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제 285호 199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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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숭민프로모션 심영자 회장
“흐른 것은 시간 뿐, 내 열정은 변치 않았다”
권태동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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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퀸’이 돌아왔다.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한국 프로복싱계를 이끌었던 프로모터 심영자씨가 7년간의 ‘휴가’를 끝내고 전격 복귀선언을 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일에 대한 열정은 전보다 더 뜨겁다”는 그는 “화끈한 스타, 화끈한 프로그램으로 프로복싱 열기를 되살리겠다”고 기염을 토한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7월12일 오후 2시15분. 서울 청담동 네거리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 문을 들어서면서 심영자(57)씨는 기다리던 기자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몇번이고 거듭했다. 오후 2시 인터뷰 약속시간에 늦은 것을, 듣는 사람이 민망하리만치 사과하는 것이었다.
1백51cm, 43kg. 탤런트 김자옥씨를 연상케 하는 자그마한 체구에 목소리도 모기소리처럼 가늘었다. ‘어떻게 이렇게 갸냘픈 사람이 험한 복싱계를 주름잡는다는 것인지’라는 의구심이 저절로 생겨났다. 그러나 늦은 이유에 대한 변명(?)으로 인터뷰가 시작되면서부터 기자는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변명인즉, 중요한 계약건이 있었는데 그것을 마무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심회장은 “오늘 계약이 잘 성사돼 프로모터로 복귀하자마자 다섯가지 큰 사고를 치게 됐다”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다섯가지란 ▷8월 중국 선양(深陽)에서 남북간 권투경기 개최 ▷11월 한국선수의 평양 방문 친선경기 ▷직후 북한선수의 남한 방문 친선경기 ▷남북 권투 관계자들의 남한에서의 회합 ▷WBC 라이트급 챔피언인 몽골의 라코바 심과 한국 백종권의 세계타이틀전 등이다.
그의 표현처럼 하나하나가 모두 큰 ‘사고거리’다. 계획대로 일들이 진행된다면 잔뜩 침체돼 있는 복싱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같이 만만찮은 일을 함께 추진하고 있는 파트너는 아시아를 무대로 활발히 프로모션 활동을 펼치고 있는 범아시아권투위원회(Pan Asian Boxing Association·회장 심양섭).
이처럼 단시간에 굵직한 일들을 해치우는 ‘복싱계의 여걸’이지만 심씨가 본래 복싱과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심씨는 60년대 “죽도록 사랑했노라” “홍도야 우지 마라” 등 10여편의 영화에 출연한 꽤 잘 나가는 영화배우였다. TV 탤런트로도 장기간 활동했다. 전양자·사미자·김형자·박주아씨 등이 연예계의 오랜 친구들이다. 그러나 76년 결혼과 함께 심씨는 연예계를 떠나 평범한 가정주부로 생활했다.
그런 그가 생판 연이 없던 복싱과 인연을 맺은 것은 70년대말. 친정 오빠가 당시 세계챔피언을 꿈꾸며 훈련에 열중하던 불우소년 김성준(당시 17세)을 소개한 것이 계기였다. 심씨는 이후 김성준이 세계챔피언이 될 때까지 후원하면서 ‘헝그리 복서의 세계’를 알게 됐다. 그러면서 형편이 어렵고 장래가 있어 보이는 어린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후원했다. 남편의 이해를 얻어 아예 자신의 집에 선수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돌보고 키워줬다. 김철호·이일복·장정구 등이 그들이다.
영화배우 출신 ‘챔피언 제조기’
▲심회장 복귀 축하연에서. 왼쪽부터 이광남 회장, 장정구 前챔피언, 호세 슐레이만 WBC 회장.
그러나 이때까지도 비공식적인 스폰서 정도였다. 그러다 자신이 키운 김철호가 88체육관을 열면서 심씨도 80년초 ‘88프로모션’을 설립했고, 이때부터 프로모터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여자가 뚜렷한 이유 없이 외국을 나다니기가 어려웠어요. 프로모션이란 것이 국제적인 비즈니스인데 불편하잖아요. 그래서 한국권투위원회에 정식으로 신청서를 제출했고 프로모터 라이선스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자유롭게 외국에 다니면서 일하기 위해 ‘프로모터’라는 직함이 필요했던 것이죠.”
이후 10여년 동안 심씨는 국내 80%의 권투 매니저들과 계약관계를 맺고 프로모션업계를 장악했다. 그동안 그가 길러낸 세계 챔피언들의 면면을 보면 그가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였는지 짐작이 간다. 문성길(WBC슈퍼플라이급)을 비롯해서 김용강(WBC·WBA 슈퍼플라이급), 김철호(WBC 슈퍼플라이급), 김성준(WBC 라이트급), 장정구(WBC 라이트플라이급), 김봉준(WBA 미니멈급), 장태일(IBF 주니어밴텁급), 이경연(IBF 미니플라이급), 정비원(IBF 플라이급) 등 대중에게 친숙한 스타들이 거의 망라돼 있다.
자신을 지원해온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고, 건강도 악화되면서 91년말 심씨는 프로모션계를 떠나게 됐다. 일에 몰두하다 간석(肝石)이 심해지면서 간의 70%를 절개해 내는 고비도 넘겨야 했다. 지금도 사흘에 한번씩 영양제를 맞아야 할 만큼 건강이 상했다. 복싱계를 떠난 이후 5년 동안 그는 집안에서 몸을 추스르며 딸(30·주부)을 출가시키고 아들(고1)의 학업 뒷바라지에 전념했다. 그러나 타고난 ‘활동성’은 그를 다시 사업전선에 뛰어들게 했다.
97년 4월 심씨는 청담동에 2백여평의 미용실을 열었다. 이름난 헤어디자이너 현실고씨를 원장으로 영입, 운영을 맡기고 유명 디자이너들을 채용해 사업을 시작했다. 말하자면 오너-전문경영인 체제다. 미용실 ‘솜씨’가 강남 일대에 짜하게 소문이 나면서 사업은 번창했다.
그러던 심씨가 돌연 프로모션업계로 돌아오게 된 것은 평소 친분이 있던 숭민그룹 이광남(57) 회장의 끈질긴 권유 때문이었다.
“복싱을 사랑하고, 그래서 오래 전부터 복싱계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온 이회장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다섯차례나 저를 찾아와 복귀를 권유했어요. ‘프로복싱을 되살리려면 당신 같은 사람이 나서야 한다. 숨어서 편히 살려고만 하지 말고 힘을 좀 보태 달라’고 질책하듯 당부하시는 거예요. 네번째 찾아왔을 때 마음이 흔들렸고 다섯번째 찾아왔을 때 결심을 굳혔죠.”
5월말 복귀를 결심한 심씨는 6월3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공식 선언했다. 이광남 회장이 숭민그룹 계열사로 설립한 ‘숭민프로모션’의 회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복귀하자마자 7월6일 부산에서 백종권 세계타이틀매치 전초전을 개최,‘신고식’을 치렀다. 이 대회에서는 우리 권투사상 처음으로 여자 권투시합도 선보였다. 심회장의 아이디어였다.
“러시아·북한에서는 여자권투가 아주 성(盛)합니다.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먼저 국내에서 여자권투의 기반을 닦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아직 ‘선수’ 수준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첫 발은 내디딘 셈입니다.”
심씨의 일에 대한 욕심은 복싱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지금도 프로축구 인력 수출입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씨름을 비롯해 농구·배구 등 스포츠 전반에 걸쳐 아이템을 개발해 사업영역을 넓혀간다는 야심찬 계획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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