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 재가 불자의 역할과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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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0일. 한국 불교에서 재가 불자의 역할과 위상을 살펴볼 수 있는 현장 두 곳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모처럼의 서울 나들이를 맞아, 오랜 동안 보지 못하고 있었던 오랜 벗들을 만나 불교 집안 이야기도 듣고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식도 알아보고 싶어 조계사 근처에 간 김에 승가교육진흥위원회에서 열고 있는 불교중흥대토론회 <출가와 재가의 역할을 찾다>에 참석했고, 그 뒤에 이어 열린 청와대불자회장 취임 법회도 지켜보았습니다.
얼핏 보면 이 두 사건 사이에 아무 관계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는 “현재 한국 불교계에서 재가 불자의 역할과 위상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는 7월 20일 오후에 열린 대토론회와 저녁에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청불회장 취임식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대토론회는 무기력하였습니다.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사회자가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주제 발표자나 논평자가 모두 힘을 잃고 주변만 맴돌고 있었습니다. 방청석에 있던 일부 재가 활동가들의 주장도 “재가자를 종회에 참여시켜야 한다. 재가 포교사들에게도 스님들에 준하는 예우를 해달라”며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현재 상황에서 재가자 몇 명이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으로 참여하고 못하고의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 번 잘 보십시오. 이른바 ‘94년 개혁의 성과로 비구니 종회의원 10명이 탄생했지만, 그 뒤로 비구니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하기 어려운 것이 솔직한 현실 진단일 것입니다. 오히려 그 열 명의 자리를 놓고 비구니들 사이에서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고 비구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비구니계에도 정치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것을 많은 종도들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현실화되기에는 요원한 이야기이겠지만, 언제인가 조계종 종헌 개정이 이루어지고 그래서 재가 불자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중앙종회 의원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재가 불자의 역할과 위상을 분명하게 해줄 수 있을까요? 혹 그 몇 명 안 되는 종회의원 자리를 놓고 재가불자들끼리 싸움을 하고 서로를 비난하거나 힘 있는 스님들에게 줄을 대려고 애쓰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리고 혹 이런 일 없이 원만하게 재가자를 대표하는 종회의원을 선출할 수 있다고 해도, 과연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요? 이 점에 대해 제 의견을 묻는다면, 저는 “결코 기대할 수 없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본래 불교의 출발부터 출가 수행자와 재가 제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 분명한 차이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어서 굳이 재론한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이 분명한 차이를 차별로 이해하여 재가자를 함부로 다루는 쪽과 그 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또 다른 쪽이 있어서 문제를 심각하게 만들고 있을 뿐입니다.
한국 불교에서 출가 수행자들에게는 모범으로 삼는 상이 있습니다. 물론 최고 이상형은 부처님이지만 최근에는 성철스님과 법정스님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어서 많은 수행자들이 ‘닮고 싶은 스님’의 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재가 불자들에게는 이런 이상적인 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세속에서 생활하면서 성철 · 법정스님이나 다른 유명한 스님들을 모범으로 삼고 이분들이 살았던 삶의 자취와 수행 이력을 좇아가려니 힘이 부칩니다. 이분들이 하셨듯이 치열한 수행을 하지 못하여 좌절하고, 이렇게 되니 세속의 생활도 어렵게 됩니다. 그러니 자칫하면 ‘실패한 인간’이 되기 십상입니다.
재가 불자를 대표한다는 조계종 중앙신도회에서도 출가 수행자에게나 어울리는 길을 가자고 합니다. ‘간화선 강좌’를 열거나 ‘재가 불자 논강’을 열어 출가자 흉내를 내면서 “재가자도 열심히 수행한다”고 강변합니다. 출가와 재가를 가릴 것 없이 ‘수행병’에 물들어 헤매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습니다.
저는 재가 불자의 모범으로 부처님 재세시의 급고독장자 아나타핀디카를 꼽습니다. 부처님을 위해 엄청난 재산을 털어가며 기원정사를 지어드린 아나타핀디카는 승가에 대한 재 보시와 외호라는 점에 있어서 다른 어느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독보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물론 우리 승가에서도 아나타핀디카 이야기를 자주 언급합니다. 그러나 황금을 깔아 땅을 사고 그 위에 기원정사를 세웠으며, 부처님과 스님들을 극진히 모셨다는 장자의 이미지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올바른 방식으로 재산을 모아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에 일생을 바쳤던 급고독 행을 이야기하는 출가자들이 거의 없습니다.
출가자뿐 아니라 재가 불자들도 “부처님께 기원정사를 지어드리고 스님들을 극진하게 모셨다”는 ‘출가자들이 만들어 놓은 이미지’에 사로잡혀서 “나도 돈을 많이 벌어서 거대한 절을 지어드리자. 그것이 어려우면 큰 승용차라도 사서 드리자”는 생각에 집착하고 혹 이런 일을 할 능력이 안 되면 무슨 죄를 지은 듯한 의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출가자가 재가 불자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대토론회와 같은 날 저녁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청불회장 취임식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여러 종단의 대표들이 격려사를 하면서 어김없이 “불교계와 정부 사이의 가교 역할을 잘 해 달라. 불교의 이익을 위해 일해 달라”는 주문을 하였습니다.
우리 불교계 지도자들이 재가 불자를 심부름꾼 정도로 여기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 같으면, “훌륭한 불자로 당당하게 살아가라. 혹 청불회장과 회원 여러분들이 불교계와 정부 사이에서 힘들어하지 않도록 우리가 애쓰겠다. 너무 부담을 갖지 말고, 부처님 제자로 당당하고 의연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불자들부터 올바른 부처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 불교의 위상이 제대로 서는 것이다.”라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청불회원과 고위 공직에 있는 불자들이 얼마나 큰 부담을 지고 있는지 상상해 보십시오. 특히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특정 종교의 이익 집단처럼 변해버린 곳에서 ‘불자’라는 사실만으로 힘들게 지내면서도 “저는 부처님 제자입니다!”고 당당하게 정체성을 밝히는 일만 해도 고맙고 갸륵하지 않습니까? 이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날 각 종단 수장들의 격려사에는 이런 격려의 뜻은 거의 보이지 않고 “가교 역할을 제대로 해달라”는 주문만 보였습니다. 말이 가교 역할이지, “우리 일을 잘 도와 달라”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아니 “우리 종단이 건물을 더 지을 수 있도록 예산 지원을 해 달라!”는 것이 더 솔직할 것입니다.
다시 거론하기 부끄럽습니다만, 이른바 신정아 사건으로 상처를 입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경우를 잘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이 인물은 예산실장에서 기획예산처 장관을 거쳐 청와대 정책실장에 이르기까지 불교계 민원을 아주 많이 해결해주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었고, 그래서 ‘불심대신(佛心大臣)’이라는 칭호까지 얻었었지요.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던가요?
불교계의 갈등 상황에 얽혀 들어가고 불교계 예산 지원 때문에 감옥에 갔으며, 거기에다가 인간적 불명예까지 뒤집어썼습니다. 최근 들리는 소식으로는 이제 아예 불교를 떠나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한때 불심대신이라는 말까지 들었던 변양균씨를 교회로 가게 만든 것이 누구 잘못일까요? 그의 신심이 부족해서라고 몰아 부칠 수 있을까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찾아가 감언이설로 꼬드긴 기독교계의 집요한 선교 전략’ 때문이라며 ‘남 탓’을 할까요? 우리 불교계에서 재가 불자의 위상이 이렇습니다.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돈을 많이 벌어 절을 크게 지어주는 장자(재벌)와 권력자를 기대할 뿐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살폈던 ‘급고독’행 실천자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출가 집단에 큰 기여를 했던 장자나 ‘불심대신’일지라도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 철저하게 버림받는 곳입니다. 이제 이런 분위기를 바꾸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불교계에서 재가 불자가 찾아야 하는 역할과 위상은 무엇보다도 먼저 ‘재가 불자의 모범 상’을 세우는 일입니다. 출가자들 뒤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그들 흉내를 내고, “우리도 중앙종회의원을 시켜달라”며 매달리는 것으로는 결코 위상이 설 수 없습니다. “우리도 수행한다”면서 이미 오래 전에 태워버렸어야 옳은 ‘마른 똥 막대기’를 붙잡고 앉아 있거나 멋모르고 “이 뭣고?”나 되 뇌이며 방석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내는 일로 재가자의 역할을 삼을 수는 없습니다. 절을 크게 지어주는 일이 진짜 ‘불사’인 줄로 알고, 이런 일을 하는 데에 정성을 다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엄청난 돈을 가진 장자나 불심대신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 땅의 중생들과 이웃이 되고 그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급고독행 실천이 바로 재가 불자의 역할이고, 이런 급고독 불자가 많아지면 재가 불자의 위상 또한 확고하게 설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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