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어 있는 책임의 자리
2026년 봄, 충남 천안의 한 무리가 지적장애가 있는 또래를 두 시간 넘게 때렸다. 라이터로 살을 지지고, 속옷을 벗겨 촬영했다. 그 잔혹함보다 더 오래 남은 것은 만 열세 살 주동자의 한마디였다. '어차피 나는 촉법소년이라, 신고해도 소용없다. 걸려도 소년원 안 간다.' 더 서늘한 사실은 따로 있다. 같은 학생은 두 달 전에도 학교폭력으로 신고됐지만, 받은 처분은 출석정지 일주일이 전부였고, 그 길로 돌아와 보복했다. 처벌이 면제되기 전에, 절차가 이미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일곱 명이 집단폭행 혐의로 입건됐고, 그중 둘은 촉법소년이라 가정법원 소년부로 넘겨졌다.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이다. 천안만의 일도 아니다. 2025년 가을에도 또래를 때린 가해자가 '신고해도 처벌받지 않는다'고 했다. 같은 말이 다른 입에서 되풀이된다.
촉법소년은 만 열 살부터 열네 살 미만, 형법이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 나이다. 죄를 지어도 형벌 대신 보호처분을 받는다. '아무 기록도 안 남는다'는 말은 과장이다. 정식 전과가 아닐 뿐, 소년보호 기록은 남고 학교폭력 처분은 학교생활기록부에 적힐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처벌의 면제가 아니라 책임의 무주공산(無主空山)이다. 가해 학생은 형사상 미성년이라 책임을 물을 수 없고, 학교가 내릴 수 있는 조치는 교육의 범위에 갇혀 있다. 가장 무거운 처분이라야 전학이나 출석정지이고, 그마저 며칠에 그치곤 한다. 천안의 그 학생이 두 달 전 받은 일주일 출석정지가 바로 그 한계였다. 그러나 그 한계는 법이 친 울타리만은 아니다. 학교폭력 심의는 더 무거운 조치도 내릴 수 있었지만 가장 가벼운 처분에 머물렀고, 그 소극성이 보복의 빌미가 됐다. 책임의 공백은 형법의 나이 규정만이 아니라, 쥔 권한조차 끝까지 쓰지 않은 처분에서도 열린다.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하나다. 그 아이의 책임은, 누구의 것인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은 '나이를 낮추자', 촉법소년 기준을 열세 살로 내려 더 일찍 처벌하자는 주장이다. 검거된 촉법소년은 2021년 1만1,677명에서 2025년 2만1,095명으로, 인구 감소를 감안해도 약 80퍼센트가 늘었다. 같은 기간 강력범죄(살인·강도·강간·추행) 검거도 479명에서 826명으로 72.4퍼센트 늘었으니, 그 호소력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 출구는 이미 여러 번 닫혔다. 2022년 법무부가 연령 하향을 추진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고, 대법원은 '열세 살이 형사책임능력을 갖췄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반대했다. 그 또래 상당수가 학대와 빈곤, 방치 속에서 자란다는 점도 짚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도 형사 책임 연령을 열네 살 아래로 내리지 말 것을 권고했고, 2026년 4월에는 사회적 협의체마저 '현행 유지'를 권고했다. 거듭된 결론은 형벌의 확장이 곧 교육은 아니라는 것이다. 매를 더 일찍 든다고, 학대와 방임이 키운 폭력의 뿌리가 잘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뿌리가 자란 자리는 대개 가정이다. 그렇다면 손이 닿아야 할 곳도 거기다.
엄벌이라는 출구가 막혔다고 해서, 사적 응징이 답이 되지는 않는다. 1편에서 본 드라마 '참교육'의 통쾌함은, 바로 이 비어 있는 자리를 폭력으로 메우려는 환상이었다. 물음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 처벌할 수 없는 아이가 아니라, 책임져야 할 어른에게로다. 아이가 형사책임을 지지 못한다고 해서, 그를 키운 보호자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학교폭력예방법은 가해 학생의 특별교육에 보호자를 함께 참여시키고, 따르지 않으면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린다. 그러나 그 잔혹한 폭력 앞에서 동반 교육과 과태료는 너무 가볍고, 민사상 손해배상도 사후의 돈일 뿐 아이의 행동을 바꾸지는 못한다. 영국은 16세 미만이 유죄 판결을 받으면 법원이 부모에게 '양육명령(Parenting Order)'을 내려 자녀 지도와 상담 프로그램을 강제한다. 우리의 동반 교육도 한두 차례 강의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자녀의 행동을 실제로 바꾸는 프로그램으로 이어지고 이행하지 않으면 실질적 부담이 따라야 한다. 책임은 보호자에서 그치지 않는다. 천안의 '일주일 출석정지'처럼 신고 초기의 절차가 형식에 머물면, 그 소극성이 두 달 뒤의 보복과 다음 피해자를 부른다. 책임을 묻되, 그 책임이 또 다른 처벌이 아니라 변화로 향하게 하는 것 — 이것이 처벌의 나이를 낮추는 일보다 급하다. 보호자를 벌주려는 말이 아니다. 한 아이의 행동을 되돌릴 거의 유일한 지렛대가, 그를 매일 마주하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나는 촉법소년이라 처벌받지 않는다.' 이 말이 무서운 것은 아이의 치기 때문이 아니다. 책임을 물을 자리가 비어 있다는 사실을, 그 아이가 정확히 읽어 냈기 때문이다. 아이를 처벌하지 못한다는 말은, 어른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아이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어른의 몫이다. 비어 있는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더 무거운 매가 아니라, 끝까지 작동하는 책임이다.
출처
- 천안 집단폭행(2026): 만 13세 주도·7명 입건·2명 소년부 송치·두 달 전 학폭 신고 후 보복 — MBC 단독 보도(2026.6). 경찰 수사·송치 단계로 법원 확정 판결 아님.
- 촉법소년 =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형법 제9조)·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소년법); 보호처분 기록·학교폭력 처분의 학생부 기재 가능('무흔적'은 과장).
- 검거 통계: 촉법소년 검거 2021년 11,677명 → 2025년 21,095명(청소년 인구 감소를 감안하면 '폭증' 단정은 경계); 강력범죄(살인·강도·강간·추행) 검거 479명 → 826명(+72.4%, 2021→2025). ※검거와 보호처분은 별개 지표 — 혼동 금지.
- 2025년 가을 유사 발언 사례: 서울경제(2025.9) 등 — 단일 출처(medium), '유사 사건 보도 흐름'으로만 인용(단정 회피).
- 연령 하향: 2022년 법무부 추진 → 국회 임기만료로 무산; 대법원 반대('13세 형사책임능력 단정 곤란'); 2026.4.30 사회적 협의체 '현행 14세 유지' 권고.
- 보호자 책임: 학교폭력예방법 제17조제13항(보호자 동반 특별교육)·제23조제1항(300만 원 이하 과태료).
- 보호자 민사책임: 민법 제755조(책임무능력자의 감독자 배상책임) — 원리상 책임 귀속 가능. 배상액·판례 동향은 미검증이라 본문에서 단정하지 않고 일반 원리로만 언급.
- 영국 부모 양육명령(parenting order): Sentencing Act 2020 제366조(16세 미만 유죄 시 법원이 부과, 잉글랜드·웨일스).
- 종합 근거: 2026-06-17_촉법소년-학폭-부모책임론, 학생인권-교권-관계프레임, 2026-06-17_드라마-참교육-사적제재-판타지
「교실은 지금」 — 2026, 사건 너머를 읽다 (전 5부)
- ① 두 개의 참교육 — 학생인권과 교권은 시소가 아니다
- ② 교권은 무엇으로 회복되는가 — 95.2%와 75.8% 사이
- ③ 조례를 없애면 교권이 살아나는가 — 폐지론이라는 오진
- ④ 나는 촉법소년이라 처벌받지 않는다 — 비어 있는 책임의 자리 ← 지금 글
- ⑤ 권리가 아니라 절차다
다음 편 ⑤(완결) — 체벌과 무고, 사적 응징과 책임의 공백. 네 편이 가리킨 것은 하나의 결함이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