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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좋은 글방)

《쿨러닝》과 거울예찬

작성자노까제|작성시간10.07.04|조회수172 목록 댓글 2

이 글은 영화 쿨러닝 (Cool Runnings)을 보고 나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아니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1999년의 어느 여름 날,

썼던 글입니다.

 

제가 평소에 "좋은 글 방"에 글 쓰는 방식과는 약간 다르지만,

남의 글을 빌지 않고서도,

혹시 좋은 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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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어느 허름한 극장 뒷켠에 앉아 쿨러닝의 예고편을 보았을 때 들었던 생각이란 '진짜 유치하다'라는 것이었다. 열대 지방 사람들이 봅슬레드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벌이는 여러 해프닝들을 유치한 코미디로 엮으려는 영화, 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비디오를 통해- 보게 된 영화 쿨러닝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유치함"이란 그 영화가 가지고 있는 "참 가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쿨러닝은 자신감 혹은 자존심에 관한 영화다. 남의 그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가 어떻게 자기 자신을 위대한 모습으로 다시 발견하는지에 대한 영화다. 그리하여 쿨러닝은 거울에 관한 영화다.


 

2. (줄거리) 올림픽에 나가고 싶어하는 몇몇 人들이 있었다. 그들의 종목은 100m달리기. 그러나 예선전을 치르던 중 그들 중의 한 명인 "주니어"가 넘어지는 바람에 그 人들은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은 그들의 욕망은 그들로 하여금 봅슬레드라는 수단을 택하게 한다. 그들이 이리저리 해서 캐나다에 가서 봅슬레드 경기를 끝마치게 되기까지의 내용이 영화의 줄거리다. 우리는 그 중의 한 장면을 클로즈업 해 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 문제가 되었던 주니어는 -그 이름이 상징하듯-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다. 아들이 경영인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는 주니어가 봅슬레드 경기에 참가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당장 돌아오라는 전보를 친다. 이에 갈등하는 주니어는 동료 율과 함께 술을 먹다 동독 선수와 시비가 붙는다. 쩔쩔매며 꼬리를 내리는 주니어를 율은 화장실로 끌고 간다. 그리고... 

 


3. (문제의 장면) 그리고 주니어를 거울 앞에 세운다. 그들의 대화다. 

 

     율: 거울에 뭐가 보이는지 말해봐.

     주니어 : 주니어가 보여.

     율 : 내겐 뭐가 보이는지 알아? 자부심과 힘, 모욕 받고는 못 참는 존심 강한 사나이!

     주니어 : 정말 그래?

     율 : 그래. 하지만 내게 보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네가 그걸 보아야 해.

           이제 거울을 보고 뭐가 보이는지 말해봐.

     주니어 : 보여...

     율 : 자부심!

     주니어 : 자부심!... 그리고...

     율 : 힘!

     주니어 : 힘!

     율&주니어 : 모욕받고는 못 참는 존심 강한 사나이!

     율 : 다시!

     주니어 : (점차 거울 속의 자신에 집중하며 눈을 크게 뜨고 주먹을 흔들며) 자부심이 보인다.!

     율 : 크게!

     주니어 : 힘과 모욕을 용납 않는 존심 강한 사나이가 보인다!

     율 : 다시!

     주니어 : 자부심이 보인다!

     율 : 주니어!

     주니어 : 힘이 보인다! 모욕을 용납 않을 존심 강한 사나이가 보인다!

     율 : 좋았어!

     주니어 : 그래 맞아! 사나이 주니어 베빌! (주먹을 흔들며 밖으로 나간다)

 

- 그들이 나간 후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4. "사나이 주니어 베빌"... 그가 본 것은 처음에도 주니어였고 마지막에도 주니어였다(주니어의 대답을 다시 보라). 그러나 그 둘은 서로 다르다. 뒤의 주니어는 힘과 자부심을 지니고 있고 모욕을 용납하지 않는 주니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눈은 항상 밖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가며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남들이 우리에 대해 말하는 것을 우리로 생각한다. 우리에게 잠재되어 있는 위대함은 보지 못하고, 부모님의, 선생님의, 친구들의 말에 끌려 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밖을 향해 있는 눈으로 우리를 볼 수 있는 길이 있으니 그것은 거울이다. 거울에 비치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 순간은 남의 판단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의 판단으로 우리를 볼 수 있는 순간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거울을 통해 우리의 숨겨진 진실들을, 우리의 힘과 자부심을 끌어낼 수 가 있는 것이다. 
 

 

5. 자메이카라는 덥고 못사는 나라. 봅슬레드 경기에 참여한다는 말에 그 나라 사람들이 했던 반응이란 오직 비웃음뿐이었다. 훌륭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자신을 깔보고 마는 나라 자메이카. 위의 율이 올림픽에 매달리는 이유는 그 못사는 나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선수들에게 있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봅슬레드 경기에 참여했을 때 그들은 지난 해 우승국인 스위스 흉내를 낸다: "스위스 선수들은 출발을 이런 식으로 하더라, 스위스 선수들은 긴장을 풀기 위해 저렇게 하더라..." 그 결과인 즉 어색함과 우스꽝스러움이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남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서 방법을 찾기 시작했을 때, 그리하여 자메이카의 리듬에 맞춰 발을 맞추고, 호흡을 맞춰 경기에 임했을 때 비로소 그들은 우수한 성적을 낼 수 있었다. 그들 자신 안에 이미 능력은 숨겨져 있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란 그 숨겨진 능력을 단지 "발견"해 내는 것이었을 뿐이다. 그들이 자메이카의 리듬을 탔다는 것, 그것은 그들의 나라 자메이카 안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것, 자메이카에 대한 자부심을 끌어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나이 주니어 베빌은 자메이카에 대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6. 우리에게 거울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혹 사춘기 시절 하염없이 솟아나는 여드름을 증오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던가? 제 얼굴에 붙어 있는 티를 없애기 위해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었던가? "여드름"... 그것은 쿨러닝에 섞여 있는 유치한 장면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참 가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 이제 거울을 보자. 그 속에서 꺼져 가는 눈빛을 활활 타오르게 하고, 뾰로퉁한 입가에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번지게 하자. 우리 이제 쿨러닝을 보자. 그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우리 자신의 소중함을 끌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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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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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노까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07.04 이번에 훈이님과 함께 멀든으로 이사를 오면서 제가 거울 때문에 훈이님의 시간을 많이 뺐었습니다. 훈이님은 아마 왜 그렇게 제가 거울에 집착했었는지를 이해하실 수 없었을 겁니다. 지금 라스베가스에서 한창 흥에 겨우실 테지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전하고, 왜 거울이 중요했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작성자기름챙이 | 작성시간 10.07.05 거울을보며 자신을 돌아보고, 객관성도 중시할줄아는 이론과실체 노까제님! 일신 우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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