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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 컬럼

[교실은 지금 ③] 조례를 없애면 교권이 살아나는가

작성자상징사전|작성시간26.06.20|조회수37 목록 댓글 0

— 폐지론이라는 오진(誤診)

 

서이초 교사의 죽음 이후, 한 가지 처방이 빠르게 번졌다.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을 무너뜨렸으니, 조례를 없애면 교권이 살아난다.' 단순하고 명쾌해서 더 매력적인 진단이었다. 2024년 봄, 서울시의회는 실제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의결했다. 그런데 그 조례는 2026년 지금도 살아 있다. 대법원이 집행정지를 받아들여 효력을 묶어 두었기 때문이다. 이듬해 다시 올라온 2차 폐지안마저 끝내 무산됐고, 2026년 6월 지방선거에서는 조례를 지지하는 교육감이 연임했다. 폐지와 존치가 2년 넘게 의회와 법정을 오가는 사이,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은 검증되지 않은 채 전제로만 굳어 버렸다. 조례를 없애면, 정말 교권이 살아나는가.

 

먼저 사실부터 확인하자. '학생인권을 강화했더니 교권이 무너졌다'는 인과는, 데이터로 입증된 적이 없다. SBS의 한 팩트체크는 조례와 교권 침해 사이의 인과를 두고 '데이터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오히려 통계는 반대를 가리킨다. 교권 침해 신고 건수는 학생인권조례가 전국으로 퍼지기도 전인 2012년에 이미 정점을 찍었고, 그 뒤로는 줄곧 줄어들었다. 조례를 일찍 도입한 지역과 늦게 도입한 지역 사이에서도 침해 추이는 제각각이었다. 만약 조례가 교권 추락의 원인이라면, 조례를 들인 곳마다 침해가 늘어나는 일관된 흐름이 나타나야 한다. 그런 흐름은 어디에도 없다. 사람들이 그 인과를 믿게 된 것은, 학생인권조례가 퍼지던 시기와, 악성 민원과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에 시달리던 교사들이 2023년 서이초 교사의 죽음으로 그 한계를 드러낸 시기가 공교롭게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는 사실은, 한쪽이 다른 쪽의 원인이라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폐지론은 무엇에 기대고 있는가. 손에 쥔 근거라고는 여론조사 한 줄 — '폐지에 찬성한다' 55%가 전부다. 다수가 그렇게 느낀다는 사실과, 그 느낌이 사실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원인을 잘못 짚은 이 진단에는 이름이 있다. 오진(誤診)이다.

 

오해는 말자. 조례가 흠 하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일부 조항은 지나치게 넓거나 모호해서, 현장에서 교사의 정당한 지도와 부딪친다.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의 휴대전화를 거두는 일조차 '권리 침해'라는 항변에 막힌다고 호소하는 교사가 적지 않다. 이 곤경은 엄살이 아니라 실제다. 그러나 그 마찰의 진짜 원인은 조례의 문장이 아니다. 교사를 벼랑으로 미는 것은 — 2편에서 보았듯 —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학대로 둔갑시키는 악성 민원과 무고성 신고다. 신고가 접수되는 순간 교사는 피의자가 되고, 끝내 대부분 무혐의로 풀려나기까지 몇 달을 시달린다. 조례를 한 줄도 남김없이 지워도, 그 신고는 사라지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조례 폐지에 반대하며 '학생 인권과 교권은 함께 설 수 있다'고 못 박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은 시소의 양 끝이 아니다.

 

그러니 물음을 바꿔야 한다. '없앨 것인가, 지킬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고치고 무엇을 따로 세울 것인가'다. 지난 30년, 교실의 추(錘)는 체벌이 넘치던 권위주의에서 학생 인권으로, 다시 교권으로 크게 흔들려 왔다. 흔들리는 추를 멈추는 방법은 반대편으로 더 세게 미는 것이 아니다. 조례의 과잉·모호 조항은 폐지가 아니라 개정으로 다듬으면 된다. 어디까지가 학생의 권리이고 어디부터가 교사의 정당한 지도인지, 그 경계를 더 또렷하게 적는 일이다. 독일은 교사의 지도를 두 단계로 나누어 법에 적어 두었다. 주의를 주거나 자리를 옮기게 하는 가벼운 '교육적 조치'는 교사가 수업 중 혼자 결정할 수 있고, 정학처럼 학생의 권리를 크게 제한하는 '규율적 조치'는 반드시 위원회의 정식 절차를 거치게 한 것이다. 어디까지가 교사 한 사람의 판단이고 어디부터 절차가 필요한지를 법이 미리 선을 그어 둔 셈이다. 우리에게도 출발점은 있다. 2023년 교권회복 4법은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한 줄을 이미 새겼다. 남은 일은 그 경계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더 촘촘하게 채우는 것이다. 그리고 교권은 조례와 별개의 장치, 곧 무고성 신고를 수사에 앞서 걸러 내는 절차로 지키면 된다.

 

인권조례 개정과 교권 보호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두 과제다. 폐지냐 존치냐의 깃발 싸움은 교실에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는다. 그사이 학생도 교사도, 자신을 지켜 줄 제도가 정쟁의 볼모로 흔들리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병의 원인을 잘못 짚은 처방은, 환자를 두 번 아프게 한다. 한 번은 병으로, 또 한 번은 엉뚱한 처방으로. 조례를 지운다고 교권이 살아나지는 않는다. 잉크는 지워져도, 교실의 고통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는다. 우리가 정말 지워야 할 것은 조례의 문장이 아니라, 인권과 교권을 적으로 세우는 그 낡은 진단이다.

 


출처

  • 학생인권조례 연혁: 2010년 경기 최초(김상곤)·서울 2012(곽노현); 2024년 서울시의회 폐지 의결(4.26·재의결 6.25) → 2024.7.23 대법원 집행정지로 효력 유지(본안 계류 중) → 2025~26 2차 폐지 시도 무산 — 법률신문·한국일보.
  • '학생인권 강화 → 교권 추락' 인과 미입증: SBS 팩트체크('조례–교권침해 인과, 데이터에서 근거 찾을 수 없음')·교권 침해 신고 2012년 정점 후 감소·조례 시행 지역 간 추이 비일관.
  • 폐지측 실질 근거 = 여론조사(폐지 찬성 55%).
  • 국가인권위원회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학생 인권·교권 양립론).
  • 교권 위기의 실제 동인(악성 민원·무고성 신고): 2026-06-16_교권보호-최근동향-기초자료.
  • 종합 근거: 2026-06-16_전교조-학생인권조례-체벌반대-교권진자, 학생인권-교권-관계프레임, 2026-06-16_교권보호-최근동향-기초자료

「교실은 지금」 — 2026, 사건 너머를 읽다 (전 5부)

다음 편 ④ — 천안의 한 중학생은 '나는 촉법소년이라 처벌받지 않는다'며 또래를 두 시간 넘게 때렸다. 처벌도 절차도 비껴간 그 자리, 책임은 누구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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