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밑에 깔리고도 살아난 보살이야기
ㅡ 임 혜인성
시간을 돌려 사고가 있었던 그날 일을 생각해본다.찰나의 순간,만감이 교차하던 그
순간,내가 부를수 있었던 이름이 부처님이어서 얼마나 다행이던가<인왕반야경>권
상 관용품에는 90찰나를 1념이라 하고,1찰나에 900번의 생멸이 진행된다고 했다.
그 짧은 순간 내가 간절하게 염한 이름은 관세음보살이었다.
지난 12월,41기 야간반 지역 가정법회에 초대를 받고 찾아간 곳은 구리시였다.주택
가 한편에 차를 세우고 법회에 참석하여 한 20여분이 지났을까,길이 좁아 차가 나갈
수 없으니 차를 빼달라는 연통이 와 주인 보살과 나는 밖으로 나왔다.길이 많이 협소
하고 가파른 언덕배기라서 위험스럽기도 했다.내가 차에 오르자 주인 보살이 앞으로
나가 내 차가 나갈 길을 수신호 해주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내 차의 브레이크가 전혀 말을 듣지 않고 앞으로 내달렸다.
수신호를 하고 있던 보살은 피하지를 못하고 달려 내려오는 내차 밑에 깔리고 말았
다.차는 앞으로 한참을 더 달려 정차되어 있는 두 대의 차를 차례로 들이받고 앞범퍼
가 완파된 상태에서 멈춰 섰다.내가 차 문을 열고 달려 나왔을 때 보살은 길 위에 반
듯이 누워있었다.
"아,어찌해아 되나,관세음보살님 아니 부처님,스님,보살님,이 일을..."
나는 보살의 머리를 끌어안고 도와달라고 외쳤다.그 순간,나는 온통 무색의 텅 빈 허
공 속으로 내던져지는 공포 속에서 전율했다.세상에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그
것도 가정법회를 보고자 초대한 주인집 보살을 치다니,그 때 죽은 듯 누워 있던 보살
이 나를 불렀다.
"보살님,저 괜찮아요. 안 죽었나봐요."
소식을 받고 달려 나온 능인식구들이 119를 불러 보살을 구리 한양대학병원으로 옮
겼다.그곳에서 임시치료를 받고 다시 아산병원으로 옮겼다.렉스톤인 내차의 무게는
보통 승용차의 두 배는 될 것이다.그런데도 보살은 갈비뼈 하나가 부러지고 배에 찰
과상을 입은 정도였다.어떻게 그 큰 차가 배위로 지나갔는데도 장파열이 안 되었을
까.
그날은 우리법당 100일기도 입재일 이었다.난 보살의 쾌유를 위해 기도입재를 하고
보살이름으로도 49일 기도를 올렸다.보살은 그날 다시 구리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다.몸이 회복 되어 갈즈음 보살이 내게 말했다.
"보살님,차의 무게가 그렇게 가벼운 건지 몰랐어요.
차 바퀴가 가슴을 넘는 순간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바퀴에 손을대 살짝 들어주는 것
같았어요.그래서 안 죽었구나 하고 일어서는데 뒷바퀴가 아랫배를 쳤어요.그런데도
찰과상만 입었어요."
참았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예견하고 나투
어주신 부처님,나 또한 차가 보살의 몸을 치고 넘는 순간 차가 붕떠서 살얼음판을 가
볍게 달리는 느낌을 받았었다.사람을 쳤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 생각했었는데 보살도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니...
내가 간사장을 맡을 때도 꿈을 꾸었다.잠실체육관에서 행사를 하기 일주일 전이었
다.그라운드 전체에 손가락만한 부처님이 빼곡히 앉아있고 원장스님만 법상에 계셨
다.그때 스님께서 게송을 읊어주시며 답해보라고 하시더니 큰 종이 한 장을 주셨다.
그 게송이 너무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받아 적지도 답도하지 못하고 꿈을 깼다.그 꿈
은 스님께서 간사장 임명장을 주신 꿈이었다.그날 그곳에 오신 많은 신장님들이 능
인선원을 도와주니 걱정말고 간사장 일을 잘 하라고 보여주신 것 같았다.그 때의 신
장님들이 사고 순간에도 달려와 나를 도와주고 보살을 살려준 것 같았다.
이렇게 큰 도움을 받은 나는 부처님을 위해 스님을 위해 능인선원을 위해 할 일이 무
엇일까! 나를 생각하기에 앞서 항상 부처님이 나에게 맡기신 소명을 생각해본다.그
책무를 마저 완수하라고 나를 구해주신것이라면 나는 더욱 열심히 정진하고 봉사해
야 한다.어디에 있든 항상 함께 해주시는 부처님!그 큰 인연을 목숨처럼 귀히 여기며
난 오늘도 힘차게 살아가고 있다.
(출처 - 능인신문)
작성자 : 어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