또는 개체 차원의 영혼(넋)을 가리키는 말로, ‘영’을 집단적인 영혼 또는 우주적 차원의 영혼(얼)을 가리키는 말로 구별해서 쓸 것을 제안하였다. 실제로 후카오 교수의 발표는 개인 차원의 영혼, 즉 ‘혼’의 영역에 제한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김태창 주간의 구분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한편 ‘영혼의 탈식민지화’와 유사한 문제의식으로는 이미 1986년에 케냐의 소설가 응구기 와 씨옹오가 쓴 평론집 ‘Decolonising the Mind: the Politics of Language in African Literature’를 들 수 있다(일본어 번역본은 ‘정신의 비식민화’(1987), 한국어 번역본은 ‘정신의 탈식민지화’(2013)). 이 당시에는 아직 ‘정신’(mind)의 탈식민지화 단계에 머물러 있었는데 아프리카 영문학을 전공한 기타지마 기신 교수에 의하면 점점 영혼의 탈식민지화 차원으로 나아갔다고 한다.

 

이번 포럼의 취지는 이런 선행연구들을 염두에 두면서 분석의 대상을 동아시아라는 공간과 근대라는 시간으로 옮겨와서 20세기 초에 한·중·일을 대표하는 세 작가 - 조명희, 루쉰, 나쓰메 소세키 - 의 작품에 나타난 ‘영혼의 탈식민지화론’을 살펴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보다 밀도 있는 토론을 위해 사전에 발표자들의 생각을 미리 ‘동양일보’에 게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질문과 토론 중심으로 진행한 것도 이번 포럼의 큰 특징이었다.

 

특히 서울지역의 청년층 대표로 참가한 서강대학교 출신 학생들은 사전에 세 차례의 준비모임을 통해서 실제 포럼에 맞게 발표와 토론을 하는 등 나름대로 치밀하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울러 포럼이 끝난 뒤에 가진 뒤풀이 자리에서는 동양포럼의 취지를 이어서 매달 자체적으로 청년포럼을 열어 거기에서 논의된 내용을 ‘개벽신문’에 싣기로 했다. 부디 기성세대들에 기대지 말고 주체적이고 자유롭게 자신들의 생각을 펼쳐나가기를 바란다.

 

전체적으로 영혼의 탈식민지화 포럼은 작년부터 시작된 일련의 동양포럼에 비해 가장 앞서간 주제였다고 생각한다. 그런 만큼 참가자들 특히 기성세대들에게는 테마 자체가 낯설게 다가왔으리라. 이것은 뒤집어 말하면 우리의 정신이 그리고 영혼이 여전히 중국과 서구의 식민지상태에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조명희가 살았던 시대에 한반도에서 탄생한 개벽종교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한국사상사에서 영혼의 식민지상태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한 가장 본격적이고 집단적인 영성운동이기 때문이다.

 

● 100년 전의 한국적 근대화 운동

 

한일합방을 전후로 한반도에서 탄생한 민중종교들 - 동학/천도교·대종교·증산교·원불교 - 은 하나같이 서구적인 ‘이성적 근대’에 대하여, 스즈키 다이세츠의 표현을 빌리면 ‘영성적 근대’를 구축하기 위한 민중들의 주체적 노력이었다. 이들이 공유한 ‘개벽’이라는 말은(대종교는 ‘개천(開天)’) ‘영성 수양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연다’는 뜻으로 개화파들이 추구한 서구적 근대나 척사파들이 지향한 유학의 종교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한국적 근대를 모색하고자 하는 창조적 운동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을 ‘개화파’나 ‘척사파’에 대해서 ‘개벽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 ‘개벽파’의 운동이 ‘동학농민전쟁’이나 ‘동학농민혁명’ 또는 ‘신종교’와 같이 단순한 항일전쟁이나 계급혁명 또는 종교운동으로 축소되어 이해되어 왔다. 반면에 일본의 메이지유신은 일찍이 근대화를 추진한 선진적인 사례로 평가되어 왔다. 이것 역시 우리의 정신과 영혼이 서구나 일본의 식민지상태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인데, 우리가 ‘개화’나 ‘계몽’이라는 서구적 안경을 벗어 던지고서 공정하게 역사를 바라본다면, 한국의 개벽운동 역시 근대화를 추구한 적극적인 운동으로 평가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아니 서구적 근대를 모방하여 침략의 길을 간 것이 아니라 평화적이고 “문명적인”(동학농민군에 대한 다나카 쇼조의 평가) 근대를 모색했다는 점에서는 더 높게 평가받아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동시에 개벽운동은 중국이나 서양의 철학적 식민지 상태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다. 그것은 어느 한쪽에도 기대지 않고 독립적으로 그리고 공공적으로(共創) 새로운 문명을 열고자 하는 민중운동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의 세 포럼에 담긴 의미는 ‘개벽’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국인들이 100년 전의 개벽운동을 제대로 평가하는 눈을 가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영혼의 탈식민지화와 영성적 근대로 나아가는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침 이번 포럼에 참석한 기타지마 기신, 카타오카 류, 변영호, 진종현 교수 등이 다시 모여 개벽운동을 비롯한 전 세계의 ‘토착적 근대화 운동’을 주제로 한·일공동학술대회를 연다고 한다(원광대학교, 10월 20~21일). 이런 학술대회와 동양포럼 등이 점점 확산되어 우리의 근대를 다시 보고, 미래를 창조적으로 열어가는 ‘눈’이 열리기를 바랄 뿐이다.

 

- 동양일보, 2017년 11월 12일자

http://m.d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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