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소도시 산책

작성자캬페지기|작성시간25.11.13|조회수85 목록 댓글 1


아일랜드의 소도시를 걷다 보면
인생의 속도가 절로 느려진다.
바람이 먼저 말을 걸고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하루라는 시간이 조금 더 부드럽게 흘러가는 곳.
그곳에서는 욕심이 아니라
숨결이 먼저 보이고
계획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온도가 먼저 느껴진다.

작은 항구 마을 딩글의 새벽은
마치 오래된 마음의 문을 살며시 여는 듯하다.
잿빛 바다 위에 부서지는 잔잔한 파도
아직 열리지 않은 가게 문 앞을 지키는 낡은 의자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럴
오래된 일상이 그대로 서 있다.
나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내 삶에서 잊고 지낸 단순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문득 깨닫는다.
더 가지려는 하루보다
조용히 머무는 하루가
더 진하게 마음에 남는다는 사실을
이곳에서야 비로소 배우게 된다.

골웨이의 골목길을 걷는 일도
마음의 먼지를 천천히 털어내는 과정 같다.
비가 와도 우산을 잘 쓰지 않는 사람들
담벼락에 기대어 노래를 부르는 거리의 음악가
붉은 문과 초록 지붕이 이어지는 오래된 집들
삶이 조금씩 기울어져도
괜찮다고 속삭여주는 듯한 풍경 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여기서는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빨리 사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박자를 지키며
끝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만드는 것이
진짜 삶이라는 걸 알려 준다.

킬케니의 성을 둘러싸고 난 산책길을 걸을 때면
내 인생의 오래된 기억과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 도시처럼
내 삶도 돌아보면
흩어져 있는 줄 알았던 순간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그제야 깨닫는다.
내가 가진 것들이
어쩌면 가장 멀리서 온 선물이 아니라
언제나 곁에 있던 조용한 풍경들이었다는 것을.

아일랜드의 소도시들은
거창한 말로 내게 깨달음을 주지 않는다.
그저 풍경 하나 바람 한 줄기
빗방울 몇 개로
삶이란 것이 본래 이렇게 잔잔하고
또 이렇게 충분한 것임을
차분하게 알려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땅에 오면
더 가지려는 마음이 아니라
더 깊이 느끼려는 마음으로 걷게 된다.
날씨는 금세 변하고
길은 곡선으로 이어지지만
그 변덕 속에도
언제나 따뜻한 무언가가 숨어 있다.
그것이 아일랜드가 주는 위로이며
여행이 다시 삶을 깨우는 방식이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든
이런 작은 소도시 하나쯤
마음속에 품고 살아간다면
버거운 날에도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일랜드의 바람은
그렇게 사람을 단단하게 하면서도
부드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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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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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캬페지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11.13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
    험담을 한 자,
    험담을 들은 자,
    험담의 대상자 등을 모두 죽일 수 있다.
    유대인의 지혜가 집약된 탈무드에 있는 말입니다.
    따라서 말을 하기에 앞서 늘 3가지 체에 걸러봐야 합니다
    마음 편안한 하루길 되시기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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