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 현장의 박정희 대통령
새마을운동은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가 함축하고 있듯이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을 희망하던 국민의 요구와 ‘조국근대화’를
추진하던 국가의 의지가 결합된 ‘잘 살기 위한 운동’이었다.
1970년에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해방과 분단, 전쟁과 페허, 4·19와
5·16 등과 같은 한국현대사의 유산들이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산물이었다.
새마을운동의 태동배경은 첫째, 1960년 5·16을 통해 집권에 성공한
박정희 체제는 국민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얻고 국가통치의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를 위해 반공주의와 발전주의에 기초한 ‘조국근대화’ 전략을 추진하고
자 하였다.
둘째,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적 수행으로 연평균 9%대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였지만 경제발전을 향한 국가와 사회의 열망은 여전
하였다.
셋째,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탈농현상’과 도시빈민문제 등 다양한
사회구조적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으며,
이를 치유할 수 있는 사회통합의 국가적 시도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새마을가꾸기사업’을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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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가꾸기 사업추진 상황보고(2차)>,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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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마을운동은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지방장관 회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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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해서 ‘새마을가꾸기’를 처음으로 언급하면서 농촌부흥을 위한 국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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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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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1971년 정부는 새마을가꾸기사업을 시행하여 전국 33,26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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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시멘트 336포를 공급하고 마을 앞길 확장, 공동빨래터·공동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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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 등 마을공동사업을 중점적으로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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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정부는 사업성과가 우수한 마을 16,600개를 선정하여 시멘트 500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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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철근 1톤을 추가로 지원함으로써 이후 마을의 등급화와 차등 지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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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새마을운동의 추진원리를 수립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 1970년대 ‘사업’에서 ‘운동’으로
농촌마을의 적극적인 참여와 기대하지 않은 성과로 인해 1972년 새마을가꾸기
사업은 농촌환경개선을 위한 하나의 ‘사업’에서 전국민적 참여를 요구하는 ‘농촌
새마을운동’으로 확장되어 시행되었다.
1976년에는 도시지역의 공동체의식을 높이고 새마을운동의 범국민화를 위하여
‘도시새마을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이로써 새마을운동은 짧은 기간
동안 지역과 세대를 넘어 급속도로 파급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