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의 아침은 물 위에서 시작된다.
운하 위로 옅은 안개가 흐르고 자전거 바퀴 소리가 조용히 도시를 깨운다.
나는 천천히 걷는다.
이 도시는 서두르지 않는 사람에게만 마음을 연다.
붉은 벽돌 건물과 낮은 창문들 사이로 빛이 스며든다.
그 빛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오래 머문다.
마치 사람의 마음을 시험하듯 서서히 깊어진다.
오늘 나는 고흐를 만나러 간다.
그의 그림을 보기 전에 이미 그의 시간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암스테르담의 하늘은 유난히 낮고.
그 낮은 하늘 아래서 사람들은 묵묵히 자신의 하루를 살아낸다.
고흐가 보았을 풍경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반 고흐 미술관 앞에 서면 마음이 조금 느려진다.
이곳은 감탄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들어오라고 말하는 공간이다.
문을 지나며 나는 여행자에서 잠시 한 사람의 인간으로 돌아간다.
해바라기 앞에 서면 생각보다 말이 줄어든다.
노란색은 밝음이 아니라 견딤에 가깝다.
태양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으나 그 안에는 고독이 있다.
나는 그 고독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밀밭의 그림 앞에서는 숨이 깊어진다.
바람이 보이는 그림.
움직이지 않는데도 흔들리는 마음.
고흐는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을 쏟아부은 듯하다.
자화상 앞에 오래 머문다.
그의 눈은 나를 보지 않는다.
어딘가 먼 곳을 통과해 지나간다.
그 시선 앞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나를 얼마나 솔직하게 마주하고 있는가.
미술관을 나와 다시 운하 옆을 걷는다.
그림을 본 뒤의 도시는 조금 달라 보인다.
빛이 더 깊고.
사람의 표정이 더 또렷하다.
암스테르담의 골목은 화려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다만 오래된 삶의 흔적을 조용히 내어준다.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을 본다.
혼자 앉아도 어색하지 않은 도시.
침묵이 자연스러운 도시.
이곳에서 여행은 소비가 아니다.
사유에 가깝다.
걷고 보고 멈추는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를 덜어낸다.
고흐를 만난 여행은 위로라기보다 동행이다.
괜찮아라는 말 대신
그래도 계속 걸어가자는 무언의 손짓 같다.
해 질 무렵 운하에 비친 하늘이 물 위에서 두 번 살아난다.
나는 그 풍경 앞에서 오래 서 있다.
오늘 하루가 그림처럼 마음속에 남기를 바라며.
암스테르담은 그렇게 말없이 가르쳐준다.
사랑은 크게 드러내지 않아도 되고.
삶은 조용히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