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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세 딸/엘리프 샤팍

작성자ischoi|작성시간23.04.23|조회수60 목록 댓글 0

튀르키예의 현실을 낱낱이 파헤친 날카로운 통찰력

『이브의 세 딸』의 저자인 엘리프 샤팍은 외교관인 어머니를 따라 여러 나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양한 세상을 경험한 덕분에 그녀는 고국인 튀르키예의 상황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특히 엘리프 샤팍은 정치학자이자 여성학자라는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녀의 작품은 정치와 여성 인권을 포함하여 다양한 문제에 관한 고찰이 녹아 있다. 『이브의 세 딸』은 튀르키예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하여 튀르키예의 정치, 사회, 여성 인권, 종교적 혼란이 담긴 내용을 모두 아우르며 전개된다.

작품에 나오는 튀르키예 부르주아들의 모임은 튀르키예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 준다. 그들은 집 밖에서는 권력자의 눈치를 보며 정치에 대해 한마디도 말을 얹지 못하지만, 집 안에서는 그들끼리 정치를 비판하기도 하고, 공고한 남성 카르텔을 통해 여성을 배제하기도 한다. 또한 불합리한 공작을 벌임으로써 쌓은 재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이브의 세 딸』은 튀르키예의 현실을 통쾌하게 꼬집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혼란스러운 튀르키예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이 투영되어 있다. 『이브의 세 딸』에서 묘사되는 작가의 본질적인 외침은 우리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중동권의 종교 문제와 여성들의 우정

『이브의 세 딸』에는 주인공 페리와 그녀의 친구들, 즉 ‘이브의 세 딸’이 나온다. 종교를 극단적으로 증오하고 비판하는 무신론자 쉬린, 히잡을 쓴 독실한 이슬람 신자이자 페미니스트인 모나, 종교와 무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유부단한 페리. 서로 다른 중동권의 세 여성은 작품 내에서 ‘한 명의 죄인, 한 명의 신자, 한 명의 방황하는 영혼’으로 묘사된다. 그들은 논쟁하고, 다투기도 하지만 그 모든 환경과 신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대감을 깊게 나누며 영혼의 단짝이 된다.

“절대적 무신론이나 절대적 독실한 신앙은 내겐 똑같이 문제일 뿐입니다. 내 역할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 약간의 믿음을 심어 주고, 믿는 사람에게 약간의 회의론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겁니다. 범주에 대한 회의지요. (중략) 획일적인 것은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획일적인 곳에서는 철학도 예술도 나오지 않아요.” _본문 중에서

이도 저도 아닌 채 항상 방황하는 페리가 아주르 교수에게 빠진 이유는 그의 강의 내용에 있다. 아주르 교수는 중요한 건 신의 실존 여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신의 존재를 맹목적으로 믿는 것도, 무조건 부정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의심하고, 탐구하고, 나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아주르 교수의 입을 빌려, 작가는 우리에게 ‘독실한 신자에게는 약간의 회의가 필요하며, 무신론자에게는 약간의 믿음이 필요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자신의 생각을 확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독실한 신자나 무신론자를 매도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니다. 이 작품은 신자와 비신자 모두를 포함해서 본인만의 확신에 의심의 싹을 틔우고, 다른 방향으로 열린 사고를 할 수 있게 만든다.

세 아이의 엄마인 페리는 초호화 파티에 초대되어 딸과 함께 길을 나선다. 심각한 교통 체증으로 인해 차를 정차한 사이에 강도를 만나 지갑을 빼앗기고,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진다. 그 과정에서 페리의 지갑 한쪽에 감춰 두었던 사진 한 장이 드러난다. 그 사진은 페리가 애써 묻어 둔 오래된 사진 한 장이었다. 그 사진은 페리를 과거의 회상으로 데려간다.

페리는 독실한 이슬람교도인 엄마와 종교에 회의를 가진 아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상반된 이념을 지닌 부모 사이에서 페리는 짓눌려 왔다. 끊임없는 부모의 싸움을 보고 자란 페리는 이도 저도 아닌 혼란스러운 가치관을 가진 채 성년이 된다. 그녀는 지식의 탐구를 중요하게 생각한 아빠에게 좋은 딸이 되고자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한다.

페리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종교를 증오하는 당당한 성격의 쉬린과 신실한 이슬람교도이자 페미니스트인 사려 깊은 성격의 모나를 만나 친구가 된다. 부모의 종교적 다툼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페리는 신에 대해 강의하는 아주르 교수의 수업을 듣게 된다. 페리는 자신이 평생 품어 온 불안과 혼란을 대담하게 해소시키는 아주르 교수에게 매혹된다. 그러나 학생의 신분으로 교수에게 빠진 페리에게 큰 재앙이 닥쳐오는데…….

추천사

다른 세계, 관점, 가능성에 대한 연결을 제시하는 사려 깊고 매력적인 책이다._선데이 타임스

풍부하고 서사시적이고 코믹하며, 환상적이면서 현실적이다. 모든 좋은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는 인간 경험에 대한 더 깊은 의미를 전달한다._파이낸셜 타임스

샤팍은 몇 년 만에 서양 독자들에게 다가간 가장 흥미로운 터키 소설가이다._아이리쉬 타임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질문보다는 답을 원한다. 혼란을 정리해 줄 명확한 답을. 어떻게 보면 무신자들도 마찬가지다. 이상하게도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매우 제한적인데도 일어나서 나는 모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우리 주변에는 늘 많이 아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나는 확실치 않아,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 아직 답을 찾고 있어 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어쩌면 나 혼자일지도 모르겠다.

신에게서 그토록 많은 것을 배우다 보니
나는 더는 기독교인도, 힌두교도도, 이슬람교도도, 불교도도, 유대교인도 아니다
내가 그토록 많은 진리를 깨닫다 보니
나는 이제 남자도, 여자도, 천사도 아니며,
더욱이 순수한 영혼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하피즈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활동은 앎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앎은 곧 자유이기 때문이다.

스피노자

당신과 같은 생각, 같은 견해 사람들의 책만 읽는다면 당신은 글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학문을 종합하세요. 신이 궁금하다면 절대 종교에만 집착하지 마세요. 종교적 다툼과 분쟁은 인류를 분열시키고 마음을 닫게 만듭니다. 수학, 물리학, 음악, 회화, 시, 무용에 적용하세요. 예술은 탐구하는 것입니다. 신학도 탐구입니다. 그러니까 신을 믿든 안 믿든 창의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저희 엄마처럼 종교로 피신해 그곳에서 버틸 힘을 얻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여성은요. 그들은 신께 도달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이며, 이 방법을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이 사람들에게 다른 생각에 마음을 열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확신하지 마세요 라고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요? 그들이 가진 유일한 보호 장치를 제거해야 하나요? 붙잡을 수 있는 믿음조차 없다면 엄마는 미쳐 버릴 겁니다.

연구하고 공부하지 않고, 단지 외워서 믿을 뿐 다원주의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견해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 또는 가장 높은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뿐입니다. 절대적인 것은 부족함을 뜻합니다. 절대적 무신론이나 절대적 독실한 신앙은 내겐 똑같이 문제일 뿐입니다. 내 역할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 약간의 믿음을 심어 주고, 믿는 사람에게 약간의 회의론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겁니다. 범주에 대한 회의지요.
종교인들은 비판적 사고와 회의적 질문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과학계의 많은 학자는 믿음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하죠. 나는 새로운 언어를 찾고자 합니다. 나는 모든 감각이 깨어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철학, 시,예술, 과학 ᆢ 이것들을 한데 섞자는 거죠. 딜레마를 제거하자는 거예요. 우리 시대에 우리는 정체성과 규정, 구분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신에 대한 철학에서 멀어진 겁니다.

내가 신을 보는 방식으로 신도 같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에크하르트

온갖 모호함과 신비로움을 지닌 신에 관한 문제를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언어로 바꾸려 했다.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방식은 가능했을까? 그는 신을 무서운 존재나 구름 위에서 꾸짖는 부족의 토템이 아닌, 융합의 에너지이자 모두가 함께 추구해야 할 대상으로 제시했다. 요점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것이었다.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갈 수 있는 것, 길로 나서는 것이다! 신의 철학은 오늘날의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누구도 무시당하지 않는 연구의 대상으로서 신앙과 믿음의 체계가 아닌, 융합의 역활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정신적 실험이었다. 하페즈가 말했듯 이 세상의 모든 영혼이 신을 완성한다면, 그러니까 신의 철학이 유사성이 아니라 차이점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을 같은 방에 넣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게 하면 어떻게 될까?

모든 어려움과 고통에 화를 내고 원한을 갖는다면 영원의 거울을 어떻게 닦고 광을 내겠나?

메블라나

두 학자가 처음 만났을 때, 이븐 루시드는 존경받는 철학자였고 이븐 아라비는 젊은 학생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책,과학, 그리고 사랑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서 곧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였죠. 그러나 그들은 너무 달랐어요.
인간이 소우주인 자신과 대우주에 관한 지식을 어떻게 늘려 나갈까라는 주제에 대한 이븐 루시드의 답은 사색을 통해서라는 것이었죠. 그러나 이븐 아라비는 신비주의자들의 생각에 가까웠습니다. 루시드가 아라비에게 진실은 이성과 논리로 밝히는 것인가?라고 물었어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예와 아니오사이라는 것인데. 영혼은 물질에서 나오지만 육체에서 시작한다고 대답한거죠.

사랑도 사실 신앙과 같아요. 결과를 알지 못하고, 알 수 없어도, 자신을 쏟아붓는 거죠. 이 세상의 많은 것이 실제로 신앙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책을 쓰는 것도, 새로운 도시에 정착하는 것도, 끝도 알 수 없는 모험을 시작하는 것도 말이죠. 이것들 모두 일종의 신앙과 같은 거죠. 사랑은 감정을 강하게 만들죠. 황홀경에 빠지게 돼요. 제한된 자신의 존재를 넘어 누군가와 연결되는 아름다움. 그러나 사람이 사랑 또는 신앙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모든 것이 독단적 신념이 돼 버려요. 사랑도 믿음도 과장되어서는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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