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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문학의 5가지 특성/이철호

작성자보니/강길수|작성시간26.06.23|조회수36 목록 댓글 0

수필문학의 5가지 특성
                                                                            이철호


수필이 지닌 여러 가지 특성 또는 특징을 좀더 구체적으로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은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무형식성(無形式性)
2) 산문성(散文性)
3) 자기 고백성(自己 告白性)
4) 광범성(廣範性)
5) 창조성(創造性)과 문학성(文學性)

이를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무형식성(無形式性)
수필은 이미 잘 알려줘 있는 바와 같이 어떤 형식(形式)으로부터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문학이다. 즉 일정한 형식이 없는 문학 장르가 바로 수필인 것이다.
이것이 수필문학이 지닌 가장 큰 특성 중의 하나요, 수필문학이 지닌 독특한 개성이다. 수필문학을 가리켜 흔히 '무형식의 형식'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에 비해 수설이나 시, 희곡 등은 각기 그 나름대로 독특한 형식에 의해 쓰여진다. 즉 소설이나 시, 희곡 드은 각각 정해져 있는 형식이나 제약을 무시하거나 거부해서는 안되며, 최소한도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소설에 있어서는 허구(虛構)에 기초를 둔 인물과 사건, 배경, 줄거리 등을 설정하고 등장 인물의 호칭 등도 미리 정해 두어야 한다. 이러한 형식의 설정을 무시하거나 거부하고서는 소설이 될 수 없다. 또한 시에 있어서도 운율(韻律)이나 메타포, 시어(詩語)의 선택과 압축 또는 절약 등 시를 쓰는데 필요하고도 요구되는 형식을 무시하거나 거부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희곡에 있어서도 무대나 장면, 출연진, 대화 내용, 연기 방법 등을 세밀히 고려하고 지시하면서 형식의 제약을 받아야한다.
그러나 수필에 있어서는 이러한 형식이나 제약 등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그저 쓰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쓰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김진섭(金晋燮)은 수필문학의 이러한 '형식의 자유', 또는 '무형식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 시, 소설, 희곡 등 속의 문학이 일견 명료한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대해서, 수필은 문학으로서의 일정한 형식을 갖지 못하고 수필은 그것이 차라리 작품으로서 형식을 갖지 않는다. 그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우에 의해서는 제약도 없으며, 질서도 없으며, 계통도 없이 자유롭고 산만하게 쓰인 모든 문장까지도 포함할 수 있는 까닭으로 주는 것이지만, 사실 문학은 자기의 협애(狹隘)한 영역안에 수필이라 하는 이 자유분방하고 경묘탈려(輕妙脫麗)하고 변화무쌍한 양자(樣子)를 포함하기 어려운 감이 없지 않다......

김광섭(金珖燮)도 그의 [수필문학 소고(小考)]에서 수필문학의 무형식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문학 형식에서 보면 수필에는 소설이나 시나 희곡에서 보는 바와 같은 어떤 완성된 폼이 없다. 단편 소설을 제작하려면 우리는 적어도 애드거 알렌 포나, 안톤 체홉이나 혹은 모파상에게 잠시라도 사숙(私塾)하여야 하겠고, 시나 희곡을 지으려면 괴테나 사옹(沙翁)이 나 혹은 입센 등에게 완성된 폼은 비록 모델로 삼지 않는다 할지언정 살펴볼 아량쯤은 있 어야 하겠지만, 수필에 있어서는 그 형식을 구하거나, 참고하려고 반드시 찰스 램이나 헤를 릿드를 찾을 필요성까지는 없을 것 같다. 가장 아름다운 수필을 찾아 우리의 문학적 항심 (恒心)을 만족시키며 충족시키는 점은 찬하여 마지 않을 바이나, 그 형식의 섭취에 구속될 바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형식으로서의 수필문학은 무형식이 그 형식적 특징이다. 이것은 수필의 운명 이요, 내용이다.

이와같은 견해들에 대해 이현복(李賢馥)은 그의 [수필문학 작품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통해 약간 다른 견해를 피력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필의 형식은 과연 무형식의 형식인가?
'무형식'이란 말은 김진섭의 말처럼 '제약도, 질서도, 계통도 없이 자유롭게 산만하게 쓰여지는 것'이고, 김광섭의 경우처럼 '붓가는 대로 써지는 시필(試筆)쯤에 그치는 것'이며, 피천득의 견해처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이 고치를 만들 듯이 그렇게 써지는 것'일까?
이 말들을 표면적 의미로 본다면 수필은 낙서요, 잡다한 생각의 산만한 표출이요, 문장 수련의 과정일 뿐이다. 이와 같은 수필관에서 쓰여진 수필은 어의(語義)대로의 수필 일 뿐 문학적 수필은 아니다.
수필문학에서 '무형식'이란 말은 필자의 마음이 형식이라 하리 만큼 일정한 형식이 없다는 의미이다. 수필의 형식에는 인물, 사건, 배경이라는 소설적인 구성도 없고 논거를 제시해야 하는 논문의 제약도 받지 않으며 일정한 사물이나 과제를 쉽게 풀어서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는 설명문의 제약도 받지 않는다. 수필은 다만 초점을 향하여 문장이 집결되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전문에 생기가 넘치는 글이란 뜻이다. 또한 문장기법상에서 '무형식'이란 말은 자유롭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 설명, 논증, 서사, 묘사라는 문장의 세가지 기술 양식을 모두 부려 쓸 수 있으므로 그 형식이 자유롭다는 뜻이다.
또 다른 의미로는 '형식적이 아닌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 무형식의 내용으로 오직 자신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무형식이란 말은 붓가는 대로의 무질서한 글이 아닌 것이다. 결국 무형식이란 말은 일정한 틀에 박힌 틀이 없다는 뜻에서 플롯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수필에서 무형식의 '붓가는 대로'를 고쳐 풀이하면 붓가는 대로써도 될 만큼 문장력에 있어 숙련에 들어간 작가가 '한가로운 심경'에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의지'나 '정감'의 정화를 원숙한 언어로 표출해 낸 것이 수필이라 하여 중년고개를 넘어서 원숙한 글이란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수필은 쉽게 쓰여지는 글이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수필은 문장의 수련과 인생의 달관에서 자연히 유로되는 격조 놓은 문학이다....

한편 문덕수(文德守)도 그의 [신문장강화](新文章講話)에서,

...수필은 인간의 본성을 바탕으로 다른 형식의 문학이 형식으로서의 뚜렷한 경계(境界)를 그었을 때 그 어느 형식에도 속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형식을 용해할 수 있는 부분으로 남은 것이다.....

라고 하며 수필문학의 넓은 포용성을 강조했다.
조연현(趙演鉉) 또한 그의 [문학개론]에서 '수필은 여러 문학 양식 중에서도 가장 그 형식이 자유롭다. 즉 수필에는 서정시적 정서나 감흥은 물론, 서사시(소설)적 구성이나 희곡적 대화, 그리고 비평적 판단 작용까지도 다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구성이다'라면서 수필문학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다는 데에는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그는 곧이어 '...그렇다고 수필이 무형식적 무성격적인 것은 아니다. 서정시적 정서나 감흥을 가지면서 서정시가 아니고, 소설의 구성을 가지되 소설이 아니고, 희곡적 비평적 요소를 가지면서도 희곡도 비평(批評)도 아닌데 수필의 독자적인 양식이 있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 '수필문학이 무형식의 문학' 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나 시, 희곡 등 다른 문학 장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수필이 전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즉 수필문학의 영역이 넓기 때문에 다른 문학 장르들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다.
구인환(丘仁煥)과 구창환(丘昌煥)도 그들이 공동 집필한 [문학개론]에서,

...수필도 구성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구성의 진행이나 방법에 별다른 제약을 받음이 없이 씌여진다. 여기에 수필의 무형식적 형식의 특성이 있는 것이다...

라고 하여 수필문학의 형식이 자유롭기는 하지만 전혀 제약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한편 김시헌(金時憲)은 그의 [대중수필과 본격수필]이라는 글에서 수필의 표현 형식과 호칭 문제를 연관시켜 언급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수필은 표현 형식이 자유롭고 대부분 1인칭의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다른 문학인 시, 소설, 희곡은 제작 형식이 고정될 뿐만 아니라, 호칭도 여러 가지로 사용되고 있다. 1인칭 호칭을 쓴다해도 그 1인칭은 작가 자신을 가리키지 않고 작품 속의 주인공을 지칭하고 있다.
그런데 수필과 잡문은 다같이 무형식의 형식이라는 자유로운 방법에 의해서 쓰여지고, 회칭도 함께 1인칭을 대부분 쓰고 있다. 꼬 그 1인칭이 작품 소그이 주인공이 아니고 작가 자신을 바로 가리키고 있다....

이와같은 수필문학의 특성이나 특질, 또는 수필의 본질, 그리고 여러 견해들을 종합해 볼 때 수필이 다른 여러문학 장르들에 비해 그 형식이 훨씬 자유롭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수필문학이 이처럼 형식에서 무척 자유롭고 '무형식의 문학'인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 형식이나 제약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2) 산문성(散文性)
흔히 수필을 가리켜 '산문(散文)문학'이라고 한다. 그리고 수필은 사실 산문으로 쓰여진 글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수필이 산문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또 수필이란 대부분 산문으로 쓰여지고 있다는 뜻도 된다.
물론 수필 중에는 운문(韻文)으로 쓰여진 것도 더러 있다. 이를테면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는 원래 운문체로 쓰여진 글이지만, 그 내용을 보면 일기체 형식의 기행문이다. 따라서 이 [일동장유가]는 운문 형식으로 쓰여진 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필이란 보통 산문으로 쓰여진 것을 말한다. 즉 적당한 길이의 산문으로 쓰여진 것이 수필의 일반적인 모습인 것이다.
조연현도 그의 [문학개론]에서 수필의 사눔ㄴ성에 대해,

...수필은 산문문학의 대표적 구성이라고 볼 때 수필의 범위는 거의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광범해진다...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 수필은 전문적 산문(학문이나 과학)이외의 창작적인 요소를 지닌, 모든 산문문학적 문장을 의미한다...

라고 했다.
다시 말해 수필은 산문으로 쓰여진 문학 구성이라는 뜻이다.
김구봉은 그의 [내력과 성격으로 본 수필의 문학성과 창조성]이란 글을 통해 수필이 역시 '산문문학'임을 강조하고 있다. 즉,

...정서나 사상을 상상의 힘을 빌어서 언어 도는 문자로써 그것을 표현하는 예술 작품을 문학이라고 한다면, 수필은 다른 문학 장르와 더불어 예술 작품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전설, 가요, 화술이 언어에만 의존한 구비문학(口碑文學) 또는 전승문학(傳乘文學)임에 대하여 수필은 시, 소설 등과 더불어 문자에 의한 기록문학이며, 그 기록문학 중에서도 순수문학의 영역에 든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수필은 어떤 정치적 또는 계몽적 동기에서 유발된 공리주의적 목적문학에 대하여 가장 순수한 예술적 충동에 의해서 형성된 문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수필은 문학의 전 기능에 의한 구극적(究極的)인 순수성을 추구하며 사회적 사상적인 색채가 없이 작가의 순수한 예술적 욕구로써 형성되며, 한갓 흥미 위주의 대중문학에 대하여, 미적 정서에 호소하여 인간 탐구를 지향하는 문학인 것이다...
... 그런데 수필은 원래 독립된 문학적 형태로, 하나의 장르를 차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수필은 각종 기록적 서술의 일보, 즉 속성을 이루고 있는 문학적 표현이거나 순수문학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형식적 기교에 불과했다. 그런데 수필은 여기에서 문학적 속성만을 독립시키고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형식적인 기교에서 탈피하여 인간 본연의 순수 의식과 정서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산문의 창작을 시도함으로써 발생한 것이 수필인 것이다....

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는 '새로운 산문의 창작을 시도함으로써 발생한 것이 수필' 이라며 수필이 새로운 산문을 창작하기 위한 시도에서 발생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기실 산문은 근대에 와서 발전했다. 또한 근대에 와서 이러한 산문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도에 의해서 태어난 것이 바로 수필문학이다.
옛날에는 서사시와 같은 운문이 널리 성행했다. 또한 옛날에는 음유시인(吟遊詩人)들이 운율에 맞추어서 시를 읊으면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흡사 노래를 들을 때처럼 장단을 맞추거나 따라서 하기도 하고, 시의 운율에 맞추어 춤을 추기도 했다. 프랑스의 샹송이 원래는 프랑스의 음유시인들이 부르던 시에서 발달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운문은 주관적이고도도 정서적이며 비논리적인 경향이 강하다. 이에 비해 산문은 보다 객관적이고 이지적(理智的)이며 논리적인 경향이 강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산문은 근대에 와서 과학정신, 합리주의 정신이 등장하고 발전하면서 함께 발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권위적, 보수적, 폐쇄적인 사상이나 가치관이 지배적이었던 중세 시대에서 보다 개방적이며 과학적인 정신과 합리주의 정신 등이 확산되면서 등장하고 발전한 것이 바로 산문인 셈이다.
프랑스의 몽테뉴나 영국의 베이컨이 수필문학을 새롭게 탄생시키며 수필문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도 바로 이러한 시기(16~17세기)였는데, 이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또 몽테뉴나 베이컨의 수필 작품들이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을 얻게 된 데에는 그들의 수필 박품들이 훌륭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와 함께 과학 정신과 합리주의 정신 등이 확산되던 시기와 '산문의 문학'인 수필이 잘 마자 떨어진 것도 큰 이유가 된다.
뿐만 아니라 산문은 그 자체가 과학 정신과 합리주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물론 소설도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소설이란 옛날의 전설이나 서사시, 중세에 있어서의 이야기 등을 이어 받아 근대에 이르러 발달한 문학 장르로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하여 구상되거나 어떤 사실이 각색된 주로 산문체(散文體)의 이야기를 말한다.
그러나 소설은 작가의 생활이 반영되어 있으되,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허구의 세계를 산문으로 표현하는 문학이다. 다시 말해 소설은 '픽션(fiction)의 이야기'인 것이다.
서양에서는 소설을 노블(novel), 혹은 로망(roman)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말들 속에서 '이야기'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프랑스의 문학자이자 평론가였던 띠보데는 그의 [소설의 독자]라는 글에서 로망이라는 말의 유래에 대해서,

,,,로망(즉, 소설)은 그 이름이 보여 주고 있는 것과 같이 승려 문학시대에 있어서 라틴어로 쓰여진 정규적인 적서에 대하여 속어(俗語)로 쓰여진 것을 의미하고 있다. 로망이라는 말이 결국 '이야기'를 뜻하게 된 것은 로망어, 즉 속어로 쓰여진 것 대부분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것도 소설이 원래 '이야기'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설(小說)이라는 한자어도 '시중(市中)에 일어나거나 들려오는 여러 가지 일이나 이야기 따위를 기록한 것'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또한 옛날에는 소설책을 가리켜 흔히 '이야기책' 이라고 했는데, 이것도 소설과 이야기라는 말이 거의 같은 뜻으로 쓰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부터 사람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던 여러 가지 이야기나 구전문학이 그대로 혹은 새로 다듬어지거나 보완되고, 여기에다 작가의 상상이나 허구, 가공 등이 보태어져 산문으로 구성하여 쓴 글이 바로 소설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소설과는 달리 수필은 자가의 생활을 직접 산문으로 구성하여 쓴 것이다. 즉 같은 산문으로 구성하더라도 소설과는 달리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허구가 배제된 거이 수필이다. 물론 최근에 와서는 수필에 있어서도 일부나마 허구가 용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아직까지 소수 의견에 불과하며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뿐만 아니라 수필에서는 근본적으로 허구가 인정되어 오지 않았던 것이 이제까지의 통례이다.
때문에 오창익(吳蒼翼)은 그의 [문장은 주제 의미화의 생명력 요소]라는 글에서 수필이 다른 산문들과는 다리 허구나 과장 등이 배제되고 진솔해야 함을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다.

...그래서 여타 산문과는 다리 수필의 문장은 효과적인 의미 전달을 위한 솔직성과 진실성, 그리고 상징과 비유, 암시와 상상적 수사기능을 생명시 한다. 자가 자신이 하앙 자기 작품의 주인공이어야 하는 문학이기 때문에 지나친 논리나 주장, 과장이나 미화(美化)로써는 독자의 공감과 감동은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이현복은 그의 [수필의 문학성]이라는 글을 통해 수필은 산문의 문학이며 과학 정신과 합리주의 정신에 바탕을 둔 문학정신이 바로 산문정신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흔히 현대를 '산문의 시대'라고 한다.
문학의 양식이 시대의 산물이라고 할 때 현대라는 과학문명의 시대에 적합한 기술양식은 산문이다. 과학정신에 가까운 문학정신은 산문정신이다. 조연현은 '산문정신ㅇ은 토의의 저인으로서 가공 보다는 사실, 주관보다는 지성에 더많이 기초한 합리주의적인 증명정신이다'고 하였다.
근년에 이르러 논픽션(non-fiction)이 많이 읽히고 있는 것은 이런 경향을 말한 것이다. 현대인은 인생 문제에 대하여 직접 그 인격의 체험과 진실을 직접 듣고 싶어하는 요구에 따른 것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경향에 편승하여 산문문학인 수필문학은 환영 받는 문학의 한 장르로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아나톨 프랑스(Anatikefrance)는 '수필이 어느 날엔가는 온 문예를 흡수해 버릴 것이다. 오늘이 그 실현의 초기 단계이다' 라고 한 바 있다....
...수필문학은 산문문학이다. 산문정신은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비판정신이다. 여기에서 비판성이란 준엄하고 냉혹한 것이 아니다. 따뜻한 인간미를 풍기는 비판이다. 그 비판은 자유로운 유희의 자세와 분위기에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비판의 기준이 율법이나 윤리적 목적을 벗어나서 오로지 변화하고 있는 그대로의 생활을 사랑하고, 인생의 기쁨을 누리고 싶은 순수한 충동에서의 비판이다...

결국 수필은 독특한 특성을 지닌 산문문학이며, 수필은 원칙적으로 산문으로 쓰여져야 하는 것이다. 더러 운문으로 쓰여진 수필도 있으나 이것을 수필의 본도로 보기는 어렵다.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로 보아야 할 것이다.

(3) 자기 고백성(自己告白性)
수필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한 자기 고백적 문학이다.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겪고 생각한 것 등을 문학적으로 형상화시켜 표출해 놓은 것이 바로 수필인 것이다.
물론 소설이나 시, 희곡 등도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지는 수가 많다. 그만큼 문학 작품을 쓰는데 있어 체험은 아주 중요하고도 필요한 것이다. 문학 작품과 체럼은 서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나아가서는 체험은 모든 문학의 근원이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연에 바탕을 두고 있듯이, 모든 문학은 체험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체험에 바탕을 두지 않은 문학 작품이란 존재할 수도 없다. 인간이 자연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 또한 체험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이나 시, 희곡 등의 문학 장르에서는 작가의 체험이 직접적으로 나타나기보다는 다시 여과되고 변형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수가 많다. 즉 이러한 문학 장르들에 있어서는 작가가 자신이 겪은 체험에다 작가 나름대로의 상상이나 허구적 구성들을 더하여 새로운 형태의 작품세계를 펼쳐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아가서는 자신이 겪은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상상이나 허구적 구성 등을 통해 표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그 작품 속에는 작가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겪은 수많은 체험들이 알게 모르게 개입되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소설이나 희곡 등에 있어서는 작가의 의도나 필요성 등에 따라 다시 변형되고 이에 적합한 등장인물들이 설정된 후 그들의 행동이나 모습, 체험 등으로 나타난다. 즉 자가의 체험이 원형 그대로 작품 속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런 문학 장르의 특성이다.
이에 비해 수필에 있어서는 작가의 체험이나 모습, 또는 행동이나 사상등이 사실 그대로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다시 말해 작가의 체험이나 작가의 여러 가지 모습이 우너형 그대로 작품 속에 그려져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수필이 작가의 체험을 직접적으로기록한 '자기 기록의 문학'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수필이 자신의 삶과 사상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자기고백의 문학'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문에 수필에서는 소설이나 희곡 등에서처럼 작가가 자신의 체험을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시키거나 확대, 축소하여 표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또 소설이나 희곡 등에서처럼 등장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체험이나 모습, 사상 등을 간접적으로 그려내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수필문학의 특성이요, 수필 작법에 있어서의 기본 수칙이다. 만일 이를 무시하고 쓰여지는 수필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수필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수필은 이처럼 자신의 체험이나 삶, 사상, 느낌 등을 가식없이 진솔하게 고백하는 문학이기 때문에 그것은 읽는 독자에게 신선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것이 수필문학이 지닌 특성이요, 수필문학의 가치를 더욱 높여 주는 바탕이다.
그래서 김진섭도 그의 [수필의 문학적 영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고백하는 심경(心境)이 고결하면 할수록 그 수필의 문학적 생명이 오랜 것은 두말할 것이 없다. 수필에 있어서 중요한 특징이 되는 것은 숨김없이 자기를 말한다는 것과 인생사상(人生事象)에 대한 방관적 태도, 이 두 가지에 있을 따름이요 이것만을 기초로 삼고 붓을 고요히 듦에 제목 여하(如何)는 물을 필요가 없다...

장백일도 그의 [고뇌와 창조]라는 글을 통해 수필이 '자기 고백의 문학'이요, '자기 체험의 진솔한 밝힘' 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 편의 수필은 작가의 마음을 진정으로 대변해 준다. 진솔한 인간체험에의 언어적 형상화가 그 자신을 진심으로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필은 곧 작가의 마음이라 함도 그 소이가 여기에 있게 된다. 이 언어적 수필 미학에서 작자의 창작 심리의 번득임을 읽게 될 때 우리는 그이 수필의 특질을 파악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그 표현을 통해 작자가 무엇을 구하고 호소하는가를 듣게 된다...
...흔히 수필을 퍼스널 노트로서의 체험의 자조문학(고백문학)임을 강조한다. 이 또한 생명에의 의의있는 가치평가, 즉 새로운 의미 부여로 집약되어진다. 그 점에서 수필은 무엇을 다루었건간에 어디까지나 인간의 영혼을 울려주는 생명의 구경적인 의미 반론과 표현에의 인간학임을 전제한다. 그러기에 수필은 인간 체험에의 언어적 의미화로 시의 가치있는 시사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나(인생)와 수필이 따로 있음이 아니다. 나 자체 속에 수필이 요구됨에 '수필 쓰는 일'이 곧 나의 비판적 고백으로서의 자기 실현을 꾀해가는 그 인간 작업임을 깨닫기에 이른다. 여기에 전심전력으로 수필을 사랑해야 하는 성실한 생활태도가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요청된다. 그 생활태도는 이미 밝힌 바 참(試)이다. 즉 참(試)으로 참(眞)을 찾는 삶이다...

이현복도 그의 [수필의 문학성]에서 수필문학이 작가 자신의 표출이며 자기 괙적 문학임에 동조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수필문학에서는 작가가 직접으로 독자에게 보내는 전달이기 때문에 경험을 전달하는 소설과 다르며 상연과 행위를 강조하는 희곡과 다르며 기분과 감정을 표현하는 시와 다르다고 하였다.
함께 나눈 경험, 목격한 행위, 엿듣는 감정이 수필 문학의 특징이다. 따라서 수필문학에서의 중요한 요소는 주제다. 독자는 표현기교와 수법보다는 작가가 전달하려는 의도에 더 흥미를 갖는 것이다. 수필문학 작품은 작가의 심적과정이며 작가 자신의 표출이며 독백이다. 그러나 그 독백은 작가 한 사람의 독백이 아니요, 여러 사람들에 대한 독백이다.
독백이 독백으로 끝난 작품은 메아리 없는 산울림과 같아서 수필의 경지로 승화될 수 없다. 한 사람의 독백은 다른 사람의 그것과 혼연일체가 되어 대화의 독백이 되어야 한다...

C.카운터 쿨웰은 수필이 작가 자신의 솔직한 표출이며 자기 고백이라는 것을 다음과 같은 한마디로 압축하여 나타내고 있다.

'수필에서의 작가는 작품 속에 함축되어 있다.'

이처럼 수필은 작가 자신의 솔직한 표출이며, 진지한 자기 고백이다. 나아가서는 자신의 삶을 경건히 되돌아 보면서 참회하고 각성하는 문학이다. 도한 이것이 수필문학의 특성이자 참된 가치이다. 그리고 수필문학이 지닌 위대한 힘이다. 독자를 감동시키는 '보이지 않는 힘'도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그래서 수필에서의 '자기 고백성'은 단순한 독백이 아니라 천주교에서의 '고백성사(고해성사)'와 같이 거룩함마저 있는 것이다.

(4) 광범성(廣範性)
수필문학의 범위는 참으로 넓다. 소설이나 시, 희곡 등 다른 문학장르들보다도 그 범위가 훨씬 더 광범한 것이 바로 수필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소설이나 시, 희곡 등은 각기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형식에 의해 쓰여진다. 또한 이러한 문학 장르들은 각기 정해져 있는 형식이나 제약을 무시하거나 거부할 수 없고 최소한도로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때문에 이러한 문학 장르들은 각기 그 형식에 얽매이거나 제약을 받아 그 장르적 범위가 아무래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수필은 그 형식이나 제약 등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는 문학이다. 오히려 어떠한 형식이나 제약 등으로부터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것이 수필이 지닌 커다란 특성이요, 매력일 만큼 자유로운 것이 수필문학이다.
따라서 수필문학의 범위는 그만큼 더 넓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수필은 문학의 다른 여러 장르들보다도 그 제재(題材)가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우리의 삶이나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이 수필의 제재가 될 수 있을 만큼 수필의 제재는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고, 듣고, 겪게 되는 모든 일들의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일까지도 얼마든지 수필의 제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그런 만큼 수필문학의 범위는 더욱더 넓어진다. 물론 소설이나 시, 희곡 등도 제재의 선택에 있어서 제한이나 구속은 없다. 이런 문학 장르들도 작가의 의도나 필요성 등에 따라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또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일들 속에서도 제재를 선택해 내고 이를 작품화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설이나 시, 희곡 등은 각기 정해져 있는 형식이나 제약을 회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작품 구성상 정리나 압축, 재구성, 허구의 삽입 등이 많이 요구되기 때문에 자연히 제재의 선택 폭 또한 좁아지기 쉽다.
이런 점들을 볼 때 소설이나 시, 희곡 등을 도로가 있어야 달릴 수 있는 자동차나 레일이 있어야 달릴 수 있는 기차에 비유한다면 수필은 항공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새나 비행기에 비유할 수 있다. 물론 비행기도 여객기 같은 경우에는 정해진 항로에 따라 가는 것이므로, 여기서 말하는 비행기란 전투기와도 같이 이런 제한된 항로에 구애받지 않는 비행기를 뜻한다.
수필의 종류만 살펴보더라도 문학성을 갖춘 문예수필을 비롯하여 일기문, 기행문, 서간문(書簡文), 감상문, 칼럼, 전기, 자서전, 권두언 등 많은 글들이 수필의 범주에 속한다.
여기에다 옛날에 쓰여진 수필 형식의 각종 글들까지 포함시킨다면 수필의 종류나 범위는 더욱 다양하고도 광범해진다.
그래서 '국문학 산문(散文) 중에서 소설, 희곡 등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수필이다' (우리 어문학회[국어학개론])라는 견해마저 있을 정도로 수필의 영역은 실로 넓다.
[세계문예강좌 문학개론]에서도 수필의 영역이 참으로 넓음을 역설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수필을 산문문학의 대표적 양식이라고 볼 때 수필의 범위는 거의 종잡을 수 없는 정도로 광범위해진다. 그것도 학문이나 과학에 포함되지 않은 모든 일반적 산문, 가령 문학평론, 수상, 일기, 서한, 자서전, 전기, 격언, 각종 의견 등 기타의 창작적 요소를 지닌 일체의 산문 문학적 문장을 총칭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 수필은 전문적 산문(학문이나 과학) 이외의 창작적인 요소를 지닌 모든 산문 문학적 문장을 의미한다....

김진섭 또한 그의 [수필의 문학적 영역]이란 글에서 수필의 외형적 광범성과 제재의 다양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 내요의 일부만 살펴보면 이렇다.

...분망(奔忙)중에 쓰인 일편(一片)의 서간(書簡), 남몰래 적힌 일업(一業)의 일기라도 그 문장 속에 필자 그 사람의 생명이 약동하고 있기만 하면 그것이 훌륭한 수필문학 일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그 제재 역시 그것이 바드시 '문학적인 것'일 필요는 조금도 없는 것이니, 여기 가령 과학자가 과학을 말하든, 정치가가 정치를 말하든, 혹은 여행기(旅行記)가 만연(漫然)한 견문(見聞)을 말하든 여하간에 말하는 사람이 누구임과 말하는 대상이 무엇임을 막론하고 말하는 그 사람의 심경이 전인생(全人生) 위에 확충(擴充)되어 있기만 하면 그 말은 반드시 문학적 가치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수필은 무엇이든지 담을 수 있는 용기(容器)라고도 볼 수 있을지니 무엇을 그 속에 담든 그것은 오로지 필자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길 수밖에 없고 그래서 수필은 그 담는 내용과 그것을 요리하는 필자에 준해서 그 취향이 여러 가지로 변화할 것은 또한 물론이다...
...모든 사람에게서, 그리고 모든 영역에서 볼 수 있는 이 수필의 종별(種別)이 변화무쌍할 것은 이의 당연한 일이다...


일부에서는 연설집이나 설교집, 또는 철학론, 종교론, 과학론 등도 수필의 범주 속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가리켜 '종교적 수필'이니 '철학적 수필'이니 '정치적 수필'이니 하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도 수필의 영역이 넓고 외형적으로나 제재상으로나 자유스럽고 폭넓은 문학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수필의 영역이 이처럼 넓고 외형적, 제재상으로 아주 자유스럽고 폭넓다고는 해도, 그 내용이나, 구성, 문체, 논리성 등이 부족하고 문학성, 작품성이 결여되어 있으면 결코 수필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것들은 단지 신변잡기나 기록문, 설명문, 비망록, 신상보고서, 또는 낙서 따위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수필은 그 영역이 아주 넓고 수필처럼 보이는 글들이나 수필이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글들은 많지만 정말로 문학적, 예술적 가치를 지닌 '진짜 수필'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5) 창조성 (創造性)과 문학성 (文學性)
수필은 다른 문학 장르들과 마찬가지로 창작 예술이다. 따라서 수필은 각 작품마다 고유의 개성이나 독특한 특징이 있어야 하고, 문학으로서의 새로운 면이나 시도도 있어야 하며 문학적인 가치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즉 수필은 순수한 창작 예술인 만큼 그에 걸맞는 창조성과 문학성, 또는 예술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것들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수필이 아니라 잡문에 불과한 것이다.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쓰여진 많은 글들이 진정한 수필로서 평가받지 못하고 고작 잡문 대접을 받는 것도 수필이 지녀야 할 창조성과 문학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수필에 있어서도 창조성과 문학성은 꼭 필요하고도 중요한 것이다. 물론 수필다운 수필, 멋지고 훌륭한 수필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좋은 문장이나 훌륭한 구성, 예리한 관찰력, 상념의 넓은 폭과 깊은 여과 과정, 유머와 해학 등 여러 가지가 요구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과 함께 창조성과 문학성도 꼭 필요한 것이며, 그 비중 또한 크다. 게다가 좋은 문장이나 훌륭한 구성 등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창조성과 문학성의 범주에 속한다.
특히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진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각으로 사물을 예리하게 살펴보고, 깊은 고뇌도 있어야 하며,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창조적 사고(思考) 또한 충분히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독창적이고도 문학성이 높은 수필 작품을 빚어낼 수 있다.
즉 고정관념의 파괴와 창조적 사고가 충분해야만 수필다운 수필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또 문화 예술이란 원래 고정관념을 파괴하고, 새롭고 독특한 사고로서 새것을 창조해 내는 행위이다.
그래서 미국의 시인 에머슨도 일찍이 '새로운 문화예술은 옛것을 파괴한다'고 했다. 또 프랑스의 자가 발자크도 '문화예술의 사명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새롭게 표현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사실 평범한 사고나 고정관념, 또는 기존의 것들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모방하려는 자세로서는 좋은 수필을 쓸 수 없다. 또 이렇게 해서 쓰여진 수필(엄밀한 의미에서는 수필이라고 하기도 어렵지만)은 독자들의 공감이나 갈채도 얻지 못하는 법이다. 때문에 좋은 수필, 독자들의 공감이나 갈채를 받을 수 있는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작가 자신이 우선 창조적 사고력이 있어야 한다. 또 이를 위해서는 의식의 변화와 '의식의 담금질'이 계속되지 않으면 안된다.
수필을 쓰는 kr가 자신부터 변해야 창조성과 문학성이 뛰어난 수필 작품을 쓸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평범하고도 흔한, 그저 그렇고 그런 잡문밖에 쓸 수 없다.
또한 수필을 쓰는 작가의 창조적 사고와 의식의 변화는 곧 작품의 창조성과 문학성으로 이어져 나타난다. 그리고 수필 작품에 있어서의 창조성과 문학성도 자연히 훌륭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창조성이 결여되어 있으면 자연히 그 작품의 문학성도 떨어진다.
이 점에 대해 김구봉은 그의 [내력과 성격으로 본 수필의 문학성과 창조성]에서 다음과 같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문학성이란 소재의 정시화요, 주제의 효율적인 이미지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조성이란, 이 문학성에 의해 그것이 문장으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필의 생명은 문장이라할 만큼 창작 기능과 문장과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수필의 문학성은 곧 창조성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윤오영(尹五榮)은 일찍이 수필의 창조성과 문학성을 곶감에 비유하여 설명한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수필은 곶감에 비유될 것이다. 감나무와 고욤나무는 똑같아 보이지만은 감나무는 감이 열리고, 고욤나무에는 고욤이 열린다. 고염과 감은 별개다. 소설이나 시는 잘못되어도 그 형태로 보아 소설이요 시지, 다른 형태의 것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잡문은 감나무롸 고욤나무가 서로 다르듯,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면 곶감이란 어떤 것인가
감나무에는 아름다운 열매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 푸른 열매가, 그러나 그 푸른 열매는 풋감이다. 늦은 가을의 풍상(風霜)을 겪어 모든 나무에 낙엽이 질 때 푸른 하늘 찬서리 바람에 비로소 붉게 익은 감을 본다. 감은 아름답다. 이것이 수필이다. 수필의 찬란하고 화려함을 말한다. 그러나 감은 곧 곶감이 아니다. 껍질을 벗겨야 한다. 껍질을 벗겨 찬서리 내리는 데서 말려야 한다. 그리고 여러 번 손질해야 한다.
그러면 당분이 겉으로 나타나 시설( 雪)이 거기에 앉는다. 만일 그 감이 덜 익었거나 상했으면 시설은 생기지 않는다. 시설이 잘 앉은 다음, 그것을 여러 가지 형태로 접는다.
수필은 이렇게 해서 만든 곶감이다...

장백일도 그의 [고뇌와 창조]라는 글에서 수필에서의 창조성과 문학성은 아주 중요한 것이며 이것은 작가의 깊은 고뇌와 창조적 고통에서 비롯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즉,

...그러기에 수필은 구상화(具象化)에의 산문이기도 하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형상화란 단순한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창조(창작)를 뜻한다. 즉 정서와 상상과 사상을 하나로 융합시키는 창작성을 말한다. 수필은 이데올로기를 위한 선전도구도, 무엇을 위한 계몽 수단도 아닌 오직 인생의 본질적인 나타냄으로서의 창조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수필의 어려움이 있다고 여긴다. 수필이 정서와 상상과 사상 속에 용해되는 문학성을 떠나는 순간, 그것은 한낱 무용의 공염불이나 불모의 사막으로 화하는 신변잡기가 아니면 신변잡사로 추락하고 만다. 거기엔 수필적 진통과 고뇌가 없어서이다. 그 점에서 작자의 수필작업에의 진통과 고뇌는 수필 창작에의 어머니이다.
위대한 생명이 위대한 진통에서 태어나듯 좋은 수필, 훌륭한 수필은 소재를 작자의 정서와 상상 속에서 여과시키는 창작에의 진실한 진통과 고뇌로부터 피어난 꽃이다.
수필의 감동은 그로부터의 결과이다...
...작자의 개성이 갖는 창작은 그 개인으로부터 열리는 존재에 대한 새로운 개명(開明)이요 해명이 아닌가. 그 창작성이 언어 예술화로 꾀해질 때 그것이 바로 수필의 문학성으로 이어진다. 그러기에 진통과 고뇌의 창작성은 수필의 문학성도 더욱 진지하게 고취시킨다. 그래서 진정한 수필은 고뇌로부터 탄생되어진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통해 볼 때 수필가나 수필을 쓰려는 사람들은 문학적 창조를 위한 고뇌와 고통을 더욱 깊이 겪지 않으면 안된다. 또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기꺼이 받아들일 때 창조적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또 깊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작품의 창조성과 문학성을 높이고 정말 좋은 수필, 수필다운 수필로 태어나게 한다. 창조성과 문학성이 없는 글은 수필도 아니며 죽은 글이다.


출처
https://cafe.daum.net/jsoopil/eue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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