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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예술가

짤즈부르크 탈출작전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24.05.12|조회수31 목록 댓글 0

비온날
아침에는 서늘하네요.
따듯한 봄 기운을 빨리
되찾기 바랍니다.



https://youtu.be/uWYmUZTYE78?si=k-L22GyFy03ZTxrN




모차르트의 Miserere 불법 복제
밀 반출 사건 3개월 후 로마 교황청은
모차르트를 불러들인다.

모차르트 부자는
교계로부터의 파면을 예상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바티칸으로 향했지만
클레멘트 14세 교황은
오히려 모차르트의 능력을
치하 하며 메달과 기사 작위까지
하사하였다.


모차르트의 1770년도 모습을 그린 초상.
클레멘트 14세 교황이 수여한 황금 박차(Golden Spur)
메달을 차고 있다.



아버지 레오폴트와 함께한 모차르트의
이태리에서의 여정은
Mitridate (미트리다테) 등 성공적인
오페라 작품들의 탄생으로
주요 인사들의 찬사를 받았지만
주요한 직책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한번은 페르디난트 대공의 인정으로 음악 감독 물망에
올랐으나 대공의 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자 여왕의
냉소적인 태도로 레오폴트의 바램과는
다르게 그 곳에서 모차르트는
그의 실력에 걸맞은 자리를 갖지 못했다.



이태리에서의 실망스러운 결과를 뒤로 하고
1773년 17세의 모차르트는 고향인 잘츠부르크에 돌아와
그곳을 통치하던 Collodredo (콜로레도) 대주교의
고용으로 궁정 음악가가 된다.
고향에서 많은 지인들의 지원 속에
모차르트는 심포니와 실내악 곡과 미사 등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만들며 지낸다.
모차르트의 관심은 바이올린 콘체르토와
피아노 콘체르토로도 향하고 있었다.


그 당시 모차르트가 작곡한 바이올린
콘체르토 4번 K.218의
짧은 부분을 들어 보겠다. 동영상 길이가 짧지만
모차르트가 직접 쓰던 바이올린 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크리스토프 콘츠(Christoph Koncz)와
루브르 음악가들의
연주로 들어 보겠다.


https://youtu.be/RDSEXXZ3Mqg?si=JFQyXKN6vLS0Bp-_


혹시나 이 바이올린이 진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인지
의심할 수도 있다. 수차례의 손 바뀜은 있었지만
다음과 같은 사실로 진위가 확인되어있다.
.
처음 이 바이올린은 모차르트가 겨우 13세의 나이에
잘츠부르크에서 악장 시절부터 쓰던 악기인데
누나인 난네를이 모차르트가 비엔나로 떠난 이후부터
가지고 있다가 자기 애 제자에게 주었지만 9년 후에
어린 나이에 그 제자가 사망한다.
그 부모는 어떤 바이올리니스트에게 팔았고
그 가족은 수십 년 후 다시 어떤 약사 집안에 팔았고
결국에는 모차르테움이 그들에게서
구입해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유럽의 주요 도시를 돌며 각광 받던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의
생활이 흡족하지 않았다.

일을 시작 한지 겨우 4개월 후 1773년 여름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아버지 레오폴트와
모차르트는 비엔나를 찾았다.
하지만 구직은 하지 못했다.
소득 없이 돌아온 모차르트 부자는
이듬해 말에는 만하임을 방문한다.
역시 자리를 구하는 데는 실패 했지만
La Finta Giardiniera (가짜 정원사)라는 오페라는
성공을 거둔다.


"가짜정원사"는 연인이 질투심에 휘두른 칼에
부상 당한 여인이 가짜 정원사로 지내다가
자기가 칼에 부상 당해 죽은 줄 안 연인을
우연히 다시 만나 재결합 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Belfiore (벨피오레) 백작이 부르는 아리아
Che beltà, che leggiadria
(얼마나 아름답고 우아한가)를
Placido Domingo의 노래와 유진 콘이 이끄는
뮌헨 라디오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어보자.

https://youtu.be/Iz75tVSaUYc?si=AR9gYJiHDw7ldTL2



모차르트는 오페라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규모가 작은 도시 잘츠부르크는 오페라 공연을
할 극장이 마땅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급료도 작아 모차르트에게는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

1777년 21세가 된 모차르트는 드디어
사표를 내고 본격적으로 잘츠부르크를
떠나기로 한다.

당시 유럽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가지고 있던
독일 만하임에서 그곳의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기회를 찾고 있던 모차르트는
Aloysa Weber (알로이자 베버)라는 소프라노와
사랑에 빠진다. 그곳에서도 자리를 찾지 못한
모차르트는 사랑을 뒤로 하고 이듬해
어머니와 함께 파리로 향한다.


Aloysa Weber (1760-1839)


모차르트는 파리에 있는 동안
베르사이유 궁의 오르가니스트 자리를
제안 받았지만 거절했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최고의 대우를 받던
모차르트는 자리에 대해 굉장히
까다로왔다.

더 이상 신동이 아닌 청년 모차르트의
교만하고 튀는 행동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파리에 있는 동안 재정적으로도 어려워져서
가진 물건을 전당포에 잡혀야 할 만큼
힘든 상황 이었는데,
최악의 상황이 생기게 된다.

자상하고 항상 용기를 주시던
어머니의 사망이었다.

어떤 음악학자는 돈이 없어 의사를 빨리
부르지 못해 어머니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일로 모차르트 자신도 무척 상심했지만
고향에 있던 아버지 레오폴트의 슬픔은
모차르트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번지게 된다.

파리에 있는 동안 작곡해서 발표한
아름답고 서정적인
플룻과 하프 콘체르토 2악장을 들어보겠다.

James Galway(제임스 골웨이)의 플룻
Marisa Robles(마리사 로블레스)의 하프
일명 MTT로 불리는 Michael Tilson Thomas
(마이클 틸슨 토마스)의 지휘로 이끄는
란던 심포니의 연주이다.


https://youtu.be/WZEHbUa6qHQ?si=ln7X_HQCDbrCKBel



아들을 다시 고향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레오폴트는 인맥을 동원해 노력한 결과
잘츠부르크에 모차르트를 위한 자리를
다시 마련한다.

예전 급료의 세배를 받는 궁 오르가니스트와
악장을 겸하는 자리였다.

잘츠부르크에 돌아가기 싫었던 모차르트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을 했는데 뮌헨에서 알로이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동안 잘나가는 소프라노가 된 알로이자는
모차르트를 차버린다.

사랑과 구직 모두 실패한 모차르트는
또 다시 잘츠부르크에 돌아온다.
1779년 1월 이었다.


모차르트의 가족 초상화. 뒤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1781년 아직도 불만에 가득한 모차르트에게
마지막 탈출 기회가 왔다.
비엔나에서 거행되는 Josef II(요제프 2세)의
즉위식에 참가하는 잘츠부르크의
콜로레도 대주교가 자신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
식솔들을 거느리고 떠나기로 했는데
신동으로 유명한 모차르트에게도
동행을 명 한 것이다.

모차르트는 그 기회를 비엔나에
정착할 절호의 기회로 보았다.

과연 모차르트는 아버지와
최고 권력자인 대주교의 의지에 반해
잘츠부르크를 탈출 할 수 있을 것인가!



https://youtu.be/_hQnUoBmKA4?si=bgQF1ZFC5h2uBJ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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