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7일 고3 학력평가에서 국어는 '물국어'라 불릴 만큼 쉬웠다. 그런데 쉬운 시험은 곧 변별하지 못하는 시험이기도 했다. 선택형 문항의 난이도를 낮추는 순간 점수는 촘촘해지고, 학생들 사이의 실력 차는 보이지 않게 된다.
한 달 뒤 치러진 6월 모의평가는 같은 문제를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국어는 다시 평이했다 — 1등급 표준점수가 5월 128점에서 130점으로 거의 그대로였고, 출제 당국도 지난해 수능보다 쉬웠다고 평했다. 그러나 '쉬웠다'는 출제와 '어려웠다'는 체감은 어긋났다. EBSi 체감 조사에서 '어려웠다'는 응답(42.4%)이 '쉬웠다'(19.5%)의 두 배였다. 평이한 시험에서 변별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변별이 라플라스의 식을 사례에 적용하는 독서 문항, 명시되지 않은 심리를 신체 반응으로 추론하는 문학 문항, 문법 개념을 예문에 적용하는 언어와 매체 문항 같은 소수의 3점 '사고형' 문항으로 응축된 것이다. 게다가 졸업생이 19.8%(역대 최다)나 처음 성적에 합산되면서, 쉬운 난이도가 느슨한 경쟁을 뜻하지도 않았다. 같은 원점수라도 등급은 더 박해졌다. 쉬운 시험은 이렇게 두 얼굴을 보여 준다 — 변별을 잃거나, 변별을 소수의 사고형 문항에 몰아넣거나.
한 번의 학평, 한 번의 모평이라면 해프닝이다. 그러나 2028학년도부터 고교 내신이 9등급에서 5등급으로 바뀌면, 이 '변별의 실종 혹은 응축'은 한 시험의 사고가 아니라 제도의 상수가 된다. 다만 변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곳으로 옮겨 갈 뿐이다. 진짜 문제는 '어디로'다.
산수는 단순하다. 등급의 칸이 9개에서 5개로 줄면 1등급의 문턱이 상위 4%에서 10%로 넓어지고, 교과 성적만으로 상위권을 가려내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 그렇게 풀려난 변별의 압력은 두 방향으로 흩어진다.
위로는 대학의 전형으로 간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5월에 공개한 2028학년도 대학입학전형시행계획을 보면, 학생부종합전형 모집인원은 1,724명, 논술전형은 413명 늘었고, 반대로 학생부교과전형은 333명 줄었다. 논술전형의 비중은 12.7%로 역대 최고치에 올랐다. 잃어버린 변별력을 대학이 서술·논술과 정성 평가로 메우는 것이다.
아래로는 학교 밖으로 샌다. 내신으로 상위권을 증명하기 어려워지자, 일부 학생은 아예 학교를 떠나 수능에 '올인'한다. 고교 학업중단율은 2024학년도 2.1%로 22년 만에 가장 높았고(교육부·한국교육개발원), 자퇴는 고1과 교육특구에 짙게 몰린다(일반고 고1 2.40%, 강남·서초 각 2.7%). 검정고시로 갈아탄 수험생은 2026수능에서 2만2,355명, 전체의 4.0%로 31년 만의 최대치다(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전략적 자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변별이 무뎌진 학교는, 떠나려는 학생에게 남을 이유를 주지 못한다.
그러나 이 그림을 한쪽으로 몰아 읽으면 절반만 본 것이다. 세 개의 단서가 붙는다. 첫째, 논·서술형 확대는 내신에 한정된다. 정작 가장 높은 관문인 수능은 2028년에도 5지선다 객관식으로 남는다. 사고를 묻겠다는 약속이 내신에서만 통하고 마지막 결승선은 여전히 속도와 암기를 묻는다면, 그것은 절반의 약속이다. 둘째, 서술형이라는 형식 자체가 사고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전국 150개 중학교의 평가를 분석한 연구(추진아·박영민, 2021)는 국어과 수행평가가 학습을 돕기보다 학생을 서열화하는 도구로 형식화되었음을 드러냈다. '인정답안'을 외워 그대로 재생산한다면, 서술형은 또 다른 이름의 암기 시험일 뿐이다. 셋째, '자퇴 폭증'도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 5등급제가 처음 적용된 2025년 1학기, 고1 자퇴는 오히려 전년보다 줄어 1.7%였다(교육부 국회 제출 자료). 연간 지표와 한 학기 지표, 일반고와 고교 전체는 서로 다른 자다. 공포를 부풀리는 것도, 사실을 외면하는 것도 분석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짜 질문은 "변별을 어디로 옮기느냐"가 아니라 "어떤 변별이냐"이다. 핵심은 설계에 있다. 배경지식을 가진 학생에게 유리한 단독 주제형 문항은 학력이 아니라 사전지식을 측정한다. 대신 제시문을 주고 그것을 근거로 추론하고 논증하게 하는 문항, 표현의 매끄러움보다 추론의 타당성에 점수를 싣는 루브릭, 교사 간 협의로 채점 신뢰도를 확보하는 절차가 함께 가야 한다. 그리고 변별을 학교 안에서 정직하게 세우는 일은, 동시에 떠날 이유를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학교가 검정고시는 결코 줄 수 없는 것—함께 읽고 따지고 토론하며 사고를 기르는 시간—을 분명히 줄 때, 학교에 남는 것은 더 이상 손해가 아니게 된다. 교사에게는 '무엇을 썼는가'가 아니라 '왜 그렇게 판단했는가'를 보는 눈이, 학부모에게는 점수표 대신 사고 과정을 묻는 태도가, 교재를 만드는 출판사에는 정답 암기용 문제집이 아니라 사고를 훈련시키는 설계가 필요하다.
5등급제는 변별의 무대를 선택형에서 서술형으로, 그리고 학교 안에서 학교 밖으로 옮긴다. 그러나 무대를 옮긴다고 연극의 내용까지 바뀌지는 않는다. 서술형으로 간 변별이 다시 암기와 형식으로 채워지고, 학교를 떠난 변별이 사교육과 각자도생으로 흩어진다면, 우리는 칸만 바꾼 채 같은 줄 세우기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5등급제 시대의 진짜 시험대에 오르는 것은 학생이 아니라, 문항을 설계하고 학교를 운영하는 어른들이다. 변별은 이동한다 — 그러나 그 변별이 끝내 사고를 묻도록, 그리고 아이들에게 남을 이유를 주도록 만드는 일은, 제도가 아니라 사람의 몫이다.
출처
- 2028 학종 +1,724명·논술 +413명·교과 −333명, 논술 비중 12.7% 역대 최고: 한국대학교육협의회 「2028학년도 대학입학전형시행계획」(진학사 분석, 2026-05-07 보도) → 2026-05-07_2028대입-학종·논술-확대
- 논·서술형 확대 내신 한정·수능 5지선다 유지: 교육부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확정안」(2023.12.27) → 2026-06-02_과정중심평가-암기극복-효과검증
- 고교 학업중단율 2.1%(22년 만 최고)·고1·강남서초 2.7%·검정고시 4.0%(31년 만 최대)·★2025 1학기 고1 자퇴 하락(1.7%): 2026-06-16_고1자퇴-학업중단-증가현상 (교육부·KEDI·KICE, 딥리서치 검증 13/0)
- 국어과 수행평가의 '서열화' 형식화(150개 중학교): 추진아·박영민, 「중학교 평가계획서에 나타난 국어과 수행평가의 특징」, 『청람어문교육』 80, 2021
- 단독 과제의 배경지식 편향·제시문 기반 설계·사고 배점·채점 신뢰도 절차: 서논술형-문항설계-채점준거 (KICE·KOCW 1차 평가 매뉴얼 기반)
- 5월 학평 국어 '물국어'(선택형 난이도 하향 시 변별 붕괴 사례): 2026-05-07_5월-고3학평-국어
- 6월 모평 국어 평이(1등급컷 표준 128→130)·체감 역설(어려움 42.4% vs 쉬움 19.5%)·변별 3축(독서 사례적용·문학 추론·언매 문법복합)·졸업생 19.8% 첫 합산: 2026-06-08_6월모평-시행후-뉴스종합·자체분석-교차검증(EBSi·EBS 현장교사단·평가원, 자체 총평 교차검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