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미술관 박물관 산책

[스크랩] `데생으로 본 미술사`

작성자소피스틘|작성시간19.09.24|조회수47 목록 댓글 0

'데생으로 본 미술사' 중에서 - 난조 마모루 지음/고 경래 옮김, 예경

근래에 읽은 책으로 '데생으로 본 미술사'는 미술사를 데생을 중심으로 쓴 책이라 '고대부터 현대까지 창조의 원천을 찾아서'라는 부제에서 보듯 서양화속에 숨겨진 데생의 의미를 엿볼 수 있게 해주어 흥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그 중에서 이른바 역사적 대가들의 말을 추려 옮겨 봅니다.

***********************************************

데생이야말로 최고의 학예(學藝)이며, 인간 정신의 기술(技術)이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수많은 예술가들을 감탄하게 할 뿐 아니라, 밑그림이 완성되었을 때는, 그것을 보기 위하여 남녀노소가 마치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이틀 연속으로 찾아왔다. 레오나르도의 멋진 작품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경탄했다. - 바사리, <예술가 열전>에서

당시의 사람들이 전혀 되돌아보려고 하지 않았던 데생이, 조토 덕분에 멋지게 생기를 회복하게 된 것이다. - 바사리, <예술가 열전>중 조토의 장(章)에서

치마부에는 자기가 회화에서 승리를 얻고 명성을 떨친 것으로 믿지만, 지금은 조토가 주도권을 쥐고 치마부에의 명성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 단테, <신곡>에서

회화에 있어서 윤곽선은 기술의 종점(終點)이다. 인체의 윤곽을 혼자서 그릴 수 있다면 미술가로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 플리니우스

훌륭한 윤곽선 하나만으로도, 다시 말해서 훌륭한 데생 하나만으로도 뛰어난 예술로서 상찬될 만하다. - 알베르티

먼저 선묘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첸니노 첸니니, <예술의 서>

우리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안내인이자 최고의 지도자이며 소묘에로 인도하는 개선문, 그것이 바로 자연이라는 점에 유의하시요. 무엇보다도 우선 자연에 의존하여 소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오. 모름지기 열의와 신의를 갖고 자연에 자신을 맡기시오. 결코 단 하루라도 무엇인가를 소묘하지 않고 지내서는 아니 되오. - 첸니니

기법을 습득하는 데 필요한 기간을 먼저 알아두지 않으면 안 되오. 먼저 패널을 사용하여 데생의 초보 수준을 배우는 데는 1년을 필요로 하오. 스승의 공방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안료를 분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아교 끓이기, 석고 반죽, 패널의 초벌칠, 살 붙이기, 입체감 주기, 연마하기, 금박 붙이기, 금박 판에 점(點) 장식하기 등에 이르기까지, 회화에 관한 모든 제작 방법과 기법에 정통하기까지는 6년을 필요로 하오. 계속해서 안료를 연구하고 매제(媒劑)를 사용한 채색하기, 장식하기, 풍부하게 출렁이는 옷 주름을 금박으로 표현하기, 벽화 제작 기술의 숙련에 이르기까지는 또 6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오. 그러는 동안에도 데생을 항상 염두에 두고 주일, 평일 할 것 없이 매일매일 데생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오. 이렇게 수많은 수련을 쌓은 뒤에야 비로소 타고난 재능도 훌륭히 결실을 맺는 것이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당신이 어떤 길을 선택한다고 해도 완성된 경지에 다다를 수 없다오. - 첸니니

마사초 이전의 것은 어디까지나 이른바 그려진 그림에 지나지 않으나, 마사초의 작품은 그야말로 살아 있으며, 진실 그 자체이며, 자연 그 자체이다. - 바사리, <예술가 열전> (*원근법의 진전이후)

마사초의 죽음과 함께 잃은 것이 너무도 크다! - '르네상스 회화의 확립은 마사초에 의한 것'이라고 칭송되었던 마사초가 2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그에게서 원근법과 건축에 관한 법칙을 배워 즉시 활용했던 브루넬레스키가 마사초의 죽음에 애통해 하며...

먼저, 물체를 바라봅시다. - 알베르티, <회화론 제2권>에서

끊임없는 사고와 주의를 될수 있는 한 많이 그것에 쏟아 붓는다. - 알베르티, <회화론>에서, (*자연, 인체에 대한 관찰력을 높이기 위해서)

훌륭한 구도의 잘된 소묘가 솜씨 좋게 채색된다면 그것으로 됐다. - 알베르티, <회화론>에서

자연으로부터 취한 것은 거울로써 교정된다. -알베르티, <회화론>에서 (*자기 그림의 그릇된 점을 깨닫기 위한 방편으로 거울이 명판관이 된다.

소묘할 대상과 같은 크기를 그대로 표현하도록 한다. 큰 것을 소묘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큰 데생에서는 매우 미미한 결점까지도 확실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모사를 하고자 한다면 회화보다는 조각(고대 작품의 석고 데생)이 좋다. 눈을 반쯤만 감거나 또는 보는 행위를 눈꺼풀로써 억제하는 것은 빛과 그림자의 감상에 매우 도움이 된다.

역사화의 전체의 각 부분에 관한 구상과 밑그림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리고 나서 그것에 관해서 모든 친구들의 의견을 구해야만 한다.

친구들의 충고를 존중하는 것이 좋다. 그림을 그리고 있을 동안, 오는 사람에게는 누구든지 문을 열어주고 그들 각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다. 그들의 판단과 의견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내 다음으로 오는 사람들 중에서 나 이상으로 우수한 재능과 연구심을 가진 이가 나타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완전무결한 회화를 제작하게 되리라고 믿는다. - 알베르티, 회화론 제 3권

산드로의 데생 솜씨는 각별히 훌륭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죽은 후 화공(畵工)들은 그의 데생을 한 장이라도 손에 넣기 위해 여러 가지로 고심했다. 나는 멋진 그의 솜씨와 식견을 보여주는 데생 작품을 몇 장 가지고 있다. - 바사리, <예술가 열전>에서 보티첼리에 대해

(...그러나 선의 매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르네상스 회화의 위대한 양식을 확립시킨 보티첼리의 매혹적인 윤곽선은 이후 다음과 같은 레오나르도의 말에 의해 부정되고 마는 운명을 맞이한다.....)

자연 속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것. - 레오나르도 다 빈치(*선에 대해서)

진실로 경탄할 만한 신적인 사람이었다.
고귀하며 우아한 정신의 소유자.
즉흥적으로 천사처럼 노래한다.
신과도 같이 탄복하리만치의 예지력을 소유한 사람.
기민함, 생기, 관대함, 아름다움, 우아함 등 그 주구에게도 필적당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천혜를 입은 사람이었다.....

천재성에 기인한 변덕스러움이 화(禍)가 되어 아무 것도 완성하지 못했다. - 바사리, <예술가 열전>,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하여, "본화(타블로, 유채화등 레오나르도의 완성작은 10점 미만)의 작은 양에 비해 방대한 양의 데생은 레오나르도의 정신 활동이 바로 소묘, 그것이었음을 알려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회화론:

소묘야말로 최고의 학예이다.

화가는 만능이 아니면 칭찬할 만한 가치가 없다.

화가는 자신을 매혹시키는 미를 보고 싶다고 느끼면 그것을 만들어내는 주인이 되며, 또한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기괴한 것이라 해도 장난치며 토해내고 싶은 것, 실제로는 불쌍한 것이라도 그 무엇이든지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것의 주인이 되고 또 신이 된다. 또한 대지와 사막, 무더운 날에 짙은 그늘이 있는 수풀을 만들고 싶다면 그는 그것을 그린다. 마찬가지로 추운 날에 더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계곡이 필요하다면, 산맥의 높은 봉우리에서 산야를 전망하고 싶다면, 또 만약에 산 너머 저편으로 평평한 해수면이 보고 싶다면, 그가 주인이다. 낮은 계곡에서 높은 산을 향해 소리치고, 또 높은 산에서 낮은 골짜기의 경사면을 내려다 보고 싶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이 우주 속에 본질로서 현존하는 혹은 상상 속의 것을, 그
는 먼저 머릿속에 그것을 소유하고, 그 다음에는 손안에 소유한다. 그리고 그것은 대단히 우수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어떠한 것이든 간에 동시에 눈동자 속에 균형 잡힌 조화를 낳는다. - 레오나르도의 회화론 첫머리에

소묘란 단순히 자연을 모방한 작품에 그치지 않고, 자연이 만든 것을 초월하여 보다 더 무한한 것을 추구할 만큼 훌륭한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소묘학 :

화가는 자연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회화는 자연의 학문이며 적자(嫡子)이다.
고대 작품의 모방(그리스 로마 시대 조각의 석고 데생)은 현대 작품의 모방보다 마땅히 칭찬받아야 한다.

(...소묘 연구의 순서에 대해서...)

청년은 무엇보다 먼저 원근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원근법은 회화의 고비이며 키(舵)이다.
회화의 과학적이며 참된 원리란, 첫번째로 음영이 있는 물체란 무엇인가, 근원적인 그림자 및 파생적인 그림자란 무엇인가, 명암 즉 다시 말해서 어둠, 빛, 색채, 형태, 정경, 원근, 운동 및 정지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이다. 이상의 것들은 손의 노동을 거치지 않고 오로지 두뇌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 이 점이야말로 회화가 과학적이라고 하는 연유인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회화는 관조자의 뇌 안쪽에 존재하며, 그렇기 때문에 이상에서 얘기한 관조 또는 과학보다도 훨씬 훌륭한 제작 활동은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일점 투시도법에 대해서...)

온갖 대상이 모두 각뿔 모양의 선에 따라 그 광소(光素)를 눈에 전달함을 실험적으로 밝히는 변증적(弁證的)인 이법(理法)을 품고 있다. 각뿔 모양의 선이란 대상의 표면 말단으로부터 출발하여, 어떤 거리를 투과하여 단 하나의 점으로 모이는 선이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이는 이 집점(集点)이 모든 물상의 보편적 심판자인 눈 속에 놓여 있음을 나타내는 것인 것이다.

(...인체의 연구에 대해서..)

화가는 어찌하여 해부학을 배울 필요가 있는가? 나체의 사람들이 취하는 자세나 동작을 하는 팔다리를 훌륭하게 그려내기 위해서는 힘줄이나 뼈, 근육 그리고 팔의 해부를 아는 것이 화가에게는 필요하다. 왜냐하면 다양한 운동과 힘의 작용이 이루어질 때 어떤 힘줄 혹은 근육이 행한 운동의 원인이 되는지 알아야 한다. 또 중요한 요소들을 일목요연하게 나타내고, 이를 강조 또는 과장하여 표현하기 위해서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스푸마토의 탄생...)

화가들이여, 그대들은 육체를 선으로 둘러싸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연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이다. 선에 의해서 그 양측은 구분할 수 있지만, 육체의 각 부분의 거리는 보아서 알 수가 없다.

그림자는 빛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다.

화가여, 그대가 만능해져 각양각색의 판단을 즐기기 위해서는 동일한 하나의 구도 속에 매우 몽롱한 것과 매우 기분 좋은(선명한) 그림자를 가진 것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이러한 그림자와 기분 좋음의 원인(광선)을 확실히 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연구하고 성찰해야 할 것은, 윤곽선이 아니고 음영이다.

육체의 둘레(가장자리)는 무든 것 중에서 가장 사소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표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육체의 일부가 아니며 그 육체를 감싸고 있는 공기의 일부도 아니다. 그것은 공기와 육체의 사이에 있는 중간 지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고로 화가여, 그대는 육체를 선으로 둘러싸서는 안 된다.

영혼 속에 있는 사상을 자연과 과학에 침투시킨다.

소묘....가장 찬란히 빛나는 정신의 업(業).-레오나르도 다 빈치

(...1500년 경 레오나르도가 베네치아를 방문하여 자신이 개발한 스푸마토 기법을 전함으로써 젊은 화가들이 선에서 색채로 데생을 하는 현상이 등장...)

조르조네는 데생을 하지 않고 색으로 칠하는 것만이 최상의 방법이며, 이것이 본질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 바사리

한없이 은혜로운 하늘의 지배자이신 신은 지상에 있는 미술가들의 무익한 노고와 결실 없는 연구, 그리고 빛과 어둠의 거리보다도 진실로부터 훨씬 멀리 떨어져 있는 인간들의 불완전한 지식을 보시고 그 많은 그릇됨으로부터 구해내시고자 지상에 한 영혼을 보내셨다. 그는 모든 예술과 모든 학예분야에 뛰어나며, 그의 작품은 회화 작품에 부조성(浮彫性)을 부여하기 위해 선묘와 윤곽 그리고 명암에 의한 소묘술의 완벽함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또 조각에 있어서는 올바를 판단력으로 제작하며, 건축에서는 편안함을 주고 명확하며 깔끔하고 경쾌하며 비례가 잡힌, 더 나아가 다양한 장식으로 가득 채워진 건물을 제작한다. 이 밖에도 신은 그의 생애와 작품, 품행의 고귀함, 그리고 모든 행위의 면에서 훌륭한 모범으로 삼아 세상이 그를 경애하고 칭송하도록, 그에게 아름다운 시적 재능과 함께 참된 인륜을 부여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우리로부터 지상의 사람으로보다는 오히려 천상의 존재로 불리게 되었다. - 바사리, <예술가 열전>, 미켈란젤로의 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여인이(피렌체)여, 알겠는가, 사랑하는 수천만의 대중을 위해서 그대는 만들어졌노라. 그 천사와도 같은 모습으로....-미켈란젤로

(....주목할 점은, 미켈란젤로의 많은 데생은 날카로운 끌로 깎아내린 것과 같은 필촉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인물을 덩어리로 파악하는 역동적인 양감 표현, 즉 조각과 같은 질감을 남기려고 했던 것으로도 보인다. 그는 어디에서나 자신은 조각가라고 주장했다. 조각이야말로 자신의 사상을 명쾌하게 구현하는 수단으로 생각했다. 대리석을 깎아 새기면서 양감, 동감을 추구하였으며 조각이야말로 회화를 뛰어넘는 것으로 생각했다...)

조각가는 먼지가 뒤섞여 진흙이 된 땀을 흘리고 얼굴은 끈적끈적해져 완전히 대리석 가루투성이가 되어 빵을 굽는 장인과도 같다. 게다가 몸은 발라 붙인 것같이 번쩍거리는 파편으로 뒤덮여 있고, 사는 곳도 파편이나 가루로 온통 더럽혀져 있다. 화가는 그 점에서 정반대이다. 화가는 대단히 안락하게, 잘 차려입고서는 자신의 작품 앞에 앉아 매끈거리는 안료로 매우 가벼운 붓을 움직여서 자신이 원하는 의상으로 몸을 장식한다. 뿐만 아니라 그가 사는 곳은 아름다운 그림으로 넘치고 게다가 청결하기까지 하다. 음악이나 다양하고 훌륭한 작품의 낭독자가 옆에 붙어 있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지만, 그러한 것들은 망치의 울림소리와 그 외의 잡다한 소음들과는 달리, 대단히 기분 좋게 들린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회화는 부조(조각)에 가까워질수록 훌륭해지며, 부조는 회화에 다가갈수록 형편없어지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조각은 회화에 있어 횃불과 같은 존재이며, 두 예술 간에는 태양과 달 만큼의 차이가 있다고 여겨진다. - 미켈란젤로

조각보다도 회화 쪽이 훨씬 고급이라는 의미의 글을 적은 그(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회화 이외의 것에 대해서도 보다 깊은 이해를 가졌더라면 좋았을 것을...., 저 정도라면 내 하인이 더 잘 그릴텐데. -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성당 벽화 작업당시 37세의 미켈란젤로는 제작의 곤란과 깊은 고뇌를 담은 편지를 아버지에게 보내며..

"나는 화가가 아니다."

조각과 회화는 같은 정신에서 생겨난 것으로,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미켈란젤로는 이 해답을 스스로 실천하여 보여주었다...)

회화, 조각, 건축에서 창조의 원천은 데생이다.

미켈란젤로의 소묘학 :

이 세계에는 소묘라고 하는 단지 하나의 학예가 있을 뿐, 인간이 영위하는 모든 것은 소묘라는 원천으로부터 태어난다......삭제(조각)와 부가(회화)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소묘는 모든 예술의 아버지이다.

인체를 거세게 선동하는 정념의 표현이야말로 예술의 진가이다.

사람이 정념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때에는 비례와 수학, 원근법과 해부학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때로 인체는 탑보다도 거대해 보이며, 양피지와도 같이 작아 보이기도 한다.(...이것은 종래의 소묘론에서 큰 역할을 하던 원근법과 측량에 따른 묘사법을 부정하고, 정신적인 균형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미켈란젤로 소묘학에서 가장 유명한 말이 나온다.)

눈(目)속에 컴퍼스를 갖는다.

소묘란 마음속에 생긴 착상, 또는 상상이나 관념 속에서 만들어낸 착상을 밖으로 표출시켜 명확하게 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인간의 행동과 동작에 대해 아무것도 얘기할 것이 없다. 운동도, 변화도, 감정도 없는 무기력한 화가이다. (북부 유럽의 거장 위러의 그림을 본 미켈란젤로의 평)

데생을 수련하지 않은 탓에 초래된 무리함은 막연한 색채로 감출 수밖에 없었다. (베네치아파의 색채회화에 대해서 그 결점을 지적)

내면에서 떠오른 것을 육안으로 볼 수 있도록 또렷하게 제시하지 않으면, 착상은 그것 자체로는 볼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종이에 그려서 나타내면 눈으로 보아 그것에 대해서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또한 나체에 대해서 충분히 연구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에 정통하기 위해서는 종이에 그려보아야 한다.....종이에 데생을 하는 동안에 차츰 데생뿐 아니라 채색도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해서 기술을 닦아나가면, 마니에라(Maniera)도 가능해지고 올바른 판단력도 길러진다......종이에 데생함으로써, 머릿속에 계속해서 멋진 착상이 떠오르게 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미켈란젤로

(...베네치아파의 '혁신적인 선구자'였던 조르조네의 기법을 계승하여 르네상스 시대 후기에 찬연하게 빛나는 예술을 확립시킨 작가, 티치아노 베칠리(1487-1576)의 반점묘법에 대해 바사리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한번에 끝내버릴 듯한 위세로 대담하게, 게다가 반점으로 그렸기 때문에 가까이서 보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조금 거리를 두고 보면 완벽한 모습이 떠오른다.

이러한 그림이 고생하지 않고 그려질 것이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틀린 것이다. 실제로는 여러 차례 붓질을 하면서 색을 몇 번이고 덧입혔다. 자세히 보면 고생 끝에 만들어진 모양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치밀하게 행하는 이러한 기법은 아름다울 분만 아니라 사람을 놀라게도 한다. 그림이 눈에 생생하게 비춰녀 힘들이지 않고 완성된 걸로 느껴질 정도로 훌륭한 기술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 바사리

(...티치아노의 기법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티치아노 만년의 제작을 목격한 화가 팔마 조반테가 남긴 말을 통해 엿보자.)

그는 먼저 표현하고 싶은 것의 기초가 되는 색의 덩어리를 그린다. 중간색이라든가 백색 안료 대신에 완전한 적토(테라 로사, 또는 베네치안 레드)의 매우 힘있는 밑칠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붓을 빨강, 검정, 노란색 속에 담갔다가 밝은 부분을 그림 다음, 네 개의 붓으로 놀랄 정도로 멋진 인물을 그려내었다.....그러고 나서 그 그림을 벽을 향하게 놓고 4개월 가까이 돌아보지도 않고 방치했다. 후에 다시 마치 하늘 아래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적을 대하듯 그것을 집중하여 들여다 본다.....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눈에 띄면 마치 외과 의사처럼 고친다.....이렇게 완전히 수정함으로써 회화에 높은 완성도를 부여하고, 하나의 그림을 말리는 동안에 또 다음 그림에 돌입한다. 그렇게 해서 이 기본적인 구도에 몇 겹이고 살아 있는 살을 붙인다....그는 결코 프리마 묘법(Atta Prima, 직접 단번에 그리기)으로 인물을 그린 적이 없으며, 즉흥적으로 그려서는 결코 완전하게 시적(詩的)인 선을 그릴 수 없다고 말했다. 최후의 터치는 부드럽게 했으며, 때로는 손가락을 사용하여 격력해진 리듬을 느긋하게 하고, 중간색을 융합하거나 하면서 고유색을 수정했다. 가끔 구석 쪽에 악센트를 주기 위해 어두운 그림자를 더한다거나 핏방울 같은 빨간색을 조금 써서 표면을 두껍고 도드라지게 하는 데도 손가락을 사용했다. 이렇게 해서 인물화를 완성하는데, 마지막 단계에서는 붓보다도 손가락을 사용하는 편이 많았다.

(...티치아노의 혁신적인 제작 방법에 대해서 미켈란젤로가 한 말을 한번 되새겨보겠다.)

티치아노의 색채와 양식이 모두 내 마음에 들지만, 베네치아에서는 우선 데생을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 이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지. 베네치아의 화가들은 공부하는 방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어. 그 점이 애석하게 여겨지는군. 저 남자는 타고난 재능이 있으니 만약 기술을 연마하여 데생을 통해 진보한다면, 특히 실물을 묘사하는 훈련을 한다면, 더 이상 그에게 필적할 사람은 없을 테지. 티치아노는 실로 아름다운 정신의 소유자이며, 사랑스럽고 발랄한 양식을 가지고 있어. - 미켈란젤로

바사리의 소묘(디세뇨)학 :

조르조 바사리(1511-74)의 <예술가 열전>의 소묘론에서..

조각과 회화는, 디세뇨(소묘력)라는 한 아버지로부터 단 한 번의 출산을 통해 동시에 태어난 자매이며, 둘 중 누군가 먼저 세상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예술가들 스스로에게 준비된 기량과 힘에 따라 하나를 다른 것보다 먼저 밀어내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이 두 예술 간에 실제로 존재하는 고상함의 차이나 위치에 의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양쪽 모두 서로 다른 본질에서 나오는 많은 종류의 장점들을 가지고 있긴 하나, 그 둘을 함께 늘어놓았을 때 그 정도와 모습이 균형 잡히지 않을 정도는 아니며, 또한 한쪽을 다른 쪽보다 우선시하고자 욕심내는 쪽의 판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정열 혹은 완고함이 분별되지 않을 정도는 아니다. 따라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같은 하나의 혼이 그 둘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결론짓고자 하는 것은, 그것들을 구분하고 서로 떼어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릇되었음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늘은 아마도 그 부분에 관한 우리들의 그릇됨을 깨우치고 이 두 고상한 예술의 친밀함과 일치점을 보여주고자 여러 시대에 그림을 그린 다수의 조각가들을, 또는 조각을 만든 다수의 화가들을 탄생시킨 것이다. 안토니오 플라이우올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 외 과거 여러 사람들이 있다. 현재는 신이 미켈란젤로 부오니로티를 탄생시켰고, 그는 이 두 예술을 서로 완벽하게 일치시켜 빛나게 하니, 화가들은 그의 회화에 경탄하고 조각가들은 스스럼없이 그가 만든 조각에 최대의 찬사와 경의를 나타낸다. 그가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여유있게 설치할 장소를 다른 스승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도 준비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겠지. 그는 건축에 대해, 자신이 만든 조각상들에 명예로운 적당한 장소를, 타인의 손을 빌지 않고 혼자 힘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유일한 조각가이자 최고의 화가, 그리고 대단히 뛰어난 건축의 진정한 거장으로 불릴 만한 인물이 되었다.

(...바사리는 <기법론>중의 '회화에 대해서'에서 '디세뇨란 무엇인가'를 논하고 있다.)

디세뇨(소묘)를 하는 가운데 지성의 힘에 인도를 받으면서 유일무이한 척도인 자연의 무수한 물상의 형식 또는 관념(이데아)과 유사한 하나의 보편적 판단을 많은 물상으로부터 끄집어낼 수 있다. 그러한 까닭에 인간이나 동물의 신체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식물에 있어서도 또한 건축이나 조각, 회화에 있어서도 전체와 여러 부분과의 사이에, 혹은 여러 부분들 상호간에 가지는 비례를 디세뇨를 통해서 인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어떤 종류의 착상이나 판단이 생겨나 머릿속에서 그것이 형태를 이루고, 계속해서 손에 의해 나타나게 되는 것을 디세뇨(소묘)라고 부른다. 따라서 이 디세뇨란, 분명히 이상과 같이 마음속에 생긴 착상이나 머릿속에서 상상하여 관념 속에서 만들어낸 착상을 밖으로 표출시켜 명확화한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바사리가 사용한 디세뇨(disegno)라는 말은 원래 표시를 한다는 의미의 라틴어 'designare'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이탈리아어로는 데생에 해당하는 '스케치'나, '윤곽선을 긋다'라는 의미의 말로서 'disegnaru, abbozzo, schizzo, tratteggiare'등이 있다...)

자연은 모든 예술의 어머니이며, 소묘는 모든 예술의 아버지이다. -바사리

루벤스의 소묘관:

개인을 초월한 보편적 표현을 믿는다.

우연적인 것을 배제하고 확실한 것을 선택한다.
('우연한 것=빌린 모습', '확실한 것=자기의 확립')

어떤 종류이든, 내가 그리려고 하지 않은 주제는 없다.

푸생(1594-1665)의 소묘관:

회화란 지적인 내용을 전하는 구도 속에 최대한 도덕적인 내용을 표현한 것이어야 한다.

색채는 비전(vision)의 통일을 가르치는 것이지, 감각적 매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베네치아파의 색채는 고유색의 엄격한 적용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이 말로 보아 푸생은 필요이상의 색채 활용을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

자연으로써 푸생을 수정한다. - 세잔
(..푸생의 양식은 프랑스 회화의 밑바탕을 형성하는 미학이 되었다.)

푸생파: 로마파, 선, 형태, 정적, 객관적, 이지적
루벤스파: 플랑드르파, 색채, 내적이미지 표출, 동적, 주관적, 감각적

색채는 구도와 데생의 형태적 요소에 대한 장식적인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 푸생파

색채의 기능은 눈을 즐겁게 하는 데 있다. 그렇지만 구도는 정신을 즐겁게 한다. - 샤를 르브룅(1619-90)

가상(주관적 환상)의 모방인 회화에서 색채야말로 가장 이해하기 쉬운 수단이다. - 루벤스파

푸생 양식(윤곽선, 세밀, 색칠 그림식 채색법, 기계적 제작, 변경 불가)
루벤스 양식(필촉적, 대담, 우연적 효과, 감각적 색채, 유동적)

벨라스케스의 소묘관 :

회화는 숭고하고 지적인 예술이어야만 한다.
화가 중의 화가이다. - 마네가 벨라스케스를 칭송하며

렘브란트의 소묘관 :

만약 그의 유채화가 후세에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는다 하더라도, 에칭만으로도 미술사상 최고 화가로서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으리라. - 렘브란트의 에칭 작품의 예술성을 칭송하는 말

자기 자신을 채색화, 판화, 소묘 등으로 끊임없이 반복해서 그리는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본질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갱신하는 것임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처럼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 가는 것은 내면화를 위한 크나큰 단련이 된다.

고귀한 단순과 정온한 위대함 - 빙켈만
윤곽에 고귀한 단순함을 구하시오. - 빙켈만

화가는 철학자이지 않으면 안 된다. - 다비드
(...다비드는 이와 같이 주장하여, 백 권의 철학서를 공부하고 키가 닿을 만큼 많은 양의 데생 제작을 화가에게 권했다고 한다...)

앵그르의 소묘관 : (..서양미술사에서 '선'이라 하면 앵그르가 보티첼리와 더불어 최고로 꼽히고 있다. '선의 화신'으로 불릴 정도로 앵그르는 선에 사로잡혀, 탁월한 선묘 표현을 전개한 화가였다...)

훌륭한 한 획의 윤곽선만으로도 충분히 예찬 받는다. - 알베르티

데생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윤곽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표현'이자 '내면을 드러내는 형태'이며, '계획'이고 '살 붙이기'이다. - 앵그르

푸생은 미켈란벨로에 대해 참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는 미켈란젤로와 루벤스가 회화를 파괴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했을테지. - 앵그르

필촉이라 부르는 것은 제작하면서 저지르게 되는 일종의 남용이며 이것은 단지 기랼을 드러내보이기 위해서 자연의 모방으로부터 멀어지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 수재(秀才)와 거짓 예술가임을 알리는 것일 뿐이다. 필촉은 그것이 아무리 솜씨가 뛰어난 것일지라도 지나치게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 앵그르

데생은 성실한 예술이다. - 앵그르

데생을 색채 이외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앵그르

들라크루아와 문학 :

나의 풍경화의 아버지 - 컨스터블을 일컬어

화가는 문장가의 마음에 들고 싶어한다. 그림붓을 잡는 인간은 펜을 잡는 인간에 종속된다. 그래서 화가는 사상가와 철학자로부터 이해받고자 한다. 왜 그러고 싶어하는가. 그것은 자기 작품을 평해주는 사람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회화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문학가는 지금까지의 역사 속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으며, 문학가가 컴퍼스를 들고 궁전을 건립하는 일 때문에 고대 시를 포기했던 사실도 거의 없다. 그러나 그 반대로 어떤 음악가, 화가, 장군(나폴레옹)이 그 시대 최고의 문장가가 된 예는 자주 있으며, 현재도 자주 볼 수 있다.

색채와 데생은 모두 필수 요소이며, 각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는 이 두 요소에 대해서 헌신적인 노력을 하였고, 그 어느 한쪽만을 중요시하여 다른 쪽을 버린 적은 없었다.

그런데 거장들의 경우 자신들이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각자 독자적인 표현 양식이 우러나온다.

담홍빛 윤기가 흐르는 저 작은 새의 노랫소리 생생하여 모든 자연이 매혹으로 넘치는 아침, 저 아름다운 경치 앞에서 어느 누가 선과 명암에 대해서 생각할까, 학자도 보통 사람인데 그냥 똑같이 감동하고 기억하고, 단지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행복감에 잠길 뿐이겠지.

실로 옳지 못한 것이며, 의구심이 든다. - 당시 아카데미등에서 행해지던 소묘 교육법에 대해서

완벽한 소묘 교육법은 없다.

훌륭한 소묘는 미술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은 화가들의 소묘가 아니다.

상상력이란 이성이 성취한 감격이며 이해력으로부터 분명해진 정열, 정열에 의해서 처음으로 완전하게 전개되는 이해력의 작용이다.

기술의 모방이 무의미하게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흡사 소작농이 소작지를 물려받아 계승하는 것과도 같이, 회화라는 것을 한 가지 색으로 전부 칠해버린 아카데미즘의 부패와 침체. - 아카데미즘에 대한 비평

데생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긴 유일한 사람이 있다. 그의 데생의 비밀은 데생에 대한 깊은 이해에 있으며 그는 그 원리를 인체의 구석구석에까지 철저하게 파헤치는 힘든 일을 유일하게 해낸 천재다. 그 사람이 바로 앵그르다.

제작에 직면하고 나서야 자를 들고 연구에 몰두해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그 전에 자연을 마주 보고 섰을 때, 작가의 열렬한 묘사 욕구를 충분히 실현하고 원조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두뇌와 두 손이 측향 도구가 되어야 한다.

앵그르야말로 그 어떤 인공적인 도구를 갖지 않고서, 그의 육안만으로 사물을 측량할 수 있는 화가이다.

소묘를 할 때는 윤곽선에 주의해야 한다. 윤곽은 단지 공관과 물체의 경계선이 아니며, 물체의 중심에서부터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은 궁극적으로 양감을 파악하는 수단이 된다. - 들라크루아

하인리히 뵐플린(1864-1945)은 저서 <<미술사의 기초 개념>>중 <'선적'인 것과 '회화적인 것'에 대해>에서 뒤러와 렘브란트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선화(線畵)적 양식을 선으로 보고, 회화적 양식은 덩어리로 보는 것이다. 선 중심으로 본다는 것은 사물의 의미와 미를 먼저 윤곽을 통해 찾는 것(윤곽 안의 여러 가지 형에도 그 나름의 윤곽이 있다)이며, 눈으로 경계를 따라 가며 가장자리 선을 인지하는 것이다. 한편 덩어리로 본다는 것은 가장자리 선에 신경 쓰지 않고 윤곽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 반점 현상으로서 사물의 인상이 좌우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반점 현상이 색채로서 나타나든 단지 명암으로서 나타나든 상관없다.......윤곽선은 형태 전체를 둘러싼 확실한 요소일 수 없다.

경계를 설정하는 선의 중요성이 적어지면, 즉시 회화적 가능성이 시작된다. 그렇게 되면 갑자기 신비한 힘 때문에 구석까지 온통 활기에 찬 듯이 보인다. 윤곽선을 중요시할 때 형태는 움직일 수 없으며, 대상은 고졍된다. 한편 대상에 유동적인 성질을 부여하는 것은 회화적 표현의 본질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때 형태는 유희를 시작하고 빛과 음영이 독립된 요소가 되어 밝음은 밝음을, 어둠은 어둠을 원해서 서로 결합된다. 전체가 끊임없이 솟아올라 운동이 일어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운동은 온화하기도 하고 격하기도 하며 희미한 진동같기도 하고 때로는 섬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운동은 보고 있어도 끝나지 않고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나 자신은 결코 소묘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들라크루와
(이렇게 말한 들라크루아가 죽은 후 그의 화실에는 수천 점에 이르는 펜, 연백, 목탄, 수채 소묘가 남겨져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가능한 정성들여 그려낸다. - 바르비종파

(...쿠르베가 1855년 살롱 대신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개최된 전람회에 <오르낭의 매장>을 비롯하여 너비 6미터의 대작 <화가의 작업실>등 14점을 출품하였다. 그러나 이 대작들은 낙선의 쓰라림을 겪었고, 격노한 쿠르베는 만국박람회장의 입구에 사설 파빌리온을 세우고 낙선작을 진열하고 '사실주의'전을 개최했다. 그는 이 전시 도록에 유명한 사실주의 선언을 실었다....)

내 시대의 풍습, 사상, 외관을 나 자신의 판단에 의해서 번역하는 것, 나는 화가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 한마디로 예기해서 살아 있는 예술을 만들어내는 것이 내가 존재하는 목적이다.

천사를 그리기 위해서는 천사를 보아야만 한다. - 쿠르베

(...생각해보면, 자연주의적 사실 표현이라고 해도 그것은 화가의 '환영'이며, 화가 저마다의 미학에 의해 형성된 표현이다. 환영을 옮겨내는 작업에 한층 환상성이 가미되면 '환상화'가 되고, 감정과 서정성이 가미되면 '심상 풍경'이 된다.

철저하게 그리려는 화가에게 방대한 시간을 견디는 지규력과 집중력은 필수 조건이다. 때때로 사실을 벗어나 데포르마시옹(deformation, 변형)을 추구하는 다양한 양식과 유파가 생겨났다. 하지만 이것도 사실이라고 하는 굵은 기둥에서 가지가 갈라져 나온 것처럼 보인다. 안이하게 '초현실주의'적인 표현으로 전환하거나, 형태를 무너뜨려서 '표현주의'로 도망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원래 '못그린다'는 것과 '변형'과는 분명히 다른 차원인데도 불구하고, 화가 쪽이나 보는 사람 쪽도 자주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애매한 문제인 것이 사실이다.

손보다 먼저 머리를 작동할 것.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의 이 말은 환영이라는 회화의 숙명을 직시하여, '무엇을 그릴 것인가'라는 사실 묘사의 본질을 명확하게 꿰뚫고 있다....)

회화의 존망 : 사진의 등장...

(....사진의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에 눈을 뜬 사진가들은, 자신의 표현 수단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고 싶어했다. 그들 스스로 전람회를 조직하는 등 사진가들의 정열과 행동은 1859년의 살롱에 '사진 부문'의 개설을 실현하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 사진은 '예술의 무서운 적'(보들레르)이 되었다. 한편 신고전주의 거장 앵그르는 <샘>의 나부 표현을 위하여 나다르의 누드 사진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성과 연구의 성과인 예술 작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고 평하며, 사진이 숭고한 데생을 타락시키는 원흉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사진 산업은 계속 발전하여 결국 회화의 아성인 '색채'까지 위협하는 '컬러사진'을 등장시켰다. 1863년 '낙선자 전람회'에 컬러 사진의 출품은 그때까지 회화의 사명에 결정적으로 임종을 고하게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자연주의적 사실 회화가 온통 뿌리째 흔들리던 순간이었다....)

인상주의의 탄생

단지 인상을 그렸을 뿐인 그림 - 미술기자 루이 르루아(Louis Leroy)가 제1회전(展)에 출품된 모네의 <인상-해돋이>(파리 마르모탕 미술관)라는 작품을 보고 비웃으면서 내린 평

그야말로 감각적으로 그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조형원리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전통적 회화를 파괴하는 극도로 추악한 작태이다.
한낱 아마추어의 장난. - 당시의 인상주의 양실에 대한 비판

모네로부터 추상화가 시작되었다. - 칸딘스키

자연으로써 푸생을 수정한다. - 세잔

(...세잔은 인상주의 회화가 안고 있는 과제를 고전적인 회화 구축에 대한 해석으로써, 조형적으로 견고한 화면을 구축하여 해결하였다. 그는 정물과 풍경, 그리고 인물에서 다양한 제재를 활용하여 건축과 같은 화면구성을 시도하였다. 세잔은 그야말로 조형이란 무엇인가,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새롭게 탐구했다....)

자연은 구체, 원뿔, 원통체로 다루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은 반드시 투시법에 따르며, 물체와 면의 전후좌우가 중심의 한 점으로 집중된다.....자연은 광경의 펼쳐짐보다도 그 깊이로 참모습이 보일 수 있다. - 세잔이 1904년 4월 15일에 에밀 베르나르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데생과 색채는 분리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서 착색함에 의해서 데생이 이루어지고, 색채가 조화됨에 따라 데생이 정확해진다. 색채가 풍부해지면, 형태도 충실해진다. - 색채와 소묘(선묘)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하나라는 세잔의 소묘관을 엿볼 수 있다.

내가 꿈꾸는 것은 균형의 에술이며, 순수하고 정온한 예술이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악착스러운 주제가 아닌, 모든 지적인 노동자나 사업가에게도 문필가에게도 마찬가지로 두뇌를 진정시키고 완화할 수 있는 것, 육체의 피로를 치유할 수 있는 좋은 팔걸이의자와 같은 것이기를 바란다. - 마티스

피아니스트가 음계 연습을 한다거나 곡예사가 육체를 단련하는 것처럼, 나는 어려움을 사랑합니다. - 혹독한 데생 단련의 과정이 감춰져 있음을 언급한 마티스

나의 그림과 데생의 전모를 단시간에 겉모습만 보면 그것들이 지극히 간단한 외관을 가진 것 같지만, 과연 여러분들은 내 작품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는가요. 나는 항상 나의 고심을 감추려고 애써왔습니다. 내가 얼마나 혹독한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느지에 대해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작품이 봄의 가벼움과 환희를 갖기를 바랐습니다. 그러한 까앍에 젊은 화가들이 내 작품 속에서 단순히 표면적인 용이함, 데생의 가벼움만을 보고 취하여 필수적인 노력들을 게을리 하는 구실로 삼지는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 마티스

데생의 공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데생이 정신에서 오고 색채는 감각에서 온 것이라면, 먼저 데생을 하여 정신을 일구어감으로써 색채를 정신의 좁은 길까지 인도해야 합니다. 젊은 화가는 기나긴 수업시간을 거친 후에 비로소 색채에 손을 대야만 합니다. 그것은 내적 표현의 수단이 되는 색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그리는 모든 영상과 모든 상징마저도 사물에 대한 그의 애정의 반영임을 기대할 수 있겠지요. - 마티스

그는 이미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았다. 그의 정신은 쇠퇴해가는 현실에 자발적으로 도전하여, 이제는 자신의 안과 밖에서 조형상의 보편적인 재생 능력이 성숙해가고 있다. - 1908년 살롱 도톤에서 거절당한 작품을 중심으로 브라크의 첫 개인전이 칸바일러의 화랑에서 개최되었다. 도록의 서문에 기욤 아폴리네르가 쓴 평

다양한 장소, 형상, 가옥 같은 모든 것을 기하학적인 도식, 즉 정육면체(큐브)로 환원한다. - 브라크

나는 어린애다운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 - 피카소

스페인의 화가들은 열악한 교육을 받고 있네. 만약 내게 화가를 지망하는 아들이 있다면 스페인 같은 곳에서 살게 하지 않아....파리도 마찬가지야....뮌헨에 보낼 거야. 그곳에는 점묘법이니 뭐니 하는 유행 따위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모두가 진지하게 그림 수업을 하고 있지. 내게는 특정 유파를 추종할 생각 때위는 추호도 없어. 그런 짓을 한다면, 그 파의 무리들과 닮거나 가까워진 그림이 될 뿐이야. - 피카소

미술관은 아름답다. - (..프라도 미술관 등지에서 고전 명작들을 통하여 직접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배우고 소화하는 것이야말로 어떤 지도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피카소. 그야말로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그의 예술관을 엿볼수 있다...)

현대 회화에는 탐구라는 말이 중요한 듯하지만,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어.....발견한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 - 피카소

보는 사람을 명상으로 초대하는 회화 - 로스코

호흡도 하지 않고 시간을 초월하며 양식이 없고 생명도 없으며 불멸의 무궁무진한 회화 - 색면회화에 대해서, 라인하르트

프로젝트야말로 전부다. - 크리스토

******************************************************

출처 : <데생으로 본 미술사, 난조 마모루(南城 守)지음, 고경래(高敬來) 옮김, 예경>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아름다운 미술관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