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스크랩]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이란)

작성자배길지기|작성시간19.09.12|조회수211 목록 댓글 3

감독 : 아쉬가르 파르하디(1972)

 

법보다 무서운 종교적 양심

 








2011년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
출연 ; 레일라 하타미, 페이만 모아디, 사레 바얏, 샤하브 호세이니

2011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작품상, 남자 주연상, 여자 주연상을 탄 이란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이란 영화, 종교문제...의 사전 지식만 가지고 예고편을 보지 않고 영화를 보러 갔다.
왜냐하면 어느 때는 엑기스만 골라낸 예고편이 내용의 전부일 때가 있고,
예고편을 안 보고 사전 지식없이 가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내 생각 때문이다.

우선 자주 접할 수 없는 이란 영화를 보며 그들의 생활수준이 생각보다 높다는 것,
아파트 내에 있는 가재도구가 우리의 중산층 이상의 수준이라는 것,
부부 각자의 자가용에 드럼 세탁기, 식기 세척기 까지 갖추고
초등학생에게 독선생을 두고 과외를 하고 있었다.


교육열도 우리와 비슷한지 딸의 유학을 위해 이민을 가고 싶은 아내 씨민과
치매 아버지를 모셔야 하므로 같이 갈 수 없는 남편의 고집 때문에
이혼법정에서 시작하는 영화.
두 사람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딸은 아버지와 그냥 집에 있겠다고 하여
씨민만 떠나자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간병인 라지에를 고용했는데....

비록 딸의 교육 때문에 떠나려 했지만 그동안 시아버지를 잘 모셨는지
치매걸린 시아버지는 '씨민. 씨민...' 연신 씨민만 찾는다.
도우미로 들어온 라지에는 생활형편이 어려운 임산부라 어린 딸까지 데리고 오는데,
일이 잘못 되어 영화는 엉뚱한 법정 공방전으로 치닫는다.

라지에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아버지가 위험에 처하고 화가 난 나데르는
라지에를 해고하는 과정에서 변명하려는 라지에를 밀쳐 내보낸 게 잘못되어
뱃속의 아이가 유산되고 나데르는 살인죄로 기소되기에 이르는데......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 그리고 서구 사람들 처럼 예쁘고 잘 생긴 이란의 배우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내 일처럼 몰입할 수 있게 잘 짜인 각본........
이란 영화의 수준이 이 정도였구나......놀라며 관람했다.

그런데 한가지...
어린 아이들 까지 두르고 다니는 히잡을 집에서도 쓰고 있어야 한다니...
치렁한 히잡을 두르고 가스 불 켜고 일하는 장면이 위험해 보이기도 하도
불편해서 어떻게 저러고 사나 싶기도 했다.

각자의 처지가 딱하고, 어느 편을 들 수도 없게 사건 내용은 꼬여만 가는데,
부부의 별거문제 때문에 엉뚱한 방향으로 꼬인 딱한 처지가 답답하기만 하다.
차츰 풀리는 과정에서 신앙심 때문에 망설여지는 결정적 거짓말.....
법관 앞에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잘도 하더니 코란에 손을 얹고 맹세하라고 하자
차마 맹세를 하지 못하는......법보다 무서운 종교적 행위.

기독교 교리에도 십계명에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는 쉽게 거짓말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도 없이 반복 하고 사는데...
코란에 손을 얹고 맹세할 수 있느냐는 말에, 양심의 가책으로 증언을 하지 못하는 라지에를 보며
종교의 절대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라지에 뿐 아니라 씨민도, 11살 짜리 딸 테르메도 거짓말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아빠가 라지에의 임신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진실을 말하는 엄마나
아빠에게 "알고 있었지 않는가?" 를 추궁하는 딸.
이 영화대로라면, 사소한 거짓말도 경계하는 이란에는 범죄가 적지 않을까?

좁아터진 법원의 복도, 진실을 캐내려고 애쓰는 법관의 모습,
어느 나라나 없이 사는 사람의 고달픔과 인격적인 대우를 못 받는 모습이 슬펐고,
법 앞에서의 진실 공방 보다 더 중요한 종교적 양심을 지키는 모습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아랍권 영화를 본의아니게 여러편 보게되었는데 거장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들 뿐만아니라 순진무구한 아이들이 등장하는 따뜻한 휴먼 드라마부터 종교 혹은 관습을 빌미로 차별(학대) 당하는 여성들을 다룬 인권영화까지 아랍권 영화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정서과 물흐르듯 유연하게 흘러가면서도 가슴 한켠을 쓰리게 하는 통렬함이 있는 그런 영화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것 같다.

포스터도 그러해서 선입관이라 해도 좋을 만큼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영화를 보기시작했으나 이 영화는 내가 생각한 그 이상이었다.

영화의 시작은 씨민과 나데르의 이혼법정에서 시작한다. 약자로 묘사되는 여느 이란영화의 여성들과 달리 씨민은 이민을 반대하는 남편에게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하지만 남편을 비난하지 않는다. 남편 역시 아내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거나 폭력적인 언사를 하지 않는다. 외려 왜 이란땅에서 딸아이를 키우는게 힘든일이냐고 되묻는 법관의 얼굴 없는 목소리가 그들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들은 합리적인 삶을 추구하는 지식인이자 중산층으로 굳이 아랍권이 아니더라도 유럽, 미국, 아시아 어디서나 보편적으로 볼 수 있고 평범하게 여겨질 법한 인물들이다. 치매 걸린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모습과 자식에 대한 애착과 교육열에서 동양적인 모습들이 연상되기도 하고 구성원간의 대등한 가족관계나 합리적인 방식을 지향하려는 모습, 안정되고 여유있는 가정에서는 섬세하게 세공된 프랑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기도 했는데 이런 영화적 배경들이 기존 이란 영화에 비해 관객에게 좀더 설득력 있는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부모의 갈등과 가족 전체가 겪는 도덕적 딜레마를 통해 성장해 나가는 딸 테르메를 보면서 에드워드양 감독의 타이완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서구세계로 떠나고자 하는 아내와 이란에 남으려는 남편의 갈등에서 출발하여 하층민 가사 도우미를 고용하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계층과 종교 문제 그리고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전가하는 인물들의 갈등과 윤리적 딜레마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진폭은 그들 모두의 삶 안과 밖으로 꼬리를 물며 확장이 된다. 씨민과 나레르의 집을 둘러싸고 있는 창문들을 통해 영화 속 인물들이 서로를 들여다듯이 인물들 간의 얽힌 관계와 갈등을 거리를 두고 냉정하리만치 리얼하게 또한 매우 섬세한 결들로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미정이와 기차여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모바일게임 | 작성시간 19.09.12 감사합니다
    행복하고 즐거운 추석되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쟈스민2 | 작성시간 20.10.14 이란영화 한번 봐야 겠네요
  • 답댓글 작성자루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0.14 네 맞습니다
    즐거운 시간되세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