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님 덕에 옆에 두었던 기억들이 살아납니다.
.....
음...
제가 문목사님을 첨 뵌건 88년 1학년때 학내에서 있던 강연회였던거 같습니다.
저에겐 통일이 막연한 희망이 아닌 현실적인 과제임을 알려주신 강연이었습니다.
잠결에도 잠꼬대로 통일을 이야기하던...
살아 평생 통일을 위한 한길로 가신 문목사님과 같은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남북 통일 정세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어마지 않습니다.
........
제가 한창 열정적으로 살던 91년 당시에도 적지않은 이들이 소중한 목숨을 던지며 민주화와 통일을 외치고 앞서갔습니다.
그때마다 열사의 장례를 도맡아서 치루시던 문목사님도 끝내는 남은 이들에게 큰 숙제를 남기고 가셨지요.
........
1994년 1월 22일 문목사님 장례식때
마지막 가실때도 사진기 들고 갔었는데..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습니다.
무관심하게 살지 않으려고 다짐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왜이리도 부끄러워지는지....
...........
전태일 열사의 기일 즈음에 노동자의 운동도 통일과 무관하진 않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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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제가 문목사님을 첨 뵌건 88년 1학년때 학내에서 있던 강연회였던거 같습니다.
저에겐 통일이 막연한 희망이 아닌 현실적인 과제임을 알려주신 강연이었습니다.
잠결에도 잠꼬대로 통일을 이야기하던...
살아 평생 통일을 위한 한길로 가신 문목사님과 같은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남북 통일 정세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어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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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창 열정적으로 살던 91년 당시에도 적지않은 이들이 소중한 목숨을 던지며 민주화와 통일을 외치고 앞서갔습니다.
그때마다 열사의 장례를 도맡아서 치루시던 문목사님도 끝내는 남은 이들에게 큰 숙제를 남기고 가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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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월 22일 문목사님 장례식때
마지막 가실때도 사진기 들고 갔었는데..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습니다.
무관심하게 살지 않으려고 다짐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왜이리도 부끄러워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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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의 기일 즈음에 노동자의 운동도 통일과 무관하진 않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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