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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작성자ischoi|작성시간21.04.30|조회수41 목록 댓글 0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식인 움베르토 에코의 유작 에세이

움베르토 에코의 유작 에세이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에코는 세계 각지의 대학에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펼친 학자인 동시에 전 세계 3천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 『장미의 이름』을 쓴 소설가이기도 하다. 에코의 책은 국내에서도 2백만 부가량 판매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그는 2016년 2월 19일 이탈리아 밀라노의 자택에서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이 책은 사망 직후에 출간되었다. 2000년부터 타계 전까지 쓴 55편의 촌철살인 에세이들이 담겨 있다.
에코는 잡지 『레스프레소』에 수십 년 동안 <미네르바 성냥갑>이라는 제목으로 꾸준히 칼럼을 써왔고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미네르바 성냥갑』, 『가재걸음』 등 칼럼을 묶은 책 또한 여럿 펴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신의 글들을 모은 것이 바로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식인 에코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파페 사탄 알레페!
황당하고 뻔뻔하고 피곤하고 엉망진창인 세상 살아가기

이 책의 이탈리아 원제는 『파페 사탄 알레페: 유동 사회의 연대기』로, <파페 사탄 알레페Pape Satàn Aleppe>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7곡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해석자들이 그 의미를 찾아내려고 분투했지만 대부분 명확한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말았다. 결국 이 말은 세상의 온갖 나쁜 짓을 이르는 표현으로 해석될 뿐이다.
한편 <유동 사회liquid society>는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현대 사회를 분석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국가나 신, 이데올로기처럼 위로부터의 구원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고, 개인은 지속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과연 이런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에코는 그럴수록 현실로부터 도피하지 말고 무관심과 무지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일침을 가한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정치, 사회, 종교, 역사, 예술, 인터넷 등 복잡한 세상 구석구석으로 향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세상에는 여전히 웃음과 희망이 남아 있고, 위대한 책과 예술이 우리에게 힘이 되어 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에코의 글들은 냉철하면서도 따뜻하다. 두려움이 없고 솔직하다. 먼 나라의 거물급 학자가 고상한 척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옆집 할아버지가 웃으면서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 그러니 가벼운 마음으로, 제목이 눈에 들어오는 글부터 읽어 보자.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가볍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나는 트위터도, 페이스북도 하지 않는다. 그건 헌법이 허용한 권리다. 그런데 트위터에 내 가짜 계정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걸 안 순간 나는 꼭 카살레조의 짝퉁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한번은 어떤 부인을 만났는데, 느닷없이 내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트위터에서 내 글을 잘 보고 있고, 심지어 가끔 나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지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트위터상의 그 인물은 가짜 에코가 틀림없다고 점잖게 설명했지만, 부인은 마치 자기를 자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트위터를 하지 않으면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데카르트의 말을 변주하자면 〈트위토, 에르고 숨Twitto, ergo sum〉이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공포로 온몸이 굳어 버렸다. 아스팔트 위에 사람의 뇌수가 흘러내린 광경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다행히도 그게 마지막이다). 게다가 죽은 사람을 본 것도, 돌이킬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만일 그때 내가 오늘날의 거의 모든 청소년처럼 카메라 기능이 장착된 핸드폰을 갖고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어쩌면 나는 사고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걸 친구들에게 보여 주려고 그 장면을 찍었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아는 사람들을 위해 그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을지 모른다. 그다음에도 그런 짓을 계속해 나가다가 또 다른 사고 장면들을 찍고, 그래서 타인의 고통에 무덤덤한 인간으로 변해 갔을지 모른다.
그 대신 나는 모든 것을 내 기억 속에 저장했다. 70년이 지난 뒤에도 이 기억 속의 영상은 나를 따라다니면서 타인의 고통에 냉담한 인간이 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사실 요즘 아이들에게 그런 어른이 될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도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어른들은 영원히 구제할 길이 없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글이 실렸는데, 거기서 그는 이렇게설명했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감시하는 도구 역할을 하는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는 여러 권력 기관의 통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사용자들의열정적인 기여 덕분에 우리를, 바우만의 표현에 따르면 〈고백 사회〉로 이끈다. 이 사회는 공개적인 자기표현을 구성원들의 사회적 실존을 증명하는 중요하고도쉽게 이해되는 명확한 증거의 지위로까지 승격시킨다.

1960년에 프랑스의 여러 대성당을 돌아다닌 직후내가 어떻게 갑자기 사진 찍기를 중단하게 되었는지는 이미 여러 자리에서 밝힌 바 있다. 그것도 틈만 나면 미친 듯이 세상의 모든 것을 렌즈에 담던 인간이 말이다.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가면 내 앞에는 나쁜 사진만 수북이 쌓여 있었다. 정작 내가 본 것들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카메라를 던져 버렸다. 이후의 여행에서는 내가 본 것들을 모두 마음에만담았고, 타인과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기억하려고 마음에 드는 엽서를 사기 시작했다.

트위터에서 표출되는 의견들은 하찮아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거기서는 입 뚫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마디씩 한다는 데 있다.성모 발현을 믿는 사람도 있고,손금을 믿는 사람도 있으며,9.11테러가 유대인에 의해 기획되었다고 확신하는 사람,심지어 다빈치 코드의 저자를 신봉하는 사람도 있다.나는 정치토크쇼에서 함께 내보내는 트위터 뉴스를 들으며 항상 신기해한다.이런저런 문제를 다루면서 어떻게 된 게 하나같이 남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야기만 하고,상식적이지 않은 몇몇 극단적인 정신 이상자들의 생각만 전한다.
트위터는 시골 마을이나 도시 외곽에 대형 TV화면을 갖다 놓고 스포츠 경기를 틀어 주는 술집과 비슷하다.
술집에서의 수다가 국제 정치를 바꾸지는 못한다.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다수의 생각은 각자 자기 생각을 내놓은 뒤 집계되는 투표용지의 수로 나타날 뿐이다.누군가 다른 사람이 내놓은 의견이 선택되면 술집에서 말했던 것들은 모두 잊히고 만다.

나는 트위터를 한다.그러므로 존재한다.

정상적인 인터넷 이용자라면 정신 나간 의견들과 잘 궁리해서 내놓은 의견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물론 그게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따라서 필터링의 문제가 대두된다.필터링은 트위터나 블로그에 실린 의견들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믿을 만하고 유익한 정보도 있지만 온갖 종류의 망상과 비난,존재하지도 않는 음모,역사 왜곡,인종주의자,또는 사실 자체가 틀리거나 부정확하거나 졸렬한 설명이 있는 모든 웹사이트에도 필터링은 중요하다.
해결책이 하나 있기는 하다.신문이 좋은 사이트는 추천하고,부정확한 정보나 터무니없는 헛소리를 퍼뜨리는 사이트는 경고하는 지면을 신설하는 것이다.이는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막대한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신문에서 등을 돌린 많은 사람이 다시 신문을 들추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골 빈 인간들과 신문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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