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쓰기와 마음 치료
이동민
수필은 문학의 하위 장르이므로 문학의 속성을 그대로 가진다. 문학이란 인간의 생활 체험을 언어로 기록한다. 체험은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어떤 대상과 마주칠 때 나타나는 반응 전부를 말한다. 반응은 행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내면화(심리화)하여 의식과 감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언어로 기록할 때는 기록하는 자의 의식 세계를 경유하지 않고는 이루어 질 수 없다. 따라서 반응은 개개인의 삶에서 형성된 개성에 따라 달라진다.
차주환이 내린 정의에 ‘수필은 산문 문학의 한 유형으로 생활과 관련된 모든 사물을 소재로 하고, 자아(Ego)의 표출을 기본으로 하되 ---’라고 하였다.
작가는 주관적 개성을 가진 나를(글의 주인공) 고백의 형식으로 드러낸다. 몽테뉴는 ‘내가 묘사하는 것은 나 지신이고, 나를 통째로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라고 하였다. 바로 자아를 드러낸 것이다. 수필에서 자신을 얼마나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느냐, 고 질문할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작가가 삶의 체험을 이야기로 바꿀 때는 몇 단계를 거친다. 존재물(또는 사건)을 인지하고, 인지한 내용을 기억한다. 기억을 다시 회상으로 불러내서 글쓰기를 통해 수필로 재현 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의 의식이 강하게 작용한다. 의식의 작용에 의하여 서술자의 이미지가 표현됨으로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가공하여 변형된 모습으로 재현한다. 즉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나르시시즘에 빠져서 자기예찬적인 글쓰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참모습인 자아는 수필의 뒤에 숨어버리는 일이 많다. 그러나 허구로 자아를 은폐하거나, 진실하지 못한 표현은 수필의 정의에서 벗어난다.
수필은 거의 90%가 과거형 문장으로 쓰여진다. 회상 형식의 글쓰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회상은 현재의 경험이(2차 경험 또는 사후 경험) 작가에게 강한 인상을 주므로 과거의 기억(보존된 1차 경험)을 일깨워낸 결과물이다. 시간의 순서는 1차 경험 - 인지 - 기억 - 이차 경험 - 회상 - 글쓰기가 된다. 지난 경험을 환기할 때는 서술자의 강한 욕망(무의식)이 작용함으로 왜곡,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수필쓰기 방식은 심리 분석에 그대로 적용된다. 꿈으로, 또는 환상으로 떠오르는 표상을 탐구함으로 마음 속에 감추어 둔 진실을 찾아간다. 진실은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둔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고, 마음의 아픔을 고칠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자아의 표출이 수필쓰기라면 수필 작가는 내가 누구인가(자아)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글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은 형성된 자아가 다르기 때문이다. 먼저 자아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김국환이 부른 노래 가사에 ‘내가 나를 모르는데 --- ’라는 구절이 있다. 노래 말에는 ‘내가’ 와 ‘나를’이 있다. ‘내가’는 노래하는 나이고, ‘나를’은 노래 말 속에 담겨 있는 나이다. 내가는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쓴 나이고, ‘나를’은 가면 되에 숨어 있는 나이다. 가면 뒤의 나는 복잡한 심리구조가 양파처럼 겹겹이 싸고 있는 나이다. 바로 자아이다.
자아는 나라는 존재의 외양(페르소나)이 아니고 내면에 숨어 있는 나 자신이다. 외부에서 자극이 올 때 반응하는 나의 행동은 겹겹으로 된 내면에서 복잡한 심리작용이 일어난 결과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드(Id), 이고(Ego), 초자아(Superego)라는 세 개의 심급이 상호작용을 한 결과이다. 세 개의 심리영역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자.
갓 태어난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 배가 고프면 울고 보챈다. 본능적인 반응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이 세상에 어울려 살려면 자신의 요구를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즉 금지를 배운다. 자신을 둘러 산 사회에서는 금지하는 것이 많다. 도덕, 법률, 관습, 교육, 어머니의 세세한 간섭들, 아버지의 태도, 등을 받아들여서 자신의 심리 영역에 저장함으로 개성이 생긴다. 쉽게 말하자면(같은 의미는 절대 아니다.) 이드는 본능적 욕구에 가깝고, 금지를 담당하는 심리 영역을 초자아라고 한다. 이드의 욕구와 초자아의 금지를 교묘하게 균형을 유지하도록 형성되는 심리 영역이 자아이다. 인성도 되고, 인격이 되는 바탕이다. 자아에는 본능적 욕구도 포함되어 있고, 자신을 감독하는 양심도 있고,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자기애 등 온갖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인정받지 못 하는 욕구가 초자아에 의하여 금지 당하면 의식 세계에서 추방당하여 무의식 속으로 숨어버린다. 욕구가 있던 심리의 자리는 텅 빈 구멍처럼 되어 버린다. 빈 자리를 욕망이라고 한다.(비어 있으므로 욕망을 결핍이라고도 한다.) 빈 자리는 메워져야 한다. 메우지 못 하면 마음의 병이 되기 때문이다. 욕망을 완벽하게 메우는 방법은 결코 없다. 불완전하지만 메우는 방법은 환상(상상)이다.
어린이는 놀이를 통하여 환상을 실현한다. 어린이의 놀이는 어른의 눈에 유치히게 보이지만 어린이들은 현실세계처럼 느낀다. (놀이는 현실을 상징 또는 은유로 대체한 것이다.) 어른도 환상 또는 몽상(낮꿈)으로 욕망의 빈 자리를 메운다. 어린이와 달리 어른은 환상에 빠져서 모래성을 쌓는 일을 수치스러워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삶으로 마음 속에 품고 있으려고만 한다. 환상은 상상 행위로서 옥망과 다름 아니다. 자신의 심리 영역 안에서 일어나면서 자아를 포함한다. 수필쓰기의 과정(일차경험 - 기억 - 이차경험 - 회상 - 글스기)에서 환상은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깊이 관여한다.
환상은 과거, 현대, 미래의 시간대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현재의 경험이 욕망을 일깨우면 욕망이 충족되었던 어린 시절이나, 과거의 어느 때로 되돌아 가기도 한다. 아니면 미래의 기대 속으로 데리고 가서 결핍을 채워준다. 수필쓰기는 현재의 경험 내지 강한 인상을 과거를 일깨워낸다. 환기된 욕망이 기억의 문을 드드리면 기억은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서 결핍을 충족시켜 준다.(회상은 사실이 아니고 아름답게 채색되어서 나타난다.) 프로이트는 예술작품이야말로 작가의 몽상이라고 했다.
수필쓰기에서 유년, 어머니, 고향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그 기억 속에는 잃어버린 유토피아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의 유토피아가 아니고, 환상으로 채색한 유토피아이다. 그래서 유년의 추억은 환상으로 나타남으로 현실의 도피라는 말도 한다.
성인은 환상을 부끄러운 욕망으로 느끼므로 글쓰기를 할 때 감추려는 경향이 있다. (욕망의 은폐, 또는 자아의 은폐) 자화자찬적인 글쓰기를 한다.(나르시시즘도 원초적인 인간 심리의 하나이다.) 독자들은 욕망을 감추지 않고 드러 낼 때 더 진한 감동을 느낀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수필에서 욕망을 그대로 표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덮개로 가리고 다른 형태로 변형하여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덮개-기억)
수필의 치료적 효과는 자기 성찰을 통하여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바라 볼 때 나타난다. 왜곡이 심하게 나타난 수필에서는 작가 자신도 자기를 정확하게 보지 못 한다. 작가는 환상(수필)의 뒤에 숨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이 치료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내 안에 있는 감정을 꺼집어 낼 수는 있지만, 우리는 바람직하지 않는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해져 있다. 감정은 정적이고, 얌전하게 쉬고 있는 것이 아니다. 힘이 있는 에너지이다.(욕동) 배출하지 못한 감정은 나에게 행패를 부린다. 우울하기도 하고(정신적), 노곤해지며 힘이 빠지기도 한다.(육체적) 이처럼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기억의 흔적’이라고 한다. 자신의 아픈 기억을 바깥으로 배출해야 치료 효과를 거둔다. 배출의 방법에 수필이 있다.(임금의 귀는 당나귀귀)
환상은 마음의 고통을 줄여준다. 환상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과 대화를 나눈다. 환상은 자신의 감정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환상의 자리에 수필을 놓으면 수필은 자신의 감정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이야기꾼이 된다.
심층 심리의 깊숙한 곳에 감추어 두었던 기억을 불러내면 오히려 고통스러울 때가 많다. 부끄러운 기억이기 때문이다. 융은 ‘나의 그림자’라고 하였다. 억압되어 있는 기억은 우리의 의식 세계가 합리적으로 사고를 하는 데 방해한다. 감정이 무의식적으로 매개하여 사고가 반사적으로 일어나도록 한다. 고아로 자라는 아이들은 용감하게 살아야 한다. 울지 말아야 한다. 꿋꿋하게 살아야 한다, 는 말을 더 많이 듣는다. 어른이 되어서 울어야 할 상황이 되어도 울지 못한다. 감정을 가슴 속에 쌓아두기만 한다. 쌓아둔 감정은 반사적으로 용감한 척 하도록 한다. 이때는 용감한 척 하지 말고 울어버리는 것이 치료이다. 울게 되면 고아 시절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어서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그 고통을 극복할 때는 정신적으로 건강해진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공부를 잘 해야, 착해야, 얌전해야 잘 산다. 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 왔다. 윤리의식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은 어린 시절에 억압해버렸던 감정들이 무의식 속에서 찌꺼기 감정으로 남아 있다. 일상 생활에서 분노와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를 어려워 한다. 심리 영역의 초자아는 자기를 감시하고 벌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필에서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 표현이라는 허용과, 은근슬쩍 은유하거나, 농담을 이용하는 기법 등등으로 찌꺼기 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
수필쓰기에 의한 자기 성찰을 통하여 사회성이 확보되는 성장기에 사회적응을 어렵게 하는 자동적 사고가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지를 살펴 볼 수 있다.
자기 성찰을 통하여 자신을 어떻게 찾는가에 관한 사례를 드는 것으로 오늘의 강의를 마무리 하겠다.
신앙생활에 지나치게 철저한 젊은 목회자가 있었다. 자신의 신앙 생활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신도들에게도 지나치리만큼 엄한 규율을 강요하였다. 어긋나면 노골적으로 나무라는 말도 하였다. 그러다보니 언제나 화낸 얼굴로 질책을 하는 것이 그가 주는 인상이었다. 신도들은 그를 떠나면서 교회는 점점 쇠락해 갔다. 목회자의 부인은 목회자와 전혀 다른 태도로 신도를 대했다. 부인 때문에 교회를 떠나지 않는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였다. 목회자는 자신이 하느님께서 성실하지 못한 탓이라고 자책하면서 용서를 구했다. 교회 규칙에 철저한 목회자는 아내가 신도들에게 싹싹하게 대하는 것도 하느님의 율법에 어긋난다면서 나므랐다. 급기야는 부부사이도 금이 갔다.
보다 못한 노 목사가 젊은 목사를 조용히 불렀다. ‘이보게,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기 이전에 스스로의 용서를 구해 보게나.’ 라고 말하였다.
젊은 목회자는 군에 근무할 때 동경에서 머물렀다. 약혼녀를 두었을 때 그는 한국의 서울로 휴가를 갔다. 우연히 거리의 몸 파는 여인을 만나서 하룻밤을 지냈다. 동경으로 돌아가니 약혼녀가 와서 기다렸다. 순간 그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 죄책감으로 몸을 떨었다. 이후로는 약혼자를 볼 때 마다, 목회 일을 할 때 마다. 부인이 되고 난 뒤에도 죄책감에 시달렸다. 죄를 보속하는 일은 하는님께 용서를 구하는 일이라고 믿고, 열심히, 지나치도록 열심히 교회 일에 충실하였다. 신도들에게도 엄격한 신앙 생활을 요구하였다.
사실은 아내도, 신도들도 정상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을 나무라는 것은 자신의 죄의식이 그들에게 투사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벌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깊은 자기 성찰을 하면서 자기를 벌주는 대신에 용서하였다. 이후로는 인간 관계도 좋아졌고, 부부의 금슬도 좋아졌다고 하였다.
우리는 수필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통찰하고, 마음 치료도 할 수 있다. 얼마나 솔직하게 자기를 보느냐는 쉬운 일이 아니다.
출처: 수필아카데미 원문보기 글쓴이: 이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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