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니아의 오후는 참 조용했습니다.
무너진 기둥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고. 수천 년의 시간을 품은 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젊은 날의 나는 늘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했고. 더 멀리 가야 했고. 더 높은 곳에 올라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알바니아의 오래된 도시 아폴로니아에 앉아 있으니. 인생은 어쩌면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때는 잃어버린 것들만 셈하며 살았습니다. 지나간 사람들. 돌아오지 않는 시간들. 뜻대로 되지 않았던 수많은 일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행은 늘 다른 답을 보여줍니다.
무너진 신전은 실패가 아니라 세월의 흔적이었고. 갈라진 돌길은 상처가 아니라 지나온 시간의 증명이었습니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요.
주름은 살아온 이야기이고. 흰머리는 견뎌낸 계절이며. 가슴속 상처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흔적일 것입니다.
아폴로니아의 언덕에 서서 멀리 펼쳐진 평야를 바라보았습니다.
2천 년 전에도 누군가는 같은 풍경을 보며 사랑을 꿈꾸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이별을 견디고 있었을 것이며. 또 누군가는 내일을 걱정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시대는 달라도 사람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행은 새로운 세상을 보는 일이 아니라. 결국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아폴로니아의 바람은 말없이 지나갔지만. 그 바람 속에서 한 가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인생은 완벽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부족하고 흔들리기에 아름답다는 것을.
그리고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음을 느끼는 일이라는 것을.
오래된 돌 하나가 가르쳐 준 가장 깊은 여행의 의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