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의 아침은...

작성자카페 지기|작성시간26.06.14|조회수27 목록 댓글 0

더블린의 아침은 늘 조금 느리게 시작되는 것 같았습니다.


밤새 내린 비가 돌바닥 위에 얇은 물빛을 남기고, 리피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향해 걸어갑니다.

여행자 역시 그들 틈에 섞여 낯선 도시를 바라봅니다.
그날도 특별한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터미널 한쪽. 사람들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노파 한 사람이 작은 비닐봉지를 품에 안고 앉아 있었습니다.

봉지 안에는 빵 두 봉지와 콜라 한 병.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음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소중한 끼니일 수도 있습니다.
그때 한 사내가 다가왔습니다.

노파의 손에 있던 봉지를 가져가는 모습을 본 순간, 주변의 공기는 잠시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고, 나 역시 마음속으로 이미 그를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늘 그렇듯 가장 중요한 장면을 마지막까지 보여주지 않습니다.

잠시 뒤, 사내는 더 큰 봉지를 들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빵 몇 개가 아니라 한동안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음식과 필요한 물건들을 들고서 말입니다.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본 것은 이야기의 첫 장면뿐이었다는 것을.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은 책 한 권의 첫 문장만 읽고 결말을 단정하는 일과 비슷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더블린 거리에는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은 무심한 듯 지나갑니다.

하지만 그 무심한 풍경 속에도 누군가는 누군가를 돕고, 누군가는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것을 내어주며 살아갑니다.

세상은 뉴스에 나오는 거대한 사건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름 없는 사람들의 작은 선의로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아름다운 풍경은 사진으로 남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받은 감동은 사진으로 담을 수 없습니다.

대신 마음 한구석에 오래 남아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바꾸어 놓습니다.
더블린에서 내가 만난 것은 유명한 건물도, 관광 명소도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 더 크다는 사실.

그리고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하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아일랜드의 흐린 하늘 아래에서 만난 그 짧은 순간은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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