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증이 현실로… 「권폭 유착」 충격/조직폭력/“소탕” 비웃듯 끝없는 세 확대/전국 규모로는 10개파 설쳐/5백여 조직원… 두목은 “지역유지”
대전지역 폭력배와 판·검사,국회의원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술자리 합석사건이 폭로되면서 폭력과 권력과의 유착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여러 사건들을 둘러싸고 폭력과 권력의 유착가능성에 대해 많은 의혹들이 제기돼 왔으나 대부분 파헤쳐지지 못하고 묻혀버렸던 점에 비추어 이번 사건은 이같은 막연한 의혹들이 현실적으로 입증됐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해방후 정치권력에 기생하며 생성된 조직폭력배들은 5·16 이후 이정재의 처형과 대대적인 깡패소탕,10·26 후의 삼청교육 등 몇차례 수난을 당하면서도 끊임없이 세력을 넓혀왔다. 70년대말의 고도 경제성장에 힘입어 80년대 초반부터 향락산업이 번성하면서 이들 폭력조직들은 빠찐꼬와 유흥업소 운영 등 자금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됐으며 이제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정치인을 길러낼 수 있는 「마피아」 초기단계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 수사당국의 분석이다. 내년부터 지자제의 실시와 함께 각종 선거가 잇따라 실시될 예정이어서 이를 계기로 또다시 이들 조직폭력배들이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조직폭력의 실태와 권력과의 유착관계 및 그 자금원 등을 벗겨본다.<특별취재반>
해방후 종로 우미관을 중심으로한 김두한계와 동대문을 무대로한 이정재·임화수계가 형성돼 활동한 것이 우리나라 폭력조직의 효시로 꼽히고 있다. 4대 문안 안도니파 안상모 씨도 여기에 속한다.
이후 자유당 후반 서울 명동을 무대로 활동하기 시작한 신상사파까지를 조직폭력의 초기단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정재등이 서울에서 활동하는 동안 일부 지방도시에서는 50년대 후반부터 「케세라」·「행여나」·「OK」 등 고교 폭력서클이 결성되기 시작했고 이들이 사회에 진출,광주시내 대호다방과 동아다방을 무대로 「대호파」와 「동아파」를 조직했다.
60년대 전반 이들 양계파간의 주도권 쟁탈전에서 동아파가 패배하자 동아파 부두목 박영장이 상경,서울 무대에 진출했다.
박의 상경 후 분파되는 과정에서 규모가 작은「서방파」가 탄생했으며 대호파는 「OB파」로 이름을 바꾼 뒤 다시 「구OB파」와 「신OB파」로 분파됐다.
신OB파 부두목 이동재는 78년 직계 행동대장 안득순에게 두목 박남현을 살해토록 지시했으나 실패하자 상경,서울에서 「OB파」를 재건했다. 그러나 이 역시 사실은 아니다.
70년 상경,무교동일대 범호남파 두목 오종철 사단에 들어간 조양은은 75년 1월 명동 신상사파와의 싸움에서 이긴 뒤 78년 11월 독자계보인 「양은파」를 결성해 서울·광주·순천 등지까지 세력을 넓혔다.
전국 최대 최고 조직이 양은파로 등극되 있는 것이다.
김태촌은 74년 6월 번개파 두목 박종석의 권유로 번개파에 들어가 번개파와 범호남파(두목 오종철)의 전쟁중 오종철을 난자,불구로 만드는 「승리의 주역」으로 이름을 떨치게 됐다.
김은 구신민당 전당대회 등 각종 정치집회에서 활약,수차례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다.
김은 「자금」을 독식하는 스타일이어서 의리를 중시하는 다른 폭력배들이 경원시하기도 했다.
이동재는 78년에 자신의 두목 박남현에게 반기를 들고 서울에서 두목으로 활약,조양은·김태촌파 등과의 전쟁중에 세력을 넓혔다.
이같은 우여곡절을 거쳐 조양은·김태촌·이동재의 「3대 패밀리」가 탄생했다.
3대 패밀리는 전국폭력계의 천하통일을 꿈꾸며 자리를 넓혀가다 80년 삼청교육이 시작되면서 주춤해졌다.
그러나 12대총선과 87년 12월 대통령선거,88년 4월 국회의원선거를 치르면서 폭력조직은 호국청년연합회·신우회·일송회·새마음회 등의 이름으로 우익 반공단체 또는 청소년 선도사업을 하는 것처럼 위장,전국적 조직으로 확대 재편하는 경향을 보였고 심지어 일본 동경과 미국 LA까지 지부를 결성하는 등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이들 폭력조직들은 올들어 두목급등이 수사당국의 추적대상이 되자 호청련등은 자진 해산했으며 신우회의 실질보스인 김태촌은 구속되는 등 다시 세력이 와해되는 과정에 있다.
현재 검찰이 분류하고 있는 전국규모의 조직폭력배는 서방파(두목 김태촌·구속)·양은파(두목 조양은·구속)·OB파(두목 이동재·해외도피)·번개파(두목 박종석)· 수원의 최창식파. 부산 칠성파(두목 이강환)·영도파(두목 천달남)·전주파(두목 문용택)·이리 배차장파
전남 신안 새마을파 (두목 신규섭)·군산파(두목 형철우)·목포파(두목 강대우) 등이다.
이밖에도 맘보파(두목 오재홍)·전주 월드컵파(두목 주오택)·대전 진술파(두목 김진술)·옥태파(두목 김옥태)·영등포파(두목 유사춘) 등도 관할지역을 근거로 폭력을 행사하는 대규모 조직폭력배로 꼽히고 있다.
이들은 세력이 커지면서 두목의 경우 고급승용차를 3∼4대씩 굴리며 경호원 10여명씩을 데리고 다니고 있으며 최고 60명씩의 조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조직폭력배들은 자신들의 세과시를 위해 행사때마다 전조직원을 동원하고 정·재계 유력인사와 지역유지들과 친분관계를 맺는등 위세를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도 출소 하자 마자 개털되는 게 보통이다. 당국의 타깃은 곧 몰락의 길이다.
86년 6월 서방파의 김태촌이 한강 고수부지에서 사회 저명인사들을 초청해 축구대회를 열어 위세를 과시한 것은 폭력세계의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권력폭력/구속·연행땐 “봐주라” 각계 「압력」빗발/정치인 뿐만 아니라 법조인과도 “공생”에 경악
폭력조직의 두목급이 수사기관에 검거되거나 조사를 받게 되면 국회의원·권력기관·공직자 등에서부터 종교계·언론계 인사까지 구명운동을 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선거를 치르는 동안 폭력조직들의 도움을 받은 정치인들이 이들이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게 되면 여러 채널을 통해 압력을 넣거나 청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폭력계 인사중 국회의원들과 가장 빈번하게 도움을 주고받은 사람은 과거 야당의 간부를 지낸 S씨의 사위 박영장씨(46)로 알려져 있다.
박씨는 76년 신민당 각목 전당대회에 개입한 대가로 야당의 거물정치인은 물론 각종 정보·수사기관 관계자들과도 친분을 맺었다.
검찰주변에서는 83년 여수 앞바다 양식장 이권분쟁에 개입한 OB파(두목 이동재) 조직원들을 수사했던 K모 검사가 2년 뒤 검찰을 떠나게 된 것은 박씨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관계자들은 박씨가 K검사에게 직·간접적으로 청탁·압력을 넣었으나 통하지 않자 모든 실력자들을 동원해 K검사를 모략중상,결국 K검사는 자체감찰을 받은 뒤 사표를 제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78년 부하들을 시켜 도박판을 턴 OB파 이동재씨가 부하들과 여관에 투숙중 성북경찰서 형사대에 검거됐으나 곧바로 풀려난 배후에도 박씨의 힘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박씨는 관할검찰청 부장검사로 있던 K씨에게 부탁했고 K부장검사는 『이씨는 검거된 폭력배들과 관계없는 다른 방 손님』이라고 경찰에 통고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막강한 힘이 소문나면서 박씨는 일약 재경 전남 폭력조직의 대부로 부상했고 심지어 서울 A호텔 빠찐꼬 사장으로부터 「전남몫」을 받아 이동재·김태촌씨에게 나누어 주기도한 사실이 검찰내사 결과 밝혀진 바 있다.
현역 야당의원인 K·Y의원은 강대우(43·목포파 두목)·이택현(서방파 부두목)씨 등과 매우 가까운 사이로 이들 폭력배들의 신상에 문제
가 생기면 검찰과 경찰의 수뇌부에 청탁·압력을 넣었던 것으로 수사기관은 파악하고 있다.
Y의원은 88년 이동재씨가 서울 이태원 유흥업소 주인들을 협박,수억원을 갈취한 혐의로 서울시경이 구속영장을 신청하자 영장기각을 위해 검찰수뇌부를 상대로 로비까지 벌였다는 후문이다.
Y의원은 이씨가 끝내 구속되자 강대우씨를
대동,이씨가 수감중이던 서울 구치소에 특별면회를 가 이씨에 대한 대우를 잘하도록 구치소 간부들에게 「호통」까지 쳤다는 게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항간에는 서방파 두목 김태촌씨가 89년 폐암을 이유로 형집행정지 결정으로 풀려난데도 이를 K·Y의원들의 힘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덕진 덕일 형제의 최측근 오쌍택(일명 쌍택) 씨도 말레이시아의 도피 사건도 돈의 카지노의 흐름이 흥망을 좌우한다.
이처럼 야당 정치인들이 동향의 폭력조직 두목급들과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과거 모든 공권력이 여당후보 당선을 위해 움직이던 시절 이들 폭력조직은 경찰력등에 맞설 수 있는 야당후보의 유일한 무력부대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5월 서울지검이 구속한 김태촌씨의 경우는 조직폭력배가 활동범위에 따라 얼마나 많은 비호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검찰조사결과 김씨는 지난해 6월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다 몇몇 귀중품의 통관보류처분을 받은 고향친구들의 연락을 받고 즉시 공항으로 가 김포공항 상주기관원의 「안내」를 받으며 통관보류 물건을 들고나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김씨가 중간보스급 3명과 함께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호텔 근처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승용차에서 발견된 칼·도끼·가스총 등이 문제가 돼 경찰서에 연행됐을 때도 전 대통령 경호실직원 이모씨가 나타나 담당경찰관들과 몇마디 나눈 뒤 김씨를 데리고 나갔다는 것이다.
정치인·권력기관 종사자들처럼 폭력배의 비호세력으로 분류할 수는 없어도 합법적으로 폭력배들을 비호하는 사람들이 일부 폭력배와 유착된 변호사들이다.
현재 법조계에서는 L·K·B 변호사 등 5∼6명이 폭력조직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변호사들은 일반 변호사들이 좀처럼 수임을 꺼리는 조직폭력사건을 단골로 맡아 변론하는데 최근 개업한 K모 변호사의 경우 한 조직폭력배 사건을 무려 7천만원에 맡았다는 소문이 변호사들 사이에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자금조달/청부폭력·유흥업소 휘잡고 최근엔 히로뽕 밀조·부동산 투기도
8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현대건설 노조위원장 납치사건 수사때 범인 3명은 현대건설 관계자로부터 4백만원을 받고 범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의 추가수사에서 주범 이모씨(49)는 『이번일만 성공했으면 현대백화점의 정육점을 부하들에게 얻어 주려고 했다』고 범행후 대가로 무엇을 노렸는지를 실토했다.
이처럼 조직폭력배들은 조직활동을 위해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청부폭력·빠찐꼬 경영·주류판매 등을 통해 조달한다는 게 수사기관의 분석이다.
특히 최근들어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국내 폭력조직들도 빠찐꼬·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에 손을 대 엄청난 자금원을 확보했고 심지어는 히로뽕 밀조·부동산 투기 등에도 손을 대고 있는 것으로 수사기관은 보고 있다.
구속된 서방파 두목 김태촌씨가 제주 KAL·서귀포 KAL·광주 신양파크호텔 빠찐꼬 경영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강탈한 사실은 조직폭력배들에게 현금조달이 가능한 빠찐꼬가 얼마나 매력적인 수입원으로 인식되는 가를 알려준 셈이다. 그럼에도 오래가지 못한다.
검찰은 이와 함께 검거당시 김씨가 갖고 있던 1억원짜리 당좌수표 2장등 2억2천여만원의 출처조사끝에 조직폭력배들이 해외원정 도박단까지 유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결국 김씨가 갖고 있던 당좌수표 2장은 부하 이석권씨(40)가 국내 기업인들을 마카오로 불러내 돈을 빌려주며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게 한 뒤 국내에서 받은 노름빚이었던 것.
또 김씨가 지난 4월 엘리트그룹 회장 정성모씨(54·구속)를 호텔로 납치,정씨가 일본 야쿠자조직원 시미즈 아키다를 협박해 받아낸 5억2천만엔짜리 지불각서 2장을 불태워버린 사건도 조직폭력배들이 부동산에 돈을 대기 시작한 것으로 수사기관은 보고 있다.
정씨는 시미즈가 내놓은 일본내 사찰을 재일동포가 매입하도록 도와주어 25억원 상당의 전매차익을 챙기도록 했는데도 사례비를 주지않자 한국에 온 시미즈를 납치,지불각서를 받아냈으며 김씨는 그후 시미즈의 부탁을 받고 정씨로부터 지불각서를 빼앗아 불태워 버렸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발생한 서울 서초동 진원유통 사장 정전식씨(당시 33) 피살사건도 자금원 확보를 놓고 벌어진 조직폭력배들끼리의 세력다툼이 빚어낸 유혈극이다.
경찰수사결과 정씨는 한때 서방파 부두목 이덕현씨를 두목으로 받들다가 주류 도매업으로 돈을 벌자 독자세력 형성을 시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정씨는 이리 배차장파의 배후인물이며 서울시내 몇몇
호텔 나이트클럽을 소유하고 있는 연예계의 대부 C모씨와 주류공급 문제등으로 충돌,C씨를 납치하는 사건까지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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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정씨가 살해된 것은 C씨를 납치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배차장파 두목 신규섭(39·수배중)이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막대한 현금이나 부동산을 가진 졸부들도 활동자금을 좇는 조직폭력배들에게는 좋은 「먹이」가 된다. 양은파의 조직원 규모는 1000명을 웃돈다.
조직폭력배들은 돈많은 사채업자·부동산업자들을 상대로 한 「등 만져주고 간 빼먹기」 수법을 쓰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채업자 김모씨(59)는 폭력배들로부터 습격받아 허벅지등을 칼로 찔린 뒤 김태촌씨에게 거액의 사례비를 주고 신변보호를 요청,김씨가 6여명의 경호원을 붙여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국내 빠찐꼬업계의 거물 정모씨가 전 호청련 의장 이승완씨나 김태촌씨 등에게 「용돈」을 줄때 한번에 수십만원을 준다는 소문도 최소한 조직폭력배들의 경제규모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하나의 반증인 셈이다.
결국 유흥업·청부폭력 등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확보한 폭력조직은 이 「검은 돈」의 일부를 정치자금등 조직보호용으로 쓰면서 조금 더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해체 밑
조직을 확대 재생산 한다는 게 수사기관의 분석이다.
[출처: 중앙일보] 파문부른 「권력과 폭력배」관계를 파헤친다(심층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