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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최후의 심판 - 영혼의 무게 달기

작성자골롬바2|작성시간19.07.02|조회수931 목록 댓글 0

 

최후의 심판

 

하나님이나 신들,

또는 인과율에 의해 사람의 생각과 언행을 총체적으로 심판하거나

때로 개별적으로 심판하는 일.

 

 

 

Abbatiale Sainte-Foy de Conques

 

 

 

 

 

<최후의 심판>(부분) 1130-1150년경,

Conques doorway carving

생트푸아 수도원 성당의 서문
팀파늄 부조 부분, 석회암,

아베롱 콩크엉 루에르그(Conques), 프랑스

 

 

Conques abbey-church doorway carving detail

 

    

 

Conques abbey-church doorway carving detail

 

   

 

Conques abbey-church doorway carving detail

 

12세기 중세 로마네스크 양식의 둥근 아치형 문 위의 공간에는

주로 ‘최후의 심판 날의 그리스도’ 모습을 즐겨 묘사함으로써

하나님의 집인 성당으로 들어가는 자와 들어가지 않는 자와의 구분,

즉 구원받는 자와 지옥으로 떨어지는 자와의 구분을 명확히 하여

신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위 부조는 프랑스 콩크에 지어진 성당의 팀파늄으로

총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단 우측에는 지옥이 그리고 좌측에는 천국의 광경이 있고

중앙패널의 중앙에는 오른팔을 들어올려 심판을 내리는 위엄있는 모습의

그리스도가 눈부신 만도라 공간 속에 있다.

 그의 맨 우측에는 성모와 천국의 열쇠를 든 베드로

그리고 천상에 머무는 자들이 있고

상단부에는 구원의 십자가를 든 천사들이 그를 호위하고 있다.

 “오라, 내게로 오는 자는 구원받을 것이다”

 

 

 

<최후의 심판(부분) > AD.1220~30년, 팀파눔 부조

고딕 성당인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 가면

온통 조각으로 가득 찬 서쪽 정문을 만나게 된다.

이 정문 윗 쪽의 반원형 팀파눔(tympanum)에는

최후의 심판 장면이 부조로 장식되어 있다.

 

3단으로 된 이 조각의 상단 중앙에는 심판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좌정해 있고,

양 쪽에는 영혼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성모 마리아와

세례요한(또는 사도요한)을 나타내는 데이시스(Deissis)를 배치하고 있다.

하단에는 최후심판의 날에 무덤에서 깨어나는 자 들의 모습을 조각 하였다.

가운데 칸에는 날개가 있는 미카엘 대천사가 사탄의 우두머리와 나란히 서서

손에 저울을 들고 무덤에서 깨어난 영혼의 무게를 달아 심판하는

천국과 지옥의 장면이 있다.

 

 

 

<영혼의 무게 달기(부분)>

소리주에로라의 장인,  

13세기 후반 성 미가엘 성당(스페인)

 

이 그림은 성 미카엘 성당의 성상대의 부분으로 13 세기 후반

소리주에로라의 장인(Master of Soriguerola)이 패널에 그린 것이다.

노랑 날개에 청색 망토를 입은 미카엘 대천사가

머리에 뿔이 난 검은 옷의 사탄 우두머리와 마주 서서

아치형 지붕에 걸어 둔 천칭(평형저울)으로 부활한 영혼의 무게를 달고 있다.

악인의 저울 접시에는 마귀가 매달리고 있으나 선한 영혼은 기도하는 자세로 서 있다.

저울이 선한 영 쪽으로 기울어져서 천국행이 결정 되었다.

작은 아기천사가 그 영혼을 들어 올려서

오른 쪽 천국 문에서 천국열쇠를 들고 있는 베드로 사도에게 인계하여

최후의 심판이 끝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중세 교회는 기독교 신자들에게 최후의 심판 날에는 미카엘 대천사가

영혼의 무게를 달아 악한 영혼은 지옥의 유황불 속으로 떨어지지만

선한 영혼은 천국으로 가는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영혼의 무게달기 도형을 사이코스타시아(psychostasia)라 한다.

성경에는 영혼의 무게를 저울에 다는 이야기가 몇 군데 나온다.

다윗이 지은 시편(62편)에는 여호와를 신뢰할 것을 권고하면서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그들을 다 저울에 올려놓아도 입김 보다 가벼울 것' 이라고 읊고 있다.

또한 솔로몬 시대의 지혜문학인 욥기(31장)에서

주인공 욥은 '하나님이 내 정직함을 공평한 저울로 달아보시면

내게 흠이 없음을 아실 것' 이라고 맹세하고 있다.

 

이스라엘민족의 바벨론 포로시대 묵시문학인 다니엘서(5장)에도 저울에 무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바벨론의 벨사살왕이 연회를 베푸는데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 온 성배에 술을 부어 마셨다.

바로 그 때에 사람의 손이 나타나 벽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썼다.

 다니엘이 이를 해석 하였는데 '데겔' 은 '임금님이 저울에 달리셨는데 무게가 부족함이 드러났다' 는 뜻이었다.

바로 그날 밤에 벨사살왕은 살해되고 메대 사람 다리우스가 그 나라를 차지하였다.

위에서 본 성경 세 군데에 나오는 저울에 무게 다는 이야기의 공통점은

최후의 심판과 관련된 사건이라는 점이다.

 

 

 

<사이코스타시아>

B.C. 1285, 

사자의 서 Book of the Death

영국미술관

 

인류역사에서 영혼의 무게달기 기원은 이집트의 사자의 서(Book of the Death)에서 찾을 수 있다.

큰 저울의 한 쪽에는 영혼이 담긴 파라오의 심장을,

다른 쪽 접시에는 정의의 여신을 상징 하는 타조 깃털을 올려놓고

저울 앞에 앉은 아누비스신이 영혼의 무게를 달고 있다.

여기서는 저울의 양 쪽 무게가 평형을 이루어야 파라오의 부활이 가능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중세 기독교의 사이코스타시아 도상이 조각으로 나타난 것은 12세기 초이다.

대부분 프랑스에 있는데 생 레베리엥(St.Reverien) 교회의 주두조각(capital sculpture)에는

하나님의 손이 저울을 들고 있고,

아를(Arles)에 있는 생 트로핌(St.Trophime) 교회 벽의 부조에는 미카엘 대천사가 저울을 들고 있다.

12 세기 후반에는 콩크(Conques) 수도원의 서 쪽 정문인 파사드(facade)에 있는

팀파눔 조각과 오툉(Autun) 대성당에 있는 팀파눔 조각의 사이코스타시아가 유명하다.

 

 

 

 

<최후의 심판(부분)>

12세기

오툉 대성당(프랑스)

 

 

과연 인간의 영혼은 무게가 있는 것 일까?

성경에서 저울에 영혼을 다는 이야기를 보면

최후의 심판 때에 부활한 인간의 영혼을 저울로 달아 천국행과 지옥행을

심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미카엘 대천사가 저울을 들고 영혼의 무게를 잰다는 근거는 없다.

천국에 가려면 영혼이 무거워야 하나 가벼워야 하나 하는 것도 분명하지 않다.

실제 제단화와 교회 조각에서 보면 고딕양식 도상에서는

선한 영혼의 접시가 아래로 내려오고 저주받은 영혼의 접시가 위로 올라간다.

그러나 폴란드의 그다인스크 국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스 멤링(Hans Memling)의 세 폭 제단화인 '최후의 심판'은 다르다.

공작새의 날개를 한 미카엘이 든 심판 저울의 기울기는 여늬 것과는 반대 방향이다.

 

 

 

 

 Last Judgment Triptych (open)
 Hans Memling

1467-71
Oil on wood,

 221 x 161 cm (central), 223,5 x 72,5 cm (each wing)
Muzeum Narodowe, Gdansk


 

중세에 왜 사이코스타시아 도상이 생겨나 성당 건물과 제단화에

저울을 든 무서운 재판 장면이 등장한 것일까?

 

학자들 간에 대체로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하나는 종말론 사상이 세상을 휩쓸던 AD.1000년 전후의 유럽 상황과

12~13 세기의 전쟁과 기근과 페스트 등의 위기의식이 최후의 심판이란 모티프로 확장한 것이고,

또 하나는 신 중심의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교회가 기독교 신자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데 있어서

강력한 공공의 시각장치였다는 것이다.

저울은 고대 이집트나 로마 그리스 시대에도 정의와 공평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성경에서의 저울의 의미도 하나님은 저울에 달듯이 우리의 모든 행위를 판단하신다는 뜻이며

욥도 공평한 저울에 달려서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살기를 원한다는 말일 뿐이다.

 

나의 영혼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미국 매사추세추 병원에서 임종 직전 환자의 체중 변화를 여러 번 관찰한 결과

28.4 그램(g)에서 35.42 그램이 줄어들었다 한다.

스웨덴병원의 검증에서는 영혼의 평균 무게가 21.26214 그램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실험을 근거로 얼마 전 멕시코 영화 에서는 영혼의 무게가 21 그램이라고 하였다.

다 부질없는 실험이다.

 

이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정신적 불안에 떠는 현대인에게

또 다시 종말론이 고개를 드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초기 유대교 저자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의 날(주의 날이라고도 함)을 강조했다.

이스라엘과 모든 민족을 심판하는 이날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시작되리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최후의 심판 개념을 더욱 발전시켜

파루시아('영광 속에서 일어나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 최후의 심판이 있으며,

모든 인간이 심판하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고 가르친다.

초기 그리스도교 예술에서는 심판자 그리스도, 죽은 자의 부활, 영혼에 대한 평가,

구원받은 자와 저주받은 자의 구별, 낙원과 지옥 등이 묘사된다.

로마네스크 예술가들은 그리스도를 묵시문학에 등장하는 4마리의 신비한 동물

(독수리, 사자, 황소, 날개달린 인간)에 둘러싸인 채 칼을 휘두르는 완고한 심판자로 묘사하거나,

천국과 지옥을 경외와 광포함으로 비교하는 등 최후의 심판을 더 무섭게 묘사했다.

고딕 시대의 보다 세련되고 인간주의적인 예술에서

그리스도는 오른쪽 옆구리가 벗겨져나가 창에 찔린 상처를 드러내고

상처입은 두 손을 쳐들어 자신의 희생을 강조하는 구원자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묘사된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십자가 · 못 · 창 · 가시면류관 등 수난의 도구들이다.

그리스도, 즉 중보자(仲保者)들을 복원하는 등 최후의 심판 장면을 낙관주의적으로 묘사한다.

 

16세기 미켈란젤로는 로마에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프레스코에서

지옥에 떨어진 자들을 위협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복수심에 가득한 그리스도를

이교도의 신처럼 벌거벗은 모습으로 그림으로써 최후의 심판에 대한 전혀 다른 견해를 표현했다.

 

이슬람교에서도 역시 최후의 심판에 대한 형상은 아주 풍부하여,

그 개념이 많이 확대되었다.

심판의 날은 이슬람교의 5대 신앙 중 하나이다.

사람이 죽으면 '문카르'와 '나키르' 등 두 천사에게 신앙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만일 순교의 삶을 살았다면 영혼은 곧 바로 낙원에 가지만,

다른 사람들은 일종의 연옥을 통과해야 한다.

운명의 날에 모든 사람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사람의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를 수록한 2권의 책에 실린 기록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사람은 목에 매달린 책의 비중에 따라 낙원이나 지옥으로 갈 것이다.

 

서방종교와 일부 원시종교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종교들도

최후의 심판에 대한 신앙을 발전시켰다.

예를 들면 고대 이집트 종교에서는 죽은 자의 심장이 신

 '아누비스'의 저울에 올려져 심판을 받는다.

심장이 가볍다는 것은 그 사람이 비교적 선하게 살았음을 가리킨다.

그런 사람의 영혼은 죽음의 신 '오시리스'가 지배하는 축복받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심장이 무거우면 '삼키는 자'라고 불리는 반신반인(半神半人)에 의해 영혼이 파괴된다.

환생을 믿는 아시아 종교들(힌두교 · 자이나교 · 불교)에서도

최후의 심판개념은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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