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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야수파 (野獸派)

작성자엔고효과|작성시간19.09.10|조회수20 목록 댓글 2
야수파 (野獸派)


20세기 초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회화 경향. 포비즘이라고도한다.
인상파, 신인상파의 세밀한 색조 분할 수법에 대하여,단순화하고 대담한 변형과 굵은 선, 강렬한 색채와 자유분방한 터치가 특징이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마티스, 루오,블라맹크 등이 있다.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일어난 미술운동. 포비슴의 역어(譯語)이다. 주정적(主情的)인 경향을 대표하는 야수파운동은 엄밀한 의미에서 강령과 이념을 가지고 출발한 유파라기보다 인상파나 신인상파의 타성적인 화풍에 반기를 든 젊은 작가들의 일시적인 만남에서 형성되었다.

통설로는 당시 미술평론가 루이 보셀이 1905년 살롱 도톤(Salon d’Automne)에 출품되었던 마르케의 15세기풍의 청동조각을 보고 “야수(포브)의 우리에 갇혀 있는 듯한 도나텔로(르네상스 초기의 이탈리아 조각가)”라고 평한 데서 포비슴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한다. 그러나 마티스부인과 보셀 등의 증언이 모두 달라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1905년 《일뤼스트라시옹》지(誌) 11월호에 당시 살롱 도톤의 회장을 야수의 조교사에 비유한 풍자화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이 해 가을에는 ‘포브’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운동의 동인은 귀스타브 모로의 문하생이었던 앙리 마티스, 알베르 마르케, 조르주 루오, 앙리 망갱 등과 보나-엘의 교실에 있었던 라울 뒤피, 그리고 모리스 드 블라맹크, 앙드레 드랭, 키스 반 동겐, 장퓌이, 에밀 프리에즈 등이었으며 큐비즘 창시자의 한 사람인 조르주 브라크도 1907년 살롱 도톤에서 이들과 관계를 가졌다. 이들 가운데 마티스가 지도적 역할을 했으며 새로운 회화를 지향하는 같은 세대의 공감을 얻었다.

특히 1901년 베르넴 쥔 화랑에서 개최된 고흐전과 모로의 자유로운 회화교육은 야수파운동의 큰 계기가 되었다. 이들의 제작태도에는 마티스와 마르케가 같은 모델, 같은 모티프를 동시에 그린 것과 같은 공통점이 많았다. 야수파의 자연발생적인 집단의 형성과 그들의 주정적인 체질은 같은 시대에 나타난 입체파의 주지적인 경향과 대립하였다. 마티스는 1908년 《그랑드 레뷔》지에 야수파의 논리적 주장을 펴고 있으나 이 때는 이미 그 집단이 해체된 뒤였다. 1905년부터 1908년까지의 작품을 보면, 이들은 아카데미즘에 대항하며 인상파 이후의 새로운 시각과 기법을 추진하기 위해 순색(純色)을 구사하고 빨강·노랑·초록·파랑 등의 원색을 굵은 필촉을 사용하여 병렬적으로 화면에 펼쳐 대담한 개성의 해방을 시도하였다.

새로운 색의 결합에 대한 기본적인 의도 때문에 이를테면 공기·수목 등에 붉은색을 사용하는 등 전통적인 사실주의의 색채체계를 완전히 파괴했으며 명암·양감 등도 파기하였다. 격렬한 정신의 표현과 강렬한 색채는 고흐의 작품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으나, 그림이 대상으로부터 독립된 색과 형에 의한 하나의 조형질서임을 확인시킨 점에서는 고갱과 나비파의 회화관에 연결되어 있다. 순수한 색채의 고양(高揚)에 기초를 둔 야수파운동은 결국 외계질서를 그대로 화면에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화폭을 자기 해방의 장소로 생각한 점 및 색과 형의 자율적인 세계를 창조하려 한 점 등에서 20세기 최초의 예술적 혁명이었다. 명확한 이론이나 목표를 갖지 않으면서도 포괄적이고 오히려 개성적인 자아표출에 공통점을 가지는 야수파운동은 1905년부터 1907년에 이루어졌고 1908년경부터 이들은 각자의 방향을 독자적으로 전개시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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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아름다운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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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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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페지기 | 작성시간 19.09.10 자세히 봅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배길지기 | 작성시간 19.09.10 좋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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