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도 성이 자꾸 무너지는 바람에 어느 구간에는 한곳에 5백 명이 넘는 사람을 넣고 쌓으니 그렇게 튼튼할 수가 없다하고 피라밋 속에도 인골을 묻혀 놓지는 안 하였지만 그 속에는 임금의 무덤이 있기에 묻힌 거나 똑같은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고 역시 신라 흘해(訖解) 나사금 21년에 쌓았던 만경 평야의 최초 저수지 벽골제(碧骨提)는 18백보의 길이로 쌓았는데 쌓으면 제방이 무너지고 쌓으면 무너지는 것을 여러 차례 반복되어 어떠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내려오다가.
고려 인종이 보수확장공사를 하면서 수문(守門)에 세워진 석주(石柱)아래 많은 사람을 생매장하고부터는 제방이 무너지지를 않아 뚝 이름을 뼈골(骨)이 묻힌 저수지라서 벽골제라 이름을 붙였다 한다 그리고 신라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함창(咸昌)의 공검지의 둑을 쌓는데도 계속하여 물이 넘쳐 쌓을 수 없게 되자 사람하나를 생매장한 후에야 비로소 둑이 만들어져 생매장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공검지(恭檢池)라 부른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아무렴 사람이 살아가면서 동족상잔의 전쟁은 차치 하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섭생하는 일 사람을 이용하여 희생시킴으로 혜택을 보는 일들이 수도 없이 많은 것을 보면 그것들이 모두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기 위하여 우리들이 살기 위하여 상대방의 희생을 강요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한 행위가 어쩌면 적게는 가정에서도 일어난다 내가 즐겁기 위하여 바람을 피우거나 도박을 하면 그만큼 가정의 구성원들이 희생하는 것들
밥상머리에서 예의범절이라는 미명아래 윗사람은 좋은 음식을 어린아이나 부녀자들은 웃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이나 얻어먹던 이야기 명절이나 제삿날에는 여자들만 부엌에서 바빠야 하고 남자들은 고스톱이나 치던지 아니면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이나 퍼마시는 것 이런 것들 모두가 가정에서 일어나는 상대적 희생의 산물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소크라테스를 공처가로 말하지만 어쩌면 소크라테스의 부인이 자기의 만족을 해소하기 위한 소크라테스의 희생을 요구하는 행동일 것이다 역시 공처가하면 공자도 빼 놓을 수가 없다 남편을 시도 때도 없이 가만히 두지 않고 바가지를 긁어대던 사람이 바로 공자 부인이다.
공자 같은 현인도 비록 부인에게 희생을 강요당하는 공처가의 장본인이지만 공자도 자기의 삶을 위하여 인육을 섭생하였기에 인간의 혜택을 받았던 사람이다 공자가 어떻게 사람고기를 먹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가겠지만 중국이라는 나라는 거대하고 광활하며 요상하고 해괴망측한 나라이기에 섭생문화에 대하여는 여타 국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는 나라이다.
예기(禮記)동주 열국지(東周列國誌)에 보면 식인(食人)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러한 역사책들의 기록에 보면 공자가 사람고기를 먹었다는 기록 중에 사람고기를 절여 만든 음식이 밥상에 나오지 않으면 식사를 거부한 적이 있다고 했다.
논어의 위정(爲政)편에 보면 군자불기(君子不器)란 말이 나온다 이것은 군자란 일정한 그 용도에만 쓰이는 그릇이 아니고 여러 가지를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즉 한가지 재능에만 얽매이지 않으며 두루두루 살피며 섭렵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사물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고 다방면에 있어서 능통해야 한다는 말과 같이 박학다식하고 척척박사가 되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섭생의 문화에도 다방면에 능통 하려고 인육을 섭생하였는지는 모르나 아무튼 고전은 그렇게 인육을 섭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즘 세상에 그러한 이야기를 접하면 참으로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나 당시로서는 그러한 것들이 보편화되어 있었기에 그렇게 기이한 일은 아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나를 위하여 상대방이 희생을 강요당하는 잔인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뿐이며 그것이 하나의 생존법칙인 모양이다.
고려 인종이 보수확장공사를 하면서 수문(守門)에 세워진 석주(石柱)아래 많은 사람을 생매장하고부터는 제방이 무너지지를 않아 뚝 이름을 뼈골(骨)이 묻힌 저수지라서 벽골제라 이름을 붙였다 한다 그리고 신라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함창(咸昌)의 공검지의 둑을 쌓는데도 계속하여 물이 넘쳐 쌓을 수 없게 되자 사람하나를 생매장한 후에야 비로소 둑이 만들어져 생매장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공검지(恭檢池)라 부른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아무렴 사람이 살아가면서 동족상잔의 전쟁은 차치 하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섭생하는 일 사람을 이용하여 희생시킴으로 혜택을 보는 일들이 수도 없이 많은 것을 보면 그것들이 모두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기 위하여 우리들이 살기 위하여 상대방의 희생을 강요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한 행위가 어쩌면 적게는 가정에서도 일어난다 내가 즐겁기 위하여 바람을 피우거나 도박을 하면 그만큼 가정의 구성원들이 희생하는 것들
밥상머리에서 예의범절이라는 미명아래 윗사람은 좋은 음식을 어린아이나 부녀자들은 웃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이나 얻어먹던 이야기 명절이나 제삿날에는 여자들만 부엌에서 바빠야 하고 남자들은 고스톱이나 치던지 아니면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이나 퍼마시는 것 이런 것들 모두가 가정에서 일어나는 상대적 희생의 산물들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소크라테스를 공처가로 말하지만 어쩌면 소크라테스의 부인이 자기의 만족을 해소하기 위한 소크라테스의 희생을 요구하는 행동일 것이다 역시 공처가하면 공자도 빼 놓을 수가 없다 남편을 시도 때도 없이 가만히 두지 않고 바가지를 긁어대던 사람이 바로 공자 부인이다.
공자 같은 현인도 비록 부인에게 희생을 강요당하는 공처가의 장본인이지만 공자도 자기의 삶을 위하여 인육을 섭생하였기에 인간의 혜택을 받았던 사람이다 공자가 어떻게 사람고기를 먹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가겠지만 중국이라는 나라는 거대하고 광활하며 요상하고 해괴망측한 나라이기에 섭생문화에 대하여는 여타 국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는 나라이다.
예기(禮記)동주 열국지(東周列國誌)에 보면 식인(食人)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러한 역사책들의 기록에 보면 공자가 사람고기를 먹었다는 기록 중에 사람고기를 절여 만든 음식이 밥상에 나오지 않으면 식사를 거부한 적이 있다고 했다.
논어의 위정(爲政)편에 보면 군자불기(君子不器)란 말이 나온다 이것은 군자란 일정한 그 용도에만 쓰이는 그릇이 아니고 여러 가지를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즉 한가지 재능에만 얽매이지 않으며 두루두루 살피며 섭렵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사물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고 다방면에 있어서 능통해야 한다는 말과 같이 박학다식하고 척척박사가 되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섭생의 문화에도 다방면에 능통 하려고 인육을 섭생하였는지는 모르나 아무튼 고전은 그렇게 인육을 섭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즘 세상에 그러한 이야기를 접하면 참으로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나 당시로서는 그러한 것들이 보편화되어 있었기에 그렇게 기이한 일은 아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나를 위하여 상대방이 희생을 강요당하는 잔인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뿐이며 그것이 하나의 생존법칙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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