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21. 예수비전교회 주일낮예배 거룩한 열매, 영생을 얻으라 유백선 목사
로마서 6: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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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복음주의 소설가, 상담사역을 하는 팀 라헤이(Tim LaHaye) 목사님이 쓴 <성령과 기질>에서 말했습니다. “나는 왜 매번 같은 곳에서 넘어지는가? 나는 왜 끊임없이 두려워하며 쉽게 화를 내고 시시때때로 우울해지는 것일까? 사람의 행동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다. 바로 잉태되는 순간부터 결정되는 기질이다. 기질은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유전적.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형성된 기본적인 성향이다. 기질은 타고난 특성이기에 본질적으로 바뀔 수 없다. 그래서 격언처럼 말한다. ‘사람은 절대 안 변해.’ 사람은 저마다 기질이라는 토양에 뿌리를 내린 채 평생을 살아간다. 하지만 성경에는 기질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역동적인 반전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는 전형적으로 다혈적인 기질을 가졌다. 충동적이고 불의를 참지 못하고 행동하고, 주저하지 않고 말하는 제자였다. 그런데 기도하고 성령을 충만하게 받고 나서 매우 단호하고 유능하고 생산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완고한 기질의 벽을 깨고 새롭게 피어났다. 수천 명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단호하게 복음을 전했다. 인간은 4가지 기질(다혈질 담즙질 우울질 점액질)을 가지고 있다. 4대 기질은 타인을 특정 틀에 끼워 맞추거나 상처를 주기 위한 비판의 잣대가 아니다. 타인의 타고난 연약함을 복음 안에서 용납하기 위한 이해의 도구가 될 수 있다. 12가지 기질의 조합이 있다. 약점에 걸려 넘어지고 성령의 채우심과 능력을 극복한다. 정죄의 잣대가 아니라 이해의 징검다리이다. 33년 넘게 부부 2000쌍 이상을 상담했다. 부작용이 없는 가장 안전한 정서적 처방전은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뿐이다. 오늘을 사는 은혜가 상황을 뛰어넘는 희락(기쁨)이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이 상황이 호전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행복과 희락을 구분해야 한다. 행복은 환경에 좌우한다. 하지만 성령이 주시는 희락은 상황에 매이지 않는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 위에서 한 배를 탔다. 제자들은 바람과 풍랑에 두려워하고 염려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배의 고물에서 평안하게 주무셨다. 인간은 기질과 천성적인 약점을 안고 살아간다. 성령님께서 충만하면 믿음의 안경을 쓰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절망을 생명력으로 바꾸어 살아간다. 성령의 안경을 쓰면 기질의 약점도 꽃이 된다. 성령님께서 주신 아홉 가지(열매)를 천성적인 약점을 이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연약함이 교회공동체 안에서 서로 얽히고 충돌한다. 서로의 기질이 달라서 갈등을 겪고 감정이 헝클어져서 힘들어 한다. 하지만 성령의 능력 안에서 누구나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가 있다. 저마다 약점을 가지고 모인 가정과 교회공동체에서 성령님께서 주신 열매로 자신을 알고, 상대를 품게 한다. 비난하지 않고 칭찬하고 예의를 갖추고, 친절이 흐르는 용납의 정원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여러분! 인간은 누구나 연약하고, 실수하고, 망각하고, 실증내고, 후회합니다. 연약함 때문에 상처를 주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연약함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연약함을 극복하면 행복해질 수 있습니까? 인간의 연약함이 인류의 역사를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실수가 항생제 페니실린을 발명했습니다. 인간사의 희로애락은 연약함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연약함 속에서 발견되는 사람들의 위대함이 모여 역사가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술 발전이 무한정 펼쳐지는 불확실한 시대에 매일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이 주는 정확함과 편리함에 익숙해져서 인간의 개성과 고유성을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 안에서 약함이나 무기력함에서 벗어나서 아름답고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다. 이제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라. 거룩한 열매를 맺고, 영생을 얻으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은혜 아래에 있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고, 마음으로 순종합니다. 죄에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의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영적인 생각을 합니다. 영적인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롬 8:6) 생명과 평안을 얻은 사람이 의의 종으로 권면합니다. 본문 19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여기서 “연약하다(아스떼네이안/ασθενειαν/astheneian)”는 말은 “몸이나 마음이 나약하다, 유약, 질병”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사 53:4) 선지자를 통해서 메시아(예수)가 행하실 사역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사 53:4=마 8:17)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에 부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에 이미 약속한 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롬 5:1-2,5-6) 예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받아들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이 의심하는 것을 비판하지 않습니다.(롬 14:1)
여러분! 사람이 육신의 연약한 생각을 하면 육신을 따라 살아갑니다. 육신을 따라 살면 육신의 일을 생각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죽음에 이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육신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롬 8:5-8) 육신의 생각과 지식에 속으면 그릇된 믿음에 빠집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육신의 약해서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었습니다. 여기서 “부정(아카딸시아/ακαθαρσια/akatharsia)”은 “불순한 성질, 육체적으로 불결”을 말합니다. 육신이 약해져서 불순한 성질이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육신이 약하면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원하지만 육신이 약해서 깨어 기도하지 못하구나.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막 14:38) 깨어 있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듭니다. 육신이 피곤하면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변명합니다. 육신이 약하면 육체를 부정에 내어 줍니다. 그 결과로 더러움, 음란함, 호색함에 빠지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슬퍼할까 두려워합니다.(고후 12:21) 육신이 약하면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빠집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합니다. 육신이 약하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꿉니다. 그래서 피조물을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섬깁니다.(롬 1:24-25) 육신이 약하면 지체를 불법에 내주는 것입니다. “불법(아노미아/ανομια/anomia)”은 “율법의 위반, 악함, 불의, 법이 없는 상태, 무법천지”를 말합니다. 불법을 행하는 사람은 죄를 짓는 사람입니다. 죄가 곧 불법입니다.(요일 3:4) 불법이 성하면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게 됩니다.(마 24:12) 지체를 불법에 내어주면 사리사욕에 지배를 받습니다. 하나님께 의롭다고 여기심을 받은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진 사람들이 복이 있다. 주께서 죄를 인정하지 않으실 사람은 복이 있다.”(롬 4:7-8) 예수님께서는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우리를 깨끗하게 하여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딛 2:14)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난 이제는 지체(肢體)를 무엇에 내어주었습니까?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어 주어 거룩함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연약한 몸을 의에게 내어주어 거룩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거룩함에 이르다(에이스 하기아스몬/εις ‘αγιασμον/eis hagiasmon)”는 말은 “정화, 청결한 상태, 깨끗이 하는 사람, 성화”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거룩함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거룩한 날을 주셨습니다. 그 거룩한 날이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을 구별하여 지킨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창 2:3) 안식일은 몸과 마음을 휴식하여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평안을 얻고 삶의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요 4:23)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함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하나님께 소속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사는 것입니다. 지체를 거룩함에 내어주어 공정과 공평한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나서 거룩함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 말했습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성경에 기록하였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 1:15-16)
프랑스의 천재 수학자, 물리학자, 사상가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이 <팡세>에서 말했습니다. “인간은 우주의 거대한 질서에 비하면 먼지보다 작은 존재다. 하지만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사유(思惟)’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주보다 존엄하다. 하나님이 없는 시대에 인간은 두려움과 허무를 느낀다. 인간은 무한과 허무 사이에서 흔들리는 갈대 같은 존재다.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다. 그런데 생각하는 갈대다. 바람이 흔들리는 것은 연약한 육신이다. 하지만 자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인간이 거대한 자연보다 존엄하다.” 갈대는 땅도 아니고 물도 아닌 그 경계에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모호한 경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흐르는 물과 단단한 땅을 매개하여 하나의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서로 몸을 부딪치며 서글서글한 소리를 냅니다. 하지만 서로를 얽매거나 구속하지 않습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함께 흔들리며 서로의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관계에서의 유연함은 자신을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바람의 방향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뿌리는 땅속 깊이 박아둔 채 잠시 허리를 굽혀 폭풍을 흘려보내는 지혜입니다. 꺾이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자세를 낮추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굴함이 아니라 본래의 나를 끝까지 지켜내기 위한 가장 고결한 선택입니다. 진리는 질서 속에 있습니다. 거룩한 질서가 오늘 나의 지친 마음에 하나님의 경외감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죄의 종이 되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죄의 종이 되면 하나님을 떠납니다. 하나님이 없는 자유를 꿈꾸고, 스스로 주인이 되려고 합니다. 케빈 드영(Kevin Deyoung)이 말했습니다. “세속주의는 죄를 평범해 보이게 만든다. 의로움을 낯설어 보이게 만드는 그 모든 것이다.” 그래서 죄를 자연스럽게 보이게 만듭니다. 거룩함과 의로움이 오히려 낯설고 극단적인 것으로 느끼게 합니다. 그러면서 의에 대해서 자유롭다고 여긴 것입니다. 여기서 “자유롭다(엘류떼로스/ελευθερος/eleytheros)”는 말은 “거리낌 없는, 해방된, 면제된, 의무에 얽매이지 않는”라는 뜻입니다. 의의 의무에서 얽매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의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입니다. 의에 거리낄 것이 없다고 무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종이 되고, 죄의 지배를 받으면 죄의 열매를 맺습니다.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다.”(롬 7:5) 죄의 열매는 마음에 두려움을 주고, 마음이 평안이 무너집니다. 신뢰가 깨지고 소중한 가치를 잃게 됩니다. 가장 소중한 것들을 빼앗깁니다. 그러다 생명의 근원까지 빼앗기는 것입니다.
육신이 연약한 사람에게 죄의 열매가 왜 사망입니까? 죄는 하나님의 법을 떠나고,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이 연약한 사람은 죄를 지을 때 자기를 합리화시키고, 죄의 행동을 정당화시킵니다. 하지만 죄의 열매가 모든 것들을 상실하게 합니다. 죄의 종이 되면 죄의 열매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죄의 종이 되면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러워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할 것이다.”(막 8:38) 연약한 육체를 가졌지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이 모든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롬 1:16) 예수님을 믿고 난 이제는 죄의 열매를 부끄러워합니다. 본문 21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여기서 “부끄러워하다(에파이스퀴네스떼/επαισχυνεσθε/epaisxynesthe)”는 말은 “부끄럽게 여기다, 부끄러워하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 이제는 왜 죄의 열매를 부끄러워합니까? 죄의 열매가 얻었던 모든 것들(명예, 부, 영광)을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죄의 마지막이 사망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기 때문입니다.(딤후 2:15)
여러분! 사람이 의의 종이 되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죄로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본문 2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에서 해방은 죄의 속박에서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죄에 끌려다니지 않습니다. 죄에서 해방되어야 진정한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죄책감에서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죄 사함의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습니다.”(고후 5:17)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얻고, 자유에 이르는 것입니다.(롬 8:21)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거룩한 부담감을 갖고 믿음생활을 합니다. 거룩한 부담감이 거룩한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하나님의 종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룩한 영성을 가지고 거룩한 열매를 맺습니다. 거룩한 열매를 맺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요 15:8) 하나님의 종은 어두운 현실에서도 빛을 비춥니다.
육신이 연약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의의 종이 됩니다. 의의 종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 기쁘게 살아갑니다. 하나님께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며 간구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사가 예수 안에 영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2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에게 은사를 나눠주셔서 견고하게 하십니다. 믿음으로 서로 평안과 위로를 얻게 하십니다.(롬 1:11-12)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습니다.(롬 11:29)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이 하늘의 은사를 맛보기 원하십니다. 성령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맛보기 원하십니다. 내세의 능력을 맛보기 원하십니다.(히 6:4-5)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주 안에 있는 영생을 얻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아 번성하고 복을 받는 사람이 되기 원하십니다. 이제 주 안에서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받고 영생을 누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