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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박물관 산책

[스크랩] 로코코 미술

작성자소피스틘|작성시간19.09.24|조회수329 목록 댓글 0

 

서양미술사조 가운데 로코코(Rococo) 양식은 18세기 프랑스 파리의 귀족층을 중심으로 한 장식성이 강한 미술의 경향을 일컫는다. 흥미로운 것은 많은 서양미술사 안내서들에서 로코코 미술은 다른 사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분량으로 기술된다는 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17, 18세기 서구 유럽은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이 저마다의 양상으로 분화되는 시기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 시대를 아우르는 전 유럽적인 통일된 양식을 찾는 것이 불가능해졌고 그 의미 역시 퇴색되었다. 따라서 루이 15세 시기 전후의 프랑스 파리 귀족층과 일부 독일어권의 작은 궁정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로코코 양식은 알프스 북부지역의 지엽적인 경향으로, 또는 17세기 바로크와 19세기 신고전주의 사이에 끼인 사조로서 인식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로코코 미술의 과도기적, 경계적 특성은 그 역동성으로 인해 오히려 미덕으로 파악된다.

 

 

화려하고 섬세한, 강한 장식성을 특징으로 하는 로코코 미술

고딕과 바로크라는 용어의 유래가 그러했듯이, 로코코 역시 그 다음 세대에 이어진 19세기 신고전주의 미술가들에 의해 조롱의 의미로 고안되었다. 이미 16세기부터 귀족들의 저택 정원에는 인조동굴(grotto)을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그 벽 가장자리를 작은 조약돌(rocaille)과 조개 껍데기(coquille)로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로코코라는 명칭은 이 두 단어(rocaille+coquille)를 조합해 만든 것이다. 우리가 흔히 로코코 양식하면 떠올리는 화려하고 섬세한, 때로는 조악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장식성은 이러한 명칭의 유래와도 관련된다. 실로 로코코 미술에서 장식성은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힌다. 이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당시 프랑스 파리의 시대적, 사회적 상황과 연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작자미상 [18세기 수비즈 호텔 전경]
루이 14세가 수많은 귀족들을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데려가 거주하게 한 것은 사실상 철저한 감시와

통제를 위해서였다. 이러한 루이 14세가 죽자 귀족들은 감옥과 같던 베르사이유를 빠져 나와 기꺼운

마음으로 파리에 새 저택을 짓고 장식했다.

 

 

태양왕이라 불리며 절대왕정을 수립한 루이 14세가 1715년 사망하자,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무려 72년이라는 선왕의 오랜 재임기간 동안 소모적인 전쟁과 엄청난 국가 부채, 과다한 세금에 허덕이던 프랑스는 어린 루이 15세를 대신해 오를레앙의 필립 공작이 통치하는 섭정기를 맞이했다. 오를레앙 공작이 집권한 이 시기를 ‘레장스(Régence: 섭정)’라고 한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계몽사상가 볼테르에 따르면 섭정시기 8년(1715~1723)은 자유와 기쁨이 충만한 프랑스인 본연의 민족성을 되찾은 시기였다.

 

쥐스트-오렐 메소니에 [테이블을 위한 디자인] 1730년대, 파리.
건축장인이자 왕실 수석 세공사 메소니에는 로코코 장식예술의 대가로 꼽힌다.
로카이유 장식은 조개나 돌, 나뭇잎 모양의 자연물 형상에 착안하여 C자나 S자 형태의 불규칙적인 곡선과 비대칭적인 문양을 주로 사용한다.

샤를 나투아르 [프시케 이야기] 1737~3179년, 프레스코 벽화, 수비즈 호텔, 파리.
18세기 파리 귀족 궁전 건축의 표본이라 할 만한 수비즈 호텔의 내부는 파스텔 톤 벽면에 금박 문양과 로카이유 장식이 조화를 이루고, 벽면에는 그에 꼭 맞게 재단된 그림이 걸렸다.

 

 

오를레앙 공이 왕의 궁정을 파리로 옮김에 따라 귀족들 역시 서둘러 베르사유 궁전을 나와 파리로 돌아왔다. 그들은 보다 높아진 영향력과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새 저택을 짓고 실내를 꾸미는데 열중했고, 지성과 부를 갖춘 상류 시민계급은 예술애호가(amateurs d’art)로서 미술을 연구, 비평하고 수집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와토 [게르생의 간판] 1721년경, 캔버스에 유채, 162x306cm, 카를로텐보르 궁, 베를린
당시 게르생의 미술 상점은 노르르담 다리 위에 있던 좁고 긴 실내 구조의 수많은 상점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와토가 그린 이 작품에서는, 상점 전면이 문이나 벽도 없이 길거리와 면해 있는 개방구조에 안쪽으로는 내실이 딸린 넓고 화려한 실내로 묘사되었다. 벽에 빽빽이 걸려 있는 그림들 역시 루벤스, 반 다이크, 티치아노와 베로네제와 같은 대가들의 화풍을 흉내 낸 가상의 걸작들이다. 당시 상점을 차린 지 1~2년에 불과했던 게르생을 위해 실제와는 다른 멋지고 고급스런 상점의 모습을 그려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레장스 시기 초기 로코코 양식에 해당하는 장 앙투안 와토(Jean-Antoine Watteau)가 그린 [게르생의 간판]은 이러한 당대 사회 분위기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18세기 초 프랑스의 미술가, 미술상인, 수집가에 관한 단상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림 속 상점 벽면은 와토가 존경한 베네치아와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으로 가득하다. 왼쪽에는 점원이 그림 한 점을 나무 상자 안에 담고 있는데, 이아생트 리고(Hyacinthe Rigaud) 풍의 루이 14세 초상화임을 알 수 있다. 등을 돌린 분홍 비단옷의 여인이 그녀를 이끄는 남자의 손을 잡고 지나치듯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자신들의 저택을 장식할 그림과 소품을 고르는 세련된 귀족, 혹은 부유한 시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루이 14세의 시대는 가고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온 것이다.

 

이 작품은 와토가 친구이자 컬렉터, 또 미술상인으로 알려진 에돔 프랑수아 게르생(Edme Francois Gersaint)의 상점 입구를 장식하기 위해 그린 것으로, 기록에 따르면 약 2주간 상점의 간판 역할을 하며 대단한 평판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당시 미술상인은 귀족들의 저택 실내를 꾸미는데 필요한 가구와 집기 및 동양 도자기와 같은 공예품을 컨설팅하고 판매하는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게르생 역시 초기에는 회화 작품에 주력하다가 점차 거래 품목을 온갖 종류의 값비싼 물품들과 희귀품목(nouvelles curiosités)들로 확대해나갔다. 이러한 상인들을 마르샹-메시에(marchand-mercier)라고 불렀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자신들이 취급하는 화려하고 귀한 품목들로 귀족들의 저택 실내를 장식해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취급하는 회화 역시 실내 장식의 기능이 주요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로코코 회화가 지닌 밝고 경쾌한 색채와 ‘사랑, 연회, 신화’와 같은 귀족 취향의 주제들은 이러한 기능적 측면과도 무관하지 않다.

    

와토 [키테라 섬으로의 순례] 1712~1717년
캔버스에 유채, 129x194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NM)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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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캉탱 드 라투르 [퐁파두르 후작 부인] 1755년, 종이를 댄 캔버스 위에 파스텔, 178x213.6㎝, 루브르 박물관, 파리.
그림 속 퐁파두르 부인이 들고 있는 악보와 책상 위 책들, 지구본, 바닥의 화첩 등이 그녀가 지적인 소양을 갖추고 있음을 나타낸다. 지구본 옆에 꽂힌 책에는 금박글씨로 Enciclopedie(백과전서)라고 박혀있다.

 

 

마담 드 퐁파두르의 후원, 그리고 로코코 양식의 전성기 

오를레앙 공작 사후, 1723년 왕위에 오른 루이 15세 시대에 와서 로코코 양식은 전성기를 맞게 된다. 이 시기 문화와 예술은 살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루이 15세의 애첩 마담 드 퐁파두르의 역할은 지대했다. 귀부인들이 주선하는 살롱 모임은 학식과 교양을 갖춘 귀족과 시민계급 지성인들이 만나 당대의 현안과 예술을 논하는 자리였다. 퐁파두르 부인이 볼테르와 같은 계몽주의 철학자들을 지지하고 보수적인 가톨릭과 왕당파들이 금서로 규정한 백과전서를 출판할 수 있게 도왔다는 일화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새로운 사상과 문화, 예술의 취향을 선도한 퐁파두르 부인이 후원한 화가 가운데 프랑수아 부셰(Francois Boucher)를 꼽을 수 있다. 퐁파두르 부인에게 드로잉을 가르치기도 한 부셰는 와토의 열렬한 숭배자였다. 그러나 와토가 그린 귀족들의 ‘사랑의 축제(Fête galante: 페트 갈랑트)’는 부셰에 와서 ‘사랑의 신화(Mythologie galante: 미솔로지 갈랑트)’가 되었다. 부셰는 여신 비너스를 형상화함으로써 삶의 근원적 에너지로서의 사랑의 힘과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여성미를 찬미하고자 했다. 부셰의 사랑의 미학은 애제자 장-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e Fragonard)의 [사랑의 과정](1773) 연작들과 [그네](1767)와 같은 ‘연애 풍속화(Genre galante: 장르 갈랑트)’에서도 그 자취를 발견할 수 있다.

 

부셰 [에로스의 무기를 빼앗은 비너스] 1749년
캔버스에 유채, 107x173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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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고나르 [사랑의 과정: 만남] 1773년
캔버스에 유채, 318x244cm, 프릭 컬렉션, 뉴욕
이 작품은 루이 15세의 마지막 정부 마담 뒤바리의 성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4개의 연작 가운데 하나이다. 훗날 뒤바리 부인의 취향이 신고전주의로 바뀌면서 결국 거절되었다고 한다.

 

 

로코코 양식의 확산과 쇠퇴

파리에서 태동한 로코코 양식은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의 지방 공국 제후들의 궁정으로 확산되었다. 그 가운데 남부 독일 지역의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 궁전 내부를 장식한 프레스코화는 베네치아 출신의 장식미술가 지오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Giovanni Battista Tiepolo)의 작품으로 눈여겨볼만하다. 티에폴로는 제후주교 레지덴츠 궁전의 대형 연회장인 황제의 홀 벽화가로 발탁, 초청받아 두 아들과 함께 뷔르츠부르크에 오게 되었다. 그는 팔각형의 접견실 천장과 벽에 12세기 프리드리히 바바로사 대왕 시대의 영광스런 역사를 재현해냈다.

 

뷔르츠부르크 레지덴츠 궁전 접견실.

티에폴로 [아폴론과 대륙] 1752~1753년
프레스코화, 제후주교 레지덴츠 계단실 천장. 뷔르츠부르크.

 

 

또한 계단실의 가로 30m, 세로 18m 너비의 거대한 천장화는 관람자가 계단을 오를 때마다 달라지는 장면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천장 화면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 윗부분에 방사선으로 뻗은 빛줄기와 함께 태양신 아폴론이 등장하고 풍요의 여신 케레스, 전쟁의 신 마르스, 사랑과 평화의 여신 비너스가 자욱한 구름 형상으로 묘사되어 있다. 화면 가장자리는 4대륙을 여성으로 의인화한 알레고리로 표현되었는데, 남쪽 면은 황소에 올라 탄 유럽, 동쪽은 낙타와 아프리카, 북쪽은 악어 위에 앉은 아메리카, 서쪽은 코끼리를 타고 있는 아시아 대륙을 나타낸다. 티에폴로는 빛과 색의 도시 베네치아의 대가답게 역사적이고 신화적인 장면을 밝고 화려한 색채로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로카이유 문양 장식과 어우러진 전형적인 로코코 실내를 창출해냈다.  

 

알프스 북부지역으로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18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로코코 양식은 이미 쇠퇴일로였다. 프랑스 사회 전반에 퍼진 계몽주의 사상은 종교적 표상에서 벗어나 현세적 인간의 삶을 찬미하는 로코코 미학과도 일면 상통하는 바가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시민 문화의 성장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이를테면, 백과전서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에서 2년마다 열리는 전시회 ‘살롱(Salon)’에 출품된 작품들의 평문을 기고하기도 한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는 와토와 부셰, 프라고나르의 회화를 비사실적이고 퇴폐적이라고 맹렬히 비판하는 한편 장-바티스트-시메옹 샤르댕(Jean-Baptiste-Siméon Chardin)과 장-바티스트 그뢰즈(Jean-Baptiste Greuze)와 같은 화가들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시민계급과 서민의 일상을 소박하고 교훈적으로 묘사한 이들의 회화는 계몽주의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이러한 반(反)로코코적인 움직임은 혁명의 시기를 거쳐 신고전주의로 이행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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