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기록에 따르면 마리아의 애곡이 해질 무렵의 저녁 시간에 이루어졌으므로
수도원의 승려들도 저녁 기도 시간을 빌려 죽은 예수의 다섯 상처를 내보이는
어머니의 애통한 모습을 담은 조각이나 그림을 보고 명상했다.
그래서 독일에서 이 장면을 '저물 무렵'을 뜻하는 '베스퍼'라고 부르게 되었다.
베스퍼 주제가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에 들어오면서 명칭이 '피에타'로 바뀌었다.
피에타의 의미가 '경건'에서부터 '고통의 내면적인 공감' 또는 '동정심'으로 바뀌어 가면서
피에타의 도상은 고통의 표현에서 수난에 관한 신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탈리아 피에타 도상이 초기에는 독일의 베스퍼 전통에 따라서
마리아가 무릎 위에 예수의 시신을 올려두고 눈물을 흘리거나
굳어가는 몸을 어루만지는 간결한 자세를 그대로 수용했지만,
곧 다양한 형태의 실험적 묘사를 시작한다.
예를 들면 누운 시신을 일으켜 세운 피에타,
마리아와 요한이 아닌 천사들이 시신을 부축하는 등의 피에타가 등장한다.
천사의 피에타는 1400년 무렵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했다.
Artus I Quellin. Pietà. 1660s.
Polychromed wood, height 147 cm.O.-L. Vrouwekathedraal, Antwerp
This emotionally charged sculpture probably belonged
to the Antwerp Cathedral's original decorations.
It was confiscated during the French occupation
and returned in the mid-19th century.
The polychroming was renewed that time.
빈센트 반 고흐
피에타
1889
외젠 들라크루아의 작품 모작
Massimo Stanzione.
Pietà.
1621-25.
Oil on canvas. 130 x 181 cm.
Galleria Nazionale d'Arte
Peter Paul Rubens.
The Lamentation of Christ.
c. 1605.
Oil on copper. 11 x 9
Peter Paul Rubens.
The Lamentation
1614 .
Wood . H 40.4 cm, W 52.5 cm
MICHELANGELO Buonarroti
Pietà
1499
Marble, height 174 cm, width at the base 195 cm
Basilica di San Pietro, Vatican
수많은 피에타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피에타를 들 수 있다.
이 피에타 상은 미켈란젤로가 로마에 머물던 시절인
25세때 프랑스인 추기경의 주문으로 제작하였다.
미켈란젤로는 그리스도의 몸을 작게 표현하면서 마리아의 옷을 이용하여
마리아의 무릎을 크게 보이게 함으로써 조형적 부자연스러움을 없애는데 성공했다.
이 옷이라는 것은 미켈란젤로에게 중요한 사상적 의미를 지니는데,
옷으로 감싼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보호를 받고
현실적인 위협으로 수호되어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 피에타 상은 미켈란젤로의 작품 가운데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작품으로 마리아가 두른 어깨 띠에 '피렌체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제작
(MICHEL.AGELVS.BONAROTVS.FLORENT.FACIEBAT)'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그 후 미켈란젤로는 만물을 만든 하나님도 그 어떤 창조물에도
자신의 이름을 넣지 않았음을 인식하고 자신의 오만함을 후회하며
그 이후에는 어떠한 작품에도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
Gregorio Fernandez.
Pietá.
Polychromed wood San Martin, Valladolid
Gregorio Fernandez (or Hernandez) is cited for the first time in 1605,
as a sculptor in Valladolid
피에타 성화 주소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