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에서 만난 아름다운 인연

작성자카페 지기|작성시간07:08|조회수22 목록 댓글 0

벨기에에서 만난 아름다운 인연


사람은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어린 시절에는 친구를 만나고, 젊은 날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세월이 흐른 뒤에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을 기다리게 된다.

젊을 때의 만남은 설렘으로 시작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만나는 인연은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무엇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고, 굳이 자신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며,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은 사람.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인생 후반에 받는 가장 귀한 선물인지도 모른다.


벨기에 브뤼셀의 그랑플라스에 저녁 불빛이 내려앉던 날, 나는 사람과의 만남도 저 오래된 광장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수백 년의 비바람을 견디며 제자리를 지켜 온 건물들처럼, 좋은 인연도 화려한 말보다 오랜 시간과 믿음 속에서 완성된다.


처음에는 그저 스쳐 가는 사람인 줄 알았다.

여행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사람. 낯선 골목에서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작은 카페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며, 별것 아닌 이야기에 함께 웃었던 사람.

그러나 어떤 만남은 처음부터 이상하게 편안하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마음의 문을 두드리지 않고 조용히 들어온다.

그녀에게서는 은은한 향기가 났다.

진한 향수가 아니라, 세월을 살아오며 몸에 밴 따뜻한 사람의 향기였다.

남의 말을 함부로 끊지 않는 여유, 상대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배려, 자신의 이야기를 앞세우기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다정함.

그런 것들이 모여 그녀만의 향기가 되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향기가 있다.

어떤 사람은 가까이 갈수록 마음이 무거워지고, 어떤 사람은 잠시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진다.

좋은 사람의 향기는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문득 그 사람의 목소리가 생각나고, 함께 걸었던 골목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오른다.


브뤼헤의 운하는 천천히 흘렀다.

물 위로 오래된 집들이 비치고, 작은 다리 위를 사람들이 지나갔다.

그녀와 나는 나란히 운하를 바라보며 걸었다.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좋았다.

젊은 날의 사랑은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했지만, 세월이 흐른 뒤의 사랑은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랑은 꼭 뜨거워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말없이 건네는 따뜻한 커피 한 잔, 힘들어 보일 때 천천히 걸음을 맞춰 주는 마음, 낯선 곳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기다려 주는 배려.

그런 것이 사랑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동행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상대의 마음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답게 살아가도록 곁을 지켜 주는 것.

힘든 날에는 말없이 들어주고, 좋은 날에는 진심으로 기뻐해 주며, 때로는 옛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 풍경만 함께 바라보는 관계.

육체적인 설렘보다 정신적인 위로가 더 깊어지는 사랑.

어쩌면 인생 후반에 필요한 사랑은 그런 사랑인지도 모른다.

사랑에는 사람을 다시 살게 하는 힘이 있다.

외로움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다시 마음을 열게 하고, 지친 사람에게 다시 길을 걷게 하며, 삶이 무미건조해졌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새로운 계절을 보여 준다.

누군가의 따뜻한 한마디 때문에 하루가 달라지고, 누군가의 기다림 때문에 인생을 포기하지 않게 된다.

그것이 사랑의 힘이다.

벨기에의 초콜릿이 입안에서 천천히 녹듯, 좋은 인연은 마음속에서 오래 머문다.

처음에는 달콤한 설렘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깊고 부드러운 향기로 남는다.

여행은 끝나도 사람은 남는다.

사진 속 풍경은 세월이 지나면 희미해지지만, 함께 웃었던 순간과 따뜻하게 바라보던 눈빛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 멋진 도시를 만나지만, 때로는 그 도시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그 한 번의 만남이 남은 생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꾸어 놓기도 한다.


브뤼셀의 불빛도, 브뤼헤의 운하도, 겐트의 오래된 골목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한 사람의 향기였다.

세월의 상처를 품고도 다정함을 잃지 않은 사람, 자신의 외로움을 감추면서도 다른 사람의 외로움을 먼저 알아봐 주는 사람.

그녀와의 만남은 사랑이 반드시 젊은 날에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사랑은 인생 어느 계절에도 찾아올 수 있다.

늦게 피는 꽃이 더 깊은 향기를 품듯, 늦게 만난 인연은 서두르지 않는다.

서로의 지난 삶을 존중하고, 남은 시간을 욕심내지 않으며, 오늘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한다.

인생의 말년에 필요한 것은 많은 사람이 아니다.

마음을 열어 놓고 대화할 수 있는 한 사람, 기쁜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아픈 날에는 목소리만 들어도 위로가 되는 사람.


그런 벗이 한 사람 있다면 인생은 결코 외롭지 않다.

언젠가 다시 벨기에를 찾게 된다면 나는 그랑플라스의 화려한 야경보다 브뤼헤의 조용한 운하를 먼저 걷고 싶다.

그곳에서 다시 한 번 사람의 향기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름다운 여행은 풍경을 남기지만, 아름다운 만남은 사람의 생을 바꾼다고.

사랑은 젊음의 특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의 희망이라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를 흔드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벨기에에서 만난 그녀의 향기는 여행이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향기는 이제 한 사람의 기억을 넘어 내 삶을 다시 따뜻하게 바라보게 하는 사랑의 향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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