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가도의 길을 걷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디로 가기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어디에도 가지 않기 위한 선택인지도 모릅니다.
독일의 로맨틱 가도는
그 이름처럼 화려하거나 과장된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조용하고
담담하며
말없이 마음을 건드리는 길입니다.
아침의 공기가 아직 차가운 시간
사람이 많지 않은 골목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붉은 지붕들이 이어진 마을
창가마다 걸린 작은 꽃들
수백 년을 버텨온 돌길 위에
내 발걸음이 조심스럽게 얹힙니다.
이 길은
서두르는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닙니다.
속도를 늦춘 사람만이
보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담장 위에 내려앉은 햇살
닫혀 있는 문 너머로 흐르는 삶의 기척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문득 느껴지는 오래된 시간의 숨결
그 순간
이 길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로 변합니다.
걷다 보면
나의 시간도 함께 걸어 나옵니다.
지나온 날들
스쳐간 인연들
말하지 못했던 마음들
그 모든 것들이
이 낯선 길 위에서
이상하게도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아마도 우리는
익숙한 공간에서는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렇게
멀리 떠나
낯선 길 위에 서야만
비로소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로텐부르크의 성벽 위를 걸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내 삶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참 많이도
애써 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만큼
놓치고 살아온 순간들도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후회보다는
이해가 먼저 다가왔습니다.
그때의 나는
그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는 것을
그 사실 하나로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습니다.
여행은
우리를 바꾸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외면하고 있던 것들을
조용히 꺼내어 보여줄 뿐입니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사람의 눈빛은
조금 달라집니다.
무언가를 더 가지게 되어서가 아니라
조금 덜어냈기 때문입니다.
로맨틱 가도의 길을 걷는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보았지만
결국 가장 오래 남은 것은
풍경이 아니라
그 길 위에서 만난 나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디로 가는지보다
그 길 위에서
어떤 나를 만나게 될지
조용히 기대하며
오늘도 그렇게
천천히 걸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