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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 컬럼

[교육][교실은 지금 ⑤] 권리가 아니라 절차다

작성자상징사전|작성시간26.06.22|조회수13 목록 댓글 0

— 자의성을 절차로

 

다시 그 드라마로 돌아가 보자. 전 세계가 '참교육'에 박수를 보낸 이유를, 이제 우리는 안다. 무너진 교실에서 누군가 대신 응징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1편에서 보았듯, '참교육'이라는 말은 한 세대 만에 약자를 지키려던 뜻에서 강자의 응징을 정당화하는 뜻으로 뒤집혔다. 그 전도의 끝에 이 드라마가 있다. 그 통쾌함은 정의의 승리가 아니라, 정의가 제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절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러나 초법적 응징은 무너진 절차의 대안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또 하나의 자의적 폭력일 뿐이다. 극 중 '교권보호국'은 현실에 없고,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 네 편을 돌아본 지금, 남은 질문은 하나다. 응징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지난 네 편이 다룬 문제들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교사를 하루아침에 피의자로 만드는 무고성 신고, 폐지와 존치 사이를 오가는 학생인권조례, '나는 처벌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촉법소년.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같은 결함이 흐른다. 우리는 이 문제들을 줄곧 '권리 대 권리'의 싸움으로 다뤄 왔다. 학생의 인권이냐 교사의 교권이냐, 가해자의 보호냐 피해자의 보호냐. 그러나 진짜 대립은 권리와 권리 사이에 있지 않다. 권리와 '절차의 부재' 사이에 있다. 체벌도, 무고도, 방임도, 초법적 응징도 — 모두 절차 없이 휘둘러진 자의적 힘이었다. 30년 전 교실의 문제는 교사의 체벌이었고, 우리는 학생의 인권으로 답했다. 지금의 문제는 교사를 향한 무고이고, 우리는 교권으로 답하는 중이다. 추는 양극을 오갔지만, 두 번 모두 맞선 적은 같았다. 절차 없이 휘둘러진 힘이다. '누구 편이냐'를 묻는 한, 우리는 늘 반대편의 권리를 적으로 삼게 된다. 그러나 학생의 권리를 깎아도 교사를 겨눈 무고는 사라지지 않고, 교권을 앞세워도 학생의 안전은 돌아오지 않는다. 누구의 권리를 깎을 것인가가 아니라, 그 자의성을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 그것이 처음부터 진짜 질문이었다.

 

절차는 답답하다. 느리고, 번거롭고, 즉각적인 카타르시스를 주지 않는다. '참교육'의 즉결 응징이 통쾌한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빠르고 시원했던 그 자의적 속도가, 바로 체벌과 무고를 낳았다는 사실을. 무고성 신고 한 건이 무죄로 끝나기까지 한 교사의 몇 달이 무너지던 것처럼(2편), 빠른 정의의 유혹은 늘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든다. 같은 신중함이 숫자에도 필요하다. '자퇴가 폭증했다', '촉법소년이 두 배로 늘었다' 같은 공포의 통계는 분노를 빠르게 끓어오르게 하지만, 청소년 인구의 감소나 통계 기준의 변화를 따져 보면 그리 단순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검증을 건너뛴 공포 역시, 절차를 건너뛴 응징과 같은 자의성이다. 분노가 아니라 절차가, 판단의 자리에 서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절차로 세울 것인가. 첫째, 교사를 향한 무고성 신고는 수사에 들어가기 전에 걸러져야 한다(2편). 둘째, 학생의 권리와 교사의 지도, 그 경계는 조례를 지우는 정쟁이 아니라 더 또렷한 규칙으로 그어야 한다(3편). 독일의 한 주가 교사의 '교육적 조치'와 '규율적 조치'를 법으로 나눠 둔 것처럼, 어디까지가 정당한 지도인지를 분명히 적는 일이다. 셋째, 처벌할 수 없는 아이의 빈자리에는 책임져야 할 보호자의 절차가 들어서야 한다(4편). 영국이 부모에게 '양육명령'을 내리듯, 책임을 또 다른 처벌이 아니라 변화로 돌리는 절차다. 그리고 이 모든 정책을 결정하는 교육감을, 우리는 정작 누구인지도 모른 채 뽑는다. 학교의 인권도 교권도 끝내 거버넌스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따로 더 살펴야 할 숙제로 남는다. 네 갈래는 방향이 같다. 자의적인 힘이 멈추는 자리마다, 작동하는 절차를 놓는 것이다. 절차는 느려서 약한 것이 아니라, 누구도 함부로 건너뛸 수 없어서 강하다.

 

좋은 학교는 누가 이기는 곳이 아니다. 아무도 자의적으로 피해를 보지 않는 곳이다.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교권은 시소의 양 끝이 아니라, 같은 적 — 절차 없는 폭력 — 에 맞선 한 편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교육'이라는 통쾌한 응징이 아니다. 응징이 필요 없도록, 끝까지 작동하는 절차다. 학생을 지키는 손과 교사를 지키는 손은, 끝내 같은 손이다.

 


출처

  • 1편 '참교육'·사적 응징 판타지: 2026-06-17_드라마-참교육-사적제재-판타지
  • 2편 무고성 신고·교권(95.2%와 75.8%): 2026-06-16_교권보호-최근동향-기초자료
  • 3편 학생인권조례 폐지론·'대립이 아니라 보완': 2026-06-16_전교조-학생인권조례-체벌반대-교권진자, 학생인권-교권-관계프레임
  • 4편 촉법소년·보호자 책임의 절차화: 2026-06-17_촉법소년-학폭-부모책임론
  • '공포 통계' 경계(자퇴 폭증 단정 불가): 2026-06-16_고1자퇴-학업중단-증가현상
  • 거버넌스(교육감 '깜깜이 선거') — 별도 후속 컬럼: 2026-06-17_교육감-선거제도-깜깜이선거-개선안
  • 종합 프레임('자의성을 절차로'): 학생인권-교권-관계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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