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에서는 국기가 단순한 나라의 상징이 아닙니다.
5월 17일. 노르웨이 헌법 제정일이 되면 온 나라가 하나의 축제장이 됩니다. 도시와 마을, 산과 피오르드, 집집마다 붉고 푸른 국기가 펄럭이고 사람들은 가장 아름다운 전통 의상인 부나드(Bunad)를 차려입고 거리로 나섭니다.
이날의 주인공은 정치인도 군인도 아닙니다. 바로 아이들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국경일이 군사 퍼레이드와 국가의 힘을 보여주는 날이라면 노르웨이의 국경일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시작됩니다. 학교마다 행진이 이어지고 부모와 조부모들은 거리 양옆에 서서 박수를 보내며 함께 축하합니다.
사진 속 두 아이는 눈 덮인 산과 푸른 피오르드를 배경으로 국기를 들고 서 있습니다. 거창한 기념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저 아이들의 표정입니다.
노르웨이는 미래를 국기에 담는 나라가 아니라 아이들의 손에 맡기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거리마다 가득한 붉은 국기는 단순한 애국심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자연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자부심입니다. 깊은 피오르드와 험준한 산악지형은 그들에게 강인함을 가르쳤고 긴 겨울은 서로를 배려하는 공동체 정신을 남겼습니다.
베르겐의 알록달록한 목조 건물 앞을 지나가는 행진 대열은 마치 동화 속 장면 같습니다. 전통 의상을 입은 아이들과 청소년들. 악대의 연주. 거리 가득한 환호성.
이날만큼은 모두가 주인공입니다.
산 정상에서도 국기는 펄럭입니다. 하얀 설산과 검은 암벽 위에 서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은 노르웨이 사람들이 자연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줍니다. 그들에게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친구와 같은 존재입니다.
피오르드를 따라 정박한 배와 창가에 꽂힌 작은 국기. 바닷가 마을의 사람들. 전통 의상을 입은 젊은이들의 환한 미소.
노르웨이의 국경일은 화려함보다 따뜻함이 먼저 다가옵니다.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자부심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나누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여행자는 아름다운 풍경을 기억하지만 그 나라를 다시 찾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노르웨이의 깊은 피오르드도 아름답지만 국기를 흔들며 웃는 아이들의 얼굴은 그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눈 덮인 산과 푸른 바다 사이에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이 함께 웃고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며 오늘 하루를 감사하는 마음 속에 있다고.
그래서 노르웨이의 5월은 더욱 특별합니다.
온 나라가 거대한 축제장이 되지만 그 중심에는 권력이 아닌 사람. 경쟁이 아닌 공동체. 그리고 미래를 향한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